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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112화 (112/257)

제112화

일단 싸우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사령부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전황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이슨 중장이 방어를 담당하고 있는 이 방어 라인에는 체계적이고 신속한 보고 시스템이 잡혀져 있었다.

코브르크 공화국의 요새의 상황 보고는 1에서 10단계로 숫자로 보고하게 되어 있다.

간략하고 정확한 보고를 위해서 일부러 그런 지시를 내린 것이다.

1~3은 현장에서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공격.

4~6은 원군이 필요한 상황.

7~10은 원군이 와도 막을 수 없으니 후퇴해야 할 상황.

이렇게 정해둔 암호로 상황 보고를 받고 빠르게 대응하는 게 코브르크 공화국의 방어 시스템이었다.

전령은 빠르게 상황을 보고했다.

“리엔츠 요새 5입니다.”

“벨루노 요새 5입니다.

“브루니코 요새 2입니다.”

“메라노 요새 6입니다.”

“볼차노 요새 5입니다.”

보고를 받은 바이슨 중장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다섯 개의 요새 중에 네 개나 원군을 필요로 한다는 건가?’

생각보다 적들이 작정을 하고 쳐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코브르크 공화국의 방어 시스템에 의하면 요새의 활용성을 살려 놓으려면 다섯 개의 요새 중에 세 개 이상은 살려 놓기를 권하고 있었다.

지금 세 개의 성에 머물고 있는 예비 병력은 4만.

이것을 나눠서 위급 상황에 빠져 있는 네 개의 성을 구해야 했다.

‘브루니코 요새를 제외한 나머지 네 개의 요새 중에서 두 개를 더 살려야 한다. 그렇다면….’

바이슨 중장은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메라노 요새에 상주 중인 2,000의 병력은 후퇴한다. 그리고 후방에 있는 벨스 성의 5,000의 병력을 차출하라. 합해서 총 7,000의 원군을 리엔츠 요새를 보낸다.”

이렇게 해서 메라노 요새를 포기하고 그 대신에 리엔츠 요새를 지킬 수 있다.

이어서….

“볼차노 요새에 후퇴 명령을 내리고 호르니 성에서 5,000의 원군을 차출. 벨루노 요새로 합류시켜라.”

바이슨 중장은 빠르게 명령을 내려서 다섯 개의 요새 중에서 두 개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세 개를 살리는 명령을 내렸다.

“빠르게 움직여라. 방어 시스템이 적의 공격보다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효과가 떨어진다.”

“옛! 알겠습니다.”

바이슨 중장의 말에 전령들이 바쁘게 튀어 나갔다.

그리고 바이슨 중장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며 중얼거렸다.

“왜 우리 코브르크 공화국의 방어 라인이 불락(不落)의 철벽인지 보여주마.”

바이슨 중장의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코브르크 공화국의 병력 배치는 다음과 같았다.

리트인크 성 - 2만

벨스 성 - 1만

호르니 성 - 1만

리엔츠 요새 - 3,000

벨루노 요새 - 3,000

브루니코 요새 - 2,000

메라노 요새 - 2,000

볼차노 요새 - 3,000

하지만 스트라부스 왕국의 대군이 다섯 개의 요새를 동시에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 그 배치도는 빠르게 전환되었다.

리트인크 성 - 2만

벨스 성 - 5,000

호르니 성 - 5,000

리엔츠 요새 - 1만

벨루노 요새 - 1만 1,000

브루니코 요새 - 2,000 상주.

메라노 요새 - 포기.

볼차노 요새 - 포기.

두 개의 요새를 포기하는 대신에 다른 두 개의 요새에 병력을 추가시켜서 방어 라인을 지킨 것이다.

거기다 리엔츠 요새와 벨루노 요새에 보낸 원군은 언제든지 브루니코 요새에 파견할 수 있도록 준비도 해 놓은 상태였다.

실로 절묘한 대응.

신속하게 움직인 코브르크 공화국의 대응에 연합군의 공격은 다섯 개의 소요새 중에 두 개를 함락하는 것에 그쳤다.

메라노 요새와 볼차노 요새.

이 두 개의 요새를 점령하기는 했지만 큰 이득은 아니다.

사실 이것도 점령했다기보다는 적이 물러나서 차지한 것뿐이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요새를 점령해 봤자 별 의미는 없었다.

코브르크 공화국이 만들어둔 소요새는 대군을 주둔시키기 어렵고 성벽이 낮아서 방어하기에 적합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코브르크 공화국은 이 두 개의 요새를 격렬하게 공격하며 적들을 괴롭힐 것이다.

이제까지 코브르크 공화국이 계속 써 오던 전법이었고, 스트라부스 왕국으로서는 알면서도 당해왔던 전법이었다.

“전군! 출격한다!”

바이슨 중장은 자신이 직접 1만의 기병을 이끌고 리트인크 성에서 메라노 요새로 출진했다.

그리고 전령을 빠르게 띄워서 리엔츠 요새와 벨루노 요새에서도 각각 3,000씩의 기마를 출전하게 했다.

그렇게 병력을 다 합쳐도 1만 6천밖에 되지 않지만 괜찮았다.

