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게임-202화 (202/257)

제202화

“피해 상황은?”

밀턴은 바로 참모진들을 소환해서 피해 상황을 점검했다.

“사상자는 1,500 정도이고, 부상자는 2,000 정도입니다. 부상자 중에 중상자는 대략 500입니다.”

‘총 피해가 2,000인가?’

생각보다 많은 피해에 밀턴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제보다 더 피해가 크군.”

“어쩔 수 없습니다. 적들이 워낙 악착같이 달라붙었기 때문에 전투 자체가 어제보다 더 치열했습니다.”

“그랬던가?”

“예. 놈들이 너무 필사적이라서 남부 기사단에서도 사망자가 다섯 명 발생했습니다.”

“기사단에서? 병사들에게 말인가?”

“예. 들리는 바로는 병사 수십이 기사에게 한 덩어리로 달라붙어서 그대로 성벽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고 합니다.”

“독한 것들….”

밀턴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마스터인 밀턴에게 있어서 병사들이란 아무리 악착같이 덤벼들던 간에 그냥 슥 베어 버리면 끝나 버린다.

하지만 일선에서 병사들과 함께 싸우며 지휘를 한 남부 기사단의 기사단은 확실하게 공화국 병사들이 악에 받친 것을 느끼고 있었다.

죽음을 도외시하고 자기 한 몸을 던져가며 덤비는 공화국의 병사들을 보고 있노라면 진저리가 날 정도였다.

밀턴의 표정이 안 좋아지자 참모 중에 한 명이 말했다.

“하지만 공화국에서도 피해가 늘었습니다. 전투의 양상은 어제와 같았습니다. 적들의 피해도 분명 늘어났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대로 전투를 지속하면 이기는 것은 분명 우리들입니다.”

참모들의 말에 밀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잔혹한 얘기지만 전쟁이라는 것은 결국 숫자 놀음이다.

어느 쪽이 더 많이 죽었느냐?

라는 것이 승패를 나누는 기준인 것이다.

비록 아군이 많이 죽었다고 해도 적을 더 많이 죽였다면 그건 성공적인 결과였다.

신묘한 책략으로 아군이 거의 피해를 입지 않고 적군만 괴멸시켜 버리는 그런 상황은 100번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일이다.

보통은 양쪽 모두에 많은 사망자를 동반하는 것이 전쟁이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지금 이 전쟁에서 레스터 왕국은 분명 이기고 있다.

이기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대로 흘러갈 리가 없어. 지크프리트 그놈이 어디선가는 수를 쓸 것이다.’

밀턴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은 역시 상대가 상대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인물은 지구로 치면 나폴레옹이나 한니발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전쟁의 천재였다.

그런 지크프리트가 과연 무의미하게 병력을 소진시킬까?

밀턴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냐? 지크프리트.’

지크프리트는 자신의 막사에 엘리제를 부르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아리따운 여성을 자기 막사로 부르고 단둘이 독대를 하는 총사령관.

오해를 받기에 딱 좋은 상황이었지만 고스트가 철저하게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기에 그런 오해는 피할 수 있었다.

지크프리트는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꺼냈다.

“상태는 어떤가?”

“나쁘지 않아요. 조금 더 비율을 올려도 괜찮을 것 같아요.”

“너무 표가 많이 나면 곤란해.”

“다소는 어쩔 수 없어요. 그리고….”

엘리제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말했다.

“직접 상대하는 적들을 싹 전멸시켜 버리면 뒷소문은 걱정할 것 없지 않나요?”

엘리제의 말은 다소 극단적인 의견이었지만 말 자체가 틀린 건 아니었다.

“좋아. 그 부분은 너에게 맡기지. 확실한 성과만 낸다면 지원을 더 늘려줄 것이다.”

엘리제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최선을 다하도록 하죠.”

그리고 그녀가 물러난 다음 지크프리트는 제이크를 불렀다.

“제이크, 내일의 작전을 설명하겠다.”

“예. 말씀하십시오.”

“너와 고스트는 내일….”

지크프리트는 제이크에게 상세한 작전을 설명했다.

참모들에게 사흘 안에 메이치 성을 함락시키겠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내일, 메이치 성을 떨어트린다. 그리고 반드시 밀턴 포레스트의 목을 친다.’

지크프리트는 내일 승부를 걸기로 했다.

