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2화
데이비드는 소수 정예의 고스트 대원들과 함께 북부 지역에 침투해서 작은 마을을 습격하고, 민간인들을 죽였다.
그 와중에 남자와 노인들은 현장에서 죽이고 아이와 여자들은 끌고 가서 다른 현장에서 죽였다.
여자와 아이를 잡아가는 노예상인으로 소문을 내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물론 데리고 돌아다니면 들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죽이고 시체도 깔끔하게 처리했다.
페일런 공작이 아무리 검문검색을 강화해도 들키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애당초 노예 상인이 아니었고, 노예를 대동하고 다니지도 않았기 때문에 검문을 유유하게 통과한 것이다.
그리고 북부 지역에 불안감이 퍼지자 간자들을 퍼트려서 그 불안감을 더 크게 키웠다.
그리고 불안감이 극에 달한 시점에서 일부러 사로잡은 여자들을 일부 풀어주어서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
풀어줄 예정의 여자 노예들의 앞에서 정보를 누설한 것도 사전 조작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고작 200명.
데이비드가 북부에 파고들면서 데리고 온 인원은 고작 200명이었다.
물론 고스트를 포함한 정예 대원들이었지만 이렇게 소수만 가지고 일국의 절반 가까이를 뒤흔들 수 있었던 것은 데이비드가 예리하게 급소만을 후벼 파며 상황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금의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제 북부의 불만은 커질 대로 커져서 바늘을 살짝 가져가기만 하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여기까지는 순조롭군.”
“예. 왕국 놈들은 우리가 뒤에서 일을 주도하고 있는지는 꿈에도 모를 겁니다.”
부하의 말에 데이비드는 피식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포레스트 대공이나 레이라 여왕이 너 같은 단세포라면 그렇겠지?’
데이비드는 조소했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어차피 계획은 막바지에 도달했다.
이제부터는 알든 모르든 상관없다.
불만이 쌓인 민중은 폭동을 일으킬 것이고 레스터 왕국은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집중해야 한다.
제국과의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레스터 왕국의 발을 묶어 둬라.
라는 지크프리트의 명령은 충분히 수행한 것이다.
“임무는 이 정도면 될 듯합니다. 그럼 이제 돌아가시는 겁니까?”
부하의 말에 데이비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시키는 일만 하는 부하는 무능한 거야. 이번 기회에 좀 더 판을 크게 키워 봐야지.”
“판을 키우다니? 어느 정도로 말입니까?”
“북부 지역을 완전히 우리 것으로 되찾는 거야. 멋지지 않나?”
데이비드의 말에 부하는 가슴 뛰는 표정을 하고 말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오면서 주군에게 몇 가지 특권을 받았네. 이를테면 국경 지대에 배치된 병력에 대한 동원령이라던가 말이야.”
“과연, 역시 데이비드 님이십니다.”
부하의 눈에 데이비드는 몹시 듬직하게 보였다.
맡은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는 것도 모자라 지크프리트를 위해서 분골쇄신하는 그 모습에 존경심마저 들었다.
“그럼 저는 부하들을 추스르겠습니다. 별도의 지시가 있으면 내려 주십시오.”
“알겠네.”
그리고 보고를 하던 부하가 물러나자 데이비드가 입술을 낼름 핥으며 말했다.
“주군이 맡긴 임무는 끝이 났지. 그러니….”
잠시 말을 끊었던 데이비드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그의 얼굴에 뱀과 같은 미소가 맺혔다.
“여기서부터는 나의 취미 생활인 거야.”
그 미소는 인간의 가죽을 쓴 짐승의 것을 연상시킬 정도로 섬뜩하고 혐오스러웠다.
지크프리트가 숨겨둔 심복 중에 한 명인 데이비드.
사실 지크프리트 본인이 워낙 지략에 출중하기 때문에 이런 책사는 필요 없을지 모른다.
밀턴에게 란돌 세비안 백작이 반드시 필요한 것과는 사정이 좀 달랐다.
하지만 지크프리트에게 있어서 데이비드는 유용한 참모였다.
어떤 의미로 유용한가 하면….
아무리 더러운 일을 맡긴다고 해도 기꺼이 수행한다는 점이 지크프리트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포로를 전부 죽여라.
