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9화
밀턴을 선두로 해서 기사단 전력이 적을 정면에서 박살내기 시작했다.
“크아악!”
“아악!”
기습을 위해서 꽤 많은 병력을 끌고 온 코브르크 공화국이었지만 정면승부에서 연합군을 이길 수 있는 전력은 아니었다.
밀턴이 선두에 서서 기사단을 이끌고 반격을 시작하자 코브르크 공화국군은 일방적으로 밀려났다.
결국은….
“적의 반격이 강하다. 성내로 후퇴하라!”
코브르크 공화국에서 후퇴 명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밀턴은 그 명령을 내리는 인물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저 인간은?’
거기에는 이전에 밀턴이 아깝게 놓친 바이슨 중장이 있었다.
이 성의 총사령관이 직접 야습을 지휘하고 나온 것이다.
밀턴은 새삼 깨달았다.
이 야습이 코브르크 공화국에서 작정을 하고 시도한 도박수라는 것을 말이다.
밀턴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도박은 실패했을 때의 대가가 무거운 법이지.’
“전군 진격하라! 이대로 적을 추격한다!”
밀턴은 기사단에 이어서 자신의 진형에 있는 전군에 진격 명령을 내렸다.
망설임은 없었다.
지금 밀턴은 기회를 잡았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야습은 이전과 달랐다.
소규모 기병이 나와서 안전하게 치고 빠지기만 반복했던 기습과 달리 꽤 많은 병력을 동원한 것이다.
당연히 후퇴하는 것에도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밀턴이 그걸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공화국 광신도들의 엉덩이를 걷어차 줘라!”
“돌격! 돌격하라!”
“와아아아아!!”
밀턴은 추격에 박차를 가했고 옆에서 제롬과 기사단도 그런 밀턴의 기세를 받쳐줬다.
그들의 진격로에는 공화국군의 병사들의 시체가 융단처럼 깔렸다.
거침없이 진격하는 아군의 돌파력에 밀턴은 검의 손잡이를 불끈 쥐었다.
‘할 수 있다. 오늘 끝낼 수 있어.’
지금 밀턴이 바랄 수 있는 결과는 둘 중에 하나다.
하나는 적이 성문을 빠르게 닫을 경우.
그렇게 되면 눈앞에 있는 병력을 전멸시켜 버리면 된다.
무리한 기습이 실패하고 거기다 아군에게 버림까지 받은 병력을 전멸시켜 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더구나 이 병력에는 적의 총사령관인 바이슨 중장까지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이만하면 훌륭한 전과였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좋은 결과도 있었다.
그건 적이 성문을 빨리 닫지 않을 때의 일이다.
만약 적이 망설여서 성문을 빠르게 닫지 못한다면 밀턴은 이 공성전을 오늘 끝내버릴 수도 있었다.
‘적의 후미를 추격해서 성문을 점거할 수만 있다면….’
세상에 어떤 견고한 성도 성문을 점거하면 그 다음부터는 별것 아니다.
그야말로 최상의 결과.
그리고 그 최상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충분했다.
지금 이 기습을 지휘하고 있는 것은 바이슨 중장.
아무리 냉정하게 생각하려고 해도 군의 총사령관을 버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적의 총사령관이 성내에 들어가기 전에 따라잡기만 하면 된다.’
밀턴은 추격의 고삐를 바싹 당겼다.
“진격! 진격하라! 흩어진 잡병들을 신경 쓰지 말고 적의 본대를 추격하라!”
밀턴의 명령에 옆에서 따라온 제롬이 말했다.
“주군, 후열에 보병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기사단과 기마병이 먼저 돌입한다! 성문을 점령하면 보병은 그 후에 들어와도 늦지 않다.”
“옛!”
밀턴의 명령에 제롬은 빠르게 군에 명령을 하달했다.
“기마대는 기사단의 뒤를 받쳐라! 적을 물리치는 것보다 돌파에 주력한다! 주군의 뒤를 따르라!”
명령을 받은 기마병들은 즉시 기사단의 뒤를 받쳐서 쐐기 형태의 돌격 진형을 갖췄다.
“간다!”
“우오오오오!”
그 쇄기의 정점에서는 밀턴이 전군을 이끌고 엄청난 돌파력을 보이고 있었다.
“크악!”
“아아악!”
그 돌격은 그야말로 엄청난 파괴력을 보였다.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파괴하고 짓밟으며 진격한 밀턴은 마침내 리트인크 성의 도개교에 도착했다.
