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게임-192화 (192/257)

제192화

지크프리트가 선두에서 돌격해오는 것을 확인한 밀턴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네놈의 실수다. 지크프리트.”

지크프리트는 아직까지 밀턴과 정면 대결에서 진 적이 없다.

물론 몇 번의 쓴맛을 겪기는 했지만 그건 외부적인 방해가 끼어들어 왔을 때의 일일 뿐.

실제 밀턴과의 정면 대결에서 힘겨루기를 했을 때 패배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밀턴이 함정에 빠져서 죽을 뻔한 위기가 있었다.

거기에 비해 지크프리트 본인은 항상 여유를 두고 밀턴을 상대하고 있었다.

밀턴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크프리트를 항상 자신보다 뛰어난 인물로 평가하고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얘기가 다르다.

계산이 틀어지고 예상 밖의 사태가 발생하자 그걸 뒤집기 위해서 지크프리트 본인이 몸소 최전선에 나왔다.

본인은 그게 옳다고 생각했겠지만 밀턴이 보기에 이건 자충수였다.

‘내가 뭘 준비했는지 모르니까 저렇게 한 거겠지. 나로서는 기회군.’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밀턴이 바라는 평화로운 인생을 가장 방해하는 인물이 바로 지크프리트다.

그 지크프리트를 죽일 기회가 드디어 찾아온 것이다.

“반드시 끝낸다.”

밀턴은 그렇게 말하며 전군에 지시를 내렸다.

“날개를 펼쳐라!”

그 지신에 레스터 왕국군의 병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진형을 변화했다.

“이건? 포위망을 펼치겠다고?”

고스트 정예를 이끌고 선두에서 돌진 중이던 제이크는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들의 돌격에 맞서서 적진은 보병 전력을 굳건하게 유지하며 좌우에 넓게 날개를 펼치듯이 병력을 앞으로 보내고 있었다.

이건 돌격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적을 포위해서 섬멸하겠다는 의도였다.

‘자신이 있다는 건가? 이쪽은 마스터가 둘이나 돌격하고 있는데?’

돌격해오는 적을 상대로 포위진을 쓴다는 것은 적의 돌격을 막을 자신이 있을 때 쓰는 방법이다.

좌우를 통해서 넓게 병력을 배치하는 만큼 중앙이 얇아지기 때문이다.

‘설마? 하지만 이놈들이 무모한 작전을 취하는 것 같지는 않다.’

제이크는 지금이라도 돌입을 그만두고 주군인 지크프리트를 말려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고민도 거기까지였다.

한 기의 기마가 기사단을 이끌고 자신을 향해서 맹렬하게 다가오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저놈은?”

선두에 달려오는 기사는 제이크를 향해서 외쳤다.

“제이크! 주군의 명을 받아 네 목을 거두기 위해서 왔다!”

“그래. 네놈이군.”

제이크는 이를 드러내고 미소 지었다.

투쟁 본능에 불이 붙었고 머릿속에서 생각이라는 것이 싹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내가 공화국의 제이크다!”

“와라!”

콰아아앙!

두 명의 마스터가 정면으로 격돌했다.

제롬과 제이크의 격돌을 중심으로 고스트와 레스터 왕국의 기사단도 잇달아서 부딪혔다.

“꺼져라. 잔챙이들!”

“죽어라. 공화국의 개들아!”

레스터 왕국의 기사들이라고 하면 그 평균 수준이 몹시 낮다는 인식이 있었다.

지금은 북방의 강대국으로 자리한 레스터 왕국이었지만 그 전에는 평화가 오래되면서 나태함과 허영에 찌들어서 기사들이 겉멋만 잔뜩 들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이제 옛말이다.

기사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밀턴과 레이라 여왕은 많은 공을 들였다.

우선 실력 없이 가문의 권세만으로 자리를 차지하던 기사들은 과감하게 떨어트렸고, 1년에 두 번의 정기적인 테스트를 거쳐서 실력에 맞는 인사를 행했다.

거기다 재능 있는 기사들은 출신 배경과 상관없이 페일런 공작이 직접 지도하는 북부 기사단에 연수를 보내서 혹독하게 굴렸다.

물론 거기에 드는 비용은 모두 왕실이 부담했기에 많은 기사들이 환영했다.

덕분에 지금 레스터 왕국의 기사들은 평민 출신이 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귀족 가문들은 여기에 은근히 불만을 표했지만 감히 레이라 여왕이나 밀턴 대공에게 대들 용기는 없었다.

그리고 출신 성분이 어쨌든 간에 실력에 따라서 우대한다는 레스터 왕국의 평판이 넓게 퍼지자 실력에 자신 있는 방랑 기사나 용병들이 레스터 왕국으로 몰려들었다.

