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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200화 (200/257)

제200화

메이치 성에 도착한 밀턴은 성의 상태를 최우선적으로 점검했다.

다행이 성의 상태는 썩 괜찮았다.

‘나라꼴이 엉망인 것치고는 성의 상태가 제대로군.’

성은 꾸준하게 유지 보수를 해 주지 않으면 금방 약한 부분이 발생한다.

그래서 많이 걱정을 했는데 메이치 성의 상태는 멀쩡했다.

성벽은 튼튼했고 해자도 깊었다.

아무래도 중요한 거점이다 보니 관리를 게을리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정도면 충분히 싸울 수 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밀턴보다 하루 늦기는 했지만 지크프리트 역시 메이치 성에 도착했다.

“역시 여기에 진을 쳤군.”

“지금 발랑스 왕국의 수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가장 유효한 거점이니까요.”

메이치 성은 발랑스 왕국의 수도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다.

하지만 굳이 여기를 지나지 않아도 수도로 이어지는 길은 있다.

단, 그런 길은 협소하고 멀리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공격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리고 설령 간다고 해도 메이치 성에 주둔 중인 병력을 정리해두지 않으면 수도를 공격하는 와중에 뒤통수를 맞을 것이다.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방어 거점.

이른바 국문(國門)이라고 할 만한 성.

보통 일국의 수도쯤 되면 그런 역할의 요새 도시를 하나둘쯤은 가지고 있는 법이다.

발랑스 왕국에 있어서는 그게 메이치 성이었다.

당연히 이곳이 결전지가 되리라는 것은 지크프리트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있었다.

“그것의 준비는 끝났나?”

“예.”

“좋다. 병력 배치가 끝나는 대로 시작한다.”

서로 간 사신을 보내고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 전투의 예법이지만 지크프리트는 그 절차를 싹 무시했다.

그냥 바로 공성에 들어갔다.

“전군 진격하라!”

“와아아!!”

“공화국 만세!”

지크프리트가 이끄는 공화국 병력 5만이 군대가 공격을 시작했다.

“적이 오는군. 합성궁 궁사들의 배치는 끝났나?”

“예. 성벽 위에 배치시켰습니다.”

“좋아. 사거리에 들어오는 대로 받아쳐라.”

“옛!”

밀턴의 지시는 성벽 위에 바로 전해졌다.

원래 사거리가 긴 합성궁이 성벽의 이점까지 얻으면 그 공격거리는 더 올라갈 것이 뻔했다.

적이 어느 정도 접근하자 바로 성벽 위에서는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쏴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화살은 아낄 필요 없다. 보급은 얼마든지 있으니 계속 쏴라!”

지휘관의 명령에 궁사들은 부지런히 화살을 날렸다.

“방패 들어!”

“머리를 지켜라! 다른 곳은 맞아도 안 죽는다! 죽기 싫으면 무조건 머리만 지켜!”

공화국의 지휘관들은 병사들을 독려하며 화살비를 헤치고 지나갔다.

수성의 기본은 화살이다.

거기다 적은 최근에 사거리가 비상한 합성궁까지 손에 넣었다.

그걸 알고 있으니 대비도 단단히 했다.

보통의 방패를 두 개 겹쳐서 만들어낸 임시 방패를 병사들에게 주어서 화살에 대비한 것이다.

덕분에 제법 잘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크악!”

“아악…. 내 어깨….”

그렇다고 해서 피해가 없을 수는 없었다.

우산을 들어도 몸이나 다리가 젖는 것처럼 방패를 든다고 해서 화살을 전부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병사들 중에 상당수가 몸의 여기저기에 화살을 맞고 고통에 신음했다.

하지만 지휘관들은 절대 방패를 내리는 것도 앞으로 걸어가는 것을 멈추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멈추지 마라! 멈추면 적의 표적이 된다!”

병사들을 독려하는 지휘관들 중에서도 몸에 화살을 맞은 지휘관들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이 병력을 성벽 아래까지 끌고 가야 했다.

“너무 우직하게 들어오는걸?”

성벽 위에서 상황을 살피고 있던 밀턴이 말했다.

“뭔가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으음…. 피해가 생길 걸 뻔히 알면서도 너무 우직하게 들어오고 있어. 저럴 놈이 아닌데 말이야.”

