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게임-139화 (139/257)

제139화

“공화국의 형제들이여! 낙원의 주춧돌이 될 용사들이여!”

힐데스 공화국의 바하슈텐 총통이 직접 군사들의 앞에 나와서 큰 목소리로 병사들을 격려했다.

어지간히 중요한 전투가 아닌 이상 이런 일은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직접 병사들을 격려하는 게 좋겠다는 지크프리트의 간언을 받아들여 병사들 앞에 나섰다.

“이 전투에 우리 공화국의 미래가 걸려 있다. 싸우라! 투쟁하라! 공화국의 영광스런 미래가 그대들의 두 손에 달렸다.”

“와아아아아아!!”

“공화주의 만세!!”

“총통 각하 만세!!”

공화국에서 총통이라는 존재는 그 존재만으로 상당한 카리스마를 가지는 법이다.

병사들의 사기가 충분히 오르자 바하슈텐 총통의 바로 아래에 있던 지크프리트가 말했다.

“저 가증스런 왕성을 오늘 안에 떨어트린다! 전군!!”

지크프리트는 검을 뽑아서 목표를 가리키며 크게 외쳤다.

“진군하라!!”

그 목소리와 함께 5만의 정예 병력이 목표를 향해서 달려갔다.

“와아아아아아!!”

“돌격!!”

그들이 목표로 하는 것.

그것은 스트라부스 왕국의 수도 템플리체의 외성벽이었다.

처음부터 지크프리트가 이끄는 5만의 군세가 목표로 했던 것은 바로 여기였던 것이다.

힐데스 공화국이 툭 떨어져 나와서 서부 지역으로 진군을 할 때 전쟁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전략가들은 생각했다.

이것은 본토를 침략하고 있는 레스터 왕국을 억제하기 위한 역공이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이들은 모두 지크프리트의 속셈에 놀아난 것이다.

서부 쪽으로 군을 진군시킨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눈속임.

그렇게 함으로써 스트라부스 왕국은 공화국의 전력이 레스터 왕국 쪽으로 향했다고 생각하며 방심했다.

하지만 서부 지역을 빠르게 가로지르는 적의 진군 속도를 봤을 때 그들은 알았어야 했다.

서부 지역을 그 속도로 가로지를 수 있는 돌파력이 수도를 노릴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실제 지크프리트는 어느 정도 서부 지역을 이동하다가 중간에 방향을 바꿔서 남쪽으로 진로를 틀었다.

목표는 스트라부스 왕국의 수도 템플리체.

이 작전을 실행하기 전에 지크프리트는 바하슈텐 총통에게 말했다.

[이번 전쟁에서 스트라부스 왕국을 멸망시켜야 합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 보이겠습니다.]

라고 말이다.

이 전쟁의 당초 목적은 원래 스트라부스 왕국이었다.

지크프리트는 속임수를 곁들였지만 최후의 최후까지 오로지 처음의 목적에만 충실하며 전쟁을 수행한 것이다.

템플리체의 수비 병력은 공화국군의 군세가 지척에 도달하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막아라! 수도의 시민들에게 징집령을 내려서 시민군을 동원하라. 무기를 들 수 있다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전원을 징집해야 한다.”

바우첸 국왕은 비상사태에 왕명을 내려서 수비에 총력을 기울이라고 명했다.

적의 군사가 수도를 공격하다니?

스트라부스 왕국의 역사상 이런 위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직 절망하기는 일렀다.

스트라부스 왕국은 군사 강국이다.

다른 나라의 수도는 국가의 인프라를 우선해서 교통과 내부의 확장에 우선을 했지만 이 스트라부스 왕국은 다르다.

수도인 템플리체의 외성벽은 높이가 20미터에 두께가 5미터가 넘었고 성문은 도개교는 아니었지만 3중으로 되어 있는 견고한 것이었다.

군사적인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킨 성벽이다.

그리고 이 성벽을 지킬 수 있는 수도 방위군 1만이 함께 있었고 시민들의 징집까지 더해지면 아무리 못해도 5만의 병력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결코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며칠만 버티면 놈들이 역으로 후회하게 될 것이야.”

바우첸 국왕은 수도 인근의 영지에 즉시 전서구를 날렸다.

군사를 일으켜서 수도를 공격하고 있는 공화국군의 뒤를 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적이 갑자기 수도에 나타났다는 것은 주변 영지를 다 무시하고 진격했다는 말.

즉, 수도 주변의 영지들이 병력을 모아서 역습을 가하면 오히려 승기는 이쪽에 있었다.

‘수도 주변의 영지들이 병력을 모아서 도착하기까지는 빠르면 사흘, 길어야 일주일이면 된다. 그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다.’

