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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148화 (148/257)

제148화

“신의 이름하에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빈할 때나 풍족할 때나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며 사랑할 것을….”

주례를 맡은 신관의 축사를 들으면서도 밀턴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자신의 좌우에 있는 신부들에게 정신이 팔려서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빨리, 빨리, 더 빨리.’

밀턴은 어서 이 결혼식이 끝나기만을 간절하게 바랐다.

독수공방이 길기는 길었던 것이다.

그리고 신관이 길고 긴 축언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사랑의 증거로서 신랑은 두 신부에게 키스하시오.”

“드디어….”

밀턴은 자신도 모르게 한마디 할 뻔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두 신부에게 다가갔다.

먼저 레이라 여왕의 베일을 걷어 올리고 그녀의 눈을 마주봤다.

“긴장돼요?”

그녀의 작은 속삭임에 밀턴은 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요.”

거짓말이다.

너무 긴장해서 잘못하면 그녀의 코에 키스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밀턴은 용케 정신을 차리고 레이라 여왕의 입술에 살며시 입술을 겹쳤다.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에 잠시 정신을 놨던 밀턴은 살며시 입술을 뗐다.

여기서 더 길게 하면 굉장히 어색해질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서 소피아의 베일을 들어 올렸다.

여유가 있었던 레이라 여왕과 달리 소피아의 얼굴에는 수줍음이 가득했다.

“…….”

그녀는 두 눈을 꼭 감고 밀턴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처럼 기다렸다.

밀턴은 그녀가 사랑스러워서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고 역시 부드럽고 따스한 감촉에 온몸이 사르륵 풀어지는 자신을 느꼈다.

“이로서 이 세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신의 이름으로 증명하노라.”

신관의 선언에 결혼식의 공식 절차가 모두 끝났다.

“축하드립니다. 주군.”

“레이라 여왕님.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소피아 마님.”

사람들의 축하가 쏟아졌고, 밀턴은 그 속에서 드디어 해냈다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결혼식이 끝나도 아직 할 일은 남아 있었다.

그보다는 오늘 공식적인 절차가 굉장히 많이 남아 있었다.

이어서 바로 대공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레이라 여왕은 베일을 벗고 왕관을 쓰더니 밀턴의 앞에 섰다.

그녀의 옆에는 시종이 미리 준비한 화려한 관과 홀을 들고 서 있었다.

그리고 레이라 여왕이 엄숙하게 말했다.

“밀턴 포레스트 후작은 무릎을 꿇으라.”

“예.”

밀턴이 무릎을 꿇었다.

아마 그녀에게 군신의 예를 가하는 것은 이 순간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레이라 여왕은 밀턴에게 관을 씌워주며 말했다.

“레스터 왕국의 적법한 유일 군주 레이라 폰 레스터의 이름으로 명한다. 나의 남편이자 구국의 영웅이며 용맹한 기사인 밀턴 포레스트 후작에게 대공의 위를 내리며, 그 위계는 여왕인 나와 대등한 것으로 할 것이다.”

“신명을 다해서 받들 것을 맹세합니다.”

밀턴이 그렇게 말하며 관을 쓰고 홀을 받아들자 좌중에서는 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포레스트 대공 전하 만세!”

“레스터 왕국 만세!”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기뻐했지만 특히 포레스트 영지에서 선대부터 종사했던 샌슨이나 토마스의 경우 눈물을 글썽이며 기뻐했다.

‘주군, 보고 계십니까? 그 도련님이 저렇게…. 크흑.’

강직한 노기사인 샌슨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것이 어떤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즉위식 이후에는 본격적인 논공행상이 있었다.

이번 전쟁에서 공을 세운 이들을 밀턴은 한 명씩 불러서 공을 내렸다.

제롬 테이커, 란돌 세비안, 릭 스토리, 토미 크로이, 트라이크 로우.

이들 전원이 이번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이들이었다.

밀턴은 이들 하나하나에게 직접 은상을 내렸다.

