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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118화 (118/257)

제118화

비앙카에게 수맥을 탐지하고 그 수맥을 조종하는 마법이 있다는 것은 밀턴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었을 뿐이지 그것을 이 공성에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천재는 지식의 양뿐만 아니라 지식의 활용에도 뛰어난 인간이라고 하던가? 확실히 대단해.’

가능하다.

충분히 가능하다.

확실히 그 작전이라면 보름은 걸리겠지만 최소한의 피해로 리트인크 성을 떨어트릴 수 있다.

‘수맥을 찾고, 그 수맥에 손을 쓰는 것에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일단 성공만 하면….’

밀턴은 탁자를 주먹으로 치며 말했다.

“지금 즉시 시행하라.”

“예. 알겠습니다.”

밀턴의 허가를 받은 세비안 자작은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 막사를 나갔고, 옆에서 볼로나 후작이 밀턴에게 말했다.

“수맥 탐사에 전문가? 그런 인물을 전쟁터에 데리고 온 것이오?”

“으음…. 혹시 모르니 말이오.”

“……?”

도대체 어떤 ‘혹시’를 상정하면 전쟁터에 수맥 탐지 전문가를 데리고 오는 걸까?

전쟁터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볼로나 후작도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니 사람 부리는 게 험하데이. 내가 못한다고 하면 어쩔라고 그랬노?”

비앙카의 말에 세비안 자작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때는 그때죠. 그런데 정말 못하는 겁니까?”

“그거야 해봐야 알지.”

그렇게 말한 비앙카는 그날부터 호위 기사들을 거느리고 리트인크 성의 주변을 탐색했다.

그리고 삼일 후.

“수맥은 찾았데이.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수맥이 꽤 커서 내 힘으로는 못 막겠다. 뭐, 하라고 하면 하기야 하겠지만 적어도 1년은 걸릴 것 같데이.”

“그건 너무 깁니다. 어떻게 안 되는 겁니까?”

“어떻게, 라고 말해도 말이제….”

곤란한 표정을 하고 있는 비앙카는 잠시 고심하다가 말했다.

“결론적으로, 저 성에 물이 가지 않으면 되는 거제?”

“예. 그렇습니다.”

“그럼, 틀어막는 게 아니라 다른 데로 유도하자.”

“어떻게 말입니까?”

“수맥 중간에 물을 터트려서 물이 성까지 안 가도록 유도하면 된다 아이가?”

그 말에 세비안 자작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예. 결과적으로는 식수를 고립시키면 되니까 충분합니다.”

“알았데이. 수맥이 터져 나올 위치를 가르쳐 줄 테니까 병사들 시키라.”

“마법으로 빠르게 안 되는 겁니까?”

“내가 니 시다바리가?”

“…·예?”

시다바리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세비안 자작이었다.

그런 세비안 자작이 답답한지 비앙카는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그런 게 있데이. 어쨌든 내는 못 하니까 사람 손으로 하그라.”

비앙카의 말에 세비안 자작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마법의 존재는 숨겨야 했으니까.’

비앙카가 가르쳐 준 위치는 리트인크 성에서 약간 떨어진 산의 기슭이었다.

그 지점에 크게 구멍을 뚫어서 물을 빼내면 리트인크 성으로 흘러 들어가는 물이 90퍼센트 가까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세비안 자작은 적에게 들키지 않도록 병사 1,000을 몰래 빼내서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 기간은 얼마나 걸릴까?”

보고를 받은 밀턴의 질문에 세비안 자작이 말했다.

“비앙카님의 보고에 의하면 이 속도로 팠을 때, 한 달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한 달이라…. 당초 보고했던 보름보다는 조금 더 걸리겠군.”

“죄송합니다. 주군.”

“아니, 이 정도 오차야 있을 수 있는 거지.”

밀턴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세비안 자작의 작전은 훌륭했기 때문이다.

적의 포위하고 식수를 고립시킬 수만 있다면 승리는 확정적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고 해도 작전이 이 정도로 훌륭하면 충분히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

“북부 전선에서 적이 움직였다는 소식은 있나?”

“아니요. 그런 소식은 없습니다.”

“그렇군. 혹시 모르니 만전을 기하도록, 원군이 온다면 기껏 만든 포위망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예. 알겠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세비안 자작의 말에 밀턴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신뢰했다.