밀턴이 보기에 지크프리트는 철저하게 효율적인 전투를 하는 놈이다.

그런데 병력에 손상이 가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우직하게 밀어 넣는 것은 좀 이상했다.

성벽까지 병사들을 진군시킨다고 해도 이 메이치 성에는 꽤 깊은 해자가 있다.

사다리나 갈고리를 이용해서 성벽을 넘기에 곤란한 지형이라는 말이다.

“뭘 노리고 있는… 음?”

그때 밀턴은 적이 천막으로 가리고 있는 마차를 끌고 오는 것이 보였다.

꽤 커다란 마차였는데 천막에 가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태가 좀 낯익었다.

“…저거 설마?”

밀턴은 갑자기 다급한 표정을 짓더니 부관에게 말했다.

“합성궁 궁사들에게 전하라! 적이 천막으로 가린 마차에 불화살을 쏴라. 성벽에 접근하게 내버려 두지 마라.”

밀턴의 명령은 즉시 전달되었다.

하지만 그때 이미 몇몇 마차들이 해자 앞까지 도착한 후였다.

그리고 공화국의 병사들이 천막을 벗기자 드러난 것은….

“엇?”

“저건?”

병사들이 깜짝 놀랐다.

저것의 정체는 레스터 왕국의 모든 병사들이 알고 있었다.

저것은 운제였다.

밀턴이 영지전에서 개발하고 최근에는 레스터 왕국에서 유용성을 인정받아서 정식으로 공성 병기로 채택 받은 물건이었다.

“저건 우리 건데?”

“공화국 새끼들 따라하고 있어.”

“자존심도 없냐? 새끼들아!”

병사들과 기사들이 고함을 질렀다.

“웃기는 놈들, 너희들이 독점이라고 했냐?”

공화국의 장교는 그 조롱에 비웃음을 돌려주며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사다리를 펴라! 적의 성벽에 걸쳐라!”

“옛!”

그러자 운제에서 사다리가 뻗어져 나가며 그대로 메이치 성의 위에 걸쳐졌다.

쾅! 쾅!

“제길, 한 방에 걸리는군.”

밀턴은 그 광경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메이치 성의 성벽은 튼튼하기는 하지만 성벽의 높이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덕분에 해자의 밖에서 운제를 폈음에도 불구하고 한 방에 사다리가 닿은 것이다.

“남부 기사단 준비! 성벽 위에 적이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밀턴의 명령에 성문 앞에서 대기 중이던 남부 기사단이 성벽 위로 뛰어 올라왔다.

그리고 성벽 위에는 올라오려는 공화국의 병사들과 밀어내려는 레스터 왕국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죽어라! 왕국의 개들아!”

“떨어져라. 이 공화국 새끼들아!”

여기저기서 고함과 피가 난무하며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생각보다 잘 먹히는군. 이런 걸 일개 영주 시절부터 생각하다니? 확실히 제법이야.”

지크프리트는 성벽 위로 병사들이 올라가는 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예상하고 있겠지만 공화국에 운제를 도입한 것은 지크프리트였다.

밀턴의 행적을 샅샅이 조사하던 과정에 과거 영지전에서 새로운 공성 병기를 만들어서 썼다는 정보를 듣고 바로 시험 제작을 해 봤다.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더 쓸 만하다고 판단하자 바로 도입했다.

도입 과정에서 약간의 개량을 걸쳐서 더 튼튼하고 큰 사이즈로 만들기 까지 했다.

운제의 성능만 놓고 보면 공화국의 모방품이 레스터 왕국의 원조보다 더 우수할 정도였다.

덕분에 메이치 성의 여기저기에 운제의 사다리가 걸렸고 병사들은 성벽 위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아직 성벽 위를 점거하지는 못했지만 덕분에 성벽 위에서 날아오던 화살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여기까지는 계산대로였다.

“주군, 저희는 올라가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지크프리트의 뒤편에서 제이크가 말했다.

그는 지금 공격에 투입되지 않았다.

아니, 제이크뿐만 아니라 고스트 전원이 지금 후방에서 대기 중이었다.

