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게임-169화 (169/257)

제169화

“누가 내 욕하나?”

북부에서의 민란을 가라앉히고 돌아가는 길에서 밀턴은 귀를 후비며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릭이 말했다.

“주군, 왜 그러십니까?”

“귀가 가렵네. 누가 내 욕이라도 하는 건가?”

그러자 릭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주군은 적이 많으니까요. 당연한 일이죠.”

“…….”

‘맞는 말이긴 한데 그렇게 해맑게 웃으며 말하기냐?’

그리고 밀턴은 릭에게 말했다.

“오랜만에 대련이나 하자.”

“예? 어… 일단 지금은 임무 중인데요?”

“뭐 어때? 수련이 시간과 때가 어디 있냐? 너도 계속 익스퍼트 중급에서 빌빌거리고 있을 수는 없잖냐?”

“주군, 저 익스퍼트 중급입니다. 중급. 빌빌거리다뇨?”

“어이구? 그러셔요? 뉘에. 뉘에. 네 주군은 마스터다. 어쩔래?”

“…….”

순간 릭은 뭐 씹은 표정을 했고 밀턴은 그런 릭에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꼬우면 너도 마스터 하던가?”

“젠장… 이건 횡포야.”

아무래도 대련을 못 피할 것 같자 릭의 어깨는 축 늘어졌다.

그리고 밀턴은 반대편에 있는 토미를 물끄러미 보다가 말했다.

“너도 하자.”

“예? 저는 왜요? 저 눈치 없는 곰탱이와 달리 저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응. 그렇긴 한데 너하고 릭은 세트, 아니 콤비잖아? 서로서로 함께해야지.”

“…….”

사무치게 억울하다는 표정의 토미였지만 어쩌겠는가?

계급도 실력도 모두 깡패인 것을 말이다.

이전에도 어려웠지만 밀턴이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고 나서는 아주 죽을 맛이었다.

토미와 릭이 동시에 덤벼도 옷자락 하나 베기 힘들었다.

‘마스터가 참 좋기는 좋아.’

이번에 군주로서의 레벨이 오르고 특전을 받으면서 밀턴의 상태창은 크게 변했다.

[밀턴 포레스트 대공]

군주 LV.6

무력 - 91 통솔 - 97

지력 - 85 정치 - 80

충성 - 100

특성 - 군주의 위엄, 영웅의 후광, 선구자, 전략.

군주의 위엄 LV.4 :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군에게 강한 믿음을 주며 적에게는 두려움을 준다. 상벌을 내림에 따라 신하의 충성심을 크게 올릴 수 있다.

영웅의 후광 LV.4 : 민중에게서 강한 지지력과 존경심을 끌어낸다. 다소 무리한 정책을 진행해도 민심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전쟁터에서는 적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선구자 LV.2 : 정체되거나 혼란에 빠진 세상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인류의 역사에 커다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전략 LV.5 : 전쟁의 전체적인 판도를 읽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보다시피 상태창의 모든 능력치가 오르고 새로운 특성이 생겼다.

특히, 무력이 드디어 90을 넘은 것은 고무적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었던 마스터의 벽을 넘고 나서 무력이 한 번에 91까지 오른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생긴 특성 역시 강력했다.

선구자 LV.2 : 정체되거나 혼란에 빠진 세상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인류의 역사에 커다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이번에 분노한 민중들을 진정시키고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생긴 이 특성은 대단했다.

이제까지 다른 특성들은 개인에게 영향을 끼치거나 혹은 국가에 영향을 끼치는 특기들이었다.

그런데, 이 선구자라는 특성은 한 시대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하나의 사상을 세상에 만들고 퍼트림으로 인해서 세상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이 특성을 잘 진화시키면 이 혼란스러운 이념 대립의 시대를 진정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밀턴 개인의 상태창뿐만이 아니라 국가 관리창 역시 변했다.

영토 - 레스터 왕국.

국가 특성 - 영토 확장, 해양 무역, 영웅의 시대, 시대의 변혁.

인구 - 4,833,952명.

자금 - 14,125,548골드.

식량 자급률 - 120%

전략 물자 - 철광석, 함선, 준마, 석재.

상업 현황 - 생산력 A급, 유통망 B급, 물가 D급.

국제 무역 - 해양 무역 A급(80%), 육로 무역 C급(18%), 기타 밀무역 B급(2%)

민심 - A급(민란을 평화적으로 잠재움으로써 군주에 대한 신망이 크게 올라갔음.)

군사력 - 기사 820인, 수습 기사 4,254인, 기병 25,000인, 보병 74,000인, 궁병 35,000인. 해병 9,000인.

대부분은 그대로였지만 국가 특성에 시대의 변혁이라는 특성이 붙었다.

밀턴이 민주주의라는 사상을 국가에 도입함으로써 나라의 내부에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민심이 C급에서 A급으로 올라가 있었다.

결국 데이비드의 음모는 보기 좋게 분쇄당한 것이다.

