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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147화 (147/257)

제147화

아무리 그녀가 순진하다고 해도 그녀 역시 왕족의 여인.

지금 레이라 여왕이 해준 말은 잘 알고 있었다.

아니, 다 떠나서 멀리 갈 것도 없이 플로렌스 공국의 현 공왕만 해도 아내를 여럿 두고 있지 않은가?

정치적인 관계로 여러 가문의 여자를 궁에 들였고, 사실 공식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애인까지 합하면 왕의 여자는 더욱더 많았다.

밀턴은 아직 왕족이 아니지만 레이라 여왕과 결혼을 한다면 대공의 직위를 받고 왕족에 이름을 올린다고 알고 있다.

레이라 여왕은 여인으로서의 욕심을 위해 밀턴을 독점할 생각은 없는 여자였다.

그랬다면 애당초 소피아부터 원천적으로 차단했을 것이다.

오히려 그녀는 정치적으로 필요하면 밀턴이 열 명의 아내를 들인다고 해도 허락할 여인이다.

물론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여인이며 국익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조건이 갖춰져야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레이라 여왕에게 있어서 바이올렛 공주는 그 두 가지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인물이었다.

플로렌스 공국의 공주이면서 정작 플로렌스 공국에 큰 애착이 없는 왕실의 공주.

레이라 여왕은 그녀를 받아들임으로써 플로렌스 공국과 공식적인 연결고리를 만들 생각이었다.

이제까지 레스터 왕국과 플로렌스 공국은 국경을 마주하고서도 그다지 적극적인 교류를 하지 않았다.

둘 다 약소국이다 보니 주변국의 눈치를 봐야 했고, 또 플로렌스 공국은 상당히 폐쇄적인 나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소 닭 보듯이 지낼 상황이 아니다.

레스터 왕국이 이번에 크게 영토를 확장했지만 스트라부스 왕국을 집어삼킨 공화국의 세력도 무시할 수 없다.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나라 하나를 우호적으로 구워삶으면 군사와 예산을 얼마나 아낄 수 있을까?

레이라 여왕은 바이올렛 공주를 통해서 플로렌스 공국을 구워삶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도 알고 있는 것이다.

공화국과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그러니 다음 전쟁을 위해서 전력은 조금이라도 더 모아둬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밀턴과 바이올렛 공주의 국혼은 무척 유효한 수단이었고 말이다.

“생각 좀 해 봐요. 저는 당신이 가족이 되면 무척 좋을 것 같아요.”

“정말 그래도 되나요?”

레이라 여왕의 말에 바이올렛 공주는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예. 비록 서열상으로는 세 번째 부인이겠지만…. 아! 혹시 그게 싫다면 어쩔 수…?”

“아니요. 저는 괜찮아요.”

바이올렛 공주 역시 왕가의 여자였다.

남자가 처첩을 두고 같이 생활하는 것에 큰 거부감은 없다는 말이다.

“알았어요. 그럼 그렇게 진행시키도록 할게요.”

“고마워요. 레이라 여왕 전하.”

“앞으로 사석에서는 언니라고 부르도록 해요.”

“언니….”

레이라 여왕은 바이올렛 공주를 완벽하게 구워삶았다.

다정하게 그녀의 등을 쓸어주며 레이라 여왕은 생각했다.

‘남편 대신에 여자까지 꼬셔주다니? 혹시 나란 여자의 내조는 좀 지나친 걸까?’

그걸 말이라고 할까?

“바이올렛 공주를요?”

“예. 나쁘지 않죠? 착하고 예쁘고, 친가에서 박대를 받고 있어서 배경에 거리낌도 없고.”

장점만 늘어놓는 레이라 여왕의 말을 듣고 밀턴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너무 갑작스러워요.”

“뭘 새삼…. 그녀가 당신한테 마음 있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잖아요?”

“그랬어요?”

밀턴이 진심으로 몰랐다는 듯이 말하자 레이라 여왕은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그걸 몰랐나?’

레이라 여왕의 단점 중에 하나는 종종 주변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당신이 싫다면 거절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럴 이유가 있나요?”

“이유라면…. 없기는 하지만 당신은 괜찮겠어요?”

“뭐가요?”

“그러니까…. 제가 첩을 들여도 괜찮냐고 물어보는 거죠.”

