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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135화 (135/257)

제135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후 밀턴에게 트라이크가 돌아왔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하나씩 들고 말이다.

좋은 소식은 지크프리트가 작전대로 유인책에 낚인 것이 확실하다는 것과 세비안 자작의 말대로 한 방 먹이긴 했다는 것.

그리고 나쁜 소식은….

“뭐라고? 지금 다시 한번 말해 보시오.”

세비안 자작이 인상을 쓰고 하는 말에 트라이크는 했던 말을 다시 했다.

“지크프리트는 마스터입니다. 틀림없습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세비안 자작은 살짝 패닉에 빠졌다.

세비안 자작에게 지크프리트는 대단한 수준의 명전략가였다.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는 세비안 자작이었지만 지크프리트의 지략은 그런 자신에게 조금도 뒤처지지 않는다.

어쩌면 한 줄 더 위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고?

어떻게 한 명의 인간에게 그런 능력이 주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정말 확실한 거요?”

“제가 작정하고 쏘아낸 오러 애로우를 정면에서 쳐냈습니다.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기에 낙마를 했지만 만약 처음부터 알았다면….”

자존심 때문에 말을 아끼는 트라이크였지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모두 알았다.

“한 발로 안 되면 더 시도해 볼 수도 있지 않았소?”

만약 지크프리트가 마스터라면 거기서 목숨을 거두지 못한 것이 더욱더 아쉬웠다.

하지만 세비안 자작의 미련이 남는 말에 트라이크 대신 밀턴이 변호를 해 주었다.

“트라이크의 오러 애로우는 위력은 강력하지만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횟수가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그리고 기습에 가까웠던 첫 발이 실패했다면 두 발째부터는 더 능숙하게 피하거나 막았겠지. 망설이지 않고 후퇴한 것은 옳은 결정이야.”

밀턴이 이렇게 말을 해주자 세비안 자작도 트라이크에게 뭐라고 더 말하지는 못했다.

애당초 질책을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다만 거의 확실하다고 기대를 걸었던 트라이크의 화살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에 미련이 남았을 뿐.

그리고 무엇보다 지크프리트가 마스터라면….

‘위험해. 주군의 말씀이 맞았어. 지크프리트 이놈 터무니없이 위험한 놈이다.’

그동안 지크프리트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집한 밀턴이었지만 그가 마스터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만큼 철저하게 숨겨온 것이다.

적에게는 물론이고 아군에게까지 말이다.

지크프리트가 마스터라면 이미 그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국면은 몇 번이고 있었다.

그런데 아군에게 자신의 경지를 숨기면서까지 이 남자는 무엇을 바랐던 것일까?

오늘따라 그걸 머리로 알아챈 자신이 굉장히 싫은 세비안 자작이었다.

“주군은 진작 알고 있었습니까?”

세비안 자작의 말은 앞뒤가 없었지만 밀턴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감이 오기는 했지. 아, 이놈은 야망가구나. 공화주의니 뭐니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이놈 자체가 이 시대에 활개를 치기 위해서 태어난 골 때리는 놈이구나 하고 말이야.”

밀턴의 말에 세비안 자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말해도 안 믿을 테니까. 내 주장을 설득할 근거가 빈약했거든.”

“그건…. 그….”

뭐라 할 말이 없는 세비안 자작이었다.

실제 리트인크 성에서의 패전이 있기 전에는 지크프리트의 존재를 과소평가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오산이었다.

이제는 알았다.

왜 주군인 밀턴이 지크프리트를 그렇게 경계했는지 말이다.

지크프리트는 공화국이라는 풀숲 속에 도사리고 있는 맹수였다.

몸통은 보이지 않고 눈만 희번덕거리고 있어서 도대체 무슨 짐승인지 모를 그런 맹수 말이다.

그래서 세비안 자작도 기껏해야 늑대 정도인 줄 알았었다.

그런데 오늘 그 정체의 편린을 확인한 것 같았다.

이놈은 늑대 따위가 아니다.

자기 몸이 커질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릴 줄 아는 교활함을 갖춘 거대 맹수였던 것이다.

짝!

사고방식이 점점 안 좋은 쪽으로 향하는 세비안 자작을 진정시킨 것은 밀턴이었다.

밀턴은 손뼉을 쳐서 좌중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킨 후에 말했다.