민란을 일으켜서 레스터 왕국의 내부를 어지럽히려고 했는데 오히려 비 온 뒤의 마른 땅처럼 더 단단해져 버렸으니 말이다.

이쯤 되면 밀턴이 궁금한 건 하나였다.

‘자, 지크프리트.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이간책이 실패한 지금도 제국과의 전쟁을 일으킬 거냐?’

이번에 북부에서 일어난 음모가 공화국의 음모라면, 이 음모의 목적은 틀림없이 시간 벌기였을 것이다.

발랑스 왕국을 무대로 제국을 상대하는 전쟁에 대비해서 잠재적 위험 요소인 레스터 왕국의 발목을 묶어 두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게 실패한 지금도 과연 지크프리트는 전쟁을 일으킬까?

아니면 제국에게 고개를 숙이고 시간을 벌까?

밀턴의 움직임은 그때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주군, 대련 준비 끝났습니다.”

“그래. 그럼 시작하자.”

그 전에 지금은 릭과 토미부터 굴려야겠지만 말이다.

***

레스터 왕국에 내란을 일으키는 것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지크프리트는 즉각 군부를 소집했다.

제이크를 필두로 해서 고스트의 조장들과 그동안 지크프리트가 자신의 사람으로 포섭한 공화국의 인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지크프리트는 자신의 카리스마와 수완을 내세워서 이미 공화국군을 완벽하게 장악한 상태였다.

지금 모인 이들은 모두 지크프리트에게 충성을 맹세한 인물들이었고, 지크프리트는 허울을 만들지 않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군을 두 개로 나눈다. 그리고 일군은 레스터 왕국을 견제하고 나머지는 나를 따라서 발랑스 왕국을 정복한다.”

지크프리트의 결정은 결국 전쟁이었다.

다만, 레스터 왕국에서의 계획이 실패했기 때문에 병력을 나눠서 수비와 공격을 따로 진행할 생각이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말했다.

“총사령관님. 레스터 왕국에서의 계획이 실패한 이상 지금 제국과 일전을 펼친다는 것은 위험이 큽니다.”

그 말에 지크프리트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건 유감이지만, 지금의 호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지크프리트는 부하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현재 발랑스 왕국의 내부에서는 공화주의를 바라는 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서고 있다. 덕분에 발랑스 왕국의 국력은 예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이 약해져 있다. 여기서 시간을 더 끌면 발랑스 왕국에 일어나고 있는 분란이 진정될지도 모른다.”

침략을 하려면 지금이 가장 적기라는 말이다.

“하지만 제국이 도울 겁니다. 이미 제국에서 10만의 대군이 발랑스 왕국에 파병군으로 출병했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나도 그 정보를 들었다.”

지크프리트는 그렇게 말한 후에 바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정보를 들었기에 생각했다. 제국이 아직 우리를 얕잡아 보고 있다고 말이다.”

지크프리트는 주변의 인물을 하나하나 마주하며 말했다.

“고작 10만이다. 발랑스 왕국의 머저리들이 가세해도 15만이나 17만 정도가 고작이겠지.”

그리고 지크프리트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말했다.

“고작 그 병력으로 우리를 막을 수 있다, 라는 멍청한 판단을 한 것이다. 제국의 황제라는 놈은 말이다.”

제국의 군세 10만을 고작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자신감을 넘어서 오만이라고 느낄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크프리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고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에 그 말을 의심하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믿음직한 표정으로 지크프리트를 바라볼 뿐이었다.

“내가 직접 5만의 군세를 이끌고 선봉에 서겠다. 그리고 나머지 여유 병력 중에 15만을 모아서 레스터 왕국을 견제하라.”

제국과의 일전을 고작 5만으로 수행하겠다는 말이었다.

“알렉스.”

“예. 부르셨습니까?”

지크프리트의 명령에 절도 있는 대답과 함께 일어나는 것은 강인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었다.

알렉스 원래 코브르크 공화국 출신의 대위였다.

하지만 공화국의 군부가 통합되고 지크프리트의 눈에 띄어서 고속 출세를 한 뒤 지금은 중장의 자리에 올랐다.

사실 공화국군 안에는 실력은 있지만 파벌에 밀려서 공적이 저평가된 인재들이 꽤 많았다.

지크프리트는 자신이 군의 통수권을 쥐고 그런 인물들을 하나씩 자신의 사람으로 포섭하고 능력에 어울리는 직위를 주었다.

알렉스 역시 그런 인물이었다.

사실, 코브르크 공화국의 슈하이머 총통은 알렉스가 고속 출세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지크프리트에게 군권을 전부 맡기기는 했지만 역시 불안한 감이 없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 군부의 안에 자기 사람을 심어서 내부에서 견제를 할 수 있게 만들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슈하이머 총통은 알렉스에게 자기 딸을 아내로 주며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현재 알렉스는 공화국군의 중장인 동시에 슈하이머 총통의 사위인 것이다.

하지만, 슈하이머 총통은 몰랐다.