운제를 이용해서 성벽 위에 병력을 올릴 수 있다면 가능한 강력한 정예 병력을 이용해서 성벽 위에 거점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크프리트는 자신의 주력인 고스트를 남긴 것이다.

“기다려라. 아직은 때가 아니다.”

지크프리트는 제이크에게 대기 명령을 내리고 성벽 위를 차분하게 관찰했다.

병사들이 올라가기는 올라갔지만 성벽의 적을 밀어내지는 못하는 듯했다.

“바로 기사단 전력을 투입했군.”

밀턴이 이끌고 있는 남부 기사단의 수준이 높은 것은 이전에 이미 체험을 했다.

‘방어력이 탄탄한 중장보병이 아니라 기사단을 투입했다는 것은 내가 고스트를 올려 보내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는 거군. 역시 아직은 때가 아니야.’

병법서에는 이런 말이 있다.

아무리 강력한 공격이라도 적에게 읽혀 버리면 그 효과는 반으로 줄어든다.

지크프리트는 그 말을 바꿔서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평범한 공격이라도 적이 예상하지 못할 때 공격하면 효과는 두 배로 늘어난다. 라고 말이다.

고스트는 지크프리트가 가지고 있는 비장의 전력.

가뜩이나 이번 전쟁에서 예상하지 못한 병력 손실이 많았는데 이 이상 무의미하게 소비할 수는 없었다.

‘이건 단순한 공성전이 아니야. 나와 밀턴 포레스트 간의 수 싸움이다. 그리고 이런 싸움에서 나는 진 적이 없지.’

지크프리트는 서서히 밀턴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고스트를 아끼고 있는 건가?”

싸움이 어느 정도 길어지자 밀턴도 상황을 알 것 같았다.

지크프리트가 주력을 아끼고 있는 것이다.

‘고스트라는 놈들은 비약을 이용해서 힘을 강화하지. 그렇다면 아끼는 것은 이해가 가.’

문제는 그 아낀 힘을 어디에 사용하느냐이다.

지금 밀턴은 남부 기사단을 성벽 위에 올리고 성문의 앞에는 혹시 모르니 철벽 부대를 배치해 두었다.

정석대로라면 탄탄한 방어력과 기동력을 갖춘 철벽 부대를 성벽 위에 올리고 기사단을 성문 앞에 대기시켜 놓아야 했다.

하지만 남부 기사단을 올린 이유는 고스트를 상대하기에는 철벽 부대가 다소 모자라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철벽 부대의 방어력은 어디까지나 스탠 갑옷의 방어력과 집단력에서 나오는 것.

개개인의 실력은 일반 병사보다 약간 뛰어난 정도일 뿐이다.

넓은 평지에서 탄탄하게 밀집 대형을 갖춘 상태라면 모르지만 공간이 좁은 성벽 위에서는 고스트를 상대하기에는 부족했다.

하지만 지크프리트가 고스트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철벽 부대를 성벽 위에 올리고 남부 기사단을 쉬게 해도 충분했다.

고스트처럼 비약을 써서 폭발적으로 힘을 소모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부 기사단 역시 사람이다.

체력과 기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니 최대한 아끼는 편이 좋았다.

‘어쩌지? 바꿀까?’

밀턴의 안에서 고민이 생겼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크프리트 놈이 고스트를 언제 성벽 위에 올릴지 몰라. 남부 기사단을 함부로 빼는 것은 위험하다.’

결국 밀턴은 남부 기사단을 성벽 위에 올려둔 상태로 수성전을 계속했다.

그리고 기사단의 피로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 밀턴 본인도 검을 들고 성벽을 누비면서 공화국 병사들을 처리했다.

“장창으로 운제의 사다리를 견제하라! 성벽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견제하라!”

밀턴은 직접 성벽 위에 공화국을 처리하면서 성벽에 걸쳐진 운제의 사다리를 박살내 버렸다.

튼튼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라면 수수깡이나 다름없었다.

콰앙!

“으아악!”

“떨어진다아아!”

밀턴이 운제의 사다리를 박살내기 시작하자 공화국의 병사들이 지면으로 떨어지며 비명을 질렀다.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어.’

밀턴은 그렇게 성벽을 쭉 돌면서 공화국의 병사들을 몰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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