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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149화 (149/257)

제149화

밀턴과 레이라 여왕은 서로 손을 잡고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때서야 레이라 여왕은 조금 긴장감이 들었다.

왜냐하면….

‘남들 다 하는 거기는 한데….’

그녀는 아직까지 남자를 몰랐다.

아무리 요물이라고 해도 이 순간만큼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침실에는 은은한 조명과 함께 향초의 향기가 은은하게 퍼져 있었고, 테이블에는 와인과 잔이 세팅되어 있었다.

시녀들이 완벽하게 준비를 해둔 것이다.

“한잔할까요?”

어색함을 풀기 위해서 레이라 여왕이 와인에 손을 뻗었다.

그러나….

“술은 이미 충분해.”

밀턴은 레이라 여왕의 손을 덥석 잡고 그녀를 자기 품 안에 끌어당겼다.

“아….”

어어 하는 순간 레이라 여왕은 밀턴의 품에 끌어 안겼고 그대로 밀턴이 그녀의 입술을 빼앗았다.

그리고 밀턴의 손길에 이끌려서 그대로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는 옷이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사르륵거리는 부드러운 실크가 그녀의 맨살을 스치는 소리가 반복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녀는 실오라기 한 점 거치지 않은 나신이 되었다.

밀턴은 그런 그녀를 안아 올려서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그녀의 전신을 천천히 감상하듯이 바라보고는 말했다.

“아름다워.”

자연스럽게 나온 그 한마디는 단순했지만 거짓 없는 진심이었다.

레이라 여왕은 얼굴을 붉히고 밀턴의 시선에서 눈을 돌렸다.

그저 쥐어짜듯이 한마디 하는 게 다였다.

“불 꺼줘요.”

밀턴은 그 요구를 들어 주었다.

하지만 그게 이날 밀턴이 마지막으로 들어준 그녀의 요청이었다.

그 이후 밀턴은 그녀가 무슨 애원을 해도 멈추지 않았고, 참지도 않았다.

“사랑해.”

“하아….”

레이라 여왕은 가쁜 숨을 내쉬며 자신의 남편이 된 밀턴의 격정을 모두 받아들였다.

그렇게 밤이 지나갔다.

밀턴은 생각했다.

‘혹시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인가?’

결혼 생활 중에 가장 행복한 시기가 신혼이라고 한다.

인간이 신혼 버프를 받으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인 것 같은 착각을 한다.

지금의 밀턴이 딱 그랬다.

결혼식이 끝나고 한 달.

그동안 밀턴은 아름다운 두 명의 아내들과 함께 매일매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전쟁터에서 고생한 것을 알아서인지 가신들도 밀턴을 귀찮게 하지 않았고, 밀턴은 신혼의 아득함에 느긋하게 젖어 있을 수 있었다.

덕분에 밀턴은 행복해 죽을 지경이었다.

요물 같은 레이라 여왕이었지만 자신과 단둘이 있을 때는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소심하다고 생각한 소피아는 최근 밀턴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졌는지 단둘이 있으면 심심치 않게 애교를 부려왔다.

그냥 그녀들과 같이 있기만 해도 입가가 풀어질 정도로 너무나 행복했다.

지금도 그렇다.

밀턴은 아침 햇살이 잠든 아내를 비추는 광경을 느긋하게 감상하고 있었다.

“으음…. 뭐 하세요. 여보.”

눈을 뜬 소피아의 말에 밀턴은 웃으며 대답했다.

“잠시 넋을 잃고 있었지.”

“예?”

“당신이 너무 아름다워서 말이야.”

“당신도 참….”

소피아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제3자의 시점에서 보면 꽤 느끼한 대사인데 신혼의 행복에 젖어 있는 그녀는 마냥 좋은 듯했다.

밀턴은 소피아를 꼭 끌어안았다.

“일어나야죠.”

“싫은데. 그냥 이러고 있고 싶어.”

“그럼…. 그럴까요?”

둘은 다시 침대에서 토닥토닥하며 알콩달콩한 분위기를 이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대공 전하. 여왕 전하께서 찾으십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시종의 목소리에 밀턴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겠네.”

밀턴이 그렇게 일어나려고 하자 소피아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우우우웅….”

아기가 응성을 부릴 때 하듯이 고개를 저으며 허밍으로 애원했다.

가지 마요, 같이 있어요, 라는 의미가 가득 담겨 있는 그 모습에 밀턴은 순간 심장이 바닥에 떨어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레이라 여왕이 찾는다고 하니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 갈 수도 없었다.