3일째.

공성전은 경우에 따라서 몇 달이 넘게 길어질 정도로 길게 보고 진행하는 전투였다.

그러니 3일이라는 것은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병사들은 많이 지쳐 있었다.

“빌어먹을, 또 시작인가?”

“징글맞은 것들….”

“전생에 전쟁 못 해서 한이 맺혔나? 망할 공화국 새끼들.”

이기고 있는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은 전투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만큼 피로가 심한 것이다.

공성을 하는 측도 아니고 수성을 하고 있는 레스터 왕국군의 병사들이 이렇게 지쳐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공성전의 밀도가 높다는 것이다.

고작 3일째이지만 체감상으로는 벌써 몇 달은 이렇게 싸운 것처럼 온 힘을 다해서 싸운 결과였다.

그리고, 수성을 하는 쪽이 이렇게 지쳤다면 공성을 하는 쪽은 훨씬 더 많이 지쳐야 했다.

그게 정상이다.

다만….

“우오오오오오!!”

“전진! 전진하라!”

“낙원에서 만나자 형제들이여!”

공화국의 병사들은 피로 따위는 느끼지 못한다는 듯이 맹렬하게 달려왔다.

“저 미친놈들….”

남부 기사단의 기사들은 저런 공화국의 병사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 공화국과 맞서 싸우던 스트라부스 왕국의 한 귀족이 말했었다.

[공화국의 최대 무기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에 대한 맹신이다.]

공화국이 기틀을 잡으면서 모든 국민들에게 철저한 공화주의 사상을 주입했다.

그 결과 전쟁터에서 공화국의 병사들은 종종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의 1인까지 결사적으로 싸우는 일이 있었다.

승패를 떠나서 적을 하나라도 더 죽이고 죽는 것이 미래의 낙원으로 이어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건 이미 국가의 사상이 아니라 종교의 수준까지 도달한 맹신이었다.

그리고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그게 정말 골치 아팠다.

‘어쩔 수 없지. 원래 저런 놈들인걸. 침착하게 잘 대응하는 수밖에 없어.’

레스터 왕국군의 기사들은 병사들을 다독이며 착실하게 수성에 임했다.

“쏴라!”

적들이 사거리에 들어오자 합성궁 사수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공화국 병사들은 맹렬하게 달려들었지만 그 와중에도 방패는 꼼꼼하게 들고 있었다.

쏟아지는 화살비를 방패로 막으며 성벽에 도달한 공화국 병사들은 그대로 운제의 사다리를 성벽에 걸쳤다.

쿵!

“돌격하라!”

“우오오오오!!”

“공화국 만세!”

공화국 병사들이 사다리를 타고 맹렬하게 달려들었고 남부 기사들은 이를 갈며 말했다.

“또 시작이군.”

“궁병들은 후열로 물러나라. 장창병은 올라오는 적들을 견제…. 헉?”

착실하게 지시를 내리던 기사는 깜짝 놀랐다.

이제 막 운제를 걸쳤을 뿐인데 공화국의 병사들이 벌써 성벽 위로 올라온 것이다.

“제길!”

그 기사는 이를 악물고 성벽 위로 달려가며 공화국 병사를 베어 버렸다.

촤아악!

단 일격에 공화국 병사의 가슴이 달라졌다.

그리고 기사는 크게 외쳤다.

“장창병은 서둘러라! 적이 마음대로 올라오지 못하게…. 엇?”

지시를 하던 기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일검에 가슴이 갈라진 병사가 그대로 피거품을 물고 자신에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이 무슨….’

당황한 기사는 순간 뒤로 물러나 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상대 병사는 크게 고함을 지르며 기사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크아아아아아악!”

그건 이미 인간이라기보다는 짐승의 울부짖음과 비슷한 소음이었다.

그러면서도 공화국 병사는 기사에게 달려들었고, 기사는 그런 병사를 발로 차 버렸다.

퍼억!

가슴팍이 차이고 상대가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나자 기사가 바로 검을 휘둘렀다.

“죽어 버려!”

날카롭게 베어간 그의 공격은 적 병사의 몸을 갈랐다.

하지만….

“크…. 크아아아….”

상대는 내장이 질질 흐르는 몸을 하고도 끝까지 기사를 공격하려 했다.

