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4화
카카카칵!
서로 간의 치명타를 날린 최초의 일격이 빗나갔다.
밀턴의 공격은 지크프리트의 투구를 날려 버렸고, 지크프리트의 공격은 밀턴의 어깨 견갑을 박살냈다.
‘예상보다 더 강하다.’
‘역시 마스터에 올랐군.’
둘 다 서로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실패했다.
하지만 첫 공격의 교차 이후 둘은 재빨리 말을 돌려서 반전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2격을 교환했다.
콰아앙!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를 서로 부딪쳤다.
그리고 둘은 이를 악물고 힘 싸움에 들어갔다.
“오랜만에 보는군. 밀턴 포레스트.”
“네놈도다. 지크프리트.”
검을 마주한 상황 속에서 서로에게 시선을 때지 않고 대화를 이어갔다.
“남의 나라 전쟁에 왜 끼어들었지?”
“알아서 뭐 하게?”
“휴전 협정의 기간은 아직 남아 있을 텐데? 약속을 어길 생각이냐?”
“이미 너희 공화국이 제국과 부딪힌 순간 유명무실한 휴전 조약 아닌가?”
“국제적 논리로 따지면….”
“시끄러! 너와 말싸움할 생각 없다. 그냥 내가 어긴 걸로 하던가 말던가?!”
밀턴이 크게 소리치며 지크프리트를 밀어냈다.
지크프리트는 잠시 밀린 듯했지만 이내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그럼 죽어라!”
약간의 공간이 생기자 둘은 현란하게 공방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두 사람 사이에 오러 블레이드가 난무하며 불꽃을 튀겼다.
그리고….
“주군을 보조하라!”
“레스터 왕국군의 기사단을 쓸어 버려라.”
밀턴과 지크프리트가 부딪히는 것을 중심으로 남부 기사단과 고스트 역시 격돌했다.
고스트 안에서도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1조는 지금 라이언 카텔 후작을 상대하고 있다.
하지만 4조와 5조 역시 상당한 정예들이었다.
특히 마상 전투를 집중 훈련받은 그들은 기사단과의 대전에 특화된 훈련을 받아왔다.
어지간한 기사단이라면 이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밀턴이 직접 이끌고 있는 남부 기사단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애당초, 밀턴의 곁을 직접 지키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들이 정예 중에 정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밀턴의 심복을 넘어서 남부 기사단의 부단장으로까지 성장한 릭과 토미가 최선을 다해서 분투를 하고 있었다.
북부 기사단에서 강력하게 조련을 받은 이 둘은 이제 완숙한 익스퍼트 중급의 강자들이었다.
설령 고스트라고 해도 포위망을 뚫느라 힘을 소모한 상태에서는 맞서기 힘들었다.
“이 해골 새끼들! 땅에 묻어서 진짜 해골로 만들어 주마!”
릭은 거칠게 소리치며 고스트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과거 익스퍼트에도 오르지 못한 시골 기사였던 릭이지만 이제는 괄목할 만큼의 성장을 이뤘다.
그런데….
“시끄러운 애송이군.”
순간 릭은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본능이 시키는 대로 급하게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검을 휘둘렀다.
카아아앙!
덕분에 릭은 자신의 목을 향해서 날아오는 검을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단 일격을 교환했을 뿐인데 손목이 저릿저릿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강하다. 어떤 놈이지?’
릭은 이를 악물고 상대를 바라봤다.
“네놈은 누구냐?”
“고스트 4조의 조장.”
“이름이 뭐냐고 새끼야!”
“알 것 없다. 죽어라.”
“이 정 없는 새끼가!”
그리고 릭은 고스트 상대와 격돌했다.
그리고 둘의 공방이 격렬하게 이어졌고 10여 합 정도가 흘렀을 때.
“죽어라!”
바로 옆에서 한 명의 남자가 끼어들었다
“큭…. 이놈이….”
카앙!
급하게 검을 휘둘러서 막아냈지만 옆에서 끼어든 불청객도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
‘이놈도 강하다.’
페일런 공작, 밀턴 포레스트, 제롬 테이커.
