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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151화 (151/257)

제151화

다소의 폭력과 강압이 동원되기는 했지만 일단 로빈은 레이라 여왕의 명령을 받고 행동에 나섰다.

다만 마지막까지 개김으로써 소정의 인센티브를 얻어내기는 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사실 인센티브는 원래 주려고 했는데.’

밀턴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말이다.

이번에 병합된 레스터 왕국의 북부.

다르게 말하면 구 힐데스 공화국 영토의 주력 산업은 광산업이다.

지형 대부분이 산악 지역이었기에 여러 광맥이 풍부했고 특히 이 지역에서 나는 양질의 철광석은 그 품질이 좋기로 유명했다.

특히 공화국들 사이에서 힐데스 공화국은 일명 대장간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무기의 생산과 수출이 국가의 주력 산업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인구와 경제 역시 광산촌을 중심으로 집중되었다.

반대로 외면 받는 지역이 있었다.

그게 바로 서쪽의 해안 지역이었다.

해안 지역이 외면 받은 이유는 그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힐데스 공화국 시절 무역의 상대는 오로지 다른 두 개의 공화국뿐이었다.

소규모의 밀무역이라면 모를까?

공식적으로 공화국과 왕국 사이에 교류가 있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공화국간의 무역은 육로로 한정되어 있었다.

해상 무역은 꿈도 꾸지 못했다.

만약 뱃길로 가고자 한다면 대륙을 빙빙 돌아서 가야 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릴 뿐더러 왕국의 해역을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현실성이 없었다.

결국 해안 지역은 순수 어업에만 주력했고, 서부 지역의 해안에서 잡히는 해산물이 생산품의 전부였다.

그 해산물을 건조해서 내륙으로 판매하는 게 사실상 유일한 산업 활동이라고 해도 좋았다.

지형적으로 대형 항구를 짓기에 나쁘지 않은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었지만 결국 소규모 어업으로 생활을 이어 가는 게 고작인 것이다.

그렇다 보니 서쪽의 연안 지역은 내륙 지역에 비해서 꽤 낙후되어 있었다.

레이라 여왕은 바로 그 점을 주목했다.

낙후되었고 차별받은 지역.

이런 곳이라면 공화국에 대한 애착이 상대적으로 적으리라.

만약 이런 곳이 갑자기 발전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레이라 여왕은 로빈을 대규모로 함선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 배에 식량을 한가득 실어서 북부 영토의 해안 항구 지역에 나르게 했다.

***

“이봐? 저게 뭐지?”

“굉장히 커다란 배인데? 혹시 전함?”

“설마? 전쟁도 끝났는데?”

북부 지역의 주민들은 자신들의 마을에 나타난 커다란 범선을 보고 불안한 듯이 수근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거대 함선은 마을의 항구에 정박을 했고 배에서 뭔가를 부지런히 실어 내리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지?”

“글쎄? 난들 아나?”

어촌의 주민들은 신기함 반과 두려움 반이 섞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중에 한 남자가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접근해서 말했다.

“자, 여러분 저는 왕궁에서 운영하는 직할 상단의 운영자인 로빈이라고 합니다. 신분은 여러분들과 같은 평민이니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왕궁에서 직접 나왔다는 말에 움찔했던 사람들은 신분이 같은 평민이라는 말에 조금 안심하는 듯 했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로빈이 말을 이었다.

“제가 오늘 여기 온 것은 왕궁에서 직접 가져온 보리와 밀을 판매하기 위해서입니다.”

“식량을 판다고?”

“정말인가?”

힐데스 공화국 시절부터 이 지역은 식량이 귀했다.

지형의 대부분이 산악 지역이었으니 당연했다.

화전을 일군다거나? 산악 지역에서 재배할 수 있는 구황 작물을 심는다던가?

여러 가지로 수는 쓰고 있었지만 그래도 만성적인 식량 부족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만큼 식량을 판매하러 왔다는 상인은 그 소속이 어디든 간에 반가운 손님이었다.

“판매는 언제부터 하는 거요?”

마을 사람들 중에 한 명이 한 말에 로빈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물론 지금 당장부터요. 자, 가격은 밀 한 포대에 80실버, 보리 한 포대는 30실버. 쌉니다. 싸요.”

로빈은 익숙하다는 듯이 분위기를 띄우며 물건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로빈의 말에 반응은 상당히 크게 나왔다.

“밀 한 포대가 80실버?”

