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게임-174화 (174/257)

제174화

“일단 이유나 물어보지. 이번에는 무슨 일인가?”

세바스티안 공작의 말에 모론 후작이 먼저 말했다.

“저 쓰레기의 부하들이 내 기사단의 단원들을 희롱했습니다.”

“그냥 말 좀 건 것뿐이다. 그게 희롱이라고?”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모를 쓰레기들이 말을 걸었다면 그 지저분한 속내는 뻔한 거지. 아닌가?”

“뭐라고!?”

모론 후작의 말에 이번에는 버켈 후작이 울컥했다.

그의 부하들 대부분이 용병 출신이었고, 개중에는 도적 출신도 있었다.

본인이 용병 출신이었기 때문에 재능 있는 용병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 기사단을 만들고 그들을 편입시킨 것이다.

그게 버켈 후작이 이끄는 버켈 기사단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는 것은 그만큼 부하들에게 애착이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둘은 하는 짓이 똑같다.

둘 다 차별 속에서 본인의 실력으로 성공했고 자신과 같은 차별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서 힘쓰고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같은 극이기에 서로 반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부하들을 아끼는 버켈 후작에게 있어서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모를 쓰레기’라는 모론 후작의 발언은 넘겨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래 애들이 좀 수작을 부렸을 수도 있지.”

“인정하나? 쓰레기.”

“아, 그런데 그래서 뭐? 문제라도 있나?”

“문제라고? 이 쓰레기가 뻔뻔하게….”

“차라리 감사해야 할 것 같은데?”

“뭐라고?”

“온몸에 흉터투성이인 근육 년들 따위 비위 좋은 내 부하들 아니면 어디 수작질이나 받아 보겠어? 가뜩이나 남자가 궁할 텐데 내숭떨지 말고 다리나 벌리라고 하지 그래?”

용병 출신답게 버켈 후작의 말은 거침이 없고 원색적이었다.

모론 후작은 눈에 불길을 활활 불태우며 말했다.

“지금 다 지껄였나? 쓰레기.”

“아니 아직 더 말할 수 있지. 이왕이면 부하들에게만 시키는 게 아니라 네가 직접….”

“그만!”

버켈 후작의 발언이 점점 도를 넘어가자 세바스티안 공작은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이런 미친 것들….’

사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세바스티안 공작은 기세를 뿜어내며 둘의 언쟁을 멈췄다.

하지만 이미 둘은 열이 오를 대로 오른 게 눈에 뻔히 보였다.

“…….”

“…….”

입은 다물었지만 둘은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쓰레기.’

‘미친년.’

세바스티안 공작의 만류만 없다면 앞뒤 가릴 것 없이 끝장을 보고 싶은 게 이 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사실, 이 전쟁에서 앞을 다퉈서 참가한 것도 어서 공을 세워 공작위를 받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둘 중에 상대가 먼저 공작위에 오른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그런 사태는 절대 겪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세바스티안 공작은 이 둘의 행동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같은 군에 놔두고 다스리긴 무리야. 차라리….’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세바스티안 공작이 말했다.

“정 싸우고 싶다면 싸워….”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지. 밖으로 나와라 개년아.”

세바스티안 공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둘은 당장이라도 한판 붙을 것처럼 말했다.

“내 말을 끝까지 들어라. 이 핏덩이들아.”

거기에 세바스티안 공작이 이를 갈며 으르렁거리듯이 말하자 둘은 조금이지만 찔끔했다.

‘무슨 기세가….’

‘하여튼 정정한 영감님이라니까.’

둘을 살기로 진정시킨 세바스티안 공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직접 싸우라는 게 아니다. 제국의 마스터끼리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결투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

“아니, 공작님. 그럼 뭘 어쩌라는 겁니까?”

“정당하게 경쟁을 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세바스티안 공작은 지도를 펴고 말했다.

“지금 공화국군의 위치는 여기다. 발랑스 왕국의 국경 지대에서 여섯 개의 영지를 함락하고 자리를 잡았지.”

둘의 시선이 지도에 집중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세바스티안 공작은 말을 이었다.

“이곳으로 가기 위한 길목은 크게 나눠서 다섯. 하지만 대군이 움직일 만한 대로는 셋밖에 없다.”

“과연, 군을 나눠서 진격시킬 생각이십니까?”

모론 후작의 질문에 세바스티안 공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다. 그리고 군을 삼등분해서 적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한다. 우선, 헤일리 모론 후작.”

“예. 말씀하십시오.”

“그대는 군사 2만을 이끌고 오른쪽의 대로를 우회해서 적을 공격하라.”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티아스 버켈 후작.”

“예.”

“그대는 군사 3만을 이끌고 왼쪽으로 우회해서 적을 공격한다.”

