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게임-155화 (155/257)

제155화

결혼식에 난입한 밀턴에게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로렌스 공왕이었다.

“누구냐? 감히 누구기에 일국의 중대사에 끼어든 것이냐?”

날카롭게 외치는 로렌스 공왕을 향해서 밀턴은 태연하게 말했다.

“보다시피, 이 결혼에 이의가 있는 사람이오.”

“여기서 그런 말장난이 통할 것 같은가? 기사단은 무엇을 하는가? 어째서 저런 무뢰한이 난입하게 내버려 두었단 말이냐? 당장 끌어내지 못할까?”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로렌스 공왕을 보면서 밀턴은 피식 웃었다.

‘저게 플로렌스 공국의 공왕인가?’

[로렌스 그라함 플로렌스]

공왕 LV.8

무력 - 15 통솔 - 85

지력 - 65 정치 - 77

충성 - 00

특성 - 강압, 매수, 교섭.

강압 LV.5 :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계급이 낮은 자에게 강제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 있다.

매수 LV.6 :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며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도록 유도한다.

교섭 LV.4 : 거래나 협상시에 자신의 조건을 관철시키기 유리해진다.

짧게 능력치를 확인해 보니 전반적으로 형편없었다.

예전에 오거스트 국왕을 봤을 때보다도 훨씬 낮은 수치였다.

이런 인간이 상대라면 애먹을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이 나라에 오기 전에 밀턴은 레이라 여왕에게 허락을 받았었다.

무슨 허락이냐 하면….

[마음 내키는 대로 뭐든지 저질러도 괜찮아요. 아니 꼭 그렇게 해요. 다소 거칠어도 좋으니 플로렌스 공국을 확실하게 휘어잡아야 해요.]

라고 말했다.

즉, 일부러라도 거칠게 나가서 국력의 우위를 전폭적으로 보여주라는 것이 레이라 여왕의 지시였다.

그래서 밀턴도 결혼식에 난입한다는 거창한 짓을 할 수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마음을 굳힌 밀턴은 로렌스 공왕을 향해서 말했다.

“자기소개가 늦었군. 나는 레스터 왕국의 대공, 밀턴 포레스트라고 하오.”

“네가 누구든…. 뭐라고?”

로렌스 공왕의 얼굴에 당혹스런 감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주변에서도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밀턴 포레스트?”

“그 전쟁의 영웅이라던?”

“공화국군 50만을 5만으로 물리쳤다는 그 밀턴 포레스트?”

“어째서 여기에….”

“아, 그러고 보니 바이올렛 공주는 포레스트 대공과 같은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소?”

“그러고 보니….”

주변의 하객들은 수근거리면서 이 사태에 관해서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다.

다소 과장이 섞여 있는 소문이 있기도 했지만 밀턴에 대한 명성은 이미 플로렌스 공국에서도 구석구석 퍼져 있었다.

레스터 왕국이라는 약소국을 이제는 북부의 패권을 다투는 강대국으로 바꿔놓은 입지적인 인물 아닌가?

가뜩이나 대륙의 최약소국으로 취급 받고 있는 플로렌스 공국의 인사들로서는 그런 인재가 부럽기 짝이 없었다.

어떤 이들은 그런 인재가 자국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레스터 왕국의 국력이 크게 신장한 것에 관해서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렇게 밀턴은 여러 가지 형태로 플로렌스 공국 귀족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인물이었다.

그런 밀턴이 전혀 뜻밖의 형태로 이 나라에 나타났다.

귀족들은 이 사태에 관해서 신중하게 생각했고, 로렌스 공왕은 놀란 표정을 지우고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만나게 되어 반갑소. 포레스트 대공. 설마 아무런 기별도 없이 이렇게 찾아올 줄은 미처 몰랐소.”

“워낙 급한 일이라서 기별을 전할 틈이 없었소.”

“그 급한 일이라는 게…. 내 모자란 여식의 결혼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란 말이오.”

“그렇지. 보다시피 말이오.”

밀턴의 말에 로렌스 공왕의 시선은 급하게 바이올렛 공주에게 닿았다.

‘설마?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것이냐?’

하지만 짙은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바이올렛 공주의 표정은 확인할 수가 없었다.

다만 그녀도 몹시 당황했는지 안절부절못하며 부케를 쥐어뜯고 있었다.

저걸 봐서는 바이올렛 공주에게도 이 사태는 예상 밖의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로렌스 공왕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오늘은 경사스런 자리요. 그런데 대공은 어째서 내 딸의 결혼식에 난입을 하는 것이오?”