“문을 닫아라! 적이 들어오게 하지 마라!”
밀턴이 도개교에 도착하자 적의 다급한 명령이 들렸다.
“성문을 점거하라! 개폐 장치를 손에 넣어라!”
“기사단 1분대는 나를 따르라!”
밀턴의 명령에 제롬이 소수의 기사단을 이끌고 개폐 장치를 조작하고 있는 병사들을 덮쳤다.
“큭…. 크악!”
“이놈…. 커억….”
제롬의 병력은 신속하게 개폐 장치를 점거했다.
그리고 제롬은 자신의 검에 오러를 실어서 개폐 장치를 내리쳤다.
콰앙!
그 한 방에 성문의 개폐 장치가 박살났다.
이제 이 성문을 닫고 싶어도 닫을 수 없다.
“주군! 성문을 점거했습니다!”
“전령은 전군에 명령을 내려라! 성을 점령한다!”
“옛!”
드디어 밀턴의 병력이 리트인크 성의 급소를 찔렀다.
“뭐? 적의 야습? 그리고 반격해서 성문을 점거했다고?”
공사 현장에서 머물고 있던 세비안 자작은 전령의 보고를 받고 깜짝 놀랐다.
“예. 적이 무리한 야습을 했다고 합니다. 포레스트 후작님이 반격해서 그대로 적의 성내에 전군이 진입하고 있다고 합니다.”
“…….”
세비안 자작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좋은 소식이다.
만약 이 전령이 적에게 매수된 스파이가 아니라면 지금 들여온 소식은 틀림없이 희소식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길하지?’
이상하다.
너무 순조롭게 일이 풀리고 있다.
자신의 예상을 지나칠 정도로 말이다.
수맥을 건드려서 적을 고사시키려고 한 이유는 적이 리트인크 성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리트인크 성은 견고하게 잘 지어진 성이었고, 무엇보다 적은 최근에 커다란 패배를 겪었다.
그 패배로 인해서 다섯 개의 요새 거점과 두 개의 거성을 잃어버린 적의 입장에서 리트인크 성은 최후의 보루였다.
그런 상황에서 일발 역전을 노리고 대규모 야습을 감행한다?
그것도 적의 총사령관이 직접 군을 이끌고?
‘나라면 그렇게 안 해. 아니…. 어지간한 멍청이가 아니라면 누구나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아.’
작전이라는 것은 성공했을 때와 실패했을 때의 결과를 모두 가정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이 작전은 실패했을 때 잃는 것이 너무나 크다.
전쟁을 이기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좀처럼 하기 힘든 도박수를 이렇게 어려운 전황 속에서 하다니?
세비안 자작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의외성을 역으로 노린…. 아니야. 말도 안 돼.’
최상의 결과가 나왔지만, 그 결과로 이어진 원인이 영 꺼림칙했다.
결국 불안한 세비안 자작은 즉시 전령에게 명령을 내렸다.
“스트라부스…. 아니 거긴 이미 돌입했겠지. 후방에 대기 중이던 플로렌스 공국에 지시를 전달해라. 지금 즉시….”
세비안 자작이 지시를 내리자 전령은 빠르게 말을 달려 이동했다.
그리고 세비안 자작은 불안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공사 현장의 병사들은 전원 무장하고 나를 따라라! 지금 즉시 움직인다!”
이 현장에 있는 병사라고 해봐야 3,000 정도였지만 그거라도 없는 것 보다는 나았다.
성문을 점거한 후에 밀턴은 빠르게 성의 중앙으로 진입했다.
성내를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서 바이슨 중장의 목을 치거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포레스트 후작. 바이슨 중장은 찾았소?”
밀턴의 뒤를 따라서 스트라부스 왕국군과 함께 돌입한 볼로나 후작의 말에 밀턴은 고개를 저었다.
“못 찾았습니다. 좀 전까지 쫓고 있었는데 갑자기 산개하더니 행방이 묘연해 졌습니다.”
“이상하군. 성내에서 모습을 숨겨 봤자 독안에 든 쥐일 텐데?”
볼로나 후작의 말에 밀턴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어차피 성문은 자신들이 점거했다.
병력이 우위에 있는 지금 성내에서 숨어봤자 도망갈 곳은….
“잠깐!”
순간 밀턴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독 안에 든 쥐.
도망갈 곳이 없는 상황.
‘설마?’
바로 그때였다.
“밀턴 포레스트! 루크 볼로나!”
