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화
시작은 어느 시골 마을이었다.
그 마을은 규모가 작았고 보유하고 있는 광산도 생산량이 낮은 광산이었다.
그래서 돈이 돌지 않았고 젊은이들은 여기를 떠나 서쪽의 항구 도시에서 돈을 벌겠다고 마을을 하나둘씩 떠났다.
아마 이대로 가면 자연스럽게 소멸해 버릴 그런 작은 마을이었다.
하지만 이런 마을에도 사람이 있는 이상 장사를 하겠다고 주기적으로 찾아가는 상인들은 있었다.
보통 한 달에서 두 달 주기로 마을에 찾아가서 상행을 했는데 그런 상인들이 가장 먼저 마을에서 벌어진 이변을 발견했다.
아니, 그건 이변이 아니라 참극이라고 불러야 할 일이었다.
“이…. 이게 뭐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상인은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망연자실했다.
마을이 풍비박산이 나 있었던 것이다.
마을의 건물은 부서지고 불타고 있었고 시체가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상인은 혹시 생존자가 없나 찾아봤지만 소용없었다.
이 작은 마을은 소리 소문 없이 전멸해 버린 것이다.
상인은 즉시 인근의 책임자에게 찾아가서 상황을 보고했다.
북부 지역은 공식적으로는 션 페일런 공작의 영토였지만 실질적인 행정 업무는 왕궁에서 파견한 관리들이 하고 있었다.
관리는 상인의 보고를 받고 서둘러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서 사람을 파견했다.
하지만 너무 작은 마을이었고 생존자가 없어서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내린 결론이 산적들이 마을 덮쳤다는 것이다.
북부에는 과거 공화국 출신의 군인들이 왕국의 지배를 거부하고 산에 들어가서 도적이 된 이들이 꽤 있었다.
아마 그들 중에 한 무리가 마을을 덮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주변의 마을에 각별히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반드시 산적들을 색출해서 응징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상식적으로 대응을 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후에도 몇 개의 마을이 없어졌다.
공통점은 모두 외부와의 교류가 적은 산간 마을이라는 것과 마을이 철저하게 파괴당하고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 건의 사례가 늘어나면서 한 가지 더 알려진 것이 있었다.
파괴된 마을에 남아 있는 시체의 대부분은 남자와 노인이었다.
어린애와 여성들의 시체는 적었고, 누군가가 반항하다 끌려간 듯한 흔적을 발견했다.
즉, 단순한 도적이 아니라 인간의 납치를 목적으로 하는 노예상인의 소행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거 세상이 흉흉하기도 하지.”
“그러게 말이야. 노예상인이라니?”
북부 지방의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최근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관해서 떠들었다.
마을을 통째로 파괴하고 사람들을 납치해갈 수 있는 노예상인이라니?
주민들이 공포심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존재였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나?”
“응? 뭐가 말이야?”
“노예상인이라는 건 원래 꽤 드물잖아? 멀쩡한 사람을 잡아서 노예로 팔려면 판로도 있어야 하고, 또 사람을 수송하고 관리하려면 거기에도 굉장한 돈과 인력이 들 테고 말이야.”
“그건 그렇지. 그런데 그게 뭐?”
“그런 거대한 조직이 움직이는데 왜 국가에서는 모르는 거지?”
“허어…. 그거 듣고 보니 좀 그렇군.”
“페일런 공작이 무능한 것 아니야? 검만 마스터면 뭐해? 실제 통치력이 꽝인데 말이야.”
“예전에 공화국 시절에는 최소한 이런 일은 없지 않았나?”
대규모로 추정되는 노예상인들이 활개를 쳐도 마땅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는 정권.
민중의 불안은 점점 불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페일런 공작은 이런 분위기를 알아채고 어떻게든 사태를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딱히 뾰족한 수가 없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마을을 습격해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노예상인들을 잡아서 처벌하는 것이었지만 놈들의 행적은 도무지 잡을 수가 없었다.
평범한 상인들이 불평을 늘어놓을 정도로 검문검색을 강화했지만 노예상인은 고사하고 비슷한 밀거래 상인도 발견하지 못했다.
결과를 내지 못하는 이상 민중은 납득하지 않는다.
