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게임-188화 (188/257)

제188화

“야 이 XX 새끼들아!”

“차라리 붙어! 이 개새끼들아!”

“XX X같은 새끼들아! 잡히면 XX XXX해서 죽여 버린다!”

“XXXXX….”

제국의 병사들은 눈에 핏발이 섰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다.

수면 부족으로 인해서 간밤에 한숨도 자지 못하고 난리를 친 병사들은 전부 눈이 토끼처럼 벌게져 있었다.

공화국의 야습은 지극히 단순했다.

멀리 떨어져서 특수 석궁을 가지고 있는 기마 궁병이 공격을 하고 조금이라도 추적이 있을 것 같으면 빠져 버렸다.

이걸 하룻밤 내내 반복했다.

문제는 이 단순한 공격에 대비책이 없다는 것이다.

코브르크 공화국의 기마 궁병은 사거리도 길고 기동력도 뛰어났다.

거기다 적이 나타나면 바로 산성으로 숨어 버리는데 이걸 함부로 추적했다가는 산성의 망루에 대기 중인 석궁병들이 다시 집중 사격을 했다.

완벽한 치고 빠지기.

계속 같은 짓을 당하는데도 대응 방법이 없었다.

말 그대로 눈 뜨고 뻔히 당한 것이다.

그것도 하룻밤 내내.

제국군의 병사들은 밤새도록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긴장감에 시달려야 했다.

“차라리 전면 공세를 합시다!”

“이대로는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병사들이 피로감에 뻗어버릴 겁니다.”

“여력이 있을 때 저 산성을 공략해야 합니다.”

병사들 못지않게 시달린 참모들 역시 악에 받혀서 공격을 주장했다.

“모두 참게. 지금 저 산성을 공격할 방법도 없지 않나?”

“이대로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어도 승산은 없죠. 적의 비축 식량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저 정도 규모의 산성에 비축된 식량은 한계가 있을 걸세. 적어도 열흘 정도는 봉쇄를 하고 지켜보도록 하지.”

“이 포위망을 유지하면서 열흘 동안 적의 게릴라전에 시달리면 병사들이 먼저 뻗어 버릴 겁니다. 어제 그 소란을 겪어 보셨지 않습니까?”

세바스티안 공작이 진정을 시키려고 해 봤지만 참모들은 거칠게 반항했다.

그들 역시 수면 부족 때문인지 평소보다 훨씬 더 거칠게 공격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때 카텔 후작이 나서서 말했다.

“병사들의 피로가 문제라면 해결책은 있습니다.”

“무슨 해결책이 있다는 말입니까?”

“병력을 반으로 나눠서 반은 포위망을 구성해서 야간에 적을 지키고, 반은 주간에 적을 지키도록 하면 됩니다.”

“…….”

순간 참모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러면 되나?’

‘되는 것 같은데….’

‘그러면 되는구나.’

왜 우리는 그 생각을 못했지? 라는 얼굴을 하는 참모들을 보며 카텔 후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제 밤새도록 야습에 시달렸지만 결국 적은 주구장창 유인책만 펼쳤소. 이건 적들도 나름 필사적이라는 말이오. 왜들 그걸 모르시오.”

참모들은 모두 할 말이 궁색해졌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 때문일까? 스스로 생각해도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듯했다.

“최소 열흘. 가능하면 20일 정도는 적을 가둬 봅시다. 적과 달리 우리는 보급이 원활하다는 장점이 있소. 이걸 살리지 않을 이유가 따로 있소?”

결국 참모들은 카텔 후작의 말에 수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참모들이 한바탕 소리치고 물러난 후에 세바스티안 공작이 카텔 후작에게 말했다.

“면목이 없군. 여러 가지로 미안하네.”

“…….”

카텔 후작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카텔 후작의 침묵이 불편했는지 세바스티안 공작이 다시 말했다.