국난을 극복할 수 있어야 진정한 군주인 법.

공화국 따위를 넘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 전쟁이 끝난 후에 제국을 도모하겠는가?

계산을 마친 바우첸 국왕은 스스로를 고무시켰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일주일? 사흘?

지크프리트는 수도 공략에 그렇게 긴 시간을 들일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확실히 튼튼한 성벽이군.”

원론적으로 봤을 때 공성전이라는 것은 결국 성의 방어력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방법은 크게 나눠서 세 가지다.

성벽을 넘는다.

성문을 연다.

성벽을 파괴한다.

그리고 지크프리트가 이 순간 사용하려고 하는 것은 세 번째 방법이었다.

“9조, 10조.”

“예. 부르셨습니까?”

“작전을 진행한다. 내용은 알고 있겠지?”

“예. 물론입니다.”

지크프리트의 명령을 받고 고스트 2개 조가 움직였다.

“간다! 공성계 3번 작전이다.”

“옛! 알겠습니다.”

그리고 움직이기 시작한 9조와 10조의 모습은 다른 고스트들과는 좀 달랐다.

이제까지의 고스트들은 날렵한 움직임을 위해서 장비를 최소화하고 움직였다.

가벼운 경갑에 주 무장은 롱소드와 라운드 쉴드. 그리고 유일한 보조 무장은 단검 한 자루.

하지만 9조와 10조는 달랐다.

갑옷의 두께가 보통의 플레이트 메일보다 훨씬 더 두껍고 무거워 보였다.

장비하고 있는 검은 날렵한 롱소드가 아니라 짧고 굵은 글라디우스였고 방패 역시 둥근 라운드 실드가 아니라 두껍고 넓은 카이트 실드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이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대원들 역시 커다란 신장에 넓은 어깨를 가지고 있는 거한들이었다.

기사라기보다는 중장보병에 가까운 모습이었고, 이들이 움직이면 마치 벽이 움직이는 것 같은 묵직한 중량감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서 성벽으로 진군했다.

특이한 것은 뒤편에 천을 뒤집어씌운 수레를 끌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 광경은 눈에 띄었고 즉시 화살이 쏟아졌다.

“쏴라!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지만 성벽에 접근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 게 좋다고 판단한 지휘관은 화살을 집중시켰다.

즉시, 성벽 위에서 화살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하지만 전신을 빈틈없이 중무장한 고스트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전진했다.

팅! 팅팅팅!

두꺼운 방패를 겹쳐서 비스듬하게 들어 올린 고스트들은 마치 빗속을 행군하는 것처럼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성벽의 아래에 접근하자 그들은 수레에서 커다란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길이가 1미터가 넘을 듯한 거대한 말뚝이었다.

“말뚝? 저걸로 뭘 어쩌겠다는 거지?”

지휘관은 영문을 몰랐다.

하지만 그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쾅!

고스트 대원들은 말뚝을 가로로 걸치더니 그대로 성벽에 박아 넣기 시작한 것이다.

두 명이 성벽에 말뚝을 대고 한 명은 해머를 들어서 말뚝의 머리 부분을 힘차게 쳤다.

“큭…. 설마 저걸로 성벽을 부수겠다는 건가?”

지휘관은 이를 악물었다.

성벽에 말뚝 몇 개가 박힌다고 해서 성벽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애당초 성벽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게 만들어져 있다.

적들도 그것은 알고 있을 터이다.

‘아니면 저걸로 발판을 만들어서? 아니야. 저걸로 하나하나 박아서 어느 세월에?’

지휘관은 도무지 적의 속셈이 짐작이 가지 않았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뭐 하느냐? 놈들이 멋대로 하게 내버려 두지 마라! 화살을 쏘고 바위를 떨어트려라!”

적이 뭘 하든 간에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고스트 9조와 10조에게 화살과 바위 등이 계속해서 떨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방패를 위로 들어서 성벽 위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굳건하게 막아냈다.

특히 작업 중인 동료를 최우선적으로 지키면서 그들은 성벽에 하나하나 말뚝을 박아갔다.

그렇게 박은 말뚝이 무려 열 개.

대략 1미터 간격으로 열 개의 말뚝을 모두 박는 데 걸린 시간은 한 시간 정도였다.

그리고 거기까지 작업을 마친 고스트 9조와 10조는 그대로 뒤로 물러났다.

“와아! 꼴좋다. 이 새끼들아!”

“그걸로 성벽이 무너지겠냐!?”

“공화국 새끼들은 다 돌대가리냐? 이 병신들아!”

성벽 위에서는 일반 병사들의 조롱이 쏟아졌다.

그리고 지휘관들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뭘 하려고 했던 거나?”