밀턴의 말에 레이라 여왕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는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첩을 열 명을 들여도 괜찮고, 시녀들을 침대로 불러들여도 괜찮아요.”

“그렇게까지 막 놀 생각은 없는데….”

“다만, 두 가지만 지켜줘요.”

레이라 여왕은 진지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말해 보세요.”

“하나, 나한테 숨기지는 마요. 그리고 둘, 내가 반대하는 여자는 곁에 두지 마요.”

아마 레이라 여왕이 아내로서 남편인 밀턴에게 가하는 구속의 최대치가 이 두 가지일 것이다.

“그것만 지키면 된다고요?”

“예. 이것만 지키면 후궁에 대륙 각국의 여인들을 채워 놓는다고 해도 반대는 하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그렇게 막 놀 생각은 없다니까요.”

밀턴은 그렇게 푸념하며 레이라 여왕에게 말했다.

“좋아요. 그 두 가지는 반드시 지키죠.”

“좋아요. 그럼 바이올렛 공주와의 일은 진행시킬게요. 단, 그녀와의 결혼은 좀 나중으로 미뤄질 거예요.”

“어째서죠? 이번에 하는 김에 같이….”

“결혼을 ‘하는 김에?’ 우리 남편 죽을래요?”

“아니. 아닙니다.”

말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머리에 새기는 밀턴이었다.

“딱히 나는 상관없어요. 하지만 소피아를 생각해야죠.”

“소피아? 그녀를 왜?”

“나야 일국의 군주이니 상관없지만 소피아의 경우 그저 하급 귀족의 영애일 뿐이잖아요? 그런 그녀가 바이올렛 공주와 같은 시기에 결혼을 하면 서열이 어떻게 되겠어요?”

“아아….”

레이라 여왕의 말에 밀턴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이 탄성을 질렀다.

약소국인 플로렌스 공국의 공주라고 해도 왕족은 왕족이다.

같은 시기에 결혼을 하면 소피아의 서열은 자동적으로 바이올렛 공주의 아래로 내려가 버린다.

레이라 여왕은 요물이니 둘째친다고 해도 그렇게 하면 소피아에게는 꽤 못할 짓을 저지르는 기분이었다.

그런 밀턴의 마음을 아는지 레이라 여왕이 넌지시 말했다.

“돌아가면 잘해줘요.”

“알겠어요.”

***

중간에 약간의(?) 일처리가 있기는 했지만 밀턴은 순조롭게 자신의 영지로 돌아왔다.

그리고….

“포레스트 후작님 만세!!”

“레이라 여왕 전하 만세!!”

“레스터 왕국 만세!!”

열렬한 환송을 받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서 만세를 부르며 돌아온 군인들에게 꽃을 뿌렸다.

밀턴은 그런 사람들에게 이제는 익숙하게 손을 흔들어 주며 옆에 있는 레이라 여왕에게 말했다.

“개선식은 없는 것 아니었어요?”

일단 대외적으로 이 전쟁은 패전이었다.

비록 국토가 세 배 이상 넓어졌다고 하기는 하지만 패전이었기 때문에 개선식을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모두 거리로 나와서 열렬한 환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부 자발적으로 나온 이들이에요.”

“자발적으로요?”

“사람들도 바보는 아니라는 거죠. 이번 전쟁의 결과와는 별개로 우리는 얻은 게 많잖아요?”

“그건 그렇죠.”

“그러니, 논공행상에서도 눈치 볼 것 없어요. 공을 세운 이들은 아낌없이 밀어주도록 해요.”

레이라 여왕의 허락을 받은 밀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꺼이 그럴게요.”

안 그래도 이번 기회에 자신의 부하들에게 제대로 된 포상을 내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밀턴이었다.

“어서 오세요. 포레스트 후작님.”

“돌아오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주군.”

“무탈하신 것을 보니 마음이 놓입니다. 주군.”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성안으로 들어간 밀턴을 반기는 것은 소피아와 밀턴의 가신들이었다.

그리고 그 뒤편에는 밀턴이 기억도 못 하는 귀족들이 마치 미어캣처럼 이쪽을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들 내가 없는 동안 수고가 많았다.”

밀턴이 감사의 말을 하자 가신들은 허리를 크게 숙이며 감격했다.

“아닙니다.”

“주군이시야말로 전쟁터에서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거리는 멀었지만 주군의 활약은 영지민 모두가 전해 듣고 있었습니다.”