제롬 테이커에게는 후작위와 함께 독자적인 영지를 내렸다.

그리고 란돌 세비안 자작 역시 백작위를 내렸고, 역시 독자적인 영지를 내렸다.

릭 스토리, 토미 크로이, 트라이크 로우.

이 세 명에게는 자작위와 함께 5천 골드 상당의 금품을 내렸다.

그 외에도 밀턴이 없는 사이에 영지를 잘 다스린 맥스에게도 자작위를 내렸고, 동시에 대공가의 수석 행정관의 자리를 수여했다.

그리고 이 모든 행사를 끝냈을 때 밀턴에게 뜻밖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군주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정식으로 군주의 칭호를 손에 넣었습니다. 관리 영역이 영토에서 국가로 변합니다.]

실로 오랜만의 레벨 업이었다.

밀턴은 즉시 자신의 상태창부터 확인해 봤다.

[밀턴 포레스트 대공]

군주 LV.5

무력 - 89 통솔 - 90

지력 - 84 정치 - 77

충성 - 100

특성 - 군주의 위엄, 영웅의 후광, 전략

군주의 위엄 LV.3 :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군에게 강한 믿음을 주며 적에게는 두려움을 준다. 상벌을 내림에 따라 신하의 충성심을 크게 올릴 수 있다.

영웅의 후광 LV.2 : 민중에게서 강한 지지력과 존경심을 끌어낸다. 다소 무리한 정책을 진행해도 민심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전쟁터에서는 적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전략 LV.5 : 전쟁의 전체적인 판도를 읽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전에 비해서 크게 변한 건 없구나.’

일단 호칭이 후작에서 대공으로 변했다.

그리고 전반적인 능력치가 조금 올라가 있었고 특성의 레벨도 올랐다.

하지만 무력이 89에서 걸려 있는 건 여전히 아쉬웠다.

‘마스터가 목전인 것 같은 느낌은 드는데….’

지금 밀턴의 경지는 익스퍼트 최상급이다.

아주 얇은 벽 하나가 눈앞에 있는 느낌인데 그걸 넘을 수가 없었다.

경우에 따라서 이 벽을 평생 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고 하니 밀턴으로서는 속 터지는 일이었다.

제롬에게 상담을 해 보니 집착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힘들어지니 우선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 전쟁으로 지크프리트가 마스터라는 것이 밝혀진 상황에서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가능하면 다음 전쟁까지는 반드시 경지에 올라야 해. 어떻게 해서든….’

그렇게 결심한 밀턴은 이어서 영지의 상태창을 살폈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다.

별로 변하지 않은 능력치와 달리 자신의 영지의 관리 상태를 알리는 정보가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영토 - 레스터 왕국.

국가 특성 - 영토 확장, 해양 무역, 영웅의 시대.

인구 - 4,832,702명.

자금 - 14,335,008골드.

식량 자급률 - 122%

전략 물자 - 철광석, 함선, 준마, 석재.

상업 현황 - 생산력 A급, 유통망 B급, 물가 D급.

국제 무역 - 해양 무역 A급(80%), 육로 무역 C급(18%), 기타 밀무역 B급(2%)

민심 - C급(점령지 백성들의 저항감이 강함.)

군사력 - 기사 820인, 수습 기사 4,254인, 기병 25,000인, 보병 74,000인, 궁병 35,000인. 해병 9,000인.

‘엄청나게 변했잖아?’

밀턴은 적지 않게 놀랐다.

우선 영지가 영토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포레스트 영지가 밀턴의 지배하에 있는 영토였는데 이제는 레스터 왕국 전체가 밀턴의 영토로 인식되고 있었다.

사실 레스터 왕국의 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레이라 여왕이었다.

하지만 밀턴이 결혼을 하여 남편이 되었고 대공의 직위를 손에 넣음으로 인해서 밀턴 역시 왕국에 대한 권리를 손에 넣었다.

그 순간부터 밀턴이 가지고 있는 군주의 권능은 이 왕국 전체를 밀턴의 영토로 인식한 것이다.

