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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189화 (189/257)

제189화

보급 물자를 모두 잃어버린 제국군은 철수하는 수밖에 없었고, 이때부터 지크프리트의 집요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후방에서 자신이 공격을 하고, 전방에서 제이크가 길목에 매복군을 배치했다.

제국군의 입장에서는 지옥이 따로 없었다.

“적…. 적이다!”

“으악….”

“XX 이제 못 싸워.”

“차라리 죽여라. 이 X새끼들아!!”

굶주림에 지친 병사들은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못하고 지리멸렬해 갔다.

지휘관의 지휘도 제대로 먹히지 않았고, 대부분의 병사들이 자포자기해 버렸다.

하룻밤이 지나고 나면 탈영병이 속출했는데 공화국에 공격 받아서 사망하는 병사들보다 탈영하는 숫자가 더 많을 정도였다.

세바스티안 공작은 어떻게든 상황을 되돌리기 위해서 주변의 마을에 협조를 구하려고 했다.

사실 말이 협조지만 이 경우에는 약탈이라도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크프리트는 거기까지 미리 내다보고 손을 써 놓았다.

제국군의 병사들이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서 찾아간 마을은 텅텅 비어 있었다.

이미 발랑스 왕국의 민심을 장악한 지크프리트는 먼저 사람을 보내서 사람들을 피신시킨 것이다.

병사들이 밀 한 톨 건지지 못하고 터덜터덜 돌아오자 세바스티안 공작은 이를 악물었다.

“지독한 놈….”

패배도 이렇게 지독한 패배가 또 있을까?

10만이었던 본대의 병력이 이제 3만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늘어나는 탈영병 때문에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병력이 줄어들지 모를 일이다.

공격을 주장했던 참모들은 감히 세바스티안 공작의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설마 결과가 이렇게까지 최악으로 나타날 줄은 몰랐다.

이제 승패가 문제가 아니다.

과연 자신들이 살아서 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때 카텔 후작이 입을 열었다.

“더 이상 무의미하게 희생을 늘릴 수는 없습니다. 결사대를 뽑지요.”

결사대.

아군의 후퇴를 위해서 후방에 남아서 적의 시간을 벌어줄 부대를 말하는 것이다.

순간 좌중의 참모들 전원이 세바스티안 후작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시선을 돌려 버렸다.

이 시점에서 결사대를 맡는다는 것은 사실상 죽음을 뜻한다.

전쟁에 참가하기는 했지만 죽음에 대한 각오가 조금도 되어 있지 않은 참모들은 모두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그들의 사소한 발악은 무의미했다.

“결사대로는 군의 중진들 대부분이 남아야 할 겁니다.”

누구를 뽑는 게 아니라 대부분이 남아야 한다는 카텔 후작의 말에 참모들은 기겁을 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사석에 놓을 수라면 최소한의 손실로 그쳐야죠.”

“그렇습니다. 그게 병법의 정석….”

쾅!

참모들이 뭐라고 말을 하자 세바스티안 공작이 커다랗게 발을 구르며 지면을 밟았다.

그리고 살기를 진득하게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카텔 후작의 말을 함부로 끊는 놈은 내가 직접 목을 치겠다.”

세바스티안 공작은 진심이었다.

자연스럽게 참모들이 입도 꾹 다물어졌다.

그리고 카텔 후작이 말을 이었다.

“이 시점에서 결사대가 남아서 길목을 틀어막아 봤자, 적을 막을 수 있는 벽은 되지 못합니다.”

“그렇겠지.”

“그러니, 우리는 벽을 치는 게 아니라 미끼를 뿌려야 합니다. 가능하면 먹음직한 미끼를 말이죠.”

“과연, 그래서 군의 수뇌부가 남아야 한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물론 저도 남을 것입니다.”

카텔 후작의 말에 참모들은 누살을 찌푸렸다.

말을 꺼낸 카텔 후작 본인이 남는다고 한 이상 자신들이 빠져나갈 구석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세바스티안 공작은 그런 카텔 후작의 결의에 미안함과 고마움을 같이 느꼈다.

그리고 그 역시 거기에 응하기로 했다.

“마지막까지 함께하세.”

하지만 세바스티안 공작의 각오를 카텔 후작은 거부했다.

“공작님은 안 됩니다.”

“뭐라고?”

“누군가는 군을 지휘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작님이 제국의 안에서 가지는 상징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게 따지면 자네가 군을 이끌게. 내가 대신 남도록 하지.”

