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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131화 (131/257)

제131화

지크프리트의 명령을 받은 정찰 부대는 기민하게 움직여서 바로 정보를 확인하고 돌아왔다.

“보고합니다. 예상하신 지점에 적의 기마대가 모이고 있습니다.”

“정확한 지점은?”

“이곳입니다.”

전령이 지도에 한 점을 표시했다.

그곳은 지크프리트가 가장 먼저 지적했던 장소였다.

장소를 확인한 지크프리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단거리로 파고들겠다는 건가?’

저 지점은 적이 우회할 수 있는 길 중에서 가장 빠른 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빠른 길을 선택했다면 아마 중간에 들켰다고 해서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기마의 기동력을 살려서 최단 거리로 빠르게 파고들 생각인 것이다.

“서둘러 손을 써야 합니다.”

“잠깐 기다려라.”

당장 움직이려는 참모를 진정시키고 지크프리트가 말했다.

“적 기마대의 규모는?”

“정찰 당시 5,000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1만까지는 모일지 모르겠군.”

지크프리트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지점에 군을 매복시킨다.”

지크프리트가 지적한 지점은 적이 움직인다면 반드시 지나갈 거점이었다.

“알겠습니다. 매복 규모는 어느 정도면 되겠습니까?”

“300이다.”

“…·예?”

순간 참모는 말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지크프리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매복 병력은 300이다.”

“그것으로는 적을 막을 수 없습니다.”

“막는 게 아니다. 적의 병력 규모와 지휘관을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다.”

“아아….”

“이 별동대의 지휘관이 누구냐에 따라서 우리 군의 움직임도 바꿔야 한다. 300의 매복병은 즉시 후퇴할 수 있도록 가장 빠른 기마 병력으로만 한다. 적과는 우연히 조우한 것처럼 전투에 나서라. 그리고 적의 병력 구성을 파악한 후에는 바로 후퇴해도 좋다.”

적의 움직임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지크프리트는 돌다리를 두드리듯이 다시 한번 적의 의중을 더 파악했다.

“그렇게 시간을 들이다가 대응에 늦지 않겠습니까?”

“적이 아무리 빠르게 움직인다고 해도 우회로를 거쳐야 한다. 후방에서 최단 거리로 달린다면 앞서갈 수 있다.”

지크프리트의 머릿속에는 이미 철저한 계산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참모를 향해서 말했다.

“나를 믿어라. 절대 놓치지는 않을 것이다.”

“옛!”

그렇게 지크프리트의 명령을 받은 기마 병력 300이 매복 지점으로 움직였다.

“온다. 모두 준비하도록.”

“예.”

“명심하라. 우리는 어디까지나 정찰 중인 부대이다. 적과는 우연하게 마주친 것이다. 이 점을 잊지 말도록.”

“예. 알겠습니다.”

지크프리트의 명령을 받고 매복을 명령받은 300명은 굉장한 정예들이었다.

이탈을 위해서 실피드 종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기마술이 있는 자들이었고, 또 공화국에 대한 충성심이 강해서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이들이었다.

설령 적에게 사로잡혀서 고문을 당한다고 해도 작전 내용을 누설하지 않을 정도로 정신적인 무장이 된 자들인 것이다.

여기서 자신이 죽어도 공화주의를 위해서 죽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이들.

밀턴이 흔하게 사상의 광신도라고 부르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전방의 병력을 보고 우연하게 마주친 것처럼 말했다.

“정지! 여기는 코브르크 공화국의 순찰 부대다. 그대들의 소속을 밝혀라.”

선두의 남자가 말을 하자 전방에 다가오던 기마대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말을 몰아서 앞으로 나왔다.

“지금 가겠다.”

단신으로 접근하는 남자를 보고 공화국의 정찰 부대는 방심하지 않았다.

“잠깐, 그 자리에서 정지해서 보고하라.”

“극비 임무라서 은밀하게 보고하여야 한다. 잠시 기다려라.”

“정지하라. 그 이상 접근하면 공격하겠다.”

거기까지 대치가 이어지자 홀로 튀어나왔던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기까지군.”

“무슨….”

“내 소속은 레스터 왕국의 포레스트 후작가의 기사단장.”

“적…. 적이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정찰 부대의 대장은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직후….

“제롬 테이커다!”

제롬이 질풍처럼 달려가서 정찰 부대를 덮쳤다.

