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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134화 (134/257)

제134화

질문을 하는 트라이크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절박함이 드러났다.

그리고 비앙카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비결은 바로 이 드라이어드에 있데이.”

“이 나무에 말입니까?”

“그래 경지에 이른 엘프는 모두 다 이걸로 활을 만들어서 쓴데이.”

“이걸로 활을 만들면 화살에도 오러를 실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트라이크의 말에 비앙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마도 될 기다.”

“아마도는 또 뭡니까? 되는지 안 되는지 확실하게 좀…. 윽!”

딱!

다시 한번 비앙카의 완드가 트라이크의 머리를 가격했다.

그리고 비앙카는 혀를 차며 말했다.

“엘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나무하고 얘기를 하는 능력이 있데이. 그래서 드라이어드를 사용하면서도 대화를 한데이. ‘내 생명력을 줄 테니까 협조 좀 하그래이.’ 하는 식으로 달래가며 쓴다 안카나.”

“그렇다면 그런 능력이 없는 저는 못 쓰는 겁니까?”

“아니지. 이건 기본적으로 생명력은 다 빨아들인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안 가린다. 다만, 엘프들이 하는 것처럼 협조를 안 하지. 아마 니를 먹잇감 취급하면서 골수까지 쪽쪽 빨아먹으려고 할 기다.”

엄청나게 살벌한 얘기를 태연하게 하는 비앙카였다.

“그럼 죽는 것 아닙니까?”

“안 죽게 니도 싸워야지?”

“예. 어떻게 말입니까?”

질문하는 트라이크에게 비앙카가 한심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니 몸속에 기운은 있다며?”

“그렇다고 하더군요.”

“원래 드라이어드는 보통 사람의 생명력보다는 익스퍼트나 마스터 같은 인간들의 기운을 더 좋아한데이. 그러니 생명력 이전에 그걸 먼저 빨아들일기다. 그리고 니는….”

그제야 트라이크도 이해가 갔다.

“그걸 가지고 버티며 싸우라는 말입니까?”

“그렇데이. 음…. 뭐랄까? 최근에 밀턴이 말을 새로 얻은 것 알제?”

“그 레너드라는 거대한 흑마 말하는 겁니까?”

“그래. 밀턴이 처음에 가 길들인다고 무진장 애먹었데이. 니도 비슷하다고 생각하그라. 야도 살아 있는 생물인데 잘 길들여서 니 말을 듣게 만들면 된다 아이가.”

“…비앙카님.”

“와? 아직도 궁금한 것 있나?”

“아까부터 할까 말까 망설였지만 역시 해야 될 말이 있습니다.”

“뭐꼬? 뜸 들이지 말고 퍼뜩 말해라.”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못 알아들은 말이 많아요. 표준어로 처음부터 다시…. 윽!”

따악!

매를 버는 데 재능이 있는 트라이크였다.

어쨌든, 비앙카가 내민 드라이어드 원목은 트라이크에게 있어서 귀중한 기회였다.

어차피 다른 길도 없었고, 거부할 이유는 더욱더 없었다.

트라이크는 바로 드라이어드의 원목으로 활을 만들고 수련에 들어갔다.

그리고….

“헉…. 헉…. 헉….”

바로 수련 첫날에 뻗어 버렸다.

한번 생명력을 빨아먹기 시작한 드라이어드는 엄청난 속도로 기운을 빨아들였다.

트라이크는 이제까지 몸 안에 기운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무의식중에 신체 능력의 향상에만 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운 자체는 상당한 양이었는지 드라이어드는 마음에 쏙 든다는 것처럼 엄청나게 빨아 들였다.

트라이크는 급하게 활을 놨지만 불과 몇 초도 되지 않아서 숨을 헐떡였다.

‘이게…. 이게 오러를 쓴다는 건가? 주군이나 테이커 경은 늘 이런 식으로 기운을 소모한다고?’

엄밀히 말하면 조금 다르다.

익숙하게 자기 의지로 기운을 소모하는 검사들과 달리 트라이크의 경우 말 그대로 기운을 빨아먹히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난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탈력감과 무력감에 트라이크는 주저앉을 뻔했다.

그런 트라이크의 모습을 보고 옆에 있던 비앙카가 말했다.

“뭐꼬? 한 번 해보고 포기가?”

“큭…. 이거… 정말 사용 가능한 겁니까?”

“엘프들은 쓴다 카더라.”

