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게임-115화 (115/257)

제115화

“전군 공격하라!”

“오늘 안에 요새를 함락시킨다!”

“다른 군에 뒤처지지 마라! 우리가 가장 먼저다!”

밀턴의 명령으로 인해서 리엔츠 요새, 벨루노 요새, 부르니코 요새에 대군이 밀려들었다.

이제까지도 군을 나눠서 공격하고 있기는 했지만 애당초 본격적인 공성은 아니었다.

코브르크 공화국의 특수 석궁은 수성전에 요긴하기 때문에 함부로 공격했다가는 아군의 피해도 늘어난다.

그러니 제대로 공격하는 것은 처음뿐.

그 후에 적이 두 개의 요새를 양보하면 나머지 세 개의 요새는 적당히 공격하는 시늉만 하라는 지시를 내렸었다.

하지만 이제 밀턴의 명령이 떨어지자 본격적인 공성에 들어간 것이다.

제롬이 3만을 이끌고 리엔츠 요새를 공격했고, 바이올렛 공주가 2만을 이끌고 벨루노 요새를 공격했다.

그리고 밀턴 역시 직접 군을 이끌고 부르니코 요새를 본격적으로 공격했다.

딱 3일.

가장 오래 버틴 것은 벨루노 요새였지만 결국 세 개의 요새가 모두 넘어갔다.

이전에 볼로나 후작이 점령한 메라노 요새와 볼차노 요새까지 포함하면 이제 다섯 개의 소요새가 모두 함락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기까지 코브르크 공화국은 어떠한 대응도 보이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못 한 거지요.”

세비안 자작은 밀턴에게 차를 우려 주며 말했다.

“못 했다고?”

“예. 주군이 유격 부대 1만을 괴멸시키지 않았습니까? 그 순간부터 이들은 유격전을 펼칠 여력이 사라진 것입니다.”

세비안 자작의 말에 밀턴은 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 물었다.

“1만의 정예 기병이 적은 피해는 아니지. 하지만 방어 라인의 대응 자체를 하지 못할 정도의 피해는 아니라고 보는데?”

“원래라면 그렇죠. 하지만 전에 말했지 않습니까? 지금 코브르크 공화국의 방어 라인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고?”

“아아…. 그거 그냥 하는 말 아니었나?”

“아니었습니다.”

세비안 자작은 한숨을 내쉬며 설명을 이어 갔다.

원래 후방의 성에는 6만의 예비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예비 병력이 4만으로 줄어 있었다.

그 4만 중에 1만은 소요새를 지키기 위한 지원군으로 사용했다.

이 시점에서 남아 있는 예비 병력은 3만이다.

그 후에 바이슨 중장은 정예 기마 부대 1만을 이끌고 유격전에 나섰다.

하지만 그 부대는 밀턴에게 걸려서 완전 괴멸.

지휘관만 간신히 살아 돌아갔다.

이제 남아 있는 예비 병력은 2만이다.

“지켜야 할 성은 세 개. 그런데 남은 병력이 고작 2만뿐이죠.”

“여유가 전혀 없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애당초 이 방어 라인에서 다섯 개의 요새를 모두 함락시키기 어려운 것은 후방에서 계속해서 지원군이 와서 유격전으로 공성을 방해하기 때문이죠. 5,000은 성내를 지키고 다른 5,000의 기마 부대가 외곽을 두드리는 그런 형식으로 말이죠.”

코브르크 공화국의 철통같은 방어 라인은 어디까지나 유격 부대를 원군으로 잘 운용했을 때에 유지되는 것이다.

원군이 오지 않으면 다섯 개의 소요새는 그냥 함락시키기 쉬운 거점일 뿐이다.

여기까지 이해가 간 밀턴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적이 무리를 해서라도 원군을 보냈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럼 대환영이지요. 적이 무리를 해서 원군을 보냈다면 뒤편에 있는 본성은 거의 텅텅 비었다는 말일 텐데? 별것 있습니까? 그냥 바로 군을 이끌고 가서 성을 점령해 버리면 되는 거죠.”

세비안 자작의 말에 밀턴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이 어떻게 대응하던 간에 세비안은 승리로 이어지는 길을 다 뚫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우리가 다섯 개의 소요새를 모두 함락시킬 동안 원군을 보내지 않은 것은 적들로서는 최선의 대응이었다는 건가?”

“예. 하지만 그래봤자 입니다. 결과는 변하지 않죠.”

“그런가?”

“예. 적은 이미 외통수에 몰렸습니다. 체크메이트까지 시간을 한 수 정도 더 끌었을 뿐. 별 의미는 없습니다.”

“…….”

세비안 자작의 자신감 넘치는 설명에 밀턴은 표정이 조금 굳었다.