밀턴은 소피아에게 아쉬움을 가득 담아서 진한 키스를 해주었다.

그리고는….

“빨리 다시 올게.”

그렇게 약속을 하고서야 간신히 침대를 벗어날 수 있었다.

“불렀나요? 레이라.”

밀턴의 말에 레이라 여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금 걸렸군요.”

“그랬나요?”

“훗, 나도 어지간하면 방해하기 싫었지만 이제 슬슬 국사를 논해야 할 시기라서 말이죠.”

“하하하….”

밀턴은 어색하게 웃으며 얼버무렸다.

하지만 아내의 목소리에서 은근한 질책이 섞여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너무 놀았나?’

아름다운 아내 두 명에게 휩싸여서 근 한 달 동안 나태함의 극치를 달린 밀턴이었다.

정무는 고사하고 항상 하던 새벽 수련도 쉬고 있었다.

‘정신을 조금 차려야겠군.’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는 위기에 준비해야 했다.

밀턴은 그런 위치에 있는 인물이니 말이다.

레이라 여왕은 밀턴에게 직접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전에 나한테 말했죠. 북부 지역의 민심을 가능한 빠르게 다독여야 한다고?”

“그랬죠.”

밀턴이 새롭게 변한 능력치로 국가의 상황을 살폈을 때 현시점에서 가장 큰 문제는 북부의 민심이었다.

원래 힐데스 공화국의 영토였던 곳을 병합했으니 공화국민 출신들이 왕국주의에 강한 반발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단 상황 조사를 위해 제 정보망을 동원해서 북부의 상황을 살펴봤어요.”

“그랬군요. 그래서 결과는요?”

“당신의 예상대로였죠. 이거 잘못하면 민란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였어요.”

“역시 심각한가요?”

“사상의 차이에서 오는 거부감이 너무 강해요. 관리를 파견하려고 해도 시민들이 관리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기 일쑤라고 하더군요.”

“으음…. 그거 좀 골치네요.”

레이라 여왕의 말에 밀턴은 눈살을 찌푸렸다.

보통 권력이라고 하면 윗사람들이 고압적인 태도로 아랫사람을 찍어 누르는 것, 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권력의 본질은 밑에서 위로 올라오는 존경, 혹은 최소한 인정과 납득에서 나오는 다수의 힘이었다.

왜 귀족은 평민을 지배하는가?

그건 왕국에서 귀족은 평민의 위에 있다는 규칙을 정하고, 국민 대다수가 그 규칙을 옳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물론 부정과 부패가 심해지면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겠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권력은 다수의 인간을 납득시키는 규칙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화국과 왕국은 그 규칙이 너무나 달랐다.

군주가 정식으로 관리를 파견하고 그 영토를 다스리려고 해도 실제 거주하는 주민들이 관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이럴 때 가장 간단한 것은 일단 힘과 공포로 다스리는 것이기는 한데….”

레이라 여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밀턴이 말했다.

“그러면 안 되는 것 알죠?”

“알아요. 몰랐으면 진작 했겠죠.”

힘과 공포는 통치자에게 있어서 국가를 다스리는 유효한 수단 중에 하나다.

야만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상황에 맞지 않게 남용하면 오히려 국가의 틀 자체를 파괴하는 극약이 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공화국 출신의 북부 지역 주민들은 왕국 그 자체에 강력한 거부감과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가는 적대감을 더 키울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되면 지크프리트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백성들이 불만을 품고 있으면 거기에 공화주의 사상을 밀어 넣어서 대규모 민란을 유도하는 것은 공화국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 중에 하나다.

더구나 지금 레스터 왕국의 북부 지역의 백성들은 원래가 대부분 공화주의자 아닌가?

이미 불씨는 있는 상태다.

약간의 기름만 부어주면 활활 타오를 게 뻔했다.

“무조건 유화 정책으로 품어야 해요.”

“나도 알아요. 알긴 아는데….”

레이라 여왕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민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 구슬리는 게 특기인 레이라가 저렇게 힘들어 하다니? 역시 민심이 천심은 천심인가 봐.’

사실 밀턴이 생각해도 그렇게 뾰족한 수단은 없었다.

원래 이런 건 시간을 충분하게 들여서 조금씩 민심을 이쪽으로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힘내요. 당신이라면 잘할 수 있을 거예요.”

밀턴은 은근하게 레이라 여왕의 곁으로 가서 그녀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고마워요.”

다정한 남편의 손길에 레이라 여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그런데 다정한 손길이 조금씩 음흉해지려고 했다.