애당초 목적이 요새의 탈환이 아니라 요새를 지키고 있는 적을 공격해서 괴롭히는 것이니 말이다.

“중장님! 메라노 요새가 보입니다.”

전령의 보고에 바이슨 중장은 말 위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침략자들에게 본때를 보여준다. 공격!!”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마병은 말을 돌려서 앞으로 달렸다.

단, 그들은 메라노 요새의 정면으로 다가가지 않고 비스듬하게 성벽의 측면을 끼고 달렸다.

“볼로나 후작님. 적들이 성의 오른쪽에 접근 중입니다.”

“모든 병사들은 밀집 대형을 유지해서 방패를 겹쳐라!”

적의 모습에 볼로나 후작은 바로 명령을 내렸다.

적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볼로나 후작은 잘 알고 있었다.

코브르크 공화국이 유격전만 되면 늘 써먹는 수법이니 말이다.

메라노 요새의 성벽을 끼고 돌던 1만의 기마병은 어느 정도 거리가 되자 전원 석궁을 꺼내 들었다.

“성벽 위의 병사를 노려라! 조준!”

철컥.

지휘관의 명령에 1만의 기마병이 석궁을 조준했다.

그리고….

“쏴라!”

명령이 떨어지고 1만의 화살이 하늘을 날았다.

“온다!”

“방패 확실하게 들어라!”

“팔에 화살 맞았다고 방패 놓치는 놈은 죽여 버리겠다!”

지휘관들이 병사들에게 엄포를 놓기 무섭게….

퍼퍼퍽! 퍽퍽퍽! 퍼억! 퍽퍽!

“크윽!”

“으읏….”

“아악!”

화살비가 병사들에게 쏟아졌다.

“참아라! 참아야 한다!”

“방패 꽉 잡아! 놓치면 죽는다!”

지휘관들은 이를 악물고 병사들을 독려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피해는 생기고 있었다.

‘준비를 철저하게 했는데도 이 정도라니….’

볼로나 후작은 병사들의 피해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도 알고는 있었다.

코브르크 공화국의 석궁은 무척 특수한 것이다.

특수한 제련법으로 만든 부품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탄성이 뛰어나서 사거리가 보통 석궁의 두 배에 달했다.

사거리에 비례해서 위력 역시 더 뛰어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코브르크 공화국의 특수 석궁은 몹시 탐나는 물건이었다.

여러 번 물건을 입수해서 연구해 봤지만 핵심 부품의 재질을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특수한 제련법은 코브르크 공화국의 국가 기밀로 엄중하게 관리하고 있었고 같은 공화국에도 결코 공개하지 않을 정도였다.

가끔 시중에 이 물건이 나오면 통상 석궁보다 열 배는 더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는 할 정도였다.

저 석궁으로 군사를 무장시킬 수 있는 나라는 코브르크 공화국뿐이었다.

‘그나마 연사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지.’

볼로나 후작은 이 공격이 끝날 때까지 병사들에게 방패를 들게 하고 꾹 참게 했다.

지금 그의 역할은 함락시킨 두 개의 요새를 지키는 것이다.

딱 사흘.

사흘만 지키면 상황을 한 방에 뒤집을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은 다소 피해를 당한다고 해도 무조건 참아야 했다.

그런데 그때….

“공화국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자!”

“우와아아!!”

메라노 요새의 문이 열리면서 한 무리의 기마대가 뛰쳐나갔다.

볼로나 후작은 깜짝 놀랐다.

“누구냐!? 명령도 없이 뛰쳐나간 놈이!”

“베트릭 자작이 자신의 기사단을 이끌고 출격했습니다. 그리고 기마병 1,000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이 멍청한…. 명령도 하지 않았는데 공격을 했다고!?”

볼로나 후작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베트릭 자작이 누구인지는 이름을 듣고 나니 생각났다.

올해 막 성인식을 치르고 작위를 이어 받은 애송이였다.

좋게 말하면 용맹하고 나쁘게 말하면 머리가 나빴다.

지나친 호전성과 더불어서 항상 공을 세우고 싶어서 안달이 난 젊은 무장이었다.

일방적으로 공격당하기만 하는 상황에 못 견뎌서 자신의 병력을 이끌고 요새 밖으로 뛰쳐나간 듯했다.

“그 멍청이! 내가 참으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볼로나 후작은 요새의 벽이 위에서 베트릭 자작의 기마 병력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좋아. 잡을 수 있다.”

베트릭 자작은 선두에서 기마대를 이끌며 이를 악물었다.

그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익스퍼트의 경지에 이르렀고, 자신감에 가득 찬 젊은 귀족이었다.

하지만 자신감이라는 것은 때와 장소를 잘못 가리면 나쁜 결과를 내기도 하는 법이다.

요새 안에서 웅크리며 적의 공격을 받던 그는 이렇게 당하느니 기마대를 이끌고 적을 공격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을 했다.

적의 석궁은 위력은 대단하지만 연사력이 짧다.

자신의 기마대를 이끌고 빠르게 돌격해서 잡을 수만 있다면 큰 공을 세울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그건 생각이라기보다는 망상이다.