“미친….”

트라이크는 욕지기를 뱉었다.

자기 몸 안에 기운이 빨려 들어가는 그 느낌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전쟁터에서 구르며 별의 별꼴을 다 겪은 트라이크였지만 솔직히 그 순간은 생소한 공포를 느꼈다.

‘저걸 다시 잡아야 하나?’

망설이는 트라이크를 보고 비앙카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어쩔 수 없지. 만약 니가 저걸 잘 다루게 되면….”

비앙카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상으로 데이트 함 해줄게.”

그 순간 트라이크의 몸이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크흠, 남자가 한 번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죠.”

“당연하제. 사나이 의지 아이가?”

“맞습니다. 포기란 결코 없죠.”

“그래. 파이팅 하그래이?”

“옛!”

공포심에 사그라들었던 투지가 다시 한번 활활 타오르는 트라이크였다.

트라이크는 다시 활을 잡고 끙끙 앓으며 씨름하기 시작했다.

역시 인간은 보상이 있으면 의욕이 남달라지나 보다.

한편 처음부터 끝까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밀턴이 비앙카에게 말했다.

“사람 잘 다루시네요.”

“응? 보고 있었나?”

“예. 그래서 가능성은 있어 보입니까?”

트라이크의 능력이 한 단계 더 발전하느냐? 마느냐?

이것은 밀턴에게도 큰 관심사였다.

“해봐야 알겠지. 내가 보기에는 반반이데이.”

“그렇습니까?”

“뭐니 뭐니 해도 전례가 없다 아이가? 활로 저 경지에 이른 인간도 드물기고, 그런 놈이 드라이어드 원목으로 만든 활을 손에 넣는 건 더 드물겠지. 결국 최대한 다각도적인 측면에서 여러 가지 접근을 해 봐야 답이 나올기다.”

비앙카의 말에 밀턴은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유난히 협조적이네? 왜 이러지?’

이 정도면 협조적인 걸 넘어서 거의 주도적이라고 봐야 했다.

그때 문득 밀턴의 눈에 보이는 것이 있었다.

“비앙카 님.”

“와 그라노?”

“전에 인간을 가지고 실험을 하는 것은 금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밀턴의 말에 비앙카는 팩 토라진 표정을 하고 말했다.

“이건 실험 아니데이. 그냥 자 하는 게 불쌍해 가지고 조금 도움의 손길을 주는 것 뿐이데이.”

“그럼 그 옆에 노트는 뭡니까?”

- 드라이어드 원목과 인간 궁수의 상성 실험.

노트의 제목을 들킨 비앙카는 슬쩍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크흠…. 이건 어디까지나 학술적인 목적으로….”

‘그럼 그렇지.’

왜 유난히도 협조적인가 했다.

그녀의 말대로 이건 굉장히 드문 케이스이다.

마법사로서 지식의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욕심이 생길 정도로 말이다.

‘뭐 결과적으로 트라이크가 발전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럼 정말로 성과를 보이면 데이트할 겁니까?”

“응? 뭐…. 나쁠 것 없지 않겠나? 나도 연애 안 한 지 수십 년이 넘었는데. 오랜만에 한번 귀여워 해주지 뭐.”

“그렇군요. 그렇다면…. 응?”

순간 밀턴은 흘려들을 수 없는 단어를 들은 기분이 들었다.

‘수십 년?’

밀턴은 비앙카를 바라봤다.

겉으로 20대 중후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다.

품이 넓은 로브를 입고 있어도 도드라진 몸매가 드러날 정도로 굉장히 섹시한 매력의 여인이다.

그런데….

“저기 비앙카 님?”

“자꾸 와? 방해할 거면 니 가라!”

“아니 다른 게 아니고…. 혹시 연세가 어찌 되시는지.”

“한창 물 오른 25세.”

“조금 전에는….”

“그냥 닥칠래? 아니면 디질래?”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상에는 종종 알지 말아야 하는 일이 있다.

밀턴은 트라이크가 부디 이 사실을 모르기를 바랐다.

시간을 돌려서 지금.

트라이크는 드라이어드 원목으로 만든 활을 들고 자신에게 달려오는 지크프리트를 겨누고 있다.

그리고 트라이크의 손에 들려 있는 활은 몸 안의 기운을 계속해서 빨아들였고, 그 기운은 화살에 선명한 오러를 맺어 갔다.

“저건 뭐….”

