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게임-175화 (175/257)

제175화

지금 공화국군의 전력은 10만.

그중에 5만은 정예였지만 나머지 5만은 최근 공화주의에 귀순한 지원자들이었다.

이런 병력을 셋으로 나누면 각 군의 전력이 엄청나게 떨어질 것이 뻔했다.

결사반대를 부르짖는 참모들에게 지크프리트가 말했다.

“그대들은 세 가지 요소를 간과하고 있다.”

그리고 참모진의 이목을 집중시킨 지크프리트가 말문을 열었다.

“우선 첫째, 징집병의 질의 차이가 크다. 우리도 제국군도 발랑스 왕국 내부에서 징집을 했지만, 그 질에는 큰 차이가 있다.”

지크프리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적들은 수도 인근의 주민들에게 강제적인 징집을 했고, 그들 대부분의 무장도 최소한의 수준에 지나지 않으며 그 질도 형편없다.”

지크프리트의 말대로 지금 제국군이 징집한 징집병들은 약졸이었다.

무장이라고는 창 한 자루 챙겨준 것이 다였고 가죽 갑옷 하나 지급해 주지 않았다.

거기다 연령대도 노인이나 소년병들이 많아서 젊은 장정들만을 가려 뽑은 공화국군과는 차이가 심했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공화주의라는 이상에 동감해서 온 동지들로 구성되었으며, 또한 그들이 충분히 무장할 수 있는 장비를 사전에 준비해 두었다. 이 질의 차이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참모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자 지크프리트는 말을 이었다.

“둘째, 그대들은 전쟁의 전략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를 못 하고 있다.”

지크프리트의 나무람에 참모들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다른 이가 저런 말을 하면 반발할 수도 있겠지만 상대는 지크프리트다.

자타가 공인하는 공화국의 최고 사령관이자 명전략가.

최근에 마스터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괴물 총사령관이라는 새로운 별명도 손에 넣은 거물이다.

단순한 질책이라도 누구의 입에서 나오느냐에 따라서 그 무게가 달라지는 법이다.

지크프리트는 참모들을 향해서 제자를 가르치는 선생 같은 어조로 말했다.

“전쟁의 전략이라는 것은, 적의 사고를 벗어난 의표를 찌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지크프리트는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적은 우리에게 두 가지 길을 제시했다. 각개격파를 위해서 군을 움직이든, 이 거점을 중심으로 포위망 속에서 농성을 하며 일전을 준비하든 그것은 적이 제시한 선택지의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전력이 열세인 우리가 적의 짜 놓은 판에서 싸워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우리는 적의 예상 밖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대부분의 참모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확실히 지금 자신들은 적이 내민 선택지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그대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지크프리트의 뜬금없는 말에 참모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눈치 빠른 참모 몇 명이 ‘아!’ 하며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지크프리트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내가 누구냐?”

다시 한번 물어보는 지크프리트의 말에 참모들이 말했다.

“지크프리트 총사령관님입니다.”

“공화국의 군신입니다.”

“불패의 상징이자 공화국의 영웅입니다.”

불패 어쩌고 하는 말에 지크프리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레스터 왕국의 누구 때문에 불패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 내가 공화국의 지크프리트다.”

지크프리트는 어깨를 펴고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나를 믿어라. 그리고 나를 따라라. 내가 반드시 제군들에게 승리를 약속하리라. 이것이 세 번째 이유다.”

자신감의 과잉이라고 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신기하게도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지크프리트이기 때문일까?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옛! 총사령관님!”

모두가 한목소리로 대답하는 참모들을 보며 지크프리트가 말했다.

“지금부터 작전 계획도와 병력 구성을 짜겠다. 모두 지금부터의 내용은 극비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어기는 자는 군법으로 다스리겠다.”

“옛!”

그렇게 지크프리트는 제국군의 진격에 대응하기 위한 작전을 짜고 그날 공화국군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적이 군을 셋으로 나눴다고?”

공화국군의 움직임을 보고 받은 세바스티안 공작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예. 그렇습니다. 중앙군 4만, 우군 3만, 좌군 3만으로 군세를 나눠서 각각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

전령의 보고를 받은 세바스티안 공작은 이해가 안 갔다.

전령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이해를 했다.