세바스티안 공작의 말에 카텔 후작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공작님. 당신은 이 군의 총사령관입니다.”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건가?”

“설사 군이 전멸을 맞이했다고 해도 총사령관이 생환을 했느냐? 전사했느냐? 이 두 가지의 차이는 큽니다.”

이 전쟁의 패배를 조금이라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세바스티안 공작이 살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

눈을 질끈 감는 세바스티안 공작은 마음으로는 몰라도 머릿속으로는 카텔 후작의 말에 공감했다.

‘빌어먹을….’

세바스티안 공작은 제국으로 돌아가서 이번 패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동시에 이 전쟁에 대한 현실을 똑똑히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공화국이 얼마나 강한지?

그동안 제국이 얼마나 나태하고 오만했는지?

이 두 가지를 똑똑히 전하지 않으면 다음 전쟁에서도 제국은 패배를 면치 못할 것이다.

다음날.

제국군은 결사대 1만을 남기고 전원 후퇴했다.

참모들 중에 몇몇이 결사대에 남지 않기 위해서 수작질을 부렸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결정타는 세바스티안 공작의 이 한마디였다.

[네놈들이 제국으로 돌아간들 목이 붙어 있을 것 같으냐?]

이번 패배의 책임은 세바스티안 공작도 무겁게 짊어져야 한다.

일개 작전 참모들의 경우 제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목숨은 없다고 봐야 했다.

결국 그들은 남았다.

사실 이들이 남는다고 해서 별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전쟁에 책임을 지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은 남아야 했다.

그리고 카텔 후작은 적이 하루거리에 들어온 시점에서 병사들을 최대한 배부르게 먹였다.

사실 배부르게 먹일 만한 식량이 없었지만 세바스티안 공작이 남기고 간 식량에 다친 말들을 잡아서 수프를 끓이자 하루 정도는 어찌 먹일 수 있었다.

기마 병력에 대거 손실이 생기긴 했지만 병사들에게 하루라도 좋으니 기력을 불어넣는 게 우선이었다.

그렇게 카텔 후작은 1만의 결사대를 이끌고 길목에 진을 쳤다.

“자네들한테는 미안하게 되었군.”

카텔 후작이 말을 한 것은 함께 결사대에 남기로 한 기사단원들이었다.

“아닙니다. 후작님.”

“끝까지 함께하게 되어 오히려 영광입니다.”

제국인이 아니라고 냉대를 받아온 카텔 후작이었지만 그래도 기사들에게 있어서는 달랐다.

마스터의 경지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사들에게 카텔 후작은 충분히 존경할 가치가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번 전쟁을 함께하면서 카텔 후작이 인품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존경해 마땅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전쟁이 처음부터 카텔 후작님의 말씀대로 구성되었다면 지금과 같은 패배는 없었을 겁니다.”

한 명의 기사가 한 말은 같은 자리에 있는 모든 기사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카텔 후작은 그 말에 쓰게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과연 그럴까?’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이번 전쟁을 거치면서 한 번 더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지크프리트.

이놈은 진짜 괴물이었다.

아니 이제 괴물이라는 표현도 식상했다.

도대체 이놈은 뭐란 말인가?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놈이었다.

그런데 힐데스 공화국에서 서서히 이름을 알리더니 어느새 스트라부스 왕국을 무너트리고 이제는 제국마저 물리쳤다.

‘대단해. 정말 대단한 놈이야.’

카텔 후작에게 있어서 지크프리트는 조국을 무너트린 철천지원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오심보다는 존경심이 앞섰다.

내심 저런 인물이 같은 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할 정도였다.

‘있을 수 없는 생각이지.’

피식 웃고 마는 카텔 후작에게 전령이 말했다.

“후작님. 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런 모양이군.”

카텔 후작은 전방에 먼지구름과 함께 서서히 나타나는 적군을 보며 중얼 거렸다.

“여기가 내 무덤이군.”

나쁘지 않았다.

미련은 차고 넘치도록 있었지만 그래도 마지막 상대가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게 분명한 강적임을 인정하자 묘한 만족감이 들기도 했다.

“어디, 역사에 이름 한번 남겨 볼까?”

그리고 카텔 후작은 선두에 서서 검을 뽑고 크게 외쳤다.

“전군! 돌격하라!”