‘시간을 끌었다라….’

밀턴에게 이상한 기색이 드러나자 세비안 자작이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주군.”

“적이 시간을 끌었다면, 그 시간을 끄는 것에 나름 이유가 있지 않겠나?”

“예. 아마도 후방에서 원군을 요청하고 원군이 올 때까지 성의 방비를 든든히 하고자 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지금 공화국은 국경 방어에 필요한 병력을 제외하고 남은 병력은 모두 북부 전선에 집중하고 있지. 그러니 원군은 오지 않을 거야. 온다고 해도 소수일 테고 말이야.”

밀턴이 세비안 자작의 말을 자르며 말하자 세비안 자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바로 그겁니다. 주군께서도 이제 전쟁을 읽는 안목이….”

“하지만!”

밀턴은 다시 한번 세비안 자작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세비안 자작에게 말했다.

“후방에서 원군이 오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곳에서 원군이 온다면 어떤가?”

“다른 곳이라면…?”

“지크프리트가 직접 군을 이끌고 이 전선의 상황을 되돌리기 위해서 올 수도 있지.”

“…….”

밀턴의 말에 세비안 자작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밀턴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듯했다.

“크흠…. 주군. 북부에서 약간의 원군이 올 가능성은 있지만 주 전장을 버리고 핵심 사령관이 여기까지 오지는 않을 듯합니다.”

“과연 그럴까?”

“예. 지크프리트가 만약 코브르크 공화국 소속이라면 그런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힐데스 공화국 소속이 아닙니까? 아무리 연합을 만들었다고 해도 자국과 타국의 경계는 존재하는 법이지요.”

“과연 그럴까?”

“주군….”

같은 말을 반복하는 밀턴을 보고 세비안 자작이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세비안 자작에게 밀턴이 말했다.

“느낌이 좋지 않아.”

“…….”

“세비안 자네처럼 논리정연하게 상황을 분석해서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감이 좋지 않아.”

밀턴은 점점 묘한 느낌이 들었다.

지크프리트가 반드시 이 전장에 나타날 것이라는 확신이 말이다.

“이후의 전략은?”

“우선 세 개의 성을 차례대로 공격해서 병력 분포를 알아낼 것입니다. 그리고 병력이 적은 성부터 순차적으로 공격할 예정입니다.”

“군을 세 개로 나눠.”

“세 개로? 주군 설마?”

“지금 즉시 총공격에 나서서 세 개의 성을 바로 공격한다.”

밀턴의 과감한 지시에 세비안 자작은 난색을 표했다.

“주군, 시간이 약간 걸린다고 해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약간의 피해는 감수해야지.”

밀턴은 지크프리트가 개입하기 전에 세 개의 성을 모두 함락시켜 두고 싶었다.

그렇다면 지크프리트가 이 전선에 끼어든다고 해도 상당히 유리한 상황에서 싸울 수 있다.

바둑을 두기 전 반상에 몇 점을 미리 깔아두면 상당히 유리해지는 것처럼 밀턴은 지금 세 개의 성을 먼저 선점하려고 했다.

“주군, 정 그렇다면 본성인 리크인크 성을 제외한 벨스 성과 호르니 성에 공세를 집중시키죠. 군을 3등분하는 것보다는 2등분하는 것이 피해가 적을 것입니다.”

밀턴이 자기 생각을 밀어붙이려고 하는 듯하자 세비안 자작은 절충안을 내놓았다.

“2등분이라….”

“아무리 병력적 우세가 있다고 해도 군을 세 개로 나눠서 공성을 한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우책입니다. 주군. 부디 재고해 주십시오.”

밀턴은 여전히 찝찝했다.

하지만 그건 심정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머리로는 세비안 자작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1왕자 그 멍청이는 세비안 자작의 말을 듣지 않아서 망했지.’

그 멍청이하고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은 절대 피하고 싶었다.

“알겠네. 자네 말대로 하지.”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즉시 군을 나눠서 진격시키겠습니다.”

“좋아. 최대한 서두르도록.”

“옛.”

그렇게 2국 연합군과 스트라부스 왕국의 동부 전선군이 양쪽으로 나눠져서 적을 공격했다.

밀턴이 지휘하는 5만 병력이 벨스 성으로 향했고, 볼로나 후작이 이끄는 5만 병력이 호르니 성으로 향했다.

그리고 세비안 자작은 후방에 남아서 잔여 병력을 이끌고 함락한 요새를 안정화시키며 예비대를 이끌고 대비했다.

“공격하라! 오래 끌 것 없이 오늘 안에 벨스 성을 떨어트린다!”

밀턴은 아군을 독려하며 벨스 성에 공격을 퍼부었다.