“아무래도 평화가 길긴 길었나 보네. 나도 참모들이 이 정도로 전쟁의 변수에 약한 모습을 보일 줄은 몰랐네.”

“제국의 참모들이 모두 저 수준이라면 저는 지금이라도 제국을 떠날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겠습니다.”

카텔 후작은 무장인 자신이 어느새 전략 부분까지 동참해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났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는데 저 무능한 참모들 때문에 이번 전쟁에서는 정작 자신의 무력을 발휘할 틈도 없었다.

“미안하군. 하지만 제국의 참모들이라고 해도 모두 저런 것은 아닐세.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녀석을 데리고 올걸 그랬어.”

“그 녀석이 누굽니까?”

“있네. 내가 알고 있는 한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책략가.”

“그자도 실전 경험 없이 책만 판 애송이인 건 아닙니까?”

“아니지. 그 녀석은 틀려. 충분한 실전 경험이 있네. 제국민 출신이 아니거든. 자네처럼 외국인 출신이지.”

“그런 인물이 있다면 왜 안 데리고 온 겁니까?”

“내 명령을 들을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 말에 카텔 후작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누구지? 세바스티안 공작의 말이 안 먹히는 인물이라고 해 봐야 제국에서 열 명이 안 될 텐데?’

나중에 제대로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카텔 후작이었다.

“적이 병력을 반으로 나눠서 교대로 포위망을 구성하기 시작했습니다.”

2조 조장의 말을 듣고 지크프리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안 낚이는군. 머리가 붕어 수준인 제국군의 참모들이라면 분에 못 이겨서 한 번 정도 쳐들어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리고 지크프리트는 확인하듯이 말했다.

“요새에 남아 있는 식량은 며칠 분량이지?”

“앞으로 일주일, 아끼면 2주일 정도입니다.”

카텔 후작의 예상대로였다.

이렇게 특수한 요새를 지으면서 대량의 식량까지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크프리트의 표정에는 일말의 불안감도 없었다.

“아낄 필요 없으니 충분하게 먹이도록.”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주야를 가리지 않고 네 시간, 아니 세 시간 간격으로 계속 기습을 시도하라.”

“예. 알겠습니다.”

“무리는 하지 마라. 단, 대강한다는 인상을 남겨서는 안 된다. 우리가 포위망을 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적이 착각을 해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크프리트는 산성의 위에서 적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일주일이면 충분해.”

사흘 동안 공화국군은 계속해서 같은 작전을 펼쳤다.

철저하게 치고 빠지는 작전으로 제국군을 쉬지 않고 괴롭혔다.

처음에는 그런 공화국의 작전에 애를 먹던 제국군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점 능숙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저 징글맞은 것들 또 왔네.”

“지치지도 않나?”

“저놈들도 교대로 쉬는 거겠지. 우리처럼 말이야.”

제국군의 병사들이 이렇게 느긋한 태도를 보일 정도로 이 공격은 익숙해진 것이다.

그리고 지휘관들도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방패 들어! 보병 전진!”

“깊게 추격하지 마라! 압박감만 주면 충분하다.”

더 이상 공화국의 기습은 제국에게 피해를 주지 못했다.

사실 특수 석궁을 운용하는 기마 부대의 숫자가 좀 많았다면 또 모르겠지만 빠른 기동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기마 부대의 숫자는 500정도가 고작이었다.

사실 운용 가능한 숫자는 좀 더 많았지만 기습 부대 역시 체력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3교대로 공격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전장은 고착 상태에 빠졌다.

카텔 후작의 예상대로라면 이렇게 시간이 흘렀을 때 우세한 것은 제국이었다.

발랑스 왕국의 수도에서부터 이어지는 보급선을 가지고 있는 제국군과 달리 공화국군은 완벽하게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우리가 유리해.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한 느낌이 드는 거지?’

카텔 후작은 이 상황에서 강한 꺼림칙함을 느끼고 있었다.

근거 없는 불안감은 아니다.

그가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근거는 바로 지금의 상황 그 자체였다.

