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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114화 (114/257)

제114화

바이슨 중장의 석궁기마대가 리엔츠 요새로 이동하는 길목.

그 중간쯤에 도달했을 때.

척후병들은 한 무리의 병력이 전방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뭐지? 어디 병력이지?”

“리엔츠 요새에서 나온 보급 병력 아니야?”

“그런데 깃발이 없어. 누가 가서 확인을.”

말을 하던 척후병의 크게 경악했다.

전방에 있던 정체불명의 부대에서 깃발이 세워진 것이다.

그것은….

“적이다! 연합군이다!”

“즉시 본대에 알려! 연합군 놈들이 나타났다!”

생각지도 못했던 적의 등장이었다.

“대단해. 꼭 전쟁터에서 여우 사냥을 하는 듯하군.”

밀턴은 자신의 옆에 있는 세비안 자작을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

거기에 세비안 자작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별것 아니었습니다.”

‘별것 아니라고? 그럴 리가 있나?’

전후 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밀턴의 입장에서 세비안 자작의 계획은 경탄이 나올 뿐이었다.

우선 세비안 자작은 전군을 이끌고 다섯 개의 요새를 동시에 공격하도록 했다.

다섯 개의 요새가 동시에 공격당하면 코브르크 공화국은 다섯 개의 요새 중에 두 개의 요새를 포기하고 다른 세 개의 요새에 병력을 집중시켜서 방어 라인을 유지했다.

그리고 함락당한 요새를 상대로 유격전을 펼쳐 적에게 꾸준한 손실을 입힌다.

이게 코브르크 공화국의 방어 라인의 시스템이었다.

[솔직히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유기적인 병력 이동을 장점으로 자신의 병과를 철저하게 살린 이 방어 라인은 전략 전술적으로 봤을 때 대단한 걸작입니다.]

세비안 자작은 군사 회의에서 솔직하게 적의 방어 라인을 칭찬했다.

반은 진심이었고 반은 이렇게 적이 대단하니 이제까지 고전했던 동부 전선의 군대가 이상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의 양념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걸로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양념을 더했다.

[사실, 저 역시 평소와 같은 상태였다면 코브르크 공화국의 방어 라인을 뚫는 것에 어려움이 많았을 겁니다. 하지만!]

세비안 자작은 말을 강하게 끊었다가 좌중을 향해서 말했다.

[지금 코브르크 공화국의 상태는 정상이 아닙니다. 그들 역시 북부 전선의 전쟁에 많은 지원군을 보냈고, 그로 인해서 평소보다 병력이 줄어든 상태입니다.]

이 말은 사실이다.

요새에 배치된 병력은 별 차이 없지만 후방의 성에 배치된 병력은 크게 줄어들어 있었다.

원래는 전방의 소요새에 배치된 병력을 제외하고도 세 개의 성에 총 6만의 예비 병력이 상주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4만이 고작이다.

북부 전선에 힘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2만을 원군으로 보낸 것이다.

[아무리 완벽한 방어 체계를 갖춘다고 해도 그 체계를 다루는 것은 인간입니다. 병력 자체가 줄어든 지금 적의 방어 라인은 이전보다 명백하게 약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세비안 자작은 밀턴과 볼로나 후작을 향해서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 작전대로 따라 주신다면, 열흘 안에 적의 방어 라인을 무너트려 보이겠습니다.]

수십 년 동안 뚫리지 않았던 코브르크 공화국의 방어 라인이다.

세비안 자작은 그것을 열흘 안에 무너트리겠다고 장담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말뿐만이 아님을 실제로 증명해 보였다.

적의 원군을 유인해서 그들이 유리한 전투를 하게 했다.

왜?

그렇게 함으로 적을 방심시키고 그들의 자랑인 석궁기마대의 화살을 소모시키기 위해서다.

세비안 자작은 적의 화살이 떨어지는 타이밍을 세심하게 살펴서 그들의 이동 경로를 탐색했다.

어느 정도 예측을 할 수 있었지만 만전을 기하기 위해서 비앙카의 패밀리어 마법을 이용해 확실한 정보를 얻었다.

그 후에는 부르니코 요새를 공격하는 척하고 있던 밀턴이 병력을 빼서 적이 지나갈 길목을 지켰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다.

마치 몰이꾼에 몰려서 사냥꾼의 앞에 나타난 여우처럼 적의 기마대가 밀턴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란돌 세비안의 손바닥 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밀턴은 앞에서 허둥거리는 적을 보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나의 역할이군.”

“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주군.”