하지만 적이 왜 그렇게 기괴한 움직임을 보였는지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적이 군을 셋으로 나눴다고 자신들도 군을 나눈다?

바보 같은 행동이다.

그렇게 군을 분할시키고 전선을 나누면 반드시 덩치가 큰 쪽이 유리해지기 마련이다.

질적으로 보나 양적으로 보나 적을 압도하고 있는 제국군에게 있어서 지금 공화국군이 보여준 행동은 우행의 극치였다.

문제는 세바스티안 공작이 판단하기에 지크프리트는 절대 이런 우행을 저지를 정도로 멍청한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륙에서 제국 다음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스트라부스 왕국을 무너트린 지크프리트다.

거기다 최근의 첩보에 의하면 스스로가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을 정도로 대단한 무위도 갖추고 있다고 했다.

어째서 한 인간에게 이렇게 많은 재능이 주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지크프리트가 명전략가이자 대단한 적이라는 것이다.

‘뭔가…. 뭔가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라도 있는 건가?’

불안감이 든 세바스티안 공작은 즉시 전략 지도를 펴고 세심하게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적의 속셈을 알 수가 없었다.

‘골치 아프군. 적의 의도를 읽지 못하는 것만큼 불안한 것도 없는데 말이야.’

세바스티안 공작은 손가락으로 미간을 꾹꾹 누르며 고심에 빠졌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이 결국….

“선봉의 라이언 카텔 후작에게 전해라. 적의 음모가 있을 수 있으니 최대한 신중하게 진군하라고.”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헤일리 모론 후작과 마티아스 버켈 후작에게도 같은 소식을 전해라. 적의 행동이 심상치 않으니 빠른 승리보다는 신중한 대응으로 일관하라 전하라.”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령에게 지시를 내린 세바스티안 공작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 거렸다.

“신중하게 판단하고 정석에서 벗어나지 않게 행동한다면…. 큰 패착은 없을 것이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각 군에 경고를 해서 경계심을 높인다는 평범한 선택지였다.

사실, 지크프리트의 의도를 읽을 수 없는 지금은 이 정도가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행동이었다.

그나마 지크프리트의 행동을 우행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만 해도 세바스티안 공작이 세월을 헛되게 보내지는 않았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선봉을 다투고 있는 다른 세 명에게도 과연 세바스티안 공작과 같은 수준의 노련함을 바랄 수 있는지를 간과한 것이 그의 실수였다.

진격 속도를 늦추고 상황을 살피며 신중하게 대응하라, 라는 세바스티안 공작의 지령을 받았을 때 모론 후작과 버켈 후작은 동시에 못마땅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 둘에게 있어서 이번 전쟁은 이기는 것은 물론이고, 그 공적을 가지고 중요한 내기까지 한 상태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 둘도 알고는 있다.

마스터가 제국의 중요한 전력인 이상 자신들이 성에 찰 정도로 무리한 요구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내기에서 이기면 상대방의 얼굴을 일그러지게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했고, 무엇보다 지는 것은 정말 싫었다.

당연히 둘은 세바스티안 공작의 경고를 묵살했고, 오히려 진격 속도를 올렸다.

그 결과 먼저 적을 조우한 것은 버켈 후작이었다.

“흐음… 저게 고스트라는 건가? 지크프리트 직속의 정예 부대라고 하는?”

버켈 후작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정예 부대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색 갑옷에 해골 투구를 쓰고 있는 정예 부대는 멀리서 보기만 해도 상당한 정예로 보였다.

지크프리트가 이름을 날림에 따라서 고스트의 존재도 상당히 드러났다.

비약의 존재에 관해서는 극비였지만 지크프리트 직속의 정예 병력.

힐데스 공화국이 심혈을 기울여 육성했던 최후의 칼날.

그런 이미지로 세상에 인식되고 있었다.

단, 고스트의 존재가 어느 정도 알려졌다고 해도 모든 것이 알려진 것은 아니었다.

“적장의 이름은?”

“제이크라고 합니다.”

“제이크?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군.”

버켈 후작은 자신의 기억을 돌아봐도 제이크라는 이름을 기억해 낼 수 없었다.

버켈 후작이 제이크를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이크의 존재감은 지크프리트가 최대한 공을 들여서 숨겨왔기 때문이다.