1대1로 전장에서 검을 겨눈다면 모를까?

전략 전술의 싸움에서 지크프리트가 자신에게 지고 들어온다?

이런 상황이 정상적인 것일까?

‘그럴 리가 없어. 내 전술 구상 능력이 지크프리트보다 윗줄일 리는 없어.’

결국 이 상황 자체가 비정상적이라고 느끼고 있는 카텔 후작이었다.

그런 카텔 후작의 속내를 들은 세바스티안 공작이 말했다.

“너무 신경 쓰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상합니다.”

“자네가 적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아닌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한정된 조건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 거야. 우리가 놈들보다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으니 유리하게 싸우는 거지. 뭐가 이상하나?”

“…….”

상식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역시 카텔 후작의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뭔가…. 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아.’

그런 카텔 후작의 의문을 그날 밤 풀렸다.

최악의 형태로 말이다.

“야습…. 적의 야습입니다.”

부관이 허겁지겁 가져온 소식에 카텔 후작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계속 있었던 일이 아닌가? 설마 포위망이 뚫리기라도 했나?”

“…정…. 정면에서 시행되던 기습이 아닙니다.”

“뭐?”

“후방에서 일단의 무리가 기습을 감행했습니다.”

“…….”

카텔 후작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고, 부관은 계속해서 절망적인 보급을 했다.

“적의 규모는 1만 이상, 그리고 선두의 기사는 자신을 제이크라고 밝혔습니다.”

“큭…. 설마…. 설마….”

말을 잊지 못하는 카텔 후작에게 부관이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놈이 이끄는 기습 부대에 후방의…. 보급창이 함락되었습니다.”

“빌어먹을!”

카텔 후작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갑옷도 입지 않고 검만을 챙기고 말했다.

“당장 전 기사단은 나를 따라라!”

그리고 그는 앞뒤 가릴 것 없이 보급창이 있는 장소로 달렸다.

가는 길에 카텔 후작은 자신과 복장을 하고 있는 세바스티안 공작과 만났다.

“공작님. 지금 적들이….”

“들었네. 서둘러!”

세바스티안 공작 역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서둘렀다.

최소한의 기사 병력만 대동하고 움직였지만 그래도 마스터가 두 명이다.

이 둘이 제때에 도착만 하면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제때에 도착만 하면 말이다.

“크윽….”

“빌어먹을….”

두 명의 마스터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이를 악물었다.

그들의 눈앞에는 보급창이 통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부정하고 싶을 만큼 잔인한 현실이었다.

전황이 한 번에 뒤집혔다.

제이크가 운용한 부대는 본대의 보급창만 공격한 것이 아니라 발랑스 왕국의 수도에서 원정군으로 이어지는 보급 부대까지 공격해서 괴멸시켜 버렸다.

세상에 그 어떤 명장이라고 해도 보급이 끊어진 군대를 이끌고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제국군은 공화국을 고립시켜서 고사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설마 역으로 자신들이 더 곤란한 입장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원인은 제이크였다.

지크프리트는 초반의 서전에서 제이크에게 공화국군 안에서도 최고의 정예들만을 뽑아서 넘겨주었다.

그 결과 제이크는 버켈 후작이라는 거물을 잡아내고 용맹하게 자신의 이름을 떨쳤다.

그리고, 이후에 제이크가 이끄는 부대는 행방이 묘연해졌다.

제국군으로서는 당연히 제이크가 이끄는 부대가 본대와 합류했으리라고 생각했다.

당연한 생각이었다.

병력이 적은 공화국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많은 병력을 모아서 제국군에 맞서야 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지크프리트가 제이크에게 내린 지시는 달랐다.

그대로 발랑스 왕국 안의 공화주의자들에게 몸을 숨기고 있다가 적의 배후에서 보급선을 끊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전쟁을 시작했을 때 이미 제이크에게 마무리를 위한 명령까지 내렸던 것이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지크프리트의 손바닥 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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