세비안 자작은 그렇게 말하며 말을 몰아서 뒤로 살짝 빠졌다.

밀턴의 말대로 이제부터는 밀턴이 나설 차례였다.

레너드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밀턴이 말했다.

“듣자하니 저놈들은 실피드종이라고 해서 제법 빠르다는데…. 자신 있냐? 레너드.”

“푸르릉!”

밀턴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했는지 레너드는 콧김을 뿜으며 흥분했다.

그 모습은 마치 ‘그걸 말이라고 하냐?’라고 하는 듯했다.

“듬직한 녀석.”

밀턴은 갈기를 쓰다듬은 후에 뒤 기마대에 명령했다.

“이빨이 다 빠진 사냥감이다. 혹시라도 저런 것에 물린다면 엄한 벌이 있을 것이다. 알겠나?!”

“옛. 알겠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밀턴은 깊게 심호흡을 하고 전군에 외쳤다.

“돌격하라!!”

“와아아아아아아!!!”

밀턴의 명령과 함께 기마대를 최선두로 해서 전군이 공격해 갔다.

“큭…. 적이 어째서 여기에?”

공격해 오는 적을 보며 바이슨 중장은 크게 당황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시점에 이 루트로 적이 나타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장님.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닙니다. 우선은….”

“알고 있다. 전군 후퇴하라! 맞서지 말고 후퇴한다!”

부관의 말을 자르고 바이슨 중장은 후퇴 명령을 내렸다.

화살이 대부분 떨어진 지금 적과 싸우는 것은 미친 짓이다.

지금은 물러나야 할 시점이다.

다행히도 적은 꽤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우직하게 정면으로 돌격해 오고 있다.

그렇다면 충분히 도망갈 수 있었다.

자신들의 말은 실피드종.

3대 명마 중에서도 빠르기만 놓고 보면 가장 빠른 말이다.

작정하고 달린다면 자신들을 따라잡을 적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게 바이슨 중장의 큰 오산이었다.

“중장님. 적이….”

“이제 떨어졌는가?”

말을 달리며 물어보는 바이슨 중장에게 부관이 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말했다.

“그…. 따라오고 있습니다. 점점 거리가 좁혀지고 있습니다.”

“뭐라고!?”

바이슨 중장은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확실히 아까보다 적과의 거리가 가까워 졌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륙에서 가장 빠른 우리 기마대를 따라잡고 있다고?’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두두두두두….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가 바이슨 중장의 귓가에 올렸다.

우아하고 가볍게 달리는 실피드종과 달리 적들의 기마대는 정반대의 질주를 보였다.

대지를 박차며 다이내믹하게 달리는 그 주법은 지축을 울린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았다.

대지를 박살내듯이 박차며 생기는 고음이 점점 가까워졌고, 이윽고 후미가 공격 거리에 잡혔다.

바이슨 중장은 눈을 부릅뜨고 이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자신들이 뒤에서 추적해오는 적에게 따라 잡히다니?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말…. 말도 안….”

“부숴버려라!!”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바이슨 중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밀턴을 선두로 한 레스터 왕국의 기마대가 적의 후미를 들이박았다.

“우오오오오오!!”

“한 놈도 남기지 마라!”

쾅! 콰직! 콰득!

뼈와 살이 갈라지는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밀턴의 기마대가 적의 후미를 박살냈다.

“크악!”

“막…. 막아…. 커억!”

“끄아아악!”

전황은 일방적이었다.

밀턴이 이끄는 기마대는 적을 처참하게 박살내고 있었고 적은 변변한 반항도 못 하고 있었다.

원래 석궁이 주 무기인 코브르크 공화국의 기마대는 접근전에 약하다.

부무장으로 검을 지참하기는 하지만 속도를 중요시하기 위해 착용한 갑옷은 경갑이다.

일단 거리만 좁혀지면 육탄전에는 취약한 병과였다.

하지만, 그걸 감안한다고 해도 이 광경은 너무 상식을 벗어났다.

마치 파도에 휩쓸려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적들은 일방적으로 쓰러져 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레너드를 타고 있는 밀턴이었다.

레너드는 눈앞에 있는 적의 말들을 신경도 쓰지 않고 무작정 들이박았다.

어마어마한 파워를 자랑하는 레너드에게 한 번 부딪힌 실피드종의 말들은 그대로 튕겨나가며 다리가 부러지고 목이 꺾였다.

개중에는 뒤에서 위협을 느끼고 발로 레너드를 걷어찬 말도 있었는데 레너드는 그걸 그냥 박치기로 받아 버렸다.

콰직!