밀턴은 그들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아서 공로를 치하했다.

그리고 소피아의 차례가 왔을 때는….

“약속대로 돌아왔어.”

그녀를 다정하게 끌어안고 속삭였다.

그러자 소피아는 얼굴을 붉히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돌아오셔서 기뻐요.”

밀턴은 그런 그녀가 사랑스러워서 손등에 가벼운 키스를 해 주고 떨어졌다.

그리고 가신단 전원을 향해서 말했다.

“전쟁이 끝났다고 해도 한동안은 바쁠 것이다. 국토가 크게 늘어났고, 앞으로 할 일은 더욱더 많다. 하지만 모두들 잘 따라와 주기 바란다.”

“옛!”

밀턴의 대답에 가신들은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밀턴의 말대로 할 일은 정말 많았다.

‘뭐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내 결혼식이지만 말이야.’

***

결혼식.

보통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중요한 의식이다.

둘이 하나가 되어서 가족이 되는 행사이니 말이다.

하지만 직위에 따라서는 한 인간의 결혼식이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밀턴의 경우가 그랬다.

밀턴의 결혼식은 기본적으로 합동 결혼식으로 신부만 해도 두 명이었다.

또한 레이라 여왕과 결혼을 함으로 인해서 밀턴은 정식으로 대공의 자리에 오르는 즉위식도 겸하게 된다.

거기다 밀턴이 대공에 즉위하면 이번 전쟁에서 공을 세운 인물들에 대한 논공행상도 있을 예정이다.

사실 논공행상을 먼저 하려고 했지만 밀턴이 대공의 위에 오른 후에 진행하는 편이 부하들에게 더 많은 것을 해줄 수 있기 때문에 미뤄두었다.

레이라 여왕이 전쟁이 끝나면 바로 진행하도록 자잘한 것을 대부분 준비해 두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비교적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귀국하고 나서 한 달 무렵이 지났을 무렵.

봄바람이 꽃향기를 실어 나르는 따스한 계절에 밀턴은 수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하아…. 이거 떨리네.’

신관의 앞에 서서 신부의 입장을 기다리는 밀턴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전쟁터에서의 긴장감과는 종류가 전혀 다른 긴장감에 심장이 멈추지를 않았다.

그리고, 그런 밀턴의 긴장감은 신부들의 입장에 극에 달했다.

“오오오….”

“너무 아름다워요.”

“세상에…. 어쩜 저렇게 아름다울까요?”

신부들의 등장과 함께 하객들은 크게 술렁였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두 명의 신부.

그녀들은 마치 세상에서 자신들이 가장 아름답다는 듯이 화사한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레이라 여왕의 미모는 원래 유명했다.

그녀를 한 번 보기만 하면 남자들이 그녀를 잊지 못해 상사병으로 괴로워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평소에 검소한 복장을 즐기는 그녀였지만 한 번도 소박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미모는 뛰어났다.

그랬던 그녀가 오늘은 자신을 마음껏 꾸몄다.

머리 모양부터 장신구 하나까지 최대한 공을 들여서 화려하게 꾸며놓은 그녀는 한 걸음씩 움직일 때마다 사방에 빛을 뿌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소피아의 변신은 더 놀라웠다.

그녀는 귀여운 외모를 타고났지만 평소에는 자신을 거의 꾸미지 않았다.

항상 도면을 끼고 살았고 손끝에는 잉크를 묻혀두고 있었다.

머리는 방해되지 않게 뒤로 한 번 질끈 묶고 다니는 것이 다였다.

그랬던 그녀가 오늘은 제대로 된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서 변신을 한 것이다.

레이라 여왕이 환상의 여신 같다면 소피아는 봄의 요정 같았다.

흰색 드레스에 투명할 정도로 옅은 노란색 레이스를 덧붙인 그녀의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런 두 여인을 보고 이 식장의 남자들 전원이 같은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좋겠다. 밀턴 포레스트.’

‘어떻게 결혼을 해도 저런 여인들을 둘이나 동시에….’

‘전생에 나라를 구했…. 아, 그냥 이번 생에 구했구나.’

하지만 그렇게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몰랐다.

이 결혼식장의 귀빈석에 있는 한 여인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다음에는 나도 저렇게….’

바이올렛 공주는 두 신부를 보며 다른 의미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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