민간인을 죽이고 약탈을 하라.
노인과 아이들을 죽여라.
누구나 명령을 받았을 때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 명령들이었다.
지크프리트라는 인물의 카리스마에 세뇌되어 맹목적인 충성심을 바치는 인간들이라고 해도 이런 명령을 내리면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다르다.
이 남자는 아무리 잔혹하고 야만적인 명령이라고 해도 기꺼이 수행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즐겨서 할 것이다.
왜냐하면 데이비드는 그것을 지크프리트라는 주인님이 자신이라는 짐승에게 내리는 먹잇감이라는 자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라는 인간의 성향을 선악으로 구분하면 명백하게 악으로 기울어져 있는 인간이다.
아니 악 정도가 아니다.
인간의 보편적인 도덕적 감각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짐승.
그게 데이비드다.
밀턴이 말한 대로 지크프리트는 비정한 수를 쓴다고 해도 필요에 의해서만 쓴다.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하다면, 그 어떤 짓이라도 실행할 것이다.
그게 지크프리트라는 인간이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다르다.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 없다고 해도 굳이 잔인하고 비열한 수단을 즐겨 사용한다.
겉으로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상대를 비웃고, 언젠가 그 상대방의 뒤에서 칼을 꽂는 순간을 상상하며 즐거운 미소를 짓는 것이 데이비드라는 인간이었다.
타인의 절규와 고통으로 가득 찬 아비규환의 현장을 눈앞에서 봐도 황홀한 표정으로 예술 작품 감상하듯이 바라볼 것이다.
타인의 고통과 비명이야말로 자신의 기쁨으로 여기는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지는 본인도 모른다.
그는 공화국의 대도시에서 태어났다.
지극히 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나서 지극히 정상적으로 성장했다.
그렇게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빈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짐승이 살고 있었다.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서 환희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잘못된 공감 능력.
현대로 치면 사이코패스라고 할 수 있는 성향을 스스로 타고난 것이다.
비극이 있다면 이 짐승은 비열한 성품에 어울리지 않게 몹시 간교한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첫 살인을 저질렀을 때가 열다섯이었다.
거리의 노숙자 한 명을 유인해서 고문 끝에 죽였고 그 시체를 말끔하게 처리했다.
그 후로 꾸준하게 살인을 저질렀고 불과 2년도 되지 않아서 그 대상이 백이 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범죄 행각으로 인해서 꼬리가 잡히지 않았다.
심지어 희생자의 대부분이 살인이 아니라 실종으로 처리될 정도로 용의주도했다.
이런 악마의 취미 생활이 끝을 고한 것은 그의 부모 때문이었다.
아들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낀 그의 어머니가 아들의 방에서 숨겨져 있던 일기장을 찾았다.
그리고 거기에는 자기 아들이 얼마나 끔찍하고 위험한 짐승인지 알 수 있는 사실들이 적혀 있었다.
피해자들의 마지막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그들의 고통과 절규를 하나하나 설명하며 기뻐하는 자신의 내면까지….
그 일기장은 데이비드에게 있어서 일종의 저장고였다.
교활하고 사악한 짐승에게는 자신의 성과를 추억하고 다시 되씹을 수 있는 기록을 남겨두고 언제든지 다시 읽으면서 추억에 젖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끔찍한 악마의 수기였다.
여기서 또 하나의 비극이 발생한다.
상식과 도덕심을 갖추고 있던 그의 어머니는 아들과 정면으로 마주해서 설득하고 죗값을 받게 하려고 했다.
혈육인 자신들의 말이라면 들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건 너무 안이한 생각이었다.
데이비드는 자신을 꾸짖고 나무라는 어머니의 추궁에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고 반성했다.
날이 밝는 대로 도시의 경비대원에게 가서 자수하자는 어머니의 말에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건 악마의 가면이었다.
그날, 데이비드의 집에 화재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 화재로 인해서 데이비드의 부모가 불타 죽고 오직 데이비드 한 명만이 살아남았다.
주변에서는 갑자기 닥친 비극으로 인해서 부모를 잃은 데이비드를 위로했지만 데이비드는 그 위로 속에서 홀로 조소하고 있었다.