그러자 오히려 발로 찬 말의 다리가 부러져 버렸다.

말의 피지컬 차이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것이다.

가장 선두에서 날뛰는 레너드의 활약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그 이외에 다른 말들도 굉장한 돌파력을 보였다.

비앙카가 만든 디스트로이종의 파괴력은 대륙의 3대 명마라는 실피드종을 종잇장처럼 구겨버리고 있었다.

밀턴이 이끄는 기마대는 격돌하고 순식간에 적을 반 이상 파괴했다.

“믿… 믿을 수 없다. 이건 악몽이야.”

바이슨 중장은 일방적으로 파괴당하는 아군을 보며 전율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기마대가 바로 자신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후미에서 따라잡혀서 사냥당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때 밀턴의 시선이 바이슨 중장과 마주쳤다.

그리고 밀턴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네가 코브르크 공화국의 바이슨이냐? 나는 레스터 왕국의 밀턴 포레스트다! 승부를 내자.”

보통 밀턴은 일기토를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눈앞에 있다면 이것보다 편리한 방법은 없었다.

‘자, 응해라. 어차피 질 것 같은 전투인데 나한테 이기면 역전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밀턴은 적이 응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중장님 피하십시오!”

“지금은 피해야 합니다! 후방으로 물러나서 재정비를 하십시오.”

바이슨 중장이 허락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측근들이 밀턴을 가로막았다.

“꺼져라!”

밀턴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공화국군을 향해서 과감하게 돌진했다.

“이놈! 죽어…. 크억!”

“끄아아악!”

레너드를 타고 오러가 넘실거리는 검을 휘두르는 밀턴의 돌파력은 대단했다.

개개인의 무력보다는 기마술과 집단 운용에 초점을 맞춰온 코브르크 공화국의 석궁기마대에서 밀턴을 막을 수 있는 상대는 아무도 없었다.

“큭….”

수족 같은 부하들이 밀턴에게 학살당하는 것을 보며 바이슨 중장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다고 해도 현실을 보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인물은 아니었다.

지금 자신이 달려간다고 해도 밀턴을 이길 수 있는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지금 바이슨 중장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부하들의 죽음을 개죽음으로 만들 수는 없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 무모하게 밀턴을 막아서는 부하들을 향해 바이슨 중장이 크게 외쳤다.

“위대한 공화국을 위하여!”

그 외침에 부하들 역시 화답했다.

“언젠가 찾아올 낙원의 완성을 위하여!”

그리고 바이슨 중장은 눈에서 굵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대들의 죽음은 결코 잊지 않겠다!”

그리고 말을 돌려서 도망가는 바이슨 중장을 보고 밀턴이 외쳤다.

“젠장, 비켜 이 광신도 새끼들아!”

승리는 이미 확정적이었지만 여기서 적 지휘관을 놓치면 상당히 찝찝했다.

밀턴은 레너드를 재촉하며 바이슨 중장을 추적하려고 했다.

하지만….

“죽어라! 왕국의 개야!”

“공화주의여 영원하라!!”

“공화국 만세!!”

바이슨 중장의 측근들은 자기 한 몸을 도외시하고 밀턴의 발목을 잡았다.

어느 정도 접근하며 훌쩍 뛰어서 밀턴을 잡고 같이 낙마하려는 놈도 있었고, 얼마 남지 않은 화살로 밀턴을 노린 놈도 있었다.

“비키라니까 이 새끼들아!!”

그런 적들의 필사적인 반항은 밀턴에게 목숨의 위협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 목숨을 대가로 지휘관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에는 성공했다.

“대승을 축하드립니다. 주군.”

전투가 끝난 후에 세비안 자작이 밀턴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대승은 무슨…. 떠먹여 줬는데도 한 입 남겨서 찝찝하기만 하군.”

아쉬워하는 밀턴을 보고 세비안 자작이 말했다.

“바이슨 중장의 목을 치지 못한 게 아쉽습니까?”

“안 그렇다면 거짓말이지.”

“훗, 걱정 마십시오. 그 정도의 무장이라면 놓친다고 해도 별 위협은 아닙니다.”

세비안 자작의 입장에서 봤을 때 바이슨 중장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자기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지고 놀 수 있는 상대였다.

별 위협이 되지 않는 상대가 목숨을 건졌다고 해도 이 전쟁에 문제는 없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입니다. 주군이 적의 정예 병력 1만을 괴멸시켰으니 우리는 다음 수를 두어야 합니다.”

“다음 수라면?”

밀턴의 물음에 세비안 자작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총공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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