“보리는 30실버라고? 말도 안 돼.”

가격을 들은 주민들은 눈을 크게 떴다.

그들이 평생을 살면서 그런 가격에 식량을 사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원래 식량이 비싼 이 지역에서 밀 한 포대면 3골드, 흉년이 들면 최대 10골드까지 올라갈 때도 있을 정도였다.

“한…. 한 포대, 아니 두 포대 주시오.”

“잠시…. 나도 사겠소.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집에서 돈을 가져올 테니 잠시…. 아! 혹시 현물도 받소?”

누군가의 질문에 로빈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여러분들이 생산하는 건어물을 매입할 의향도 있습니다. 그러니 물건을 가져오면 얼마든지 받아들이죠.”

그 한마디에 사람들은 발에 불이 붙은 것처럼 달려서 자기 집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다시 튀어나올 때는 말린 건어물을 한가득 가지고 나왔다.

“오! 고맙습니다. 구입은 이쪽의 가판대에서 하니 차례대로 줄을 서주십시오.”

그렇게 한적한 어촌 마을에서 갑자기 커다란 상행위가 시작되었다.

“말린 청어 200마리. 1골드 20실버로 쳐드리죠.”

“오오오…. 정말 그 가격에 사주는 거요?”

“물론입니다. 아! 그쪽은 뭐요?”

“이건 전복이라는 조개를 말린 것이오. 가끔 잡히는 귀한 건데….”

“처음 보는 물건은 가격 책정이 힘든데…. 에라 모르겠다. 기분이다. 열 개에 1골드 드리리다.”

“오오…. 고맙소.”

로빈은 마을 사람들이 가져온 물건을 상당히 비싼 가격에 사주었다.

그리고 반대로 파는 식량은 엄청난 염가에 판매했다.

그렇게 반나절 동안 불티나는 거래가 이뤄지고 마을 사람들은 로빈과 그 일행을 향해서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왕실에서 운영하는 직속 상단이라고 했소?”

“그렇소.”

“거…. 고맙수다. 그런데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수?”

“말해 보시오.”

“이렇게 팔면 남기는 남는 거요?”

그 남자가 한 말에 다른 마을 사람들은 순간 인상을 팍 쓰며 노려봤다.

‘아, 저 눈치 없는 새끼!’

‘왜?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냥 호구 짓 하게 내버려 둬.’

마을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로빈은 뻔히 알았다.

‘이것들이 날 호구 취급하네.’

솔직히 불쾌하다 못해 가소로울 뿐이었다.

하지만 로빈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왕 전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까짓것 손해를 봐도 좋으니 우선 백성들의 식량 사정을 개선시키라고 말입니다.”

“어…. 그 말은?”

“남는 건 없지만 그래도 앞으로 한 달에 두 번, 최소한 한 번 정도는 이렇게 찾아와서 무역을 할 것입니다.”

“우와아아아!!”

“만세!!”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로서는 호구가 다음 달에 또 찾아온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이 들린 것이다.

로빈은 그런 그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말했다.

“물론 건어물 말고 다른 물건도 매입할 예정입니다. 철광석이라던가? 보석이라던가? 석탄 같은 것도 좋죠. 이 지역 특산품이 그런 것 아닙니까?”

로빈의 말에 사람들은 난색을 표했다.

“그런 건 내륙 지방의 광산 도시에서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네. 우리는 좀….”

“이런이런, 누가 그걸 직접 캐랍니까? 여러분들이 거기서 사와서 다시 저한테 팔면 되지 않습니까?”

“그거야 말은 쉽지. 하지만 우리가 무슨 돈이 있어서 그런….”

“그 돈은 오늘 생기기 않았소?”

로빈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식량을 가리켰다.

“어…?”

감이 빠른 사람들은 로빈이 한 말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 지역은 식량 가격이 비싸지 않소? 우리가 싸게 팔았으니 그걸 내륙 지방에 가져가서 적당한 이문을 붙여서 팔면 돈이 되지 않겠소?”

“그…. 그렇군.”

“그 돈으로 철광석이나 석탄 같은 것으로 가져오면 우리가 적절한 이문을 붙여서 사지요. 그럼 그걸로 다시 식량을 사면 더 많은 식량을 살 수 있을 겁니다.”

“오오오….”

“그런 수가 있었구나.”