“괜찮기는 한데…. 왜 저는 3만입니까? 제가 저년보다 못 미덥습니까?”

“당연하지.”

“닥쳐. 개년아!”

둘이 또 으르렁거리자 세바스티안 공작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왼쪽으로 가는 길이 더 넓고 커서 적의 대군이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군요.”

“뭐하면 바꿀 텐가?”

세바스티안 공작의 말에 버켈 후작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걸로 경쟁을 시킨다면 승자에게 상이 있고 패자에게 벌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패자는 정식으로 승자한테 정식으로 사과를 하는 것이….”

“패자는 승자의 요구는 어떤 것이든 다 들어주는 것으로 하지.”

세바스티안 공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모론 후작이 말했다.

그러자 버켈 후작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네년. 진심이냐?”

“왜? 겁나나?”

“하…. 그럴 리가?”

“잠깐, 둘 다 진정하고….”

세바스티안 공작이 말리기도 저에 버켈 후작이 말했다.

“내가 이기면 네년이 내 부하들 앞에서 알몸으로 춤을 추게 하지. 진귀한 구경거리일 거야. 도도하신 헤일리 모론 후작께서 남자들 앞에서 천박하게 엉덩이를 흔드는 모습을 보인다고 하면 제국의 모든 남자들이 구경하고 싶어서 몰려들걸?”

“이보게 버켈 후작, 그런 말도 안 되는….”

세바스티안 공작이 말리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번에는 모론 후작이 입을 열었다.

“좋다. 대신 내가 이기면 네놈은 가죽을 벗기고 소금에 절여서 산채로 광장에 매달아 석형(石刑)에 처하도록 하지. 최대한 오랫동안 고통 받도록 목숨을 끝까지 붙여줄 테니 각오 단단히 해라.”

“좋다. 어디 해보자. 이 개년아!”

“쓰레기가….”

둘의 말을 들으며 세바스티안 공작은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

‘이제 나도 모르겠다.’

중재하기도 지친 세바스티인 공작은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어차피 누가 더 큰 전공을 세우냐는 총사령관인 자신이 정하는 것이니 그냥 무승부라고 선언해 버리면 될 뿐이다.

실제 둘도 진심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어쨌든 이제 이 둘을 같이 데리고 있기는 무리였다.

어차피 전략적으로 군을 나눠서 포위 압박할 작전을 짜고 있었으니 손해 볼 것도 없었다.

“그럼 이제 가보게.”

세바스티안 공작은 지친 목소리로 그 둘을 내보냈다.

그리고 그 둘이 나가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말이지. 요즘 젊은 것들은 어른 앞에서도 가리는 게 없다니까. 늙은이를 피곤하게 하는 건 좀 작작했으면 하는데 말이야.”

어쨌든 이제는 한숨 좀 돌리고 싶었다.

와인이라도 가볍게 한잔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때….

“세바스티안 공작님. 어째서 제가 선봉이 아니고 모론 후작과 버켈 후작이 먼저 출진한단 말입니까?”

라이언 카텔 후작이 와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역시 불만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세바스티안 공작은….

“아, 쫌!”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래서 현장의 관리자는 피곤한 법이다.

내부적인 사정이야 어쨌든 제국군의 편성은 정해졌다.

헤일리 모론 후작이 이끄는 2만의 우군.

마티아스 버켈 후작이 이끄는 3만의 좌군.

그리고 핵터 세바스티안 공작이 직접 이끄는 10만의 대군이 중앙을 공격했고, 그 선봉으로 라이언 카텔 후작이 5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앞장섰다.

제국군이 출병했을 때 지크프리트는 한참 군세를 가다듬고 있었다.

국경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파격적인 대승을 거둔 덕분에 이후에는 여섯 개의 영지를 거의 날로 먹었다.

영주는 도망갔고 영지민들은 알아서 지크프리트에게 영지를 바치며 항복했다.

거기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공화주의자들의 지원 덕분에 병력의 증설도 한창이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적의 동태를 관찰하는 것은 항상 게을리하지 않았다.

당연히 제국군의 출병과 그들이 어떤 방향으로 군을 출병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지크프리트는 즉시 참모들과 대책 회의를 열었다.

“이상이 적의 출진 규모와 대략적인 정보다. 의견이 있는 자들은 말하라.”

지크프리트의 설명이 끝나자 참모 중에 한 명이 말했다.

“적이 군세를 일부러 나눴다면 우리는 힘을 합쳐서 각개격파를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각개격파라고?”

“예. 좌군과 우군의 병력은 고작 2만과 3만입니다. 먼저 둘 중에 하나를 정리하면….”

“중앙군이 바로 진격 속도를 올리겠지.”

“…예?”