콰쾅!

“크악!”

“피해라!”

300의 기마대를 상대로 단신으로 달려드는 제롬이었지만 그 누구도 그를 막지는 못했다.

그의 오러 블레이드가 휘둘러질 때마다 말과 인간이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베었다.

“후퇴! 후퇴하라!”

기마부대는 빠르게 흩어져서 도주했고 제롬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적 기마대를 50 가까이 잡았다.

“추격하는 것보다 진군이 우선이다. 서둘러라.”

제롬은 그런 적을 굳이 추격하지 않고 기마대를 인솔했다.

덕분에 남은 기마대는 무사하게 후퇴해서 지크프리트에게 보고를 할 수 있었다.

“제롬 테이커를 확인했다고?”

“예. 틀림없습니다. 오러 블레이드를 뿜어내는 것을 확실하게 봤습니다.”

전령의 보고를 들은 지크프리트는 마음을 정했다.

밀턴의 최고 측근인 제롬 테이커가 기습 부대에 있다.

그 말은 밀턴 본인이 우회하는 기습 부대를 이끌고 있다는 말이다.

‘그쪽이었나? 밀턴 포레스트.’

후퇴하는 병력의 후미를 추적하는 것과 우회 기습을 시도하는 적을 요격하는 것.

어차피 둘 다 해야 하는 일이었다.

다만 지크프리트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밀턴의 행방이었다.

“즉시 군을 편성한다. 내가 군사 2만을 이끌고 요격 부대를 끝장내겠다. 네이든!”

“부르셨습니까?”

“남은 군사 2만을 이끌고 적의 후미를 공격하라. 무리할 필요는 없다. 후미를 갉아 먹는 것만으로도 전과는 충분하다.”

“옛. 알겠습니다.”

네이든에게 연합군의 후미 공격을 지시한 지크프리트는 직접 군을 이끌고 출진했다.

‘밀턴 포레스트.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내 주겠다.’

지크프리트의 계산은 정확했다.

적이 아무리 빠르게 움직인다고 해도 아군을 피해서 우회해야 한다.

이동 경로만 예상할 수 있다면 먼저 앞질러서 적의 뒤를 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크프리트는 빠르게 달려서 적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전군 정지.”

급하게 목적지까지 달려온 아군을 진정시키며 지크프리트는 급하게 먼저 와 있던 선발대에게 물었다.

“아직 적은 지나지 않았나?”

“예. 그렇습니다.”

‘아직 안 놓쳤군.’

정보를 수집하느라고 아슬아슬한 시간까지 출발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다행이도 적을 따라잡은 것 같았다.

지크프리트는 부관에게 군의 상태를 확인하게 했다.

“병사들의 체력은?”

“괜찮습니다.”

“좋아. 기마는 좌우로 포진하라. 신호가 떨어지면 빠르게 달려서 적의 후미로 돌아가라고 하라. 전투보다는 적의 퇴로를 막는 것에 주력하라.”

“옛!”

“선두에 2,000의 보병을 배치하고 그 뒤에 1,000의 궁병을 받쳐서 1진을 만든다. 적 기마대가 오면 1진은 즉시 물러나라. 그리고 제 2진은 내가 직접 지휘하겠다. 병력 구성은….”

막힘없이 군의 포진까지 모두 지시를 내린 후에 지크프리트는 적을 기다렸다.

그리고 군의 배치가 끝나고 약 두 시간 후.

“적이 오고 있습니다.”

“좋아. 전군에 다시 작전을 전달하라. 실수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

“옛!”

소수 병력으로 보이는 1진을 적에게 노출해서 적을 끌어들인 후에 매복시켜 둔 나머지 병력으로 적을 포위해서 섬멸한다.

이것이 지크프리트의 계획이었다.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것으로 충분했다.

적의 목적은 소수의 기마대로 코브르크 공화국 내부를 어지럽히는 것.

그렇다면 무엇보다 빠르게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급박한 만큼 소수의 적이라면 피하기보다는 정면에서 물리친다는 선택을 할 것이다.

“적이 아군을 발견했습니다. 기마대 선두가 돌격 대형을 갖추고 있습니다.”

“좋았어.”

전령의 보고를 받은 지크프리트는 주먹을 불끈 쥐고 확신했다.

상대방의 노림수를 읽고 하나밖에 없는 외통수로 몰아간다.

