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8화
버럭 소리를 지르는 소가주의 모습에 주변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서 위축되었다.
“…….”
다만, 정작 그 적의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맥카시는 그저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맥카시에게 소가주가 말했다.
“그래. 목검으로 맞으니까 버틸 만한가 보지? 야, 거기 진검 가져와 봐.”
소가주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맥카시가 자신의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언제부터인가 손맛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그리고 나름 검술에 대한 수련이 길어지자 항상 마주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싫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역으로 놀림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백작가의 후계자로서 가지고 있는 자존심이 망가졌다.
그리고 자기 자존심이 망가진 것만큼 맥카시도 망가트려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진검을 뽑았다.
“자, 어디 진검도 얼마나 버티나 한번 보자고.”
“소가주님! 안 됩니다.”
“시끄럽다! 방해하는 놈은 그놈도 베어 버리겠다!”
소가주는 으름장을 놓고 진검을 잡고 맥카시의 앞에 섰다.
마침 지도하는 기사도 없었다.
다른 시종들은 소가주를 막을 수 없었다.
완벽한 상황.
소가주는 매카시를 죽여 버리기로 작정했었다.
‘어떻게 할까?’
맥카시는 담담한 표정으로 소가주를 보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더 이상 리어슨 백작가에 있는 것은 무리 같았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 같기는 했다.
그게 생각보다 좀 빠르기는 하지만 어쨌든 오고 말았다.
문제는 상대인 소가주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만약 여기서 저 검을 순순히 받아 준다면 아마 시체로 이 저택을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병신 새끼한테 죽어줄 수는 없지.’
맥카시는 결심을 굳혔다.
“죽엇!”
소가주가 진검으로 맥카시의 정수리를 쪼개기 위해서 내리쳤다.
그리고 맥카시는 부드럽게 몸을 움직였다.
몹시 쉬운 일이다.
이제까지 상상으로 수도 없이 이미지 했던 행동을 그대로 몸으로 옮길 뿐인 일이다.
소가주의 어설픈 공격을 피하고 그의 목에 목검을 깊숙하게 찔러 넣는 것이다.
“커억….”
무정할 정도로 깔끔한 일격.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지만, 훗날 생각해 보면 까짓것 죽여도 상관없나 싶기도 했었다고 한다.
어쨌든 그 일격으로 리어슨 백작가의 유일한 후계자가 죽었다.
목뼈가 부러지고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쓰러진 소가주는 이내 숨을 멎었다.
“꺄아아아악!!”
“도…. 도련님! 도련님!”
소란이 벌어진 것은 당연했다.
소가주가 죽었다는 사실에 기사들은 맥카시를 제압하려고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진검을 든 기사들 역시 맥카시를 잡기 어려웠다.
무려 다섯 명의 기사들이 맥카시의 목검에 쓰러졌고 간신히 맥카시를 사로잡은 것은 당시 리어슨 백작가에 딱 한 명 있던 익스퍼트의 기사였다.
그렇게 맥카시는 제압당했고 탈출에 실패했다.
리어슨 백작은 크게 분노했다.
당연한 일이다.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한 장소에서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한 방법으로 자신의 아들이 죽고 말았다.
분노에 이성을 잃은 리어슨 백작은 자기 체력이 다할 때까지 맥카시를 매질했다.
그리고 가장 비참한 죽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전쟁터에 넘겨 버렸다.
그것도 그냥 전쟁터가 아니라 가장 혹독한 전장에 죄인으로 복역하게 한 것이다.
그건 치명적인 실수였다.
이제까지 그나마 우리에 가둬져 있던 호랑이를 야생에 풀어 놓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장 가혹한 전선에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맥카시는 죽지 않았다.
아무리 가혹한 전쟁에서 커다란 위기를 겪는다고 해도 그는 살아남았다.
자기가 소속한 부대가 전멸했을 때도 혼자서 꿋꿋하게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렇게 사선을 한 번씩 넘을 때마다 더욱더 강해졌다.
10년.
아직 어린 소년이 10년 동안 전쟁터에서 치열하게 살았다.
아니, 이제는 적들이 맥카시 오브라이언이라는 이름만 들어서 겁을 먹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나이가 서른이 되는 무렵.
그의 검에는 눈부신 오러 소드가 맺혀 있었다.