꽤 정설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설득력이 조금도 없었다.

“어딘가에 가련한 공주님이 억지로 망나니하고 결혼을 한다. 라는 슬픈 소식이 레스터 왕국까지 들리더군요. 그래서 깽판을 치러 왔소.”

“크흐음….”

로렌스 공왕은 불편한 듯이 헛기침을 했지만 밀턴은 신경도 쓰지 않고 말했다.

“특히 바이올렛 공주는 나와 함께 전쟁터를 누빈 전우. 아니, 그 이상이지. 그녀가 눈부신 활약을 해서 내 목숨을 구해준 적도 있소. 그런 그녀가 어려운 처지에 처했다고 하니 돕기 위해 찾아온 것은 당연하지 않소?”

밀턴의 말에 주변은 크게 술렁였다.

“바이올렛 공주가 포레스트 대공을 구했다고?”

“설마?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겠어?”

“하지만 대공 스스로가 지금 인정을 했는데….”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반응을 보이는 주변을 보며 밀턴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 나라의 평화병도 어지간했군. 바이올렛 공주의 가치를 전혀 모르고 있어.’

플로렌스 공국 안에서 바이올렛 공주의 가치는 정말 저평가되고 있었다.

사실, 왕족이라는 신분을 빼고 그저 순수하게 기사로서의 역량만 놓고 본다고 해도 그녀는 귀중한 인재였다.

그런 인재를 고작해야 외국의 망나니에게 팔아버리다니?

멍청하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밀턴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바이올렛 공주에게 다가갔다.

“바이올렛 공주, 할 말이 있….”

“이게 도대체 무슨 행패요?”

밀턴의 말을 중간에 끊으며 끼어든 것은 아까부터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하고 있던 워드 톨이었다.

그는 밀턴이 나타났을 때부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고, 그 후에 나타난 상황 하나하나가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밀턴이 자신의 아내-아직 아니지만-에게 접근하자 그 앞을 막아서며 인상을 팍 쓰고 말한 것이다.

나는 지금 심기가 몹시 불편하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말이다.

‘뭐지 이 새끼는?’

밀턴은 눈앞에 애송이가 자신을 가로막자 순간 어이가 없었다.

혹시 몰라서 능력치를 슬쩍 확인해 봤다. 그 결과….

[워드 톨]

귀족 LV.3

무력 - 17 통솔 - 55

지력 - 61 정치 - 35

충성 - 00

특성 - 모략, 매수, 집착

모략 LV.5 : 적대하는 인간이나 세력을 위기에 빠트릴 수 있는 뒷공작에 능숙해진다.

매수 LV.7 :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며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도록 유도한다.

집착 LV.8 : 자신이 목표한 것을 반드시 이루기 위해서 집념을 발휘한다. 목표에 따라서 좋게도 나쁘게도 작용할 수 있다.

능력치가 모두 터무니없이 낮았고, 특성도 형편없었다.

모략, 매수, 집착.

이 워드 톨이라는 남자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대강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특성이었다.

‘그냥 쓰레기군.’

결론을 내린 밀턴이 워드에게 말했다.

“비켜라. 애송이.”

“애송이라니? 나는 유서 깊은 톨가의 후계자요. 아무리 대공이라고 해도 예의를….”

“셋 센다. 비키거나 죽거나.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라.”

예의 어쩌고 하던 워드는 입이 쏙 들어갔다.

“이…. 이게 무슨·….”

“셋.”

“아무리 그래도 이런….”

“둘.”

“크윽….”

결국 워드는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고 한쪽으로 비켜섰다.

후작가의 후계자로 태어나서 권력과 돈으로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온 워드에게는 처음이었다.

돈도 권력도 통하지 않는 상대와 대화를 하는 것 말이다.

사실 밀턴의 입장에서 보면 워드는 그냥 애송이일 뿐이다.

후작 본인도 아니고 후작가의 후계자라는 직책 따위에 눈 하나 깜짝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신경도 쓰지 않고 상대를 치워버린 후에 밀턴은 바이올렛 공주의 앞에 나타났다.

“바이올렛, 한마디만 물어보겠소. 정직하게 대답해 주시오.”

“…·예.”

밀턴의 말에 바이올렛 공주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좌중의 이목이 모두 모여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신은 정말 이 결혼을 하고 싶습니까? 당신이 원한다면 나는 이대로 돌아가겠소.”

밀턴의 말에 바이올렛 공주는 잠시 침묵하고 주변을 돌아봤다.

이 결혼이 하고 싶냐고?

