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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203화 (203/257)

제203화

고스트가 사용하는 비약은 생명력을 대가로 오러를 강화시킨다.

하지만 지금 병사들이 먹은 것은 오러가 아니라 신체 능력 자체를 강화 시키는 것이었다.

근력을 강화시키고 어지간한 부상을 입어도 죽기 직전까지 움직일 수 있게 한다.

효과만 놓고 보면 병사들을 강화하기에 최고의 물건이다.

하지만 이게 실패작인 이유는 부작용 때문이다.

이 비약은 신체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지만 그렇게 생명력을 무작정 소모하면 99퍼센트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실패작으로 분류된 것이다.

또한, 병사들 본인도 자신의 신체 변화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장이 질질 흐르는 상황에서 몸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해서 멀쩡하게 싸울 수 있는 병사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래서 엘리제는 병사들에게 비약과 더불어서 자신이 독자적으로 배합한 마약을 같이 먹였다.

공포심을 마비시키고 투쟁 본능을 극한까지 상승시키는 효과의 마약이었다.

그걸 지난 이틀 동안 병사들의 식량에 조금씩 희석시켜서 먹여왔다.

한 번에 먹였다가는 효과가 나타나기 전에 부작용으로 사망하는 자들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틀에 걸쳐서 조금씩 약에 몸을 적응시킨 후에 3일째의 아침 식사에 희석시키지 않은 약을 탄 것이다.

약의 양에도 한계가 있어서 그 약을 먹인 병사는 1만 정도가 다였다.

하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고통도 모르고 공포도 모르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도 끝까지 싸우는 광전사가 무려 1만이다.

나머지 병력은 후방에 대기시키고 그 광전사 1만을 메이치 성에 밀어 넣었다.

그 결과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메이치 성벽 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실패작 취급하지 말고 제대로 된 연구를 할 가치가 있겠어.’

광전사 1만이 보여주는 확실한 위력은 지크프리트가 보기에도 매력적이었다.

비록 저 1만명은 비약의 효과가 사라지는 대로 죽음에 이르겠지만, 저들로 인해서 밀턴 포레스트의 목을 칠 수 있다면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이대로는 위험해.’

밀턴은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공화국의 병사들은 거의 좀비나 다름없다.

밀턴이 종횡무진 성벽 위를 누비고 남부 기사단이 사력을 다하고 있었지만 성벽 위는 차츰 차츰 공화국의 병사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막아라! 반드시 막아야 한다!”

“성문으로 내려가게 하지 말아라!”

성벽 위의 공화국 병사들이 내부로 내려가는 계단을 점거하고 말았다.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행동하는 공화국 병사들이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성벽 아래로 내려가서 개폐 장치를 조작해서 성문을 열려고 하는 것이다.

“막아라! 반드시 막아야 한다!”

남부 기사단은 성문을 사수하라고 크게 소리쳤다.

다행이도 성문의 바로 앞에는 정예 병력인 철벽 부대가 대기 중이었다.

“방패 겹쳐!”

“무조건 사수한다!”

철벽 부대의 병사들은 스탠으로 만들어진 방패를 단단하게 겹치고 공화국 병사들을 맞이했다.

“크아아아아아아!”

“케에에에엑!”

공화국 병사들은 이제 인간의 모습을 거의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짐승처럼 비명을 지르며 달려드는 그들을 철벽 부대는 단단한 벽이 되어서 막았다.

퍼억! 퍽! 콰직!

공화국의 병사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지만 철벽 부대는 굳건하게 버텨냈다.

지휘관은 병사들의 뒤편에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

“방패를 겹쳐라! 옆에 있는 동료를 믿어라!”

“옛!”

단단하게 방어를 굳힌 철벽 부대는 공화국의 병사들을 저돌적인 공격을 막아냈다.

공화국 병사들은 거칠게 달려들며 계속 부딪혔지만 철벽 부대의 방패로 된 벽을 뚫지는 못했다.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그 모습은 파도를 막는 방파제의 모습을 연상하게 했다.

‘괜찮을 것 같군.’

밀턴은 성벽 위에서 철벽 부대가 버티는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철벽 부대는 원래 방어가 목적인 부대다.

무장으로 작은 숏소드 하나를 들고 있기는 하지만 진짜 주 무장은 보통의 타워 실드보다 더 크고 두꺼운 저 방패에 있다.

한 명 한 명이 사용하면 별것 아닐지 몰라도 집단이 되어서 전술적으로 활용하면 저들은 언제 어디서나 아군을 위해서 든든한 벽이 되었다.