리트인크 성을 포위하고 열흘이 지났을 때.

이제까지 성내에서 가만히 대기하고 있던 적들이 조금씩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큰 반응은 아니었고 성문을 열고 잠깐 밖으로 기마대를 끌고 와서 특수 석궁을 쏘고 도망가는 정도였다.

밀턴이 몇 번 추적하려고 했지만 바로 성내로 도망가 버렸기 때문에 실패했다.

포위망을 좀 가깝게 하면 성 밖으로 나왔을 때를 노려 볼 수 있었겠지만 그러려고 하면 성벽 위에서 특수 석궁병이 공격을 해서 그럴 수도 없었다.

“조금 귀찮군.”

오늘도 적들이 날리는 화살에 동쪽의 포위망에서 조금 피해가 발생했다는 보고를 듣고 밀턴은 눈살을 찌푸렸다.

“포위망이 너무 성에서 가까운 것 같습니다. 조금 뒤로 물리는 것이 어떨까요?”

세비안 자작이 밀턴에게 의견을 냈다.

“그랬다가는 포위망이 엷어지지 않나?”

“적을 놓치지 않을 정도의 포위망을 구성하기만 하면 됩니다. 어차피 성을 직접 공격하려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군.”

밀턴은 세비안 자작의 말대로 포위망을 조금 더 뒤로 물려서 느근하게 만들었다.

이러고도 적들이 기습하기 위해서 나온다면 그때는 밀턴이 직접 기마대를 타고 추격해서 섬멸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까지 물러났다.

이쯤 되면 포위망이라기보다는 감시망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넓고 길게 리트인크 성을 감싼 포위망은 꽤 얇아졌지만 덕분에 적의 기습은 받지 않게 되었다.

‘수맥의 공사만 끝나면 돼. 그 전에는 적을 딱히 상대해줄 필요가 없다.’

세비안 자작은 그렇게 생각하며 공사 현장의 상황을 살피러 나갔다.

어차피 적들이 할 수 있는 발악은 저 정도가 고작이다.

이제 그 발악조차 하지 못할 테니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주공인 수맥 공사의 진척을 앞당기기 위해서 직접 살피러 간 것이다.

“바이슨 중장님. 적의 포위망이 뒤로 멀찍하게 물러났습니다.”

“예상대로군.”

부관의 보고를 받은 바이슨 중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락은 왔나?”

“예. 이제 도착했다고 합니다. 결행은 내일 새벽 네 시쯤으로 하라고 합니다.”

“그래. 그렇군.”

바이슨 중장은 성벽 위에서 서쪽 하늘을 살폈다.

거기에는 노을이 아름답게 지며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죽음이 가까워지면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고 하던가? 과연, 그렇군.’

바이슨 중장은 해가 완전히 모습을 감출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리고 태양이 완전히 사라지자 자신의 부관들에게 말했다.

“자네들은 괜찮은 건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를 따라서 죽어도 괜찮겠냐는 말일세.”

그리고 바이슨 중장은 말을 이었다.

“적의 포위망이 엷어졌으니, 작전 개시와 더불어서 일점 돌파를 감행하면 어느 정도 살길이 열릴지도 모르지. 그러니 자네들은 이 작전에서 빠져도 좋네.”

바이슨 중장의 말에 부관들은 결연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어떻게 중장님 혼자 남겨두고 도망가겠습니까?”

“우리 공화국에 그런 비겁자는 없습니다.”

“맞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바이슨 중장은 가슴이 감격으로 찡해지는 한편 미안함으로 먹먹해졌다.

공화국의 군부에서는 보통 파벌이 있다.

그 파벌은 좋게도 나쁘게도 작용하는데 지금 바이슨 중장의 곁을 지키고 있는 부관들은 그가 병사부터 발탁해서 장교까지 끌어올려 놓은 존재들이었다.

제자, 아니 거의 자식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애착이 가는 젊은이들이다.

실제 자식이 없는 바이슨 중장으로서는 이들을 꼭 살리고 싶었다.

“난 괜찮다. 전쟁터에서 나 정도로 살았다면 그래도 장수한 편이지. 하지만 자네들에게는 미래가 있네. 공화국을 위해서라도 자네들은….”

