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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129화 (129/257)

제129화

“그 멍청한 놈은 갔나?”

막사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온 오브라이언 공작이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도 시작하지. 준비는 다 되었겠지.”

“물론입니다. 아! 그런데 그 전에 클라우디아 양을 만나도 되겠습니까?”

“클라우디아를? 왜지?”

“예. 다른 건 아니고 제 주군께서 전해 드리라는 선물이 있어서 말이죠.”

“막사 안에 있다. 기별을 하고 들어가도록.”

“예. 물론입니다.”

그리고 데이비드는 웃으면서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막사 안에 있던 클라우디아는 데이비드를 보고 굳은 안색으로 맞이했다.

“오랜만이에요. 데이비드 참모관님. 여기는 어쩐 일이신가요?”

“하하하… 별것 아니고 주군께서 클라우디아 양에게 전해 드리라는 물건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데이비드는 품 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서 주었다.

“주군께서 드리는 선물입니다. 오누이간의 정이 부러울 정도군요.”

“고마워요.”

데이비드가 내민 것은 작은 보석 상자였다.

그걸 열어보니 그 안에는 작은 루비 목걸이가 들어 있었고 말이다.

클라우디아는 그것을 살짝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았다.

마치 정말 중요한 것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데이비드는 그 상자를 건네주며 클라우디아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주변을 슬쩍 살펴본 후에 그녀의 손바닥 위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써내렸다.

- 계획. 다음 단계로.

그 짧은 문장에 클라우디아는 알겠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데이비드는 다시 미소를 환하게 머금고 말했다.

“그럼, 저는 다음에도 주군의 선물을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예. 오라버니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예. 그럼.”

데이비드가 막사 밖을 나오자 거기에는 오브라이언 공작이 바로 대기하고 있었다.

‘역시, 막사 바로 앞에서 엿듣고 있었군.’

데이비드는 짐짓 놀란 얼굴을 하고 말했다.

“이런? 여기 계셨습니까? 이제 공작님도 바쁘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그녀와 무슨 대화를 했지?”

“별것 아닙니다. 그저 저희 주군께서 보내신 선물을 전달했을 뿐입니다.”

“선물을 보내는 빈도가 꽤 잦군. 네 주군은 원래 그렇게 정이 많은가?”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생이별한 여동생이라는 존재가 각별하게 다가오는 모양입니다.”

“…….”

“뭔가 더 하실 말씀이라도?”

“아니. 됐다. 계획이나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물론입니다. 사실 저보다는 공작님의 역할이 더 중요합니다. 물론 알고 계시겠죠?”

“물론이다.”

“정말 괜찮은 것입니까? 이제 공작님은 더 이상 공작도 뭣도 아닌….”

“다 필요 없다. 나에게는 그녀 하나만 있으면 된다.”

“흐음…. 뜨거운 사랑이군요. 그럼 믿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데이비드는 자기 일을 하러 자리를 비웠다.

오브라이언 공작은 그런 데이비드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언동에 수상한 점은 없다.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어. 그런데 왜 이렇게 저 녀석이 싫은 걸까?’

딱히 근거는 없었지만 오브라이언 공작은 데이비드라는 남자가 수상했다.

그때 가녀린 손이 오브라이언 공작의 팔을 감싸며 말했다.

“왜 그러세요? 맥.”

“아니, 아무것도 아니오. 그보다 선물을 받았다고?”

“예. 목걸이에요. 어울리나요?”

클라우디아가 자신의 가녀린 목에 걸려 있는 루비 목걸이를 보여주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 하나에 오브라이언 공작의 의심은 사라지고 그저 눈앞에 있는 여인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볼 뿐이었다.

“다음에 내가 열 배는 더 큰 보석으로 바꿔 주지.”

“어머….”

이 모든 상황은 북부 전선의 방어선이 무너지기 딱 하루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유하네스 후작은 정해진 루트로 가서 공화국의 진형에 도착했다.

“역시 여기까지 오니 좀 떨리는군요.”

옆에서 디오스 백작이 하는 말에 유하네스 후작은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말게. 잘될 거야.”

“그렇겠죠.”

“병사들 입단속은 단단히 시키게.”

그리고 유하네스 후작이 이끄는 군대가 공화국의 진형 앞에 도착하자 경계병이 말했다.