스트라부스 왕국에 세 번째 마스터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전쟁터에서 죽도록 굴러도 자작위밖에 받지 못했던 그가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자 바로 공작위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스트라부스 왕국에서 권력의 핵심 인물 중에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고위 귀족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귀족 사회를 경멸했다.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린 부모와 리어슨 백작가에서 받은 학대와 냉대, 그리고 전쟁터의 밑바닥에서 구르면서 고위 귀족들의 더러운 꼴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파벌과도 손을 잡지 않았고 귀족들과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자신의 눈에 거슬리는 귀족들은 가차 없이 처리했다.
물론 그중에서도 리어슨 백작가는 처리 1순위였다.
공작위에 오르자마자 맥카시 오브라이언은 리어슨 백작가를 방계의 핏줄 하나 남겨두지 않고 모조리 죽여 버렸다.
그 후에도 마스터라는 전력을 탐내서 오브라이언 공작에게 접근한 귀족들은 제법 있었지만 그들 대부분이 오브라이언 공작에게 목이 날아가 버렸다.
그는 귀족들과는 거리를 두고 평민 출신의 기사들이나 하급 귀족 출신의 기사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면서 철저하게 그들만을 자기 사람으로 여겼다.
귀족이 낮은 신분을 차별하는 것처럼 브라이언 공작은 오히려 높은 신분의 인간들을 배척한 것이다.
그의 직계 기사단은 철저하게 실력만 보고 뽑았으며 그의 군단은 왕국의 명령보다 브라이언 공작의 명령을 우선시하도록 조련시켰다.
그는 자신만의 세력을 공고하게 만들었지만 그 세력은 결코 어느 파벌의 귀족에게도 이롭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스트라부스 왕국에서 맥카시 오브라이언 공작의 평가는 이렇게 되었다.
건드려서는 안 되는 미친개.
일국의 공작에 대한 평가로는 지나치게 거칠었지만 명백한 사실이었다.
연회장에서도 자신에게 알랑거리는 하급 귀족에게 결투를 신청해서 목을 쳐 버린 적이 있었으니 이쯤 되면 안 건드리는 게 상책이었다.
맥카시 오브라이언이라는 이름은 스트라부스 왕국의 귀족 사회에서 경계경보 그 자체였다.
그런 오브라이언 공작의 성향을 알고 있기에 로스만 자작은 망설였다.
‘확실히 오브라이언 공작님이라면 독자적으로 군을 움직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결국 로스만 자작은 원칙보다는 현실에 수긍하기로 했다.
“알겠소. 그 대신 공작님에게는 괜한 소리를 하지 말아 주시오.”
“그렇게 하겠소.”
그리고 유하네스 후작이 이끄는 보급 부대는 최전선에 있는 오브라이언 공작의 진형으로 이동했다.
‘오브라이언 공작님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로스만 자작은 의문이 들었지만 그냥 잊어 버렸다.
맥카시 오브라이언 공작에게 지나치게 관여하는 것은 명줄을 재촉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오브라이언 공작의 이름을 대면 참모부에서도 자신의 입장을 이해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로스만 자작은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전쟁의 지휘권과 원칙을 무시할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는 존재.
철저하게 규율과 원칙을 중요시해야 할 군대에서 이런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이때의 스트라부스 왕국은 미처 몰랐다.
유하네스 후작이 이끄는 보급 부대가 오브라이언 공작의 진지에 도착했다.
그러자 오브라이언 공작과 함께 또 다른 인물이 그들을 맞이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아닙니다. 저희는 그저 공작님의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혹시?”
“그렇다. 이 남자가 바로 계획의 핵심을 쥐고 있는 인물이다.”
오브라이언 공작의 말에 옆에 있던 한 명의 남자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데이비드라고 합니다.”
데이비드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갈색 머리에 평범한 체구와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 인상이 너무 평범해서 길에서 마주치고 지나가면 바로 잊어버릴 것처럼 희미한 인상이었다.
다만, 특이한 점을 하나 꼽으라면 항상 웃고 있는 듯한 눈매였다.
처음 봤을 때부터 인사를 하는 지금까지 그의 얼굴에서는 절대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미소는 친절함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고, 비굴함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비웃음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자기감정을 숨기기 위한 가면의 미소.
카드 판에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얼굴에 고정시켜 놓은 듯한 그런 미소였다.
“음, 시온 유하네스 후작이네. 그렇다면 자네는…?”
“예. 제가 바로 여러분들의 계획에 협조할 전향자입니다.”
“호오…. 그래? 그렇다면 준비는 되었나?”
“예. 총 3만의 병력치 공화국 깃발과 군복을 준비했습니다.”