‘이제, 그 누구도 나를 막을 수는 없어.’
친부모를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양심에는 일말의 가책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후, 데이비드는 자신이 살던 도시를 떠나서 다른 도시로 갔다.
그리고 그는 밤거리의 폭력 조직에 몸을 담았다.
법률을 피해서 폭력과 야만으로 살아가는 그 세계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2년.
일신에 지니고 있는 무력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는 힐데스 공화국의 밤거리를 지배하는 거물이 되었다.
타고난 두뇌와 뒷골목의 범죄자들도 질릴 정도의 잔인한 행동력이 밤거리에서 두각을 드러낸 것이다.
무엇보다 데이비드는 몹시 용의주도했다.
국가에서 현상금을 걸었을 정도로 대악당이 되었지만 아무도 그의 얼굴을 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몰랐다.
그저, 힐데스 공화국의 밤거리를 혼자서 쥐락펴락하는 정체불명의 흑막이 있다. 정도의 정보만 입수했을 뿐이다.
일각에서는 실존 인물이 아니고 가상의 존재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데이비드는 힐데스 공화국의 밤을 공포로 물들이며 지배하고 있었다.
그때가 데이비드가 악명을 펼친 전성기였다.
하지만, 그런 데이비드의 꼬리를 유일하게 잡은 사람이 있었다.
그게 바로 지크프리트였다.
당시 총통 직속의 관료에 불과했던 지크프리트는 아주 작은 단서만으로 데이비드의 존재를 알아냈고 함정을 파서 데이비드를 잡아냈다.
그때 데이비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패배감을 겪었다.
모든 게 다 끝나고 나서야 자신이 지크프리트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 데이비드는 죽음을 각오했다.
하지만 지크프리트는 데이비드의 행적을 파악하고 검거하는 과정에서 놈의 가치를 파악했다.
인간성 자체는 분명 악인이다.
아니 선악을 넘어서 인간에게 해로운 유해 짐승이라고 정의하는 게 옳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크프리트는 뭐든지 쓰기에 따라서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인간이었다.
단시간에 뒷골목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확보하게 된 자금력과 정보력만 해도 충분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거기다 데이비드라는 인간 그 자체도 목줄만 확실하게 매어 놓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을 했고 말이다.
그때 지크프리트는 말했다.
[100명을 죽이면 단순한 살인마지. 하지만 10만, 100만을 죽이면 역사에 그 이름을 당당하게 남길 수 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데이비드는 온몸이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스스로가 사회의 이물질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던 인간이다.
아무리 자신이 유능하고 지혜롭다고 해도 이 세상에 자신이 있을 자리가 없다는 것은 자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자신에게 여기 있어라. 라고 자리를 제시하는 인간이 나타난 것이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내 이름은 지크프리트다. 앞으로 내 곁에서 네 능력을 발휘해라. 그렇게 한다면 너도 쓰임을 받게 될 것이다.]
타고난 제왕의 그릇이라고 해야 할까?
지크프리트의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데이비드가 간절하게 바라던 것이었다.
결국 데이비드는 지크프리트에게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다.
그리고 음지에서 지크프리트를 위해 활동하면서 물심양면으로 그를 지원했다.
지크프리트가 크게 세운 공적 대부분은 전쟁터에서 발휘한 것이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음지에서 서포트를 한 것은 데이비드였다.
그리고 더러운 일이 필요할 때 마다 주저 없이 자기 손을 더럽히는 것도 데이비드였고 말이다.
주저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반기는 편이었다.
자신의 사악한 계획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야말로 이 짐승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데이비드가 이번에 표적으로 삼은 것이 바로 레스터 왕국의 북부 지역이었다.
지크프리트는 발을 묶어 두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했지만 데이비드는 그 정도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이 땅에 분열과 증오의 싹을 심어서 대지를 피로 물들이고 시체로 산을 쌓고 사람들의 원성과 슬픔이 세상에 가득하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기 위한 준비도 이미 끝이 났다.
그렇다면 무엇을 망설일까?
‘후후후…. 지옥을 보여주마.’
데이비드는 앞으로 있을 만찬을 기대하면 환희의 미소를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