“누구냐? 암호를 말하라.”

“우리는 무력 정찰을 갔다가 복귀한 정찰 부대이고 내 이름은 스미스 중령이다.”

“암호를 말하라.”

‘공화국 놈들 딱딱한 건 알아 줘야 해.’

유하네스 후작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들은 암호를 말했다.

“붉은 거미의 다리는 아홉 개다. 됐나?”

그 말이 끝나자 경계병이 말했다.

“좋다. 확인되었다.”

“그럼 이제….”

뿌우우우!!

그때였다.

유하네스 후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뿔피리 소리가 울리고 좌우에서 미리 매복 중이던 군세가 출현했다.

“헉!?”

“이게 무슨….”

깜짝 놀란 유하네스 후작에게 공화국군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가 나타나서 외쳤다.

“죽을 자리로 잘 왔다. 왕국 연합군들이여.”

‘설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어찌 이런 일이….’

그제야 유하네스 후작은 깨달았다.

이건 함정이다.

그리고 자신은….

“전군 공격!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와아아아아!!”

죽을 자리를 찾아 온 것이다.

사방에서 화살이 쏟아졌고, 좌우에서 병력이 밀려들었다.

완전히 방심하고 있던 유하네스 후작과 그 휘하의 병력은 거기에 변변한 대응조차 못하고 일방적으로 학살당할 뿐이었다.

***

유하네스 후작이 이끄는 4국 연합군이 괴멸당한 그 순간.

스트라부스 왕국군의 북부 전선 중앙 사령부에는 한 무리의 보급 부대가 도착했다.

“보급 부대입니다. 문을 열어 주시죠?”

“예상보다 늦게 도착했소. 이유를 알려 주시오.”

“오다가 도적들이 공격해 와서 전열이 흐트러졌습니다. 그걸 정비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도적이라고? 책임자인 유하네스 후작은 어디 계시오?”

“전투 과정에서 유하네스 후작님을 비롯한 몇몇 분들이 부상을 입으셨습니다. 저는 현재 보급 부대를 인솔하고 있는 데이비드 페이커라고 합니다.”

“미치겠군. 머릿수가 얼마인데 도적 따위한테 지휘관이 다치다니….”

대화를 나누던 지휘관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멍청이들이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보급 물자는 무사한가?”

“최대한 지켰지만 약간의 피해가 있었습니다. 오셔서 확인해 주십시오.”

“제길, 연합군 놈들 제대로 하는 일이 없어.”

지휘관은 투덜거리면서 성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어디 봅시다. 뭐가 얼마나 망가진… 커억!”

투덜거리며 말을 하던 지휘관의 몸에 차가운 비수가 틀어 박혔다.

그에게 비수를 박은 것은 데이비드라고 이름을 밝힌 기사였다.

그리고 그 직후 데이비드가 외쳤다.

“지금이다! 전군 진입하라!”

“우오오오오오!!”

“공화국 만세!”

“왕국의 개들을 박살내자!”

데이비드의 명령과 함께 보급 부대로 위장하고 있던 공화국 정예 병력이 들이닥쳤다.

무려 1만의 정예 병력이 완전 무방비 상태였던 중앙 사령부를 공격한 것이다.

“뭐…. 뭐냐? 이건?”

“도대체 어찌 된 것이냐!?”

현장에 있던 참모들과 지휘관들은 이 뜻밖의 사태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당연했다.

마른하늘에 날 벼락도 정도가 있지.

어떻게 중앙 사령부에 갑자기 적이 나타난단 말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을 안고 그들은 공화국군에게 죽어갔다.

그리고 이 일격으로 인해 북부 전선의 지휘 기능은 마비되었고, 그때를 놓치지 않아서 공화국 군의 총공격이 시작되었다.

스트라부스 왕국의 북부 전선은 완벽하게 무너졌다.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갑작스런 기습이 가해진 곳은 다름 중앙 사령부다.

가장 먼저 머리가 잘린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공화국군은 총공세를 가해 왔다.

그래도 스트라부스 왕국의 군사 자체는 정예 중에 정예였다.

비록 중앙 사령부가 없는 상황에서도 현지 지휘관들은 최선을 다해서 대응하려고 했다.

하지만 진짜 결정타는 따로 있었다.