그 말에 유하네스 후작은 환하게 웃으며 오브라이언 공작에게 말했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드시 시대에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잘해 보도록.”
오브라이언 공작은 그냥 무뚝뚝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하지만 유하네스 후작은 한껏 들떠 있었다.
‘이 정도의 기회를 잡고도 성공하지 못하면 병신도 그런 병신이 없지.’
그는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 계획은 훌륭하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하네스 후작이 클라우디아에게 들은 계획은 이렇다.
우선 병력을 돌려줄 테니 보급 부대든 뭐든 우선은 후방으로 빠져라.
그리고 후방으로 빠졌다가 시기를 봐서 오브라이언 공작의 영지로 보급 부대를 전부 이끌고 와라.
오브라이언 공작에게는 공화국에서 배신한 인물을 한 명 알고 있다.
그 인물은 대략 4만 정도의 병력을 이끄는 인물로 제법 거물이었지만 공화국에서 왕국으로 전향을 결심한 인물이다.
시기를 맞춰서 그의 병력과 연합군의 병력이 군복을 바꿔 입고 깃발도 바꾼다.
그리고 잠입을 위한 암호와 루트까지 모두 인수 받은 후에 공화국의 배후로 돌아간다.
그리고 신호가 오면 배후에서 적을 공격.
전면에서 오브라이언 공작의 정예 병력과 함께 앞뒤로 합공을 해서 적을 무너트린다.
라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의 핵심은 공화국의 중요 인사 한 명이 배신을 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너무 좋은 계획이라서 오히려 망설여졌던 유하네스 후작이었지만 클라우디아의 은근한 유혹과 언변에 넘어가 버렸다.
결코 어려운 작전이 아니다.
만약 성공만 하면 북부 전선의 상황을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이 전쟁에서 최고의 공적은 연합군을 이끌고 있는 시온 유하네스 당신이다.
이런 달콤한 유혹에 유하네스 후작은 결단을 내렸다.
눈부시게 밝은 미래.
커다란 승리 이후에 누릴 수 있는 엄청난 보상.
욕심 많은 인간들의 눈을 흐리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클라우디아는 잘 알고 있었다.
양 군은 즉시 군복을 교환해서 갈아입고, 또 깃발도 바꿨다.
그리고 데이비드가 유하네스 후작에게 말했다.
“이 부대는 전방의 무력 정찰을 끝내고 복귀하는 것입니다.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의 이름은 스미스 중령. 그리고 암호는 ‘붉은 거미의 다리는 아홉 개다.’입니다.”
그 외에도 데이비드는 군이 복귀해야 할 루트를 알려 주었고, 중간에 보고 사항을 원하면 해줘야 할 보고 내용도 모두 알려 주었다.
“알겠네. 충분하군.”
데이비드라는 남자의 철두철미한 준비에 유하네스 후작은 몹시 만족했다.
이 정도로 철두철미한 준비를 했다면 뒤로 넘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완전히 거저먹는 작전이군.’
유하네스 후작은 승리를 확신하며 출정했다.
“이 작전이 성공하면 스트라부스 왕국에 정착한다고 했던가?”
“예. 자작위를 약속 받았습니다.”
데이비드는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저도 거지같은 공화국에서 떠나서 고귀한 귀족이 되는 것이지요. 하하하…. 그때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귀족이 되는 것에 대한 강렬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듯이 눈을 반짝이는 데이비드를 보고 유하네스 후작은 피식 웃었다.
“그래. 그때는 ‘잘’ 부탁하지.”
‘어디서 근본도 없는 공화국 변절자 따위가….’
유하네스 후작은 귀족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통성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적어도 3대 이상의 역사가 쌓여서 정통성이 생겨야 그때부터 진짜 귀족이라고 할 만하다.
가끔 공적을 세워서 남작이나 자작위를 받고 귀족이라고 뻐기는 인간들을 유하네스 후작은 경멸했다.
그리고 데이비드 역시 그런 놈들과 같은 종자라고 생각했다.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인간을 대할 때 인간은 경계심이 누그러지는 법이다.
유하네스 후작은 의기양양하게 출발하며 말했다.
“이 작전이 성공한 후에 보세. 내가 앞으로 귀족으로 살아야 할 마음가짐이 어떤 것인지 친히 알려주지.”
“아…. 그때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데이비드는 넙죽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출발!”
그리고 유하네스 후작은 공화국으로 위장한 전군을 이끌고 출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