눈에 초점이 사라졌고 정체 모를 소음을 내며 맹목적인 적의를 보이는 공화국의 병사는 절대 정상이 아니었다.

아니, 정상 비정상을 논하기 이 전에 인간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으…. 으아아아아!”

결국 기사는 미지의 경험이 가져온 공포를 이겨내지 못하고 고함을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어찌 무섭지 않겠는가?

심장이 갈라지고 내장이 줄줄 흘러내리는 와중에도 미친 듯이 달려드는 적이라니?

이건 정상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죽어! 죽어! 죽으라고! 이 새끼야!”

기사는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두르며 적을 잔인하게 해체했다.

그건 깔끔하게 고안되고 성실하게 단련된 기사의 검술이 아니라 그저 공포에 질린 일개 인간의 칼부림에 가까웠다.

결국 그의 난잡한 공격은 적의 병사를 침묵시켰다.

“헉…. 헉…. 헉….”

체력의 한계가 아니라 공포에 짓눌린 기사는 호흡이 흐트러졌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크아아아아아아!!”

“카아아아아아아!!”

공포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이게 도대체 뭐야?!”

밀턴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공화국 병사들을 날려 버렸다.

콰앙!

“케에엑….”

“크르르르….”

오러 블레이드로 십수 명의 병사들이 날아갔지만 침묵시킨 것은 머리를 박살낸 몇 놈뿐이었다.

여파로 날아갔던 놈들은 비척거리면서 일어나서 다시 밀턴에게 덤벼들었다.

팔다리가 날아가고 몸의 여기저기가 상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그 모습은 밀턴이라도 기가 질릴 정도였다.

“빌어먹을…. 이건 거의 좀비잖아?”

밀턴은 이를 악물었다.

어제부터 공화국 병사들의 상태가 좀 이상하다는 보고는 들었다.

첫날에 큰 피해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더 악착같이 달려드는 바람에 아군의 피해가 더 커졌었다.

그때는 그냥 사기가 높은 편이다, 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 이상함을 알아야 했다.

“지크프리트. 이 개자식! 병사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

밀턴은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며 공화국 병사들을 베어 넘겼다.

마스터인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으면 이 상황은 돌이킬 수가 없었다.

“어떤가요? 만족스러운 결과인가요?”

엘리제는 지크프리트의 옆에서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신이 만들어낸 성과가 무척 자랑스러운 것처럼 말하는 그녀를 보며 지크프리트가 말했다.

“효과는 확실하군.”

“후후…. 당연하죠. 누구 작품인데요?”

“하지만 역시 너무 티가 난다. 이래서는 여러 번 써먹기는 어렵겠어.”

“아쉬워라.”

엘리제는 정말 아쉽다는 듯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잘 생각해 주세요. 이렇게 효과가 확실한 물건을 써먹지 않는다는 것도 아쉽잖아요?”

“…….”

지크프리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든 확고한 자기 의견을 주장하는 지크프리트가 침묵을 한다는 것 자체가 긍정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대단하긴 하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지금의 공화국 병사들은 지크프리트의 지시로 엘리제가 손을 쓴 것이다.

그 정체는 고스트를 강화하는 비약과 비슷한 또 다른 약이었다.

기본적인 원리는 같다.

생명력을 폭발적으로 소비해서 보통보다 훨씬 더 뛰어난 힘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엘리제가 개발한 비약의 원리다.

단, 이 비약은 위험하다.

고스트 대원들의 경우 희석한 비약을 오랫동안 먹으며 적응 훈련을 먼저 거친다.

보통 이 단계에서도 열 명 중에 두세 명은 사망하거나 탈락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적응 훈련을 마친 후에도 희석하지 않은 비약을 먹어 보고 그때 적응하지 못해서 죽는 대원들도 서너 명은 된다.

결국 열 명을 훈련시키면 잘해야 다섯에서 셋 정도 살아남아서 고스트 대원이 되는 것이다.

그만큼 이 비약은 위험한 물건이다.

실제 고스트 대원들 중에서도 비약을 복용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개량을 많이 거치면서 지금은 안정성이 많이 올라가 사망률을 낮췄지만 지금도 서른 명에 한 명 정도는 비약의 부작용으로 사망하고는 했다.

그리고 지금 병사들에게 사용한 비약은 고스트가 먹는 것보다 훨씬 더 옛날의 물건이다.

비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실패작이라고 할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