그렇게 무수하게 모인 인재들 중에 옥석을 가려서 가장 뛰어난 인재만으로 구성된 기사단이 네 개 있었다.

레스터 왕국의 중앙 기사단.

레이라 여왕 직속의 왕실 기사단.

페일런 공작이 이끄는 북부 기사단.

포레스트 대공이 이끄는 남부 기사단.

이 네 개의 기사단이 지금 레스터 왕국에서 가장 정예로 손꼽히는 기사단이었다.

그리고 지금 고스트와 맞서 싸우고 있는 이들은 밀턴이 직접 고르고 제롬이 단련시킨 남부 기사단이었다.

개개인의 실력은 비약을 복용한 고스트보다 조금 떨어질지 모르지만 숫자가 많았다.

그리고 개중에는 설령 고스트가 비약을 복용했다고 해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강자도 있었다.

“단장님이 곧 적장을 잡을 것이다! 우리도 밀리지 마라!”

양손에 롱소드 두 개를 들고 얼굴에 X자 형태의 검상을 입은 남자가 크게 소리쳤다.

이 남자의 이름은 로폰 타로스.

원래 용병 출신이었지만 지금은 밀턴에게 기사 작위를 받고 더 나가서 남부 기사단의 부단장의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남부 기사단에는 제롬 테이커라는 단장을 필두로 해서 다섯 명의 부단장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이 남자인 것이다.

기사단의 인사에 관해서 거의 말을 하지 않는 제롬이 드물게도 밀턴에게 직접 간청을 해서 이 남자를 자신의 부관으로 달라고 했다.

그리고 밀턴은 그의 능력치를 확인하고 기꺼이 그 말을 들어주었다.

[로폰 타로스]

기사. LV.2

무력 - 84 통솔 - 80

지력 - 70 정치 - 69

충성 - 77

특성 - 용맹, 냉철.

용맹 LV.5 : 전투가 벌어지면 전투력이 올라가며 자기 지휘하에 있는 병력의 사기를 상승 시킨다.

냉철 LV.5 : 전투 중에 전황 전체를 보는 안목이 높아진다. 현장 지휘관으로서의 유연함을 발휘해서 아군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실제 확인을 해보니 입이 무거운 제롬이 추천했을 정도로 훌륭한 인재였던 것이다.

84라는 무력도 대단했지만 그 이외의 능력치도 전반적으로 다 높았다.

특성도 용맹과 냉철을 고르게 겸비하고 있었고, 충성 수치도 77이면 배신할 염려는 없었다.

뭘 시켜도 보통 이상은 해낼 것 같은 인물이었다.

밀턴은 제롬의 말을 들어서 그를 부단장으로 올려주었고 로폰 타로스는 크게 감격해서 지금은 충성스런 밀턴의 기사가 되어 있었다.

아직 세상에 이름을 떨치지는 못했지만 그것도 오늘까지였다.

그는 용맹하게 쌍검을 휘두르며 자신의 앞에 있는 적을 상대로 한 치도 물러나지 않고 있었다.

“하하하하하! 약하다 약해! 고작 이 실력으로 우리 남부 기사단을 가로막았느냐!?”

“뭐 이런 놈이….”

로폰 타로스가 상대하고 있는 것은 무려 고스트 2조의 조장이었다.

그는 아직 만약을 대비해서 비약을 복용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는 익스퍼트 중급이었다.

그리고 로폰 타로스의 경지 역시 똑같은 익스퍼트 중급이다.

거의 상급에 가까운 중급이긴 하지만 오러 수행을 나이를 늦게 먹고 시작했기에 경지 자체는 중급이었다.

그리고 그는 상대를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하하하하하! 다시 간다!”

로폰 타로스는 고스트 조장을 상대하면서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무자비하게 이어지는 그의 공격에 상대방은 방어하기도 벅차했다.

그야말로 초공격적인 검술이었다.

흔히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말하고는 하지만 그걸 실제로 행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로폰은 그걸 추구했고 실제로 해내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쌍검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쌍검술.

보통 한 손에 검, 한손에 방패를 들고 싸우는 기사들이 보기에 쌍검술은 이단이었다.

쌍검술은 사용하는 사람도 적었고, 로폰 역시 누군가에게 배운 적이 없었다.

다만 용병 시절부터 자신에게 맞는 무기를 이리저리 찾다 보니 쌍검술이 가장 몸에 잘 맞는다는 것을 알고 선택했다.

그리고 철저하게 실전 속에서 단련되며 자기류로 발전한 것이 로폰의 쌍검술이었다.

제롬이 로폰을 가장 높게 평가한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누군가에게 배워서 검을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서 자기 길을 걸어간다.

보통 이렇게 하면 3류 얼치기에 그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로폰은 훌륭하게 꽃을 피웠다.