“좋게 생각하자. 일단 적이 숨기고 있던 정보를 알아냈다. 이것 자체만 해도 트라이크의 공은 크다. 수고 많았다. 트라이크.”

“감사합니다. 주군. 하지만 저는 실패했는데….”

받은 임무는 지크프리트를 죽이는 것이었다.

그것 자체가 실패했는데도 칭찬을 해 주니 트라이크는 면목이 없었다.

“아니, 중요한 순간에 퇴각을 결정한 판단은 옳은 것이었다. 덕분에 지크프리트 놈이 숨기고 있던 정보를 알게 되었다.”

확실히 그런 의미에서 트라이크의 공은 크다.

밀턴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검을 뽑고 트라이크에게 말했다.

“트라이크 로우. 무릎을 꿇어라.”

그러자 트라이크가 무릎을 꿇었고 밀턴은 그런 트라이크의 양어깨를 가볍게 검을 두드리며 말했다.

“트라이크 로우에게 남작의 작위를 내리며 포상금으로 디스트로이종 준마 열 마리와 500골드의 포상금을 내린다.”

“감사합니다.”

밀턴은 트라이크에게 큰 상을 내렸다.

원래 기사 작위 자체가 준귀족이었지만 남작의 작위 자체를 내리는 것은 큰 상이었다.

밀턴이 후작이 되면서 하위 귀족에게 자작까지는 작위를 내릴 수 있게 되었지만 그 권리를 함부로 행사하지는 않았다.

귀족을 임명한다는 것은 그 귀족에게 봉토를 하사해야 한다는 의무까지 같이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밀턴이 스스로 작위를 내린 것은 딱 한 명.

제롬 테이커가 유일했다.

밀턴이 자작위를 내렸고 영지의 일부분을 떼어내서 봉토로 하사했다.

마스터에게 자작위라는 것은 너무 초라한 감이 있었지만 지금 밀턴이 내릴 수 있는 최대한의 작위였다.

그리고 제롬은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원래 후작가의 후계자였던 제롬이었지만 자신이 선택한 주군에게 받은 작위는 그 의미가 각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처음으로 작위를 하사한 것이 트라이크인 것이다.

“봉토는 돌아갔을 때 정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주군.”

트라이크는 상당히 감격했는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원래 용병 출신이었던 만큼 정식으로 작위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크게 다가온 모양이다.

“축하 합니다. 로우 경.”

“아니 이제 로우 남작님이라고 해야 하나?”

“하하하…. 이거 나중에 돌아가면 한턱 단단히 내야겠습니다.”

다른 기사들이 다가와서 트라이크를 축하했고 밀턴은 그 광경을 보고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의도대로 잘된 것 같아.’

전쟁 도중인데 이렇게 상을 내리는 것은 트라이크가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군의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서이기도 한다.

지크프리트가 마스터라는 정보를 알게 되자 세비안 자작을 비롯한 다른 아군들도 꽤 강한 부담을 느끼는 듯했다.

지휘부의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그 영향은 바로 병사들에게 전염되는 법이다.

그러니 화제를 좋은 쪽으로 돌리기 위해 일부러 모두가 보는 앞에서 트라이크에게 상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밀턴의 생각이 맞아떨어져 다른 기사들은 트라이크를 축하했고 분위기는 조금 화기애애하게 변했다.

그렇게 누그러진 분위기 속에서 밀턴이 세비안 자작을 불렀다.

“세비안.”

“예. 주군.”

“앞으로의 계획에 변동은?”

밀턴의 말에 세비안 자작은 조금 생각하다가 말했다.

“지크프리트가 마스터라고 해도 변경은 없습니다.”

“역시 그런가?”

“예. 우리한테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으니 우선은 전선의 상태를 유지하며….”

“급보입니다.”

그때 회의 중인 막사 안으로 전령이 다급하게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토미 크로이 경에게서 전서구가 날아왔습니다.”

전령의 말에 밀턴과 세비안 자작은 동시에 눈을 반짝였다.

“내용은?”

밀턴의 말에 전령이 짧게 내용을 읽었다.

“성공했다, 입니다.”

“좋았어!!”

밀턴은 주먹을 불끈 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세비안 자작 역시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주군, 이건…. 이건 정말로….”