지크프리트는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고 급하게 말을 멈췄다.

하지만….

“늦어.”

트라이크의 짧은 한마디와 함께 화살이 날아올랐다.

투콰아앙!

그건 활을 쏜다기보다는 뭔가 굵직한 것을 발사하는 것에 가까운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소리가 울리는 것보다 빠르게 한 줄기의 빛살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보통의 활처럼 완만한 곡선의 궤도를 그리는 활이 말 그대로 일직선이었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저 점 하나가 확대된다고밖에 느껴지지 않으리라.

‘잡았다.’

트라이크는 화살이 지크프리트에 닿기 직전에 확신했다.

이건 절대 피할 수 없었다.

‘위험!’

위협을 느낀 지크프리트는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위험을 감지한 그 순간 검에 전력을 실어서 휘두른 것이다.

“합!”

콰아아앙!!

엄청난 충격음이 터져 나왔다.

지크프리트는 순간 손목이 부러지는 것 같은 묵직한 손맛을 느꼈다.

절대 활을 쳐냈을 때 느껴지는 손맛이 아니었다.

이건 마치 거대한 바위를 검으로 두드리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크윽….”

결국 공격을 완전히 쳐내지 못한 지크프리트는 충격에 밀렸고 그대로 말에서 떨어져 버렸다.

“지크프리트님!?”

“전원 하마! 지크프리트님을 보호하라!”

그런 지크프리트를 따라온 고스트 대원들이 서둘러 보호했다.

항상 여유를 가지고 전쟁에 임했던 지크프리트가 땅에 떨어져 흙투성이가 되었다.

이런 건 지크프리트의 인생에 처음이었고 부하들도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이런 쾌거를 만들어낸 트라이크는 이를 악물었다.

“저걸 막았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러 애로우.

그렇게 명칭한 이 공격은 하루에 사용 횟수가 제한되어 있지만 파괴력 하나만큼은 최고였다.

활의 영역을 넘어서 공성 병기로 사용한다고 해도 발리스타 따위는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는 파괴력이 있는 공격이었다.

사용 횟수와 파괴력을 측정하기 위해서 여러 번 실험을 해 얻어낸 결과 트라이크의 공격을 정면으로 막아낸 것은 제롬 한 명뿐이었다.

즉, 그 말은….

“저놈 설마…?”

트라이크는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이런 정보는 듣지 못했다.

그러나 틀림없다.

지크프리트는 단순한 전략가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강자인 것이다.

그때 지크프리트가 벌떡 일어나서 자신을 감싸고 있는 고스트 대원들에게 외쳤다.

“잡아라! 저놈을 절대 놓치지 마라!”

평소의 지크프리트답지 않게 몹시 다급한 외침에 고스트 대원들은 오히려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예. 옛!”

“알겠습니다.”

그리고 고스트들은 트라이크를 잡아내기 위해서 말을 몰아서 서둘러 달려왔다.

그리고 그 순간 트라이크는 심각하게 갈등했다.

‘어떻게 하지? 한 발 더? 아니면….’

여기서 한 발을 더 쏘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상대가 마스터인 이상 다음 한 발로 확실하게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다.

거기다 산개해서 자신을 향해서 달려오고 있는 고스트들에게 따라잡히면 그때는 도주하는 것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머릿속으로 빠르게 상황을 계산한 트라이크는 서둘러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이럇!”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질주하며 퇴각했다.

다음 화살로 지크프리트를 잡아내지 못한다면 지금 여기서 목숨을 거는 것은 의미가 없다.

차라리 자신이 얻은 정보를 아군에게 가져가는 것이 더 확실한 이득으로 이어진다고 판단한 것이다.

“잡아라! 절대 놓치지 마라!”

뒤에서 지크프리트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어림없다.’

“핫!”

트라이크가 말의 배를 강하게 찼다.

그러자 말이 바닥을 거칠게 박차면서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큭…. 빠르다.”

“틀렸어. 놓치겠어.”

트라이크를 추적 중이던 고스트 대원들로서는 낭패였다.

최대한 전력 질주를 하고 있는데도 적의 말이 너무 빨라서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었다.

디스트로이종의 주력은 코브르크 공화국이 자랑하는 실피드 종보다도 더 빠른 것이었다.

이 변종 말이 한 번 달리기 시작하면 평범한 기마들이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빌어먹을….”

점점 멀어지는 트라이크를 보고 지크프리트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들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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