그의 한마디에 기사단이 뒤를 따랐고, 뒤이어 기마병과 보병도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사석이라고 하지만 너무 단순하게 돌격하는군요. 자포자기한 걸까요?”

지크프리트의 옆에서 제이크가 말했다.

아무리 마스터인 카텔 후작이 이끌고 있다고 해도 뒤를 받치는 것이 지치고 굶주린 병사들이라면 두려울 것이 없다.

저력이 열세이니 뭔가 책략을 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단순한 돌격이라니?

제이크가 보기에 카텔 후작이 자포자기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자포자기한 건지? 아니면 결사의 각오가 선 건지? 그건 부딪혀 보면 알겠지.”

지크프리트는 그렇게 말한 후에 손을 들어서 신호를 주었다.

그러자 공화국군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방어진을 갖췄다.

“방패 겹쳐!”

“장창 들어!”

제이크가 이끌고 갔던 정예 병력이 합류하자 확실히 공화국군의 질이 올라갔다.

질서정연하게 대열을 갖춘 병사들은 완벽한 방어진을 갖췄다.

돌격하는 카텔 후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진격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빠르게 말을 몰며 돌격했다.

그리고 그의 시야에는 자신감 넘치는 공화국 병사들의 얼굴 표정이 보였다.

“큭, 일개 병사들 주제에 다 이겼다는 표정을 하고는….”

카텔 후작의 입꼬리가 삐뚤게 올라갔다.

그는 평소 점잖은 성격이었지만 지금은 심사가 제대로 꼬인 상태였다.

공화국의 방어진에 그가 격돌한 순간….

“꺼져라!”

그의 오러 블레이드가 넓은 부채꼴로 퍼지면서 눈앞에 병사들에게 작렬했다.

“크악!”

“아아아악!”

병사들은 최대한 단단하게 밀집되어 있었지만 카텔 후작의 일격에는 버틸 수 없었다.

오히려 괜히 밀집해 있었기 때문에 피해가 더 컸다.

단 일격에 서른 명에 가까운 병사를 날려 버린 카텔 후작은 거칠게 돌입하며 외쳤다.

“내가 라이언 카텔이다!”

그리고 그는 용맹하게 검을 휘두르며 사방으로 오러 블레이드를 뿌렸다.

순식간에 그의 주변은 피와 비명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크아아악!”

“막…. 막아라!”

“제길, 이 괴물…. 커억.”

일방적으로 공화국군을 유린하는 카텔 후작의 모습에 뒤를 따르던 기사들과 제국의 병사들은 가슴속에서 뭔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고작 하루 정도를 제대로 먹였다고 해도 그걸로 몸 상태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병사들은 여전히 굶주려 있었지만 카텔 후작의 활약을 보자 자신들도 피가 끓어올랐다.

“후작님을 따르라!”

“카텔 후작 만세!”

그리고 제국군과 공화국군이 거칠게 부딪혔다.

“아아악!”

“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다 죽여!”

여기저기서 분노와 죽음이 교차했다.

초반에 우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제국군이었다.

카텔 후작의 모습에 사기가 올랐다고 해도 체력적으로 명백하게 열세인 제국군의 병사들이 우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것은 카텔 후작과 그를 따르는 기사단의 활약 때문이었다.

카텔 후작이 처음에 적진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으로 기사단이 파고들어서 적의 전열을 크게 흔들었다.

사실 제국의 기사단은 그 수준 자체가 다른 나라보다 월등하게 높았다.

이번 전쟁에서는 지크프리트의 책략에 눌려서 그 힘을 보일 기회도 없었지만 기사단의 수준만큼은 공화국을 압도하고 있었다.

공화국에서 기사에 비견되는 계급은 소위부터 중위까지로 분류되는 장교들이다.

그들은 더 이상 전선이 밀리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맞서 싸웠다.

하지만 순수한 실력적인 면에서 제국의 기사들이 한 수 위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막아라!”

“빌어 쳐 먹을!”

공화국의 장교들이 무더기로 달라붙어도 도저히 멈출 수 없는 괴물이 문제였다.

“다 꺼져라!”

카텔 후작은 그동안의 울분을 터트리겠다는 듯이 저돌적으로 적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후방도 측면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앞으로 전진하며 눈앞에 있는 적들을 가차 없이 날려 버리기를 반복했다.

그 저돌적인 돌격에 공화국의 전열이 크게 흔들렸고 어느새 제국군은 공화국의 1진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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