북부 지역의 주민들은 자신들을 다스리고 있는 페일런 공작의 능력에 대해서 불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상황에서 추가로 사고가 터졌다.
노예상인들에게서 잡혔던 여인들 중에 일부가 탈출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은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자신들을 사로잡은 노예상인들의 대화를 몰래 들었는데 그들의 배후에 포레스트 대공이 있다는 말이었다.
“뭐라고!?”
말을 듣던 밀턴은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진정해요. 여보.”
“이게 진정할….”
“일단 말을 끝까지 듣자고요.”
레이라 여왕이 밀턴의 손을 잡아주며 다정하게 달래자 밀턴은 일단 참았다.
‘빌어먹을, 내 이름을 팔았다 이거지?’
어째 이후의 전개가 어떻게 되었을지 대강 짐작이 가는 밀턴이었다.
“계속 말해보게.”
“예…. 그 여인들 증언에 따르면….”
노예상인들에게 잡힌 여인들은 노예상인들이 방심한 틈을 타서 간신히 탈출했다고 한다.
그런 그녀들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들은 멀리 대륙의 남부까지 팔려갈 뻔했다고 한다.
서쪽 항구에서 배를 타고 그대로 대륙의 남부에 있는 워터포트 왕국까지 팔려갈 뻔했다.
라는 것이다.
자신들을 잡아갔던 상인들이 그런 대화를 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여기서 밀턴의 이름이 직접 나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 수 있었다.
레스터 왕국에서 워터포트 왕국까지 가는 해상 무역의 루트는 포레스트 대공가에서 독점하고 있었다.
밀턴이 가지고 있는 사업체 중에서 가장 많은 이윤을 남기는 사업인 만큼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즉, 그 항로를 이용하려면 포레스트 대공가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 일의 배후에 포레스트 대공이 있다면 진척이 없던 미진한 수사도 이해가 갔다.
국가가 배후에서 노예 상업을 시작했다면 국가에서 수사를 한다고 잡힐 리가 없다.
직접적인 증거는 무엇 하나 없었지만 불신이 가득했던 북부 지역의 주민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이미 진실 이상의 파급력을 불러왔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더러운 왕국 놈들을 믿으면 반드시 나라가 이 꼴이 날 줄 알았어.”
“애당초 귀족이라는 것들은 이런 놈들이야. 신분이 낮은 인간은 인간으로 안 본다고. 유용한 가축으로 취급할 뿐이야.”
“공화정으로 돌아가야 해. 이대로 왕국에서 보여주는 이면 정책에 속아 가다가는 우리 후손들이 영원히 신분의 노예로 살아가야 할 거야.”
북부 지역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제까지 레이라 여왕은 북부 지역을 힘이 아니라 돈과 식량, 그리고 정책의 유도 방향으로 이끌어 왔다.
그건 힘으로 억누르면 반드시 반발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실제로 그녀가 유도한 경제 발전에 따른 공화주의 퇴색화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다만, 아무리 좋은 정책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고 해도 단점이 발생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공화주의를 없애기보다는 부드럽게 억누르며 자연 소멸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운영했기 때문에, 아직 북부 지역에는 공화주의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당연한 말이다.
레이라 여왕의 계획이 순조롭게 흘러갔다고 해도 3대는 시간이 흘러야 공화주의가 완전히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공화주의는 여전히 북부에 강하게 남아 있고, 거기에 쓸데없는 자극이 더해지면 북부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발생할 것이다.
그게 바로 지금의 상황이었다.
“북부에서는 이미 조직적으로 공화주의를 부활시키겠다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숫자는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았지만 최소 10만 단위의 주민들이 참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령의 말에 레이라 여왕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페일런 공작의 대응은?”
“일단 군사를 모으고 무력 충돌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하께 정식으로 명령을 받기 위해서 저를 보냈습니다.”
“그렇군. 수고했어. 이제 물러나 쉬고 있도록.”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전령이 물러나자 레이라 여왕은 밀턴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공화국 쪽에서 손을 쓴 거겠죠?”
“아마도, 제국과의 전쟁을 눈앞에 두고 우리가 끼어들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도겠지.”
밀턴도 레이라도 이번 사태를 조장한 것은 공화국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예상인 어쩌고 하는 문제는 분명 의도된 조작이다.