쿵!

바이슨 중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관들 전원이 무릎을 꿇었다.

“저희들의 미래는 중장님과 함께 명예롭게 싸우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희들은 죽을 때까지 바이슨 중장님의 곁을 지키겠습니다.”

“정히 저희를 물리시겠다면 여기서 직접 목을 쳐 주십시오!”

그들의 각오는 바이슨 중장을 깜짝 놀라게 했다.

바이슨 중장이 이들을 아끼는 만큼 이들 역시 바이슨 중장을 존경하고 신뢰했던 것이다.

그런 부관들의 모습에 보고 바이슨 중장은 처음에는 당황했고, 그 후에는 헛웃음이 나았다.

“허…. 허허허….”

최근 심각한 패배를 겪고 공화국에 커다란 누를 끼쳤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많이 사라졌었다.

그러나 자신을 따르는 젊은 장교들의 충성을 보자 바이슨 중장의 가슴 속에서는 다시 한번 열정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이 정도면 헛살지는 않았다.’

결심을 굳힌 바이슨 중장이 부관들에게 말했다.

“좋다. 그대들이 그렇게 나와 준다면 나도 더 이상 망설이지 않겠다.”

자신감을 잃었던 바이슨 중장의 눈에 다시 빛이 돌아왔다.

그는 허리에 검을 뽑아서 높이 들어 올리고 말했다.

“침략자들에게 알려주겠다. 이 코브르크 공화국을 침범한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를!”

“옛!!”

공화국의 노장이 마지막 불꽃을 태울 각오를 했다.

새벽 네 시.

군사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이 시간을 이렇게 말한다.

야습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간, 그리고 야습을 가장 경계해야 하는 시간이라고.

야습은 항상 주의해야 하지만 그중에서도 보초들의 경계심이 가장 풀어지고, 또 병사들이 한창 숙면을 취하고 있을 시간이 있다.

그게 새벽 네 시에서 다섯 시 사이였다.

물론 이론은 이론일 뿐이고, 현실에서 반드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론으로 정립이 되어 있다는 것은 그 나름의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마치 교과서를 따르는 것처럼 공화국에서 야습이 시작되었다.

“적습이다!”

“전원 기상! 적이다!”

경계병들의 시끄러운 목소리와 함께 밀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어난 즉시 갑옷을 걸치고 검을 들고 밖으로 나간 밀턴은 전령에게 외쳤다.

“상황은?”

“예. 적이 야습을 감행했습니다. 적의 규모와 피해 상황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밀턴은 레너드의 등에 올라타서 자기 눈으로 직접 상황을 살폈다.

“와아아아아!!”

“침략자들을 물리쳐라!”

“전부 죽여라!”

상황을 직접 파악한 밀턴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아. 경계병이 대응을 잘했어.’

적어도 지금 밀턴의 시야가 닿는 곳에서 아군이 일방적으로 밀리거나 진형이 무너진 곳은 없어 보였다.

아군의 경계병들이 자기 할 일을 잘했기 때문에 야습에 대응을 잘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밀리지는 않았지만 상황을 금방 진정시키지도 못하는군.”

왜 그럴까?

아군이 대응을 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상황이 진정되지 않는 이유는….

“이놈들, 단순 기습이 아니고 포위망을 허물려고 하는 공격이구나.”

적의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다.

‘작정을 하고 왔군.’

잽싸게 치고 빠지던 이전의 기습과 달리 이건 작정하고 포위망을 허물기 위해서 온 공격이었다.

상당히 많은 병력이 동원되었고 난전도 과감하게 불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위기일까?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기회다.

“제롬! 제롬 어디에 있나!?”

밀턴이 빠르게 자신의 측근인 제롬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한쪽에서 아군을 지휘 중이던 제롬은 밀턴의 명령을 받고 한 달음에 달려왔다.

“적이 자멸을 선택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제롬은 밀턴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좋아! 전 기사단을 이끌고 따라와라. 이대로 적을 섬멸시키겠다!”

“예! 알겠습니다!”

밀턴의 지시를 받은 제롬은 바로 기사단을 집합시켰고 밀턴은 스스로 앞장서서 야습을 나선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돌격하라!”

“오오오오!!”

“주군을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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