무려 세 명의 마스터와 수시로 대련을 빙자한 구타를 당한 경험이 있는 릭이다.
그만큼 강자를 상대한 경험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릭이 상대하는 자들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꽤 강적이었다.
그런 강적이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합공을 하고 있으니 금방 위기에 처했다.
‘죽…. 죽는 거 아니야?’
릭이 목숨의 위기를 느낀 그 순간….
“죽어라.”
음산한 한마디와 함께 상대의 검이 날카롭게 Z자로 움직였다.
카카칵!
그 기묘한 공격을 버티지 못하게 된 릭은 손에서 검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아차!’
전쟁터에서 무기를 놓쳤다는 것은 이제 죽었다는 말이다.
한명이 릭의 검을 떨어트리고 다른 한 명의 이어지는 공격이 릭의 목을 날리려는 순간….
쇄애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공격이 상대를 노렸다.
“쯧.”
외부의 공격에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난 적은 끼어든 불청객을 보고 말했다.
“너는 누구냐?”
“토미 크로이라고 하오.”
“포레스트 대공의 심복이군.”
토미는 상대가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자 살짝 놀랐다.
전쟁터에서 이름값을 날리는 것이야 모든 기사들의 로망이지만 막상 실제로 적이 자신을 알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는 당신들은 누구요?”
“나는 고스트 5조의 조장이다.”
“4조의 조장이다.”
그리고 둘은 토미의 옆에서 죽다 살아나는 릭을 보며 말했다.
“그럼 저놈이 릭이겠군.”
“그래. 내가 릭이다.”
“과연, 릭 토리스에 토미 크로이인가? 잘됐군.”
두 고스트 조장의 눈에 스산한 살기가 맺혔다.
처음에 릭과 토미의 경우 개인의 실력보다는 밀턴 포레스트의 심복이라는 가치 때문에 지크프리트의 정보망에 걸려든 상태였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북부의 동토를 가로지르는 원정 때문이었다.
릭과 토미가 수행한 그 작전이 성공한 덕분에 힐데스 공화국이 멸망하지 않았는가?
그 후 지크프리트의 휘하에 있는 부하들에게 이 둘은 꽤 높은 순위의 척살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어쨌든 토미는 릭의 곁에 서서 자신의 예비 무장인 롱소드를 건네주며 말했다.
“2대2군. 어디 한번 해볼까?”
“좋지. 넌 누구 맡을래?”
“4조는 내가 맡지.”
“어? 싫어. 그건 내가 먼저 찍었어.”
“그럼 왜 물어봐?!”
“어…. 그냥?”
순간 토미는 내가 왜 곰탱이를 살렸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늘어진 분위기도 여기까지였다.
이 둘의 앞에 있는 상대는 농담에 어울려주지 않았다.
“둘 다 죽어라.”
“내가 상대다.”
4조의 조장은 릭에게, 5조의 조장은 토미에게 달려왔다.
“온다! 정신 바싹 차려!”
“알고 있…. 크윽….”
그렇게 네 명이 서로 어울리며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확실히 말해서 릭과 토미에게 고스트의 조장은 버거운 상대였다.
다행이라면 이 둘은 고스트의 조장보다 훨씬 더 강한 상대들에게 수시로 굴림 당해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보다 강자를 상대로 어찌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둘은 우세를 점하지는 못해도 어찌어찌 버텨낼 수는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주군에게 달렸다.’
토미는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 밀턴의 승리를 빌었다.
“피하지 마라!”
“내 마음이지.”
지크프리트와 밀턴의 결투는 시간이 지나면서 맹공을 펼치는 지크프리트와 그 공격을 교묘하게 흘려보내는 밀턴의 수비로 변했다.
왜 이런 형태로 변했느냐 하면 밀턴이 이런 결과를 바랐기 때문이다.
지크프리트는 철벽 부대의 견고한 방어막을 뚫기 위해서 상당한 오러를 소모했다.
거기에 비해서 밀턴은 쌩쌩한 상태였고 말이다.
현재 지크프리트의 무력은 93, 그리고 밀턴의 무력은 91이다.