맥카시 오브라이언 공작의 배신이었다.

갑자기 오브라이언 공작이 공화국의 편을 들어서 스트라부스 왕국군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최후의 희망을 쥐고 끈질기게 버티던 북부 전선의 숨통을 끊어 놓는 일격이었다.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충분히 경계했어야 할 일이기도 했다.

스트라부스 왕국 안에서 오브라이언 공작의 세력은 독자적인 명령권을 가지고 있었다.

권력자들의 입김이 닿는 인사를 철저하게 배제하고 평민이나 몰락 귀족들만 구성한 오브라이언 공작의 군단은 스트라부스 안에서 툭 튀어나와 있는 존재였다.

거기다 귀족들과 거리를 두는 그 성향을 생각할 때 공화국에서 회유가 올 가능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설마 일국의 공작까지 오른 오브라이언 공작이 배신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전에 공화국의 침략이 있을 때도 오브라이언 공작은 배신 따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선을 다해서 싸우며 공화국을 물리쳤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에 와서 갑자기 배신을 한 것이다.

중앙 사령부의 괴멸.

내부의 핵심 전력인 오브라이언 공작의 배신.

거기에 더해지는 공화국의 총공세.

이건 막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무너지는 북부 전선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서 분투한 것은 왕국의 마지막 마스터 라이언 카텔 공작이었다.

그는 직속 기사단을 이끌고 배신자인 오브라이언 공작에게 맞섰지만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에서 오래 싸우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카텔 공작님. 피하셔야 합니다.”

“어찌 피하란 말이냐!? 어찌!!”

“공작님!!”

“이놈! 오브라이언!!”

배신자의 이름에 증오심을 담아서 외치는 카텔 공작이었지만 더 이상 상황은 그가 뒤집을 수 없었다.

수하들의 보호를 받으며 간신히 빠져나간 카텔 공작은 목숨은 건졌지만 상당한 부상을 입었다.

북부 전선이 이렇게 무너짐으로 인해서 스트라부스 왕국이 당연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전쟁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북부 전선에서의 전황을 대략 보고 받은 밀턴은 안색을 굳혔다.

“대단한 놈이군.”

지휘부의 기습.

오브라이언 공작의 배신.

북부 전선을 무너트린 핵심은 이 두 가지였다.

그리고 밀턴은 이 두 가지 핵심이 누구의 작품인지 확신하고 있었다.

“지크프리트가 손을 썼다고 생각하십니까?”

세비안 자작의 질문에 밀턴이 담담하게 말했다.

“아마도, 이 동부 전선에 오기 전에 이미 만들어둔 그림이겠지.”

“과연, 그렇다면 우리가 점령지를 안정화시키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도 납득이 가는군요.”

시간을 끌면 자신에게 유리한 국면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북부 전선이 무너진 지금, 공화국은 어떻게 나올 것 같은가?”

밀턴의 질문에 세비안 자작은 신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지크프리트가 우리의 발목을 묶고 있는 동안, 공화국의 군대는 아마 스트라부스 왕국을 총공격하겠죠. 그리고 스트라부스 왕국으로서는 그 공격을 막아낼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가? 이전에도 북부 전선이 뚫렸지만 그때도 저력을 보여줬던 스트라부스 왕국인데 말이야.”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지요.”

세비안 자작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당시 스트라부스 왕국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국민들의 높은 애국심으로 인해서 일어난 민병대. 그리고 스트라부스 왕국의 수호신이라 자처하던 세 명의 마스터가 있었죠.”

세비안 자작의 말에 밀턴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

“확실히, 그때와 같은 상황은 아니군.”

스트라부스 왕국이 보유하고 있던 세 명의 마스터 중에 브란스 공작은 레스터 왕국의 원정에서 사망했다.

그리고 오브라이언 공작은 배신을 해서 이제 공화국으로 전향했고, 유일하게 살아 있는 카텔 공작은 상당한 중상을 입은 상태라고 알려져 있었다.

실질적으로 지금 스트라부스 왕국을 지켜줄 수 있는 마스터의 존재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전처럼 국민들이 애국심으로 들고 일어난다고 해도 예전과 같은 폭발력을 보여줄지도 의문이다.

“스트라부스 왕국은 어떻게 되겠나?”

밀턴의 물음에 세비안 자작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멸망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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