‘국가 특성이라… 이건 지금 국가의 성향이라고 보면 되나?’

영토 확장, 해양 무역, 영웅의 시대.

확실히 지금 레스터 왕국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단어들이다.

그리고 쭉 정보를 확인한 밀턴은 식량 자급률이 122퍼센트라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좋았어.’

국가의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이것은 국가의 체력에 비유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였다.

사실, 레스터 왕국 자체가 국토가 제법 비옥한 편이었다.

거기다 이번에 편입된 구 스트라부스 왕국의 영토는 상당한 곡창 지대였다.

구 힐데스 공화국의 산악 지대가 식량 생산량이 형편없음에도 불구하고 식량 자급률이 100퍼센트를 넘은 것은 아마 그 땅 때문일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레이라의 한 수가 절묘했다는 거군.’

그 밑으로도 정보를 훑어본 결과 큰 문제점은 없었다.

아니, 딱 하나 문제점으로 드러나는 것은 민심이었다.

민심 - C급(점령지 백성들의 저항감이 강함.)

레스터 왕국에서 밀턴과 레이라 여왕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심이 C급이었다.

이게 뭘 뜻하는지는 뻔했다.

‘힐데스 공화국 출신의 국민들의 반감이 최악이라는 거겠지.’

원래 공화국 국민들은 왕국을 철저하게 싫어한다.

아니 혐오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분 제도 자체를 폭거라고 받아들이고 자신들은 거기에 맞서서 이 세상을 올바르게 이끄는 혁명가라고 생각하는 것이 공화국의 사상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공화국의 속사정을 따져보면 딱히 평등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자신들이 왕국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이 왕국에 정복을 당했으니 그 저항감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나중에 레이라와 대화를 좀 해봐야 겠군.’

그냥 내버려 두면 곪을 것이 분명한 상처를 발견했으니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턴. 밀턴!”

“아…. 레이라.”

“무슨 생각하는 거예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논공행상을 끝내고 연회를 즐기는 와중에 밀턴이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자 옆에 있는 레이라 여왕이 주의를 주었다.

“피곤해도 조금 참아요.”

“알았어요.”

그리고 밀턴은 두 신부와 함께 연회장의 자리를 지켰다.

“주군, 한잔하시지요. 좋은 날 아닙니까?”

“제 잔도 받아 주십시오.”

“오늘 같은 날 안 취하면 언제 취하겠습니까?”

밀턴의 가신들은 밀턴에게 술을 따라주며 반드시 새신랑을 만취시켜서 신부들을 불행하게 하겠다, 라는 이상한 의무감에 취해 있었다.

밀턴은 그들을 적당히 상대해 주면서 연회장의 분위기를 띄웠다.

‘복잡한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식이 다 끝났다.

밀턴을 만취시켜서 아무것도 못 하게 하겠다는 총각들의 사악한 음모는 유감스럽게도 실패했다.

밀턴은 비교적 멀쩡한 정신으로 연회장을 탈출할 수 있었다.

이제 신랑과 신부들의 개인적인 시간으로 넘어간 것이다.

“저기…. 그럼 저는 이만….”

우선 소피아가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사전에 레이라 여왕과 얘기를 해서 순서를 정해둔 것이다.

사실 정하고 말 것도 없이 서열대로 생각하면 레이라 여왕이 먼저인 게 당연했고 말이다.

“고마워요. 소피아.”

하지만 레이라 여왕은 소피아에게 굳이 감사의 말을 전했다

감수성이 꽤 메마른 그녀였지만 그래도 새신부가 첫날밤을 혼자 지내야 한다는 것에 관해서는 살짝 미안한 감이 있었다.

‘그렇다고 셋이서 그럴 수는 없고….’

레이라 여왕은 그렇게 생각하며 소피아를 보냈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으리라….

‘난 셋이라도 상관없는데?’

전생에 인터넷이라는 문화에 물든 자기 남편이 얼마나 괘씸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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