이렇게 되면 좋겠다, 라는 바람을 자기 안에서 합리화시켜서 가능하겠다, 라는 희망을 품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자신이 승승장구하는 모습만 가정하는 인간은 절대 책략을 짜서는 안 된다고 한다.

베트릭 자작은 그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어쨌든 그는 공적에 눈이 멀어서 병력을 이끌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상부의 명령을 어기기는 했지만 큰 공을 세우면 모두 용서, 아니 오히려 큰 상을 받을 것이라는 이상한 망상까지 더해져서 용감하게 말이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코브르크 공화국의 기마병이 유격전이 특화되어 있는 것은 사거리가 긴 특수 석궁 때문만이 아니다.

“바이슨 중장님! 적 기마대가 돌격해 옵니다.”

전령의 보고를 받은 바이슨 중장은 피식 웃었다.

“훗, 현장이 익숙하지 않은 초심자의 폭주인가?”

코브르크 공화국의 석궁기마대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면 저런 무모한 돌격은 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저렇게 돌격해 온다는 것은 저 기마대를 이끌고 있는 놈이 아직 이 전장에 익숙하지 않은 초심자라는 것이다.

“고맙게도 날아든 불나방이다! 한 마리도 놓치지 마라!”

“옛!”

바이슨 중장의 명령에 코브르크 공화국의 석궁기마대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베트릭 자작님! 적의 공격이 이쪽으로 조준되었습니다.”

“방패 들어!! 이 악물고 버틴다!”

베트릭 자작은 부하들에게 명령을 하고 자신도 두꺼운 카이트 실드를 전면에 들었다.

그리고 그는 이를 악물었다.

‘한 번 정도는 참는다.’

적의 석궁이 사정거리가 길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기존의 석궁보다 연사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최초의 한 번만 버티고 빠르게 전력질주해서 적의 후미를 잡는다, 라는 것이 베트릭 자작의 계산이었다.

‘일단 거리만 좁히면 석궁으로 무장한 기병 따위는 문제없어.’

그리고 베트릭 자작의 기마대에 석궁병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방패! 들어!”

“정신 바싹…. 크윽….”

퍼퍽! 퍼억! 퍽!

“크아악!”

“히히힝!”

화살이 날아들자 베트릭 자작의 기마대는 큰 피해를 입었다.

사거리가 긴 특수 석궁은 접근 거리가 되면 파괴력이 오히려 늘어난다.

기사의 갑옷도 뚫어 버리고, 방패도 관통할 정도로 말이다.

베트릭 자작의 기마대는 적의 무기가 가장 큰 파괴력을 발휘하는 거리에서 공격을 얻어맞은 것이다.

단 한 번의 공격에 기마대의 절반가량이 나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베트릭 자작은 이를 악물었다.

뿌드득!

“겁먹지 마라! 나를 따르라!!”

그는 용맹하게 앞으로 뛰쳐나갔다.

이렇게 된 이상 어차피 퇴로는 없었다.

남은 절반이라도 이끌고 적을 잡아야 했다.

그러나….

“베트릭 자작님! 적들이 달아납니다.”

적들은 접근전을 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들은 그대로 말을 몰아서 베트리 자작에게서 멀어져 갔다.

“큭…. 잡아라! 놓치지 마라!”

베트릭 자작은 부하들에게 명령하고 선두에서 말을 몰았다.

그의 애마는 화살을 몇 대 맞았지만 그래도 주인의 의지에 응해서 앞으로 달렸다.

하지만….

“이…. 이럴 수가….”

달리면 달릴수록 적은 멀어져만 갔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코브르크 공화국의 석궁기마대가 유격전에 최적화되어 있는 이유 중에 하나다.

이들이 타고 있는 말은 실피드 종이라고 해서 대륙에서 3대 명마로 분류되는 준마들이다.

실피드, 팔라딘, 스트롬.

이 세 개의 품종을 대륙에서는 3대 명마라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실피드 종은 평지에서의 속도에 최적화되어 있다.

다른 말에 비해 체중은 가벼운데 다리는 오히려 더 길다.

전체적으로 마른 체격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불필요한 군살이 빠지고 근육이 완벽하게 달리기에 적합하게 발달한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3대 명마 품종 중에서도 속도 하나만큼은 최고라고 평가받는 것이 실피드 종이다.

그리고 코브르크 공화국의 석궁기병은 전원이 이 실피드 종을 타고 있다.

무장을 최대한 가볍게 하고 실피드 종의 등 위에서 원거리 속사 공격만 하면서 일방적으로 치고 빠지는 전투.

난전을 철저하게 피하는 이 스타일이야말로 코브르크 공화국의 최강 유격부대 석궁기병대인 것이다.

“쏴라!”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다시 한번 석궁이 하늘을 날았다.

“제길!”

베트릭 자작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내린 결정이 얼마나 무모했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잘못된 판단은 참혹한 대가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크악!”

“억…. 아악!”

“살…. 살려…. 커억!”

사방에서 죽어가는 아군을 보며 베트릭 자작은 최후까지 용감하게 돌격했다.

하지만 그런 그 역시 집중되는 석궁의 공격에 버티지 못하고 결국은 말에서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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