검에 대한 재능만 놓고 보면 제롬이 더 위일지 모르지만 검술에 대한 안목과 견식이라는 부분만 보면 로폰이 더 뛰어났다.

그 증거로 남부 기사단에서 오러를 배제하고 순수한 검술만을 겨루면 로폰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제롬밖에 없었다.

그런 로폰을 상대하며 고스트 2조의 조장은 상당한 곤란함을 겪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비약을 먹어야 하나? 하지만….’

비약을 먹으면 로폰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약을 먹고 경지가 상승하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다.

그 시간이 지나면 부작용으로 기력이 극도로 떨어져 버린다.

그렇기에 자신의 생각만으로 비약을 먹어야 할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결국 기사단과 고스트의 전력은 팽팽했다.

승패를 가르는 분수령은 아마도 제롬과 제이크의 일기토일 것이다.

그리고 그 둘은 지금….

콰앙! 카아앙! 콰직!

이미 팽팽하게 자신들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최초의 돌격 이후 이 둘은 10여 합을 마상에서 겨루다가 이내 말에서 내려왔다.

자신들의 공방을 말이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암묵적으로 내려와서 싸우기로 합의를 본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진짜 둘만의 세계가 펼쳐졌다.

말을 타고 있을 때는 기동력이 말의 능력에 의존하고 있었기에 공방에 약간의 텀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지상에 두 발을 붙이자 마스터의 신체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둘이 화려하게 오러 블레이드를 뿌리며 격돌하자 아비규환의 전쟁터에서도 이 둘을 중심으로 한 공백 지대가 생겼다.

괜히 다가갔다가 크게 다칠 것 같아서 감히 접근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압!”

콰아아앙!

제이크의 거대한 투핸디 소드는 대지를 갈라버릴 것 같은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힘밖에 없군.”

담담하게 말하며 휘둘러지는 제롬의 검이 수십 갈래로 나뉘어졌다.

속도와 기교가 극에 달한 제롬의 공격은 같은 마스터인 제이크에게도 허실이 파악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잔재주는 집어치워라!”

다 쓸어버리겠다는 듯이 횡으로 휘둘러지는 제이크의 투핸디 소드에 제롬의 검이 부딪혔다.

콰앙!

서로 격돌하며 다시 거리를 벌린 둘은 서로 호흡을 정돈했다.

“제법이군.”

“네놈이야말로.”

둘은 담담하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복잡한 계산을 하고 있었다.

‘강하다. 내가 싸워온 그 누구보다 더.’

‘강해. 적어도 버켈 후작보다는 확실하게 한 수 위다.’

둘은 서로의 강함을 인정했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자신들이 승부를 내려면 결코 단기간에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승부가 길어진다는 것은 둘 중에 그 누구도 이 전쟁에 승기를 가져올 변수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어쩔 수 없군.’

‘뒤는 부탁드립니다. 주군.’

둘은 이 전쟁의 승패를 가늠하는 방향타를 각자의 주군에게 맡겼다.

자신들은 눈앞에 있는 강적에게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한계라는 것을 안 것이다.

그렇게 둘은 다시 호흡을 조절하고 서로를 향해서 부딪혀갔다.

“꺼져라!”

제롬에게 덜미를 잡힌 제이크와 달리 지크프리트는 무사히 레스터 왕국군의 보병진을 꿰뚫었다.

그가 전방에서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자 한순간에 보병의 방진이 무너졌다.

그리고 지크프리트는 그 안으로 주저 없이 뛰어들며 아군이 돌입할 구멍을 만들었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후속 병력을 향해서 외쳤다.

“공화국의 형제들이여! 내 뒤를 따르라!”

“와아아아!!”

“총사령관님을 따르라!”

“지크프리트 만세!”

기사들은 물론이고 병사들에게도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지크프리트였다.

그가 선두에서 직접 활약하며 고무를 시키자 공화국군의 사기가 확 올라갔다.

하지만 지크프리트의 안색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놈들, 전혀 겁먹지 않았다.’

지크프리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눈앞에 있는 레스터 왕국군이었다.

보통 눈앞에서 적군의 장수가 활약하는 것을 보고, 적의 사기가 오르는 것을 느끼면 병사들은 어느 정도 기가 죽기 마련이다.

하지만 레스터 왕국군의 병사들은 한 치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묵묵하게 이를 악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심지어 지크프리트 본인을 앞에 두고 있는 병사들조차도 두려움은 보여도 망설임은 보이지 않았다.

‘군기가 강하다고 될 일이 아니다. 무엇이 이렇게 놈들을 붙잡아 주는 거지?’

그런 지크프리트의 의문은 1진의 방어 라인을 뚫고 2차 진형을 마주했을 때 풀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