밀턴이 이끄는 부대는 레스터 왕국군 4만과 플로렌스 공국군 1만으로 이뤄져 있는 연합군이었다.

그리고 가장 선두에는 밀턴이 가장 아끼는 장수인 제롬이 앞장서고 있었다.

밀턴이 이 전투를 얼마나 방심 없이 대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주군, 공성 병기로 성문을 부수지 않아도 됩니까?”

밀턴의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트라이크가 말했다.

거기에 밀턴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가능하면 온전한 형태로 떨어트린다. 적의 대응을 보건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태야.”

“하긴, 병력이 적긴 적네요.”

트라이크는 밀턴의 말에 동의했다.

지금 저 성에 병력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날아오는 화살을 보건대 터무니없이 적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공화국의 방어 라인에서 후방에 있는 세 개의 성은 그 규모가 상당했다.

전방의 요새에 계속 원군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물자와 병력을 많이 비축할 수 있도록 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수용 병력이 10만을 넘을 정도로 커다란 성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커다란 성에 지금 지키고 있는 병력은 고작 5,000뿐이었다.

아무리 튼튼한 성이라고 해도 그 성을 지키는 병력이 이렇게 적어서야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

“동쪽의 대응이 가장 허술하군. 트라이크. 가서 병사들을 원호해라.”

“예. 알겠습니다. 아! 그거 써도 됩니까?”

트라이크가 기대감을 가득 품고 하는 말에 밀턴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안 돼. 지금 굳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정보를 유출할 필요는 없다.”

“쯧, 아직 실전에 한 번도 투입 못했는데….”

“안 된다면 안 돼. 아니면 자신 없는 것이냐?”

“그럴 리가 있습니까? 가자 애들아. 일할 시간이다!”

그리고 트라이크가 이끄는 궁전차 부대가 출격했다.

“확실히 동쪽의 성벽이 제일 허술하군.”

트라이크는 밀턴의 명령대로 동쪽으로 이동해서 전차 위에서 성벽을 보고 중얼거렸다.

병사가 적어서 날아오는 화살도 적었고, 갈고리도 많이 걸려 있었다.

트라이크는 바로 자신의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아군을 원호한다. 조준!”

트라이크의 명령에 전차 위에 올라타 있는 궁수들이 활을 메겼다.

그리고….

“발사!”

티티티티티티팅!

활시위를 튕기는 맑은 소리와 함께 무수한 화살들이 하늘을 날았다.

“크악!”

“으악!!”

성벽 위에서 분주하고 움직이던 적 병사들은 트라이크의 부하들이 쏘는 화살에 당했는지 잔뜩 움츠러들었다.

“계속 쏴라! 적들을 위축시켜서 아군을 원호해라!”

“옛!”

트라이크의 명령에 궁전차 부대의 궁수들은 쉬지 않고 화살을 발사했다.

전차 부대로 운용하는 만큼 화살의 소지량은 일반 궁수보다 훨씬 많았다.

그리고, 트라이크는 밀턴의 명령에 의해서 이들에게 속사(速射)를 중점적으로 훈련시켰다.

트라이크 본인의 궁술은 위력, 속도, 정확도까지.

삼박자를 골고루 갖춘 신기의 명궁이었다.

하지만 트라이크 수준에 오르는 군수는 만에 하나, 아니 10만 명에 한 명도 안 된다.

그런 수준의 궁술을 일반 궁수들에게까지 요구할 수는 없다.

그래서 밀턴은 하나에만 주력하기로 했다.

화력.

총알도 많이 쏘면 한 발은 맞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정확도는 버리고 단시간에 최대한 많은 화살을 적에게 퍼부을 수 있도록 만들라고 했다.

그 결과 트라이크는 부하들에게 속사를 중점적으로 가르쳤고, 지금 트라이크가 이끄는 궁전차 부대의 궁수들은 10초에 15번의 화살을 쏠 수 있을 정도였다.

트라이크는 10초에 27번을 쏠 수 있지만 그건 괴물의 영역이다.

10초에 15번도 충분히 고수라고 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 결과 트라이크가 이끄는 궁전차 부대가 한 번 화살을 퍼부으면 전쟁터에는 그야말로 소나기가 내리는 듯했다.

딱 5초만 맞고 있어도 온몸이 흠뻑 젖어버리는 그런 소나기 말이다.

그 소나기에 위축된 적들은 성벽 위에 잔뜩 웅크리고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트라이크는 날카로운 눈으로 성벽 위를 살폈다.

부하들이 하는 일이 퍼붓는 것이라면 자신이 하는 일은 노려서 떨구는 것이었다.

그리고….

“저놈인가?”

트라이크의 눈이 반짝였다.

성벽 위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병사들을 독려하는 지휘관을 발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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