몸을 숨겼다고 생각했던 바이슨 중장이 일군을 이끌고 정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죽을 각오가 된 건가? 바이슨!”
볼로나 후작의 말에 바이슨 중장은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그래 맞다. 하지만!”
바이슨 중장에 손을 들며 말했다.
“나 혼자서 죽을 생각은 없다.”
그러자 그의 부관이 뿔피리를 길게 불었다.
뿌우우우우!
그리고 그 신호화 함께 사방에서 숨겨진 병사들이 나타났다.
건물의 지붕과 성벽의 위 등에서 매복해 있던 궁수들이 나타난 것이다.
“매복? 하지만 이 정도로는….”
볼로나 후작이 말을 하다가 두 눈을 부릅떴다.
궁수들이 화살에 불을 붙이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그리고 밀턴이 즉시 외쳤다.
“화공이다! 전군 후퇴하라!”
“늦었다. 쏴라!”
바이슨 중장의 명령과 동시에 사방에서 불화살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 불화살은 떨어지기 무섭게 빠른 속도로 불길이 번져갔다.
“히히힝!”
“읏…. 으아악!”
연합군은 크게 당황했다.
사방에서 불화살이 떨어졌고, 불길은 빠른 속도로 번져갔다.
어두운 밤이라서 보이지 않았지만 이 성의 구석구석에 기름이 먹여져 있었던 것이다.
‘공성계(空城計)에 화공(火攻)까지? 이런 대담한 수를 두다니?’
밀턴은 크게 당황했다.
이건 완전히 당한 것이다.
적의 유인에 속아서 함정 속으로 전군을 이끌고 들어와 버리고 말았다.
“큭…. 후퇴! 전군 후퇴한다! 열려 있는 성문으로 모두 빠져 나가라!”
밀턴의 명령에 전군이 뒤로 돌아서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걸 그냥 내버려 둘 바이슨 중장이 아니었다.
“곱게 보낼 성 싶은가?! 전군 공격하라!”
“공격! 침략자를 물리쳐라!”
“공화주의 만세!!”
불길 속에서 무모하게 공격해 오는 바이슨 중장과 그 부하들을 보고 밀턴은 이를 악물었다.
‘저 미친 광신도 새끼들….’
지금 리트인크 성내는 전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사방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불길은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태울 것인데 여기서 공격을 하다니?
이건 승리를 위한 공격이 아니다.
이 불길 속에서 함께 타 죽겠다는 의도가 뚜렷하게 보였다.
뻔히 보이는 자살 공격이었지만 문제는 이것을 무시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바로 뒤에서 죽이고자 달려오는 적들을 어떻게 무시한단 말인가?
‘어쩔 수 없다.’
밀턴은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기사단은 나를 따르라! 적을 섬멸한다!”
“옛!”
결국 급한 불부터 꺼야 했다.
밀턴은 스스로 기사단을 이끌고 후미의 적들을 막아섰다.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어차피 지금은 현명한 선택 같은 편리한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고 탈출한다.’
그렇게 마음먹은 밀턴은 즉각 적과 돌격했다.
하지만….
“죽어라. 밀턴 포레스트!!”
“네놈만큼은 반드시!! 크윽….”
적들도 필사적이었다.
죽음을 각오한 공화국의 젊은 장교들은 자기 목숨을 내던지다시피 밀턴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밀턴은 조국을 범한 침략자에 은사인 바이슨 중장을 죽음으로 내몬 원수이니 말이다.
어차피 죽음은 각오한 바.
그렇다면 밀턴을 저승길 동반자로 끌고 가기 위해서 그들은 필사적이었다.
“제길….”
상황이 좋지 않은데 적들이 필사적으로 달려들다 보니 밀턴도 생각보다 애를 먹었다.
이들의 실력은 밀턴의 목숨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다.
거기다 워낙 필사적으로 달려들기 때문에 곤란했다.
밀턴은 순차적으로 적을 베어 넘기면서도 몹시 초조했다.
‘이럴 시간이 없는데….’
결국은 시간이 문제였다.
사방에서 화염이 날뛰는 이 와중에 느긋하게 이놈들을 상대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그때….
“가세하겠습니다. 주군.”
한 기의 기마가 용맹하게 밀턴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후방에서 아군을 이끌고 있던 제롬이었다.
“제롬!”
밀턴에게 있어서는 가장 반가운 얼굴이었다.
제법 애를 먹고 있던 상황에서 제롬이 끼어들자 적들을 빠르게 정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