저들을 성문 앞에 배치해둔 것은 만에 하나 성문이 뚫릴 경우를 위해서였는데 다행이도 내부의 공격에도 잘 대응하는 듯했다.

그게 가능한 것은 철벽 부대의 대장이 지휘를 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을 버려! 전체가 하나가 되는 거다.”

“옛!”

철벽 부대의 대장 그는 4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중년 남성이었다.

일견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그의 말 한마디에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그가 얼마나 우수한 지휘관인지 알 수 있었다.

애당초, 철벽 부대는 성문 쪽을 향해서 진형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적이 온다는 것을 안 시점에서 바로 진형을 반전시켜 적을 맞이한 것은 대단한 지휘력이었다.

덕분에 성문 앞을 철통같이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밀턴은 그런 지휘관을 보며 말했다.

“진짜 우리 편인 게 다행이지.”

이름은 숀.

철벽 부대의 대장이지만 작위는 고사하고 기사조차 아니다.

밀턴이 기사의 작위를 내린다고 했지만 본인이 그걸 거부했다.

그리고 밀턴도 무리해서 작위를 수여할 수는 없었다.

사실 레스터 왕국 내부에서도 그가 작위를 받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가 힐데스 공화국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냥 그런 출신이 아니다.

40도 되기 전에 준장의 계급까지 올라갔던 남자다.

우수한 성적으로 사관 학교를 졸업하고 스트라부스 왕국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활약을 하고 공을 세워 준장의 자리까지 올라갔던 것이다.

공화국에서 준장이면 왕국에서는 거의 백작에 준하는 자리다.

젊은 나이에 거기까지 올라간 숀은 공화국을 위해서 한 가지 계획을 주장했다.

공화국군 강화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논문을 발표한 것이다.

힐데스 공화국의 산악병들에게 5인1조의 정찰조를 따로 육성한 것과 산길의 길목에 낙석을 이용한 함정을 설치하는 것 등등.

나라를 위해서 젊은 천재가 만들어낸 필생의 역작이었다.

하지만 그런 숀의 논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두드러진 공적을 세우며 출세하는 그에게 기존의 파벌들이 견제를 해 왔기 때문이다.

탁상공론에 가까운 망상에 불과하며 이런 망상을 현실에 도입하기 위해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라는 것이 공화국의 수뇌부가 그의 논문에 내린 답이었다.

대외적인 이유는 그럴 듯했지만 사실은 숀이 더 이상 출세하기를 원하지 않는 기존 파벌들의 견제였다.

결국 그가 주장하는 공화국군 강화 계획은 사장되었다.

그리고 파벌을 이뤄서 정치 싸움을 하는 공화국군의 모습에 숀은 환멸을 느꼈다.

뭐가 신분에 구애 없이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이란 말인가?

결국 고위직을 독점하고 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파벌이 한 자리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더러운 정치질에 여념이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현실에 염증을 느낀 숀은 그대로 직위를 반납하고 시골로 내려가 버렸다.

그리고 힐데스 공화국이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그는 평범한 야인으로 살았다.

밀턴이 그런 숀을 발견한 것은 공화국의 문건을 정리하던 중에 발견한 논문 때문이었다.

숀이 발표했던 공화국군 강화 계획 논문을 봤을 때 밀턴은 그 가치를 한 번에 알아봤다.

거기에 적혀 있는 이론은 시대를 100년은 앞서가 있었으며 힐데스 공화국의 지형적 이점을 극대화시키는 주장이 가득했던 것이다.

심지어 그는 북부의 동토를 누군가 횡단해서 공격할 가능성이 있으니 북부의 방어 라인을 이중으로 만들어 수도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만약 이 계획이 받아들여졌다면….’

어쩌면 힐데스 공화국은 아직도 존재했을지 모른다.

밀턴은 숀의 가치를 알아보고 불렀다.

하지만 숀은 오지 않았다.

비록 나라가 정복당했다고 해도 공화국의 고위 장교였던 그가 밀턴의 부름에 응할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오지 않는 그를 보고 릭과 토미는 크게 화를 내며 당장 끌고 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둘을 말렸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오히려 잘됐군.’

어떻게 포섭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상대가 알아서 성의를 표할 방법을 마련해 준 것이다.

밀턴은 몸소 움직여서 숀에게 찾아갔다.