뭔가 거창한 걸 하는 듯했지만 결국은 아무런 소득 없이 물러나는 적을 보며 긴장한 자신이 더 우스웠다.

하지만, 그들 중에 한 명이 이상한 것을 발견한다.

“음! 저놈들 왜 진형을 바꾸지?”

“이상한데? 마치 돌입 준비를 하는 것처럼 열을 정돈하고 있어?”

아직까지도 적의 의도는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한편 작업을 마치고 본진으로 귀환한 고스트 9조의 조장이 지크프리트에게 보고했다.

“주군, 작전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수고했다. 그럼….”

지크프리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성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비장의 수를 너무 일찍 공개하는 느낌도 들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지크프리트는 자신의 뒤편에 있는 누군가를 불렀다.

“엘리자.”

“제 차례인가요?”

지크프리트의 부름에 응답한 것은 로브로 몸을 감싸고 있는 한 명의 여인이었다.

엘리자라고 불린 그 여인이 로브를 벗은 순간 주변에 인물들은 깜짝 놀랐다.

여자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드러난 외모가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남자라면 누구나 매혹될 수밖에 없는 섹시함을 물씬 풍기고 있는 얼굴은 화장이 다소 진하지만 그 진한 화장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느껴졌다.

오히려 그녀의 분위기를 더 성숙하게 만드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만약 밀턴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크게 놀랐을 것이다.

엘리자라고 불린 여성의 외모가 비앙카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크프리트에게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짜 해도 되는 거죠?”

“계속 감추고 있는 것보다는 필요할 때 써먹는 게 낫다.”

지크프리트의 말에 엘리자라는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았어요. 그렇다면….”

그녀는 성벽에 꽂혀 있는 말뚝을 향해서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는….

“라지!”

시동어를 외친 순간 성벽에 박혀 있던 말뚝이 갑자기 몇 배로 커지더니 거대한 통나무가 되었다.

그 결과….

“엇? 어엇?”

“크윽…. 이건…?”

“으… 으아악! 무너진….”

쿠쿠쿵!

두껍고 견고했던 템플리체의 외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지크프리트의 명령이 떨어졌다.

“돌입하라!”

“와아아아아!”

“돌격!!”

미리 돌입 준비를 하고 있던 공화국군은 무너진 성벽 사이로 빠르게 돌입했다.

설마 이런 방식으로 성벽이 무너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지휘관들은 공황 상태에 빠져 제대로 된 지휘를 하지도 못했다.

결국 성벽을 파고들어 간 지크프리트와 공화국군은 빠르게 템플리체를 함락시켰다.

단 하루.

사실상 반나절도 걸리지 않아서 수도를 함락시켜 버린 것이다.

단 하루 만에 스트라부스 왕국의 수도를 함락했다.

거기다 빠르게 왕성을 공격해서 바우첸 국왕을 비롯한 왕족 전원을 사로잡기까지 했다.

이 경이적인 성과를 가장 기뻐하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

“하하하하! 과연 지크프리트. 훌륭하다. 과연 공화국의 보물이다.”

정답은 바하슈텐 총통이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크프리트를 크게 질책했던 그였지만 지금은 태도가 180도 변했다.

드디어 스트라부스 왕국의 수도에 입성했다.

다른 두 명의 총통보다 자신이 우선적으로 말이다.

그는 스트라부스 왕국의 왕좌에 앉아서 몹시 만족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제 이 전쟁에서 우리 힐데스 공화국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겠군.”

만족스런 미소를 머금은 바하슈텐 총통을 보고 지크프리트가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총통 각하.”

“후후…. 자네의 공이 실로 컸네. 이제 우리 본국을 침략하고 있는 레스터 왕국의 문제만 해결하면 되겠군.”

“예. 그렇습니다.”

“다름 아닌 자네이니 묘안이 있겠지. 말해보게.”

“묘안까지는 아니지만 방법이 있습니다.”

“호오….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는 지크프리트를 보며 바하슈텐 총통은 대답을 기다렸다.

“우선, 가장 먼저 파악해야 할 것은 본국의 상황입니다.”

“말해 보게.”

“지금 본국은 페일런 공작이 수도를 함락하고 국토의 3분의 2 이상을 함락시켰다고 합니다.”

“뭐라고? 수도가 함락 당해?”

깜짝 놀란 표정을 하는 바하슈텐 총통에게 지크프리트가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수도가 함락 당한 것은 언제인가?”

“사흘 전입니다.”

“사흘 전? 그런데 나에게는 왜 아무런 보고가 올라오지 않았는가?”

“내가 사전에 차단했기 때문입니다.”

“뭐…. 뭐라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