“자네가 입안한 계획이었잖나?”

“예. 그렇지만 설마 이게 가능했을 줄은….”

말을 하던 세비안 자작은 전략 지도를 펴고 말했다.

“주군, 반격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번에도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겠나?”

밀턴의 물음에 세비안 자작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정도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전쟁에 끝장을 내 보겠습니다.”

세비안 자작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힐데스 공화국의 북부 수비대.

군사 훈련이 험하기로 소문난 힐데스 공화국 안에서 이 북부 수비대는 이렇게 불린다.

공화국 최고의 꿀 보직.

혹은 좌천의 종착역.

병사들에게 있어서는 꿀 보직이고 지휘관들에게 있어서는 좌천의 종착지가 바로 북부 수비대다.

왜 그러느냐?

힐데스 공화국의 북부에는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수비대를 배치하기는 했지만 힐데스 공화국의 건국 이후로 북부 수비대가 전투를 했다는 기록은 한 번도 없다.

굳이 따지자면….

백곰이 마을로 내려와서 주민들을 공격했기에 출동해서 격퇴했다.

이 정도가 유일한 활약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만큼 전투가 없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은 인간과 인간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극한의 추위로 인해서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아닌 곳에 수비대를 배치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실제 힐데스 공화국 내부에서는 북부 수비대 자체를 없애자는 안건이 몇 번인가 올라왔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없애지는 말자는 결론이 나왔다.

왜냐하면 북부 수비대는 다른 의미로 꽤 요긴했기 때문이다.

자기 눈에서 벗어난 지휘관들을 출셋길에서 영영 아웃시켜 버리기 위해 좌천을 보내야 한다면 여기보다 더 유용한 곳은 없었다.

즉, 북부 수비대는 공화국 권력자들이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을 합법적으로 갖다 버리는 쓰레기통인 것이다.

물론 대외적인 존재 이유는 따로 있었다.

[우리 힐데스 공화국의 위대하신 초대 총통 리어슨 님께서 말씀하셨다. 혹시 적이 우회해서 북부를 통해 공화국의 수도를 공격할지 모른다. 그러니 공화국의 북부에도 수비 병력을 배치하라, 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우리는 이런 초대 총통 각하의 뜻을 받들어 어쩌고저쩌고….]

같은 명분이었다.

물론 공화국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이게 실질적인 개소리라는 것을 말이다.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 저 극한의 추위를 뚫고 오겠는가?

북부 출신의 사람들도 눈보라가 거친 날이면 방향 감각을 잃고 조난당하는 곳이다.

그런 북부를 통해서 군을 움직인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놈이었다.

그런데 그 미친놈이 나타나서 실제 미친 짓을 해 버렸다.

“어? 저게 뭐지?”

“뭐가 오는데?”

“바다사자 무리 아니야? 아니면 펭귄이라던가?”

“아니야. 저건…. 군대?”

“뭐라고? 미친놈아, 여기 군대가 왜 있어?”

“그렇지? 그럼 저게 뭘까?”

“어디 보자…. 군대 같기는 한데…. 그런데 군대일 리는 없고…. 뭐지 저게?”

평화에 찌든 군인이라는 것이 얼마나 나태해질 수 있느냐의 좋은 본보기가 여기에 있었다.

몸을 데우기 위해서 독한 술을 마시며 경계를 서고 있던 북부 수비대는 적이 자신들의 지척에 올 때까지도 ‘저게 뭘까?’ 같은 탐구 생활 놀이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의 무경계 상태로 지척까지 도착한 순간 토미가 크게 명령했다.

“공격하라!!”

“와아아아!!”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경비병들은 경계경보를 울리려고 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릭과 토미가 이끄는 병력은 그대로 수비병을 처리하고 북부 수비대의 요새를 점거하기 위해서 쳐들어갔다.

오랜 시간 혹한의 대지를 행군한 것치고는 병사들의 사기는 무척 높았다.

“씨발! 적이다! 적!!”

“와아아!! 반갑다!! 적이라도 좋으니 인간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다 죽었다. 이 반가운 새끼들아!!”

“으어어엉!! 적이야. 드디어 적을 찾았어.”

“어머니! 드디어 적을 찾았어요!”

사실 사기가 높다기보다는 뭔가 정신적으로 좀 망가져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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