근소한 차이긴 하지만 지크프리트가 조금 더 우위에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건 컨디션이 멀쩡할 때의 일이고, 체력을 소모한 지크프리트는 승부를 서둘러야 했다.
밀턴은 중간부터 그걸 깨닫고 은근히 물러나서 버티기에 들어간 것이다.
“교활한 자식….”
“네놈한테 만큼은 듣고 싶지 않군. 너는 교활의 아이콘 같은 놈이야.”
“……?”
이해하지 못할 말을 들은 지크프리트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다.
‘위험해. 정말로….’
두뇌 회전이 빠른 지크프리트이기에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대로 결투가 길어지면 패배하는 것은 자신이다.
주변의 상황을 슬쩍 둘러봐도 도와줄 수 있는 아군도 없었다.
고스트 대원들 역시 상당수가 힘을 소모한 상태였다.
만만치 않은 적을 상대로 분투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고스트 대원들이 자기 한 몸을 지키는 것이 고작이었다.
거기다. 가장 큰 문제는….
“크윽…. 시간이….”
고스트 대원 중에 한 명이 갑자기 급속도로 기력이 빠졌다.
그러자 상대하고 있던 남부 기사단의 기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 고스트 대원의 목을 날려 버렸다.
“죽어라!”
그렇게 정예 중에 정예라고 할 수 있는 고스트 대원이 한 명 쓰러졌다.
그리고 비슷한 광경이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있었다.
‘비약의 효과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게 최대의 문제였다.
고스트의 최대 약점은 비약의 효과가 사라졌을 때 기력이 완전히 떨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사는 고사하고 숙련된 병사 서넛도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
어디를 둘러봐도 절망적인 상황밖에 보이지 않았다.
지크프리트로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어보는 대위기였다.
‘내 야망이 이렇게 끝나는 건가? 내 그릇이 고작 여기까지라는 건가?’
머리로 죽음이 지척에 도달했음을 깨달은 지크프리트의 가슴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만약 지크프리트가 그냥 머리가 좋은 인물이라면 순순히 자신이 처한 현실에 순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크프리트는 다르다.
그는 이 시대를 재패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으며 그 꿈을 위해서 전신전력을 다해서 매진해 왔다.
영웅(英雄).
이 시대에서 이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이 바로 지크프리트였다.
“운명이여! 그대가 나를 죽음으로 인도한다면, 그것에 거스르는 것을 나의 천명(天命)으로 여기겠다!”
갑자기 크게 일갈하던 지크프리트는 이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친 기세를 뿜어내면서 밀턴을 공격했다.
“큭, 이놈 설마….”
밀턴은 깜짝 놀라며 당황했다.
그저 적의 기세가 거칠어졌기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다.
밀턴의 능력이 지크프리트의 내면에서 벌어진 심상치 않은 변화를 알려왔기 때문이다.
[적이 야심가에서 역천(逆天)의 영웅으로 진화했습니다.]
[적이 새로운 특성 불굴의 투쟁심을 손에 넣었습니다.]
[불굴의 투쟁심 LV.1 : 위기의 순간 발동하며 군주의 그릇을 가진 자가 사용할 경우 자신과 신하들의 능력치를 모두 상승시킨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 닥쳐도 항복하지 않으며 자포자기하지 않는다. 현재 처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 최선의 판단을 끊임없이 모색한다.]
“이런 미친 새끼야!”
밀턴은 기겁을 했다.
적을 위기에 몰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그 적이 진화해 버린 것이다.
타인의 진화를 직접 눈앞에서 목격한 것은 제롬 이후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게 하필이면 자신의 숙적이라니?
거기다 새롭게 각성한 능력치도 너무나 골 때렸다.
자신의 능력치만을 올리는 능력이 아니라 자기 휘하의 부하들 전원의 능력을 올리는 특성이라니?
‘이건 사기야. 치트라고 젠장!’
밀턴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고스트 4조의 조장이 크게 외쳤다.
“주군께서 우리를 이끄신다! 고스트 전 대원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적을 물리쳐라!”
“오오오오오!!!”
궁지에 몰려 있던 고스트 대원들은 비약의 효과와는 다른 의미로 강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