한평생 바다에 그물 던져서 먹고사는 방법밖에 몰랐던 어촌 사람들에게 있어서 로빈의 교육은 신세계였다.

그런 사람들에게 로빈은 씨익 웃으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게 장사라는 거죠.”

‘알겠냐? 이 호구 새끼들아.’

후한 가격에 식량을 판매한 로빈은 마을 사람들에게 거한 대접을 받고 돌아갔다.

다음에 올 때는 더 많은 식량을 가져올 테니 그쪽에도 많은 물품을 준비 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이고 말이다.

“그럼 다음 달에 또 오겠습니다.”

“그래. 꼭 오시오.”

“항해 조심해서 하시오!”

마을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며 로빈은 배에 올랐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속으로 생각했다.

‘쉽네.’

처음에는 다소 걱정했지만 식량이 귀하긴 귀했던 걸까?

덕분에 굉장히 성공적으로 어촌의 사람들을 구워삶을 수 있었다.

로빈은 서쪽 지역의 해양 무역을 활성화시키라는 레이라 여왕의 어명을 받고 여기에 왔다.

그리고 제대로 못하면 벌금을 물리겠다는 밀턴의 협박도 받았고 말이다.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로빈은 직접 사람들을 상대하고 친절하게(?) 장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어드바이스도 마련해준 것이다.

지금의 거래가 이문이 남는가?

아니, 그렇지 않다.

이건 어디까지나 미래의 이익을 얻어내기 위한 초반의 투자다.

소의 젖을 짜려면 우선 충분히 먹여서 덩치를 크게 해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들에게 귀한 식량을 싸게 팔고, 흔하게 남아 있던 잉여 생산품을 비싸게 사줬다.

이제 사람들은 상행위에서 이문을 얻는 것을 배운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이익을 더 높이기 위해서 알아서 내륙의 광산과 거래를 시도할 테고 말이다.

왕국에서 광산촌에 직접 관리를 보내고 상단을 파견해봐야 그들은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왕국에 협조를 하기 싫다는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지역의 출신들이 식량을 가져오면 그들도 마음이 혹할 것이다.

식량이 귀한 것은 북부 지역 전부의 공통점이니 말이다.

이런 식으로 몇 개의 항구를 활성화시키면 자연스럽게 서부 지역에 돈과 물자가 물리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경제의 발전으로 이어지고, 왕국의 지원하에 발전을 이룬 해안 지역의 주민들은 왕국에 대한 거부감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로빈은 부하에게 말했다.

“다음 목적지는 어디지?”

“여기서 북쪽으로 하루 거리 정도 더 가면 있는 케이프 항구입니다. 지형적으로는 대형 항구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합니다.”

“좋아. 그럼 난 안에서 잘 테니까 도착하며 깨워라.”

로빈은 그렇게 한마디를 남기고 자신의 선실로 들어갔다.

레이라 여왕의 명령에 따라서 활성화시켜야 할 항구 거점은 세 곳.

그걸 전부 관리하려면 쉴 때는 푹 쉬어야 했다.

선실의 침실에 누우며 로빈은 생각했다.

‘보너스 안 주기만 해 봐라.’

북부 지역 해안가 항구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갔다.

처음에는 식량을 약간 판매하는 정도였는데 그 식량의 판매 규모가 점점 늘어갔다.

그리고 식량의 판매 규모가 늘어나는 만큼 항구 지역에서 판매하는 물건도 점점 다양해지고 수량도 많아졌다.

처음에는 건어물이나 산악 지역에 사는 짐승의 모피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인부를 고용해서 목재와 석재 같은 건축 자재를 판매하기 시작하자 그게 큰 대박이 되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대박을 두 눈으로 본 인간들은 바로 그 대박을 따라했고,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자신이 상단을 조직해서 운영하기 시작하는 자들도 나왔다.

그들은 내륙 지방에 가서 식량을 비싸게 팔고 광산에서 나오는 철광석을 최대한 싸게 사왔다.

그걸 다시 항구 마을에서 왕실 상단에 파니 실로 막대한 부가 축적되기 시작했다.

돈이 모이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는 곳은 결국 발전을 하게 된다.

레이라 여왕이 점을 찍은 세 개의 항구는 원래 입지만 좋은 어촌일 뿐이었지만 불과 1년도 되지 않아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눈부신 발전이 아니라 과도한 발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른 건 다 둘째로 제쳐두고 우선은 경제 하나만을 맹목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러자 슬슬 부작용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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