정략적인 결혼으로 맺어진 인연 따위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할 정도로 알렉스는 지크프리트에게 강렬하게 매료되어 있었다.

자신의 능력을 가장 먼저 알아주고 등용해 준 것은 지크프리트였다.

그렇게 두각을 드러내고 난 후에야 접선해서 거의 반강제로 정략결혼을 추진한 슈하이머 총통과는 비교가 될 수 없었다.

알렉스의 그런 충성심을 알기에 지크프리트도 레스터 왕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15만의 군세와 더불어서 마스터인 맥카시 대장과 프랭크스 대장을 붙여 주겠다. 마스터 둘의 존재감이라면 레스터 왕국을 향한 억제력이 충분할 것이다.”

이 말에는 모두가 놀랐다.

마스터가 전쟁터에서 가지는 위력을 생각하면 당연히 소수 정예로 군을 구성해야 할 제이크가 마스터인 둘을 이끌고 제국과 맞설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들 중에 반 이상은 알고 있다.

지크프리트의 심복인 제이크가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러 있고 지크프리트 본인도 마스터의 경지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대는 제국이다.

마스터라는 전력을 둘이나 양보한다는 것은 대단히 큰일이었다.

“지크프리트님. 레스터 왕국을 견제하는 것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전력을 소모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결국 누군가가 한마디를 했다.

그러자 지크프리트가 날카로운 눈으로 말했다.

“정녕 그렇게 생각하는가?”

“예. 우리 공화국이… 공식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마스터는 셋입니다. 그런데 그중에 둘이나 견제를 위해서 동원한다는 것은 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논리적으로 차분하게 설명한 그 참모의 말에 지크프리트가 담담하게 말했다.

“멍청하군.”

“…예?”

말투가 너무나 평이해서 순간 상대는 질책을 당한 것도 몰랐다.

마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당연하게 하는 말이 아닌가?

그리고 지크프리트가 말했다.

“마스터 둘로도 모자란다. 사실, 바론 대장이 내 뜻대로 움직여 준다면 그 역시 동원했을 것이다. 레스터 왕국이 지금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는가? 우리가 북부를 일통하지 못한 것이 바로 레스터 왕국과 밀턴 포레스트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부하가 서둘러서 사과를 하자 지크프리트가 모두에게 말했다.

“지금이 중요한 시기다.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두 가지, 제국을 물리치는 것과 레스터 왕국을 막는 것. 이 중에서 제국은 내가 담당하겠다. 그리고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건대 반드시 제국군을 박살내 주겠다고 약속하지.”

지크프리트의 카리스마에 매료된 이들에게 있어서 그의 입에서 나오는 약속이라는 단어는 특별한 것이다.

지크프리트가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반드시 이뤄낼 것이다.

근거는 없었지만 그들은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지크프리트는 부하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내 몸이 두 개가 아닌 이상 레스터 왕국을 견제하는 것은 그대들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대들은 이미 레스터 왕국을 얕보고 있군. 이래서는 내가 안심을 하고 제국과 맞설 수 있겠는가?”

“죄송합니다. 총사령관님.”

“저희들의 실수입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습니다.”

레스터 왕국에 대한 견제가 지나치다고 발언을 한 이는 물론이고 내심 비슷한 마음을 가졌던 모든 이들이 사죄의 말을 올렸다.

그런 이들을 보고 지크프리트가 말했다.

“알렉스.”

“예. 말씀하십시오.”

“그대의 경험과 지혜를 믿는다. 그러니 마음가짐 하나에 관해서만 충고를 하겠다.”

그리고 지크프리트는 알렉스를 향해서 말했다.

“전쟁터에서 밀턴 포레스트를 상대할 때는 바로 내가 적으로 돌아섰다고 생각하고 싸워라.”

“……!”

내심 무슨 말을 들어도 놀라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알렉스였다.

하지만 역시 이 말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크프리트라는 인물에게 매료되고 그의 능력을 알고, 그의 자신감을 알고, 그의 야심을 알았다.

그런 지크프리트가 자신과 동격의 인물로 평가할 정도라니?

‘밀턴 포레스트라….’

“명심하겠습니다.”

알렉스의 표정에 진지한 경각심이 떠올랐고 지크프리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알렉스가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크프리트 본인이 생각해도 방어에 너무 많은 병력을 치중한 느낌은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의 레스터 왕국에게는 그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

“좋아. 그럼 나와 함께 발랑스 왕국에 출전할 이들을 발표하겠다. 제이크, 그대가 나와 함께한다.”

“옛!”

“그리고 고스트의 전 병력이 모두 나를 따른다. 또한….”

그날 지크프리트는 발랑스 왕국을 정벌하기 위한 병력을 모두 선별했고, 레스터 왕국을 견제하기 위한 병력 배치까지 직접 지시를 내렸다.

그렇게 꼼꼼한 준비를 마친 후에 최대한 서둘러서 전군을 이끌고 출군했다.

그 모습에는 전쟁을 길게 끌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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