최악의 남편과 자신의 불행을 조소하는 혈육 속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남은 인생을 저런 쓰레기의 일곱 번째 첩으로 살아가고 싶냐고?

그런 것 생각할 필요도 없다.

“아니요. 하고 싶지 않아요.”

바이올렛 공주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녀의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밀턴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신관을 향해서 말했다.

“결혼이라는 것은 당사자의 거부하에서도 이뤄질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잠시 주변의 눈치를 보던 신관은 결국 바른 말을 했다.

절대 눈앞에서 위압감을 주고 있는 밀턴이 무서워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정론대로….

결혼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랑하는 두 남녀의 의지가 따라야 성립하는 것이라는 정론에 입각해서 말한 것뿐이다.

‘그러니 나는 잘못 없어. 암, 없고말고.’

신관이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는 사이 밀턴은 로렌스 공왕을 향해서 말했다.

“보다시피 바이올렛 공주의 의지는 이 결혼에 찬성하지 않는 쪽이군. 그럼 어쩌시겠소? 여기서 폭군처럼 자기 딸이 원하지도 않는 결혼식을 강제로 진행시켜 보겠소?”

밀턴의 말에 로렌스 공왕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남의 가정사에 참견이 거하다 생각하지 않으시오?”

우리 집안일이니 신경 꺼라. 라는 말이다.

“그래서? 뭔가 문제라도 있소?”

그럼 네가 어쩔 건데? 라는 말이다.

둘 다 사회적인 위치와 입장이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형식을 갖추기는 했지만 말 속에는 날카로운 칼을 숨기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유리한 것은 결국 밀턴이다.

논리적으로 밀턴 쪽에 정의가 있어서?

아니 그렇지 않다.

밀턴이 유리한 이유는 딱 하나다.

“내가 하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공식적으로 항의를 하시오. 본국에서도 성심성의껏 대응해 주리다.”

“으음….”

바로 밀턴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개인으로서는 물론이고 국가대 국가로서의 우열을 논한다고 해도 힘의 우열은 명백했다.

북부에 떠오르는 신흥 각국인 레스터 왕국의 대공인 밀턴 포레스트.

대륙의 최약소국이라고 불리는 플로렌스 공국의 로렌스 공왕.

이 둘 사이에는 명백할 정도로 큰 힘의 차이가 있었다.

결국, 정의니 뭐니 논할 것도 없었다.

그저 힘이 강한 자가 하는 말이 진실이고 정의인 것이다.

실제로 로렌스 공왕은 밀턴의 도발에 한마디 대답도 못했다.

레스터 왕국에 정식 항의?

가능할 리가 없다.

군사력이 열 배 이상 차이가 나는 나라에 국경도 마주하고 있다.

그런데 무슨 깡으로 거기에 항의를 한단 말인가?

다만, 로렌스 공왕은 이대로 밀리기 싫었는지 다른 쪽으로 밀턴에게 공격을 했다.

“내 딸을 향한 대공의 배려는 감사하오. 하지만 이로써 내 딸은 결혼식 당일 날 마음을 바꾼 여인이라는 딱지를 평생 달고 살게 되었소.”

딱히 당일에 마음에 바뀐 것은 아니었지만 로렌스 공왕은 일단 우겼다.

“그런 낙인이 내 딸의 미래에 좋게 작용할 리가 없지. 도대체 이 사태를 어찌 책임지실 생각이오?”

로렌스 공왕은 자기 딸에게 심각한 손실이 생긴 것처럼 말했다.

보통의 부모라면 자리 자식에게 흠이 있다고 해도 감싸려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로렌스 공왕은 반대였다.

오히려 자기 딸의 흠결을 들춰내서 밀턴을 공격하는 데 사용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밀턴은 그 말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태연하게 대응했다.

“그 말은 바이올렛 공주의 개인 평판에 흠이 생겼으니 나에게 책임을 지라는 말이오?”

“그렇소. 안 그러면….”

“좋소. 그렇다면 그렇게 하지.”

로렌스 공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밀턴은 바로 대답하고 행동에 나섰다.

밀턴은 바이올렛 공주가 반쯤 쥐어뜯어 놓은 부케에서 꽃을 한 송이 뺐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서 경건하게 한쪽 무릎을 꿇고는 꽃을 내밀며 말했다.

“바이올렛 론 플로렌스.”

“예? 예…. 예.”

밀턴의 갑작스런 행동에 바이올렛 공주는 깜짝 놀랐다.

그런 그녀에게 밀턴이 최대한의 정성을 담아서 말했다.

“나와 결혼해 주시겠소?”

그 말이 나온 순간 식장은 또 한바탕 뒤집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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