이제 와서 왕궁에서 노예상인 같은 지저분한 사업을 왜 한다는 말인가?
이미 남부와의 해양 교역으로 얻어내는 이익이 막대하고, 국내의 산업 생산량도 충분하다.
자금적으로 쪼들릴 이유가 전혀 없는데 뭐 하러 그런 지저분한 사업에 손을 뻗는단 말인가?
결국 이건 공화국의 음모가 확실하다.
아마 정예 부대를 파견해서 북부 지역의 마을을 공격하고 민간인 사이에 공작원을 침투시켜서 민중을 부추겼을 것이다.
“완전히 당했군요. 지크프리트한테.”
레이라 여왕의 말에 밀턴은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제국과의 전쟁에 우리가 끼어들지 말지를 선택하는 사이에 놈은 우리들의 선택지 자체를 없애 버린 거야.”
밀턴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대국적으로 봤을 때 이건 무시할 수 없다. 무조건 받아야 하는 수인 것이다.
그리고 밀턴이 이 수를 받아서 대응하는 사이에 지크프리트는 제국과의 전쟁에 돌입할 것이고 말이다.
“정말이지. 꽤나 지저분한 수단을 쓰네요. 민간인을 희생시키고 당신한테는 노예 상업이라는 먹칠도 하고…. 철저하게 실리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지. 놈의 성격상…. 음.”
레이라 여왕의 말에 대답을 하던 밀턴은 문득 이상한 이질감을 느꼈다.
“왜 그래요?”
“아니, 음, 뭐랄까? 별로 근거는 없고 그저 순수한 감일 뿐이지만….”
“왜 그래요? 뜸 들이지 말고 말해 봐요.”
“이 작전이 정말 지크프리트의 머리에서 나온 걸까?”
“무슨 말이에요?”
“뭐랄까? 방식이 좀 다른 것 같아서 그래.”
“방식이 다르다고요?”
레이라 여왕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지크프리트는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며 민간인에게 피해를 일으키는 전략은 쓰지 않는다. 라는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상당한 고평가인걸요?”
레이라 여왕의 말에 밀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설마, 내가 보기에 그 녀석은 얼마든지 비정한 방법도 쓸 수 있고, 또 필요하다면 사용할 거야. 하지만….”
“하지만 뭐요?”
“비정한 방법과, 비열한 방법은 다르잖아?”
“그게 무슨 말이에요?”
“민간인을 배려한다거나, 적에 대한 존중심을 가진다거나, 그런 의미로서가 아니라 자기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국면이 아니라면 지저분한 방법은 쓰지 않아. 아마 놈이라면 그렇게 할 거야.”
“그거, 무슨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근거는 없어. 말했잖아.”
“…….”
레이라 여왕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냐? 라는 표정을 하고 밀턴을 바라봤다.
하지만 밀턴은 자기 생각에 상당한 확신을 가진 것처럼 말을 이었다.
“거기다 놈은 지금 제국과의 전쟁에 힘을 기울여야 할 테니까 말이야. 아마도 지금 북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란은 다른 놈이 하는 짓인 것 같아.”
“근거는 없지만, 순전히 당신의 감이다 이거죠?”
“그렇지.”
밀턴의 말에 레이라 여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그 근거가 맞다는 가정하에 대응책을 생각하기로 해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녀는 남편인 밀턴의 말을 믿기로 한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묘한 부분에서 날카로운 점이 있으니 말이다.
***
근거 없이 막연한 추론이었지만 밀턴의 예상은 맞았다.
지금 북부 지역의 안에 파고들어서 민중의 사이에 독을 퍼트리고 있는 인간은 지크프리트가가 아니었다.
다만, 지크프리트가 아니라고 해도 만만한 상대인 것은 아니었다.
“데이비드 님. 여론 조작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꼬리를 잡히지는 않았겠지?”
“예. 물론입니다.”
“좋아. 잘했어.”
고스트의 보고를 받고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남자는 지크프리트의 심복인 데이비드였다.
데이비드.
지크프리트의 숨겨진 오른팔이자 측근 중에 한 명인 이 남자가 지금 레스터 왕국의 북부 지역에 파고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