힐데스 공화국의 북서부 지역의 산간 마을에 은둔하고 있는 작은 마을까지 직접 찾아간 것이다.

일국의 대공이 인재 한 명을 영입하기 위해서 몸소 말이다.

그리고 숀의 집에 도착한 밀턴은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숀인가?”

“그렇소. 그러는 당신은 누구요?”

“나는 밀턴 포레스트라고 하오.”

“허어…. 대공 전하셨군. 무례했다면 미안하오.”

빈정거리는 말투에 밀턴의 뒤에 있는 릭과 토미는 울컥했다.

하지만 밀턴이 나서지 말라고 미리 말을 해 두었기에 둘은 꾹 참았다.

그리고 밀턴은 그 틈에 숀을 보고 상태창을 확인했다.

[숀]

군인 LV8

무력 - 68 통솔 - 99

지력 - 90 정치 - 74

충성 - 50

특성 - 훈련, 전술, 냉철, 매복, 수성, 공성.

훈련 LV.8 : 병사들을 훈련시켰을 때 효율이 높다. 신병을 빠른 속도로 정예군으로 만들어낸다. 직접 훈련시킨 병사들을 전장에 이끌고 참가하면 병사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받는다.

전술 LV.8 : 전투에서 발휘하는 모든 책략의 완성도가 높아지며 큰 효과를 발휘한다.

냉철 LV.5 : 전투 중에 전황 전체를 보는 안목이 높아진다. 현장 지휘관으로서의 유연함을 발휘해서 아군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매복 LV.5 : 유리한 지형을 살려서 아군을 매복시킨다. 성공 시 적군에 혼란을 야기할 확률이 크다.

수성 LV.7 : 수성전에서 아군의 사기를 상승시키고 본인의 지휘력이 상승한다.

공성 LV.3 : 공성전에서 아군의 지휘력이 올라간다. 병사들의 피로 소모도가 줄어든다.

‘과연, 이 남자 진짜배기로군.’

능력치는 몹시 만족스러웠다.

전쟁터에서 20년 넘게 활동하며 혁혁한 전공을 올렸기 때문일까?

숀의 특성은 그야말로 전쟁에 특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첫 만남에서 이미 충성 수치가 50까지 올라가 있다는 것을 봤을 때 밀턴은 확신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퉁명스럽지만 내가 직접 온 것을 보고 꽤 놀란 거야.’

역시 직접 찾아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영입할 수 있는 확률이 확 올라갔다.

밀턴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부디 내 군단의 일익을 맡아 주지 않겠소?”

그러자 숀은 의심이 가득한 눈을 하고 말했다.

“어찌 일개 야인에게 이런 대접을 하십니까? 당신은 일국의 군주가 아닙니까?”

밀턴은 정중하고 예의 바른 태도로 말했다.

“그만큼 그대를 절실하게 원하기 때문이오.”

“그럼 명령하면 되지 않소? 이제 여기는 왕국이고 나 같은 일개 평민이 대공 전하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지 않소?”

비꼼이 가득 들어 있는 숀의 물음에 밀턴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대 정도로 기골 있는 남자가 권위를 내세워 명령을 한다고 들을 리가 없지.”

“…….”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간청하는 것뿐이오. 부디 나의 힘이 되어 주시오.”

밀턴은 그렇게 말하면서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숀은 눈을 부릅뜨고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아….”

공화국에서 자란 숀이지만 일국의 군주가 가지고 있는 권위가 어떤 것인지 모르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런 일국의 왕이 자신에게 머리를 숙이다니?

‘살면서 이렇게까지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었나?’

숀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권력, 부, 명예.

이런 세속적인 이득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야인으로 남기에는 가슴속에 품고 있는 꿈이 너무 큰 숀이었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거기에 충성을 다함으로써 자기 인생을 충실하게 써 내려가고자 하는 욕심은 있었다.

그런 숀에게 있어서 밀턴 포레스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을 알아준 인물인 것이다.

숀은 그 자리에서 털썩 무릎을 꿇고 말했다.

“이제까지 거듭 보인 무례를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일어서시오.”

밀턴이 직접 손을 잡아서 일으켜 주자 숀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전 힐데스 공화국 준장 숀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대공 전하에게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충성을 맹세한 순간 그의 충성 수치가 50에서 93까지 올라갔다.

“그대를 믿겠다.”

군신의 관계가 정립되자 밀턴은 말을 하대로 바꾸었다.

그렇게 숀이라는 남자는 밀턴의 휘하로 들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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