“만약 그렇게 한다면 어쩔 건가? 우리가 좌군이나 우군을 먼저 공격했을 때 적의 중앙군이 진격 속도를 올려서 무방비한 지형을 공격한다면 말이야.”

“…·그건…. 그러니까….”

말을 못 잇는 참모를 두고 다른 참모 한 명이 말했다.

“여기는 점령지입니다. 아직 우리 기반이 없으니 진형을 통째로 비우고 우리는 좌군을 먼저 공격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무리요. 확실히 여기는 점령지이지만 우리는 이미 거점을 만들었고, 공화주의에 감화된 형제들이 하루에도 몇천 명씩 몰려들고 있소. 이 진형의 후방에 비전투 인원들이 군수물자의 생산과 생업에 힘쓰고 있단 말이오.”

“그렇다면 어찌합니까. 이 자리에서 적의 포위망이 좁혀올 때까지 그냥 기다리라는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일단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을 소거법으로 제외하고 남은 선택지 중에서 최선의 방안을 골라야 하오.”

“그런 소극적인 방법으로 지금의 전황을….”

참모들이 어지럽게 의견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크프리트는 상석에서 팔짱을 끼고 그들의 말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정보를 취합했다.

‘꽤 곤란한 수를 썼군. 이제 제국의 싸움이라는 건가?’

지크프리트가 보기에도 이건 꽤 난국이었다.

군의 전력 대부분을 중앙에 밀집하고, 좌우에 정예 병력의 일부분을 보내서 포위망을 구성한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전략이었지만 이 단순한 전략도 어떤 수준으로 구사되느냐에 따라서 전략의 질이 달라진다.

지금 좌군과 우군을 지휘하고 있는 이들은 헤일리 모론 후작과 마티우스 버켈 후작.

제국의 마스터이며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양성한 정예 기사단을 이끌고 참전했다고 한다.

거기에 중앙군의 15만 중에는 10만이 수도와 인근에서 징집한 징집병이었지만 좌군과 우군에 포함된 병력은 완벽한 정예들이었다.

그 정예병들을 각개격파 하기 위해서 군을 분산시킨다면 그 순간 본진에 빈틈이 노출된다.

지금 정면에서 대로를 타고 올라오는 적의 진격 속도는 상당히 늦었지만 이것은 고의로 늦추고 있음이 틀림없다.

지크프리트의 분석에 의하면 사흘이면 도착할 거리를 열흘 페이스로 천천히 올라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왜 그럴까?

슬슬 압박을 가하면서 적이 보이는 반응에 따라서 방식을 바꾸겠다는 말이다.

만약 좌군이나 우군을 요격하기 위해서 움직인다면 그때는 한달음에 달려와서 본진을 유린할 것이다.

지금 이 거점을 중심으로 발랑스 왕국의 공화주의자들을 하나로 모으고 있는 지크프리트로서는 절대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중앙을 먼저 공격한다면?

그것 역시 악수(惡手)임에 틀림없다.

중앙군을 먼저 공격하면 그때는 좌군과 우군이 빠르게 본진을 공격할 것이다.

중앙군의 15만에 비하면 규모가 많이 축소된 것 같지만 마스터가 이끄는 2만, 3만의 병력은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결국, 지크프리트의 입장에서는 어느 쪽도 먼저 공격하기는 힘들었다.

이대로 천천히 적의 포위망이 좁혀져 오는 것을 보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니면 전면 후퇴를 하거나 말이다.

‘마치 시작부터 외통수로 판을 만들어 놓고 체스를 두자고 하는 사람 같군. 질이 나빠.’

지크프리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런 외통수 판을 짤 수 있는 것은 상대가 제국이기 때문이다.

한 전쟁에 마스터를 네 명이나 밀어 넣고, 거기다 더해서 10만 단위의 군세를 너무나 쉽게 운용할 수 있는 제국의 전력이 있었기에 이런 방식의 전략이 가능했다.

강자가 압도적인 무력으로 약자를 사냥하는 싸움.

제국이 선택한 것은 강자의 필승법이었다.

‘각개격파는 안 돼. 그렇다고 포위망이 좁혀져 오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다. 그렇다면…. 이쪽도 적의 방식대로 하는 수밖에.’

결론을 낸 지크프리트는 언쟁을 벌이고 있는 참모진들에게 말했다.

“우리도 군을 나눈다.”

그런 지크프리트의 말에 참모 중에 한 명이 말했다.

“역시 각개격파를 선택하신 겁니까?”

그 말에 지크프리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각개격파가 아니다.”

그리고 지크프리트는 참모진들과 시선을 마주하고 말을 이었다.

“우리는 동시 격파에 나선다.”

군을 세 개로 나눠서 세 가지 방면을 모두 상대하겠다는 말이다.

“총사령관님. 그건 너무 무모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군세가 늘기는 늘었지만 그 대부분이 징집병입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