찰싹!

“아야.”

남편의 손길을 가볍게 응징한 그녀는 눈을 새초롬하게 뜨고 말했다.

“오늘은 소피아와 보내는 날이잖아요? 그녀한테 미안할 짓 하지 마요.”

“알았어요.”

아쉬움이 조금 남았지만 밀턴은 얌전히 물러났다.

‘아내가 둘이다 보니 공정함에 신경을 많이 써야 되는군. 그래도 둘이서 사이가 나쁘지 않으니 천만다행…. 어?’

순간 밀턴의 머릿속에 번쩍이며 어떤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혹시 그러면 될까? 전생에서도 정치가들은 항상 여야로 나눠서 싸웠으니까….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자기 생각에 일리가 있다는 느낌이 들자 밀턴은 레이라 여왕에게 말했다.

“레이라,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요.”

“그러니까 오늘은 소피아에게….”

“그쪽 생각 아니에요.”

“크흠, 말해 보세요.”

잠시간의 오해가 있었지만 밀턴은 침착하게 본론을 꺼냈다.

자기 머릿속에 번뜩인 아이디어는 구체적이지는 않았지만 대략의 개요는 있었다.

그걸 침착하게 입으로 풀어내기 위해서 밀턴은 스스로의 말에 집중했다.

“북부의 주민들이 왜 우리한테 반발하는 걸까요?”

“사상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죠.”

“맞아요. 그럼…. 관점을 바꿔서 어떻게 그들이 우리한테 반발할 수 있는 걸까요?”

“…….”

레이라 여왕은 눈살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고심하는 그녀를 보고 밀턴이 말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원론적으로 대답해 봐요.”

그런 밀턴의 말이 힌트가 되었는지 레이라 여왕은 답을 찾아냈다.

“그들이 다수이기 때문이죠.”

“맞아요. 다수이자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단결되어 있기 때문에 외부의 적. 그러니까 우리를 상대로 결사 항전하는 거예요.”

밀턴의 말에 레이라 여왕은 은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극히 원론적인 관점이군. 이런 식으로는 생각해 본 적 없어.’

레이라 여왕도 뭔가 감을 잡아가려고 했고 밀턴이 거기에 박차를 가했다.

“저들이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똘똘 뭉쳐 있으면 끝까지 싸울 거예요.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정말 끝까지 말이죠.”

인간이 신념을 가지고 정의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끈기와 저력을 보이는 법이다.

그 신념이 옳고 틀리고는 상관없다.

목적과 의지만 부합한다면 무조건 발생하는 일이다.

“여론을 분열시켜야겠군요.”

“맞아요. 저들의 안에서 내분을 만들어서 하나로 뭉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해요. 그리고 우리 편이 될 사람들을 키워 줘야겠죠.”

“흐으음….”

밀턴의 말에 레이라 여왕의 표정이 묘해졌다.

‘한입에 삼키면 체하니까 몇 번에 걸쳐서 나눠 먹어야 한다는 건가? 거북한 뼈는 발라내고 살점만 조금씩 말이야.’

반쯤은 답답한 마음에 밀턴에게 의견을 구했던 레이라 여왕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밀턴의 말에서 답이 나올 것 같기도 했다.

‘뭔가 답이 나오려는 건가?’

아내의 얼굴에 오랜만에 요물스러움이 드러나자 밀턴은 차분하게 기다렸다.

자신은 그저 추상적인 이미지가 있었을 뿐이다.

사이좋게 지내는 두 아내가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전생에 대한민국의 정치가들이 1년 365일 여야로 나눠져서 싸우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을 뿐이다.

어떻게 해서든 북부의 주민들 사이에서 의견을 나눌 수만 있다면 저항감이 줄어들 것이다, 라는 그런 추상적인 생각에서 나온 의견이었다.

그리고 지금 레이라 여왕의 비상한 머릿속에서 그 추상적인 계획이 조금씩 구체안을 갖춰가고 있었다.

“밀턴, 그 남자 좀 불러줄래요?”

그리고 생각을 마친 레이라 여왕이 입을 열었다.

“어떤 남자요?”

“왜 저번에 얘기했잖아요? 그 돈 밝히는 남자.”

“아, 로빈요?”

“맞아요. 그 남자 좀 불러 주세요. 시킬 일이 좀 있어요.”

레이라 여왕의 말에 밀턴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녀석 요즘 꽤 비협조적인데….”

그런 밀턴에게 레이라 여왕은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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