숨겨진 카드는 최대한 많이 쥐고 있는 편이 유리하다, 라는 것이 지크프리트의 지론이다.

자신이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던 것을 최대한 숨겼던 걸 생각하면 알 수 있듯이 제이크 역시 지크프리트가 최대한 숨기고 싶었던 비장의 패였다.

고스트의 리더이자 마스터의 무위,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크프리트의 명령이라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을 충성심까지.

제이크의 존재는 지크프리트에게 있어서 비장의 조커였다.

가능하면 정말 필요한 국면이 아니고서야 절대 뒤집지 않고 숨겨두고 싶은 패였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였다.

지크프리트는 제이크에게 일군을 맡기고, 직접 공개된 전장에 투입했다.

그동안 꽁꽁 숨겨두고 있는 제이크를 이제야 세상에 드러내려는 것이다.

“군의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그렇군.”

제이크는 담담하게 부하의 보고를 받으며 적진을 노려봤다.

“마티아스 버켈이라….”

버켈 후작이 제이크를 모르는 것과 달리 제이크는 버켈 후작을 잘 알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다.

용병 출신으로 마스터에 올라 제국의 후작위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니 말이다.

전 대륙을 다 뒤져봐도 모르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의 유명인이니 말이다.

그리고 보통 사람이라면 버켈 후작이 적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위축되고 심하면 좌절해 버릴 것이다.

하지만 제이크는 달랐다.

“검 한 자루로 출세한 남자인가? 기대되는군.”

제이크의 입매가 올라가며 미소가 맺혔다.

그는 진심으로 버켈 후작과의 일전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제이크의 모습을 곁에서 보고 고스트의 조장들은 듬직하다는 미소를 지었다.

버켈 후작의 위명이야 익히 알고 있는 바였지만 그 위명에 조금의 위압감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자신들의 편에 훨씬 더한 괴물이 있다는 확증 때문이었다.

‘드디어 제이크 대장님도 세상에 알려지는군.’

‘한바탕 뒤집어지겠어.’

그들이 보기에 지금 제이크는 오랫동안 우리에 가둬져 있다가 세상에 막 풀려난 맹수처럼 보였다.

제이크는 이 전투에 나오기 전에 지크프리트에게 한 가지 명령을 받았다.

[중앙군은 내가 알아서 처치할 거다. 그리고 모론 후작의 공격도 적절한 수를 썼다. 하지만 제이크. 너에게는 아무런 계책도 주지 않겠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지크프리트의 말에 제이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면으로 승부를 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세 곳의 동시 격파 중에, 오직 너만은 지략이 아니라 무력으로 적을 격파해야 한다. 가능하겠지?]

지크프리트의 물음에 제이크는 확신을 담아서 말했다.

[주군의 명이 있으시다면, 설령 100만의 대군이라고 할지언정 물리쳐 보이겠습니다.]

[좋아. 너를 믿겠다.]

그게 다였다.

지금 대륙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지 모른다고 평가 받는 명전략가인 지크프리트는 제이크에게 정말로 아무런 계책도 짜 주지 않았다.

물론 힘과 힘의 승부에서 적에게 밀리지 않도록 병력의 편성은 정예병들로 짜 주었다.

다른 곳과 달리 제이크가 이끄는 병력은 징집병이 아닌 역전의 정예병들이었고, 또한 고스트의 전력도 제이크의 전쟁에 80퍼센트가 투입되었다.

순수한 힘과 힘의 승부로 마티아스 버켈이 이끄는 제국의 군단을 이기라는 명령이었다.

그리고 제이크는 그 명령에 응할 자신이 있었다.

“2조, 3조.”

“예. 대장님.”

“예. 대장님.”

“각각 우익과 좌익을 나눠서 맡아라. 적에게 포위되지 않게 날개를 넓게 펼쳐라.”

“옛!”

“4조와 5조는 나를 따른다. 위치는 중앙, 진행 방향은 정면이다.”

제이크가 내린 지시는 전형적인 중앙 돌파였다.

좌우에 강력한 병력을 배치해서 포위당할 위험을 방지한 상태에서 자신이 직접 중앙 돌파를 시도하는 진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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