지크프리트가 가장 즐겨 쓰는 사냥 방식이었다.

“제1진, 적 기마대와 격돌. 작전대로 산개 후퇴합니다.”

“좋다. 지금 즉시 신호를 보내라!”

지크프리트의 명령을 받은 전령이 뿔피리를 길게 불었다.

뿌우우우우우!!

그러자 지크프리트가 사전에 배치해 두었던 공화국군이 일어났다.

기마대가 재빨리 돌아가서 적의 후미를 막고 사방에서 배치해둔 병력이 일어나서 적을 압박했다.

그리고 적의 정면에서는 지크프리트가 직접 지휘하는 제2진의 본대가 중장보병을 앞장세워서 탄탄한 벽을 만들었다.

사방에서 적이 출현하자 한창 기세 좋게 돌격하던 기사단이 크게 당황했는지 돌격을 멈추었다.

그리고 선두의 기사단이 발을 멈추자 뒤에 따라오던 병력 전체가 멈추었다.

“지금이다! 포위망을 좁혀라!”

적의 전열이 흐트러진 것을 놓치지 않고 지크프리트는 배치해둔 병력을 움직였다.

넓게 포진시켜 놓았던 포위망을 안으로 좁혀서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점점 좁혀오는 포위망을 보고 표적이 된 상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만 있었다.

“뭐지?”

그런 적을 보고 지크프리트는 갑자기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대응이 너무 부실했다.

만약 자신이 지금 적의 상황이라면 후미든 측면이든 일단 돌파를 시도했을 것이다.

넓게 퍼진 포위망이 점점 좁혀오면 올수록 포위망의 밀도는 단단해진다.

그걸 그냥 방치할 바에는 희생을 감수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나았다.

‘돌파에 대응하기 위해서 가장 취약한 후방에 기마대를 배치한 것인데….’

그런데 적의 반응이 너무 없다.

그렇게 생각할 때….

“후퇴! 전군 후퇴하라!”

그제야 적이 반전해서 후방으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놓치지 마라! 4조와 5조는 즉시 돌격하라!”

지크프리트는 군에 지시를 내리고 자신의 직속 병력인 고스트 두 개 조를 출격시켰다.

적이 후방으로 후퇴한다고 해도 미리 배치해둔 기마대가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그때를 노려서 가장 날카로운 칼날인 고스트로 적의 등을 공격할 계획을 세워 두었다.

어떤 기마대라고 해도 후퇴하는 순간은 후방이 가장 취약한 법.

일단 발을 멈추게 하고 후방을 덮치면….

“오…. 온다!”

“후방에서 적이… 크악!”

콰직! 콰지지직!

“저렇게 되는 거지.”

고스트가 적의 배후를 공격하는 것을 보고 지크프리트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제 적의 발은 완전히 묶었다.

군의 괴멸은 거의 확정적이었고 이제 가장 중요한 대어를 잡을 차례였다.

“밀턴 포레스트. 제롬 테이커. 어서 나와라.”

마스터인 제롬 테이커의 실력은 이제 숨겨야 할 일이 아니다.

그러니 밀턴은 제롬을 앞장세우고 퇴로를 뚫을 생각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가 자신이 나설 차례다.

지금 지크프리트의 곁에는 고스트 중에서도 상위 멤버인 1조, 2조, 3조가 있다.

고스트 부대는 실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상위조로 배치된다.

이전에 제롬이 상대했던 6조의 경우 개인의 무력보다는 합공에 주력을 맞춘 특수 부대였지만 보통은 개인의 무력을 중요하게 여기고 높은 실력일수록 상위 조에 배치한다.

즉, 지금 지크프리트가 겨누고 있는 칼날은 고스트 중에서도 최고의 정예들이라는 말이다.

‘자, 나와라. 어서!’

지크프리트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적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그런데….

“적 기마대가 와해됩니다.”

지크프리트와 남은 고스트 정예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미리 추격한 4조와 5조만으로도 적이 괴멸되기 시작한 것이다.

“…….”

지크프리트는 싸늘한 기분이 들었다.

이럴 리가 없다.

처음에 지휘 상태를 봤을 때는 허를 찔려서 실수를 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개인의 무력은?

이건 손맛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저 군에 밀턴과 제롬이 있다면 절대 이렇게 무력한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설마?”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지크프리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는 남쪽의 하늘을 보며 탄식했다.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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