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화
밀턴은 동부 전선에 합류하고 즉시 모든 전선을 안정화시켰다.
호른 성과 카르노 성.
동부 전선의 최전방에 있는 두 성에 병력을 추가 배치하고 방어를 단단히 하는 모습에 공화국은 더 이상 섣부른 공격을 하지 못했다.
그동안 병력의 예비대가 줄어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동부 전선은 몹시 튼튼한 방어선을 가지고 있다.
최전방에 호른 성과 카르노 성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고, 그 뒤편에 안데마르 성과 바이슨 성, 루체른 성이 굳건하게 바치고 있었다.
이 다섯 개의 요새 중에 하나라도 무시하고 국경을 넘으려고 했다간 보급선을 유지할 수 없는 구조로 방어 라인이 구축되어 있었다.
회색 산맥이라는 천연의 방패가 있는 서부 전선과 달리 동부 전선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사람이 해야 했다.
그리고 이런 점은 코브르크 공화국도 마찬가지였다.
코브르크 공화국의 방어 라인은 세 개의 성과 다섯 개의 소요새로 이뤄져 있었다.
세 개의 성을 삼각형으로 배치하고 그 전방에 다섯 개의 작은 요새를 만들어서 국경을 수비하고 있었다.
이 여덟 개의 관문을 무시하고 들어간다면 그때는 중간에 보급선이 잘리고 괴멸하는 구조였다.
동부 전선을 공략하고자 마음먹었다면 이 여덟 개의 관문 중에 최소한 두 개의 성은 무너트려야 얘기가 공략이 가능했다.
“우리 첩보에 의하면 적들의 병력 구성은 다음과 같소.”
볼로나 후작은 밀턴과 세비안 자작에게 적의 병력 구성도를 보여주었다.
리트인크 성 - 2만
벨스 성 -1만
호르니 성 - 1만
리엔츠 요새 - 3,000
벨루노 요새 - 3,000
브루니코 요새 - 2,000
메라노 요새 - 2,000
볼차노 요새 - 3,000
‘총 병력은 5만 3천인가? 생각보다 많군.’
공화국의 전력이 북부에 비축된 것치고는 상당한 병력을 남겨둔 코브르크 공화국이었다.
그리고 지도를 살피면서 세비안 자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굉장히 골치 아픈 구조로 요새를 배치해 놨군요.”
“그렇네. 한눈에 알아보겠는가?”
“예. 요새를 공격해도 다른 요새에서 하루도 안 되는 거리에서 원군이 도착하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요새를 빼앗는다고 해도 공격의 기점으로 삼기에는 부족하군요.”
“맞네. 일부러 그렇게 지어 놓은 것이지.”
코브르크 공화국의 방어 라인은 굉장히 치밀하게 짜여 있었다.
우선 세 개의 성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먼저 요새들을 장악해야 했다.
작은 요새라고 무시하고 바로 성을 공격했다가는 요새의 병력에게 배후를 공격당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다섯 개의 소요새가 굉장히 까다롭게 지어져 있다.
우선은 거리.
이 다섯 개의 요새들은 무작위로 지어진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절묘하게 백업할 수 있는 거리에 지어져 있었다.
하나의 요새가 공격당하면 적어도 두 개 이상의 요새에서 원군이 와서 도울 수 있도록 말이다.
“작정하고 공격을 하면 요새를 함락시킬 수도 있겠지만, 그 후가 오히려 더 문제일세. 이 요새는….”
“일부러 방어하기 어렵게 지어져 있겠죠. 요새의 방벽은 낮고 그리 견고하지 않을 겁니다. 결정적으로 대군을 주둔시키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규모로 지어져 있을 겁니다.”
세비안 자작의 막힘없이 이어지는 말에 볼로나 후작은 감탄하며 말했다.
“미리 조사를 한 것인가?”
“아닙니다. 하지만 후작님이 주신 자료를 보아하니 자연스럽게 짐작이 갔습니다.”
볼로나 후작이 준 자료에 의하면 다섯 개의 소요새에는 병력이 많이 상주하고 있지 않다.
전부 2,000에서 3,000 정도의 병력만 상주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요새의 규모가 대군을 포용할 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방어력이 낮은 요새를 함락시켜 봤자 지키기는 어려울 테죠. 오히려 주변의 요새와 후방의 성에서 나오는 병력에 맞서서 어려운 전투를 해야 할 겁니다. 맞습니까?”
“정확하네. 놈들에게 있어서 이 다섯 개의 소요새는 반드시 지켜야 할 방어 거점이 아니야. 오히려 유격전을 위한 미끼 역할이지. 지키기 어렵다 싶으면 스스럼없이 포기했다가 그 후에 요새를 공격해서 우리 군이 못 버티게 해 버리지.”
회색 산맥이라는 지리적 이점이 없는 코브르크 공화국이었지만 그들은 스트라부스 왕국과 대치하면서 철통같은 방어를 자랑하고 있었다.
무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코브르크 공화국은 자신들의 국경을 굳건하게 지켜왔을 정도니 말이다.
또한 코브르크 공화국은 이 방어 라인을 최적으로 살릴 수 있는 병력을 거느리고 있었다.
바로 해군이었다.
힐데스 공화국의 자랑이 산악병이라면 코브르크 공화국의 자랑은 해군이다.
국경을 단단하게 굳힌 후에 해군들이 스트라부스 왕국의 동쪽 연안을 괴롭히는 것이 코브르크 공화국의 전쟁 스타일이었다.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국경의 방어 라인이 몹시 튼튼하다는 생각이 있기에 해군력에 군사 투자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방어 라인을 구상한 것은 지금은 죽고 없는 로스칸 총통이라는 남자로 그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전략의 귀재라고 평가받았다.
코브르크 공화국에서는 영웅으로 추앙받는 그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낸 걸작이 바로 이 방어 라인이다.
그가 죽고 사라지고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스트라부스 왕국은 이 방어 라인을 뚫지 못했다.
볼로나 후작은 세비안 자작을 향해서 기대감을 가지고 말했다.
“동부 전선 공략을 주장한 것은 자네지. 그렇다면 이 지긋지긋한 방어 라인을 뚫을 계책도 있겠지?”
볼로나 후작의 말에 세비안 자작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코브르크 공화국의 방어 라인은 대단한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 없다는 건가?”
실망감에 눈살을 찌푸리는 볼로나 후작에게 세비안 자작이 말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지금 코브르크 공화국의 방어 라인은 평소와 같은 상태가 아닙니다. 지금 이들은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약점? 설명해 보게.”
세비안 자작은 지도를 살피면서 말했다.
“적들의 실수, 그것은….”
세비안 자작은 지금 공화국의 방어 라인이 가지고 있는 약점과 그 약점을 공략하기 위한 전술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 작전은 치밀하고, 대범했으며, 무엇보다 높은 성공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설명이 끝났을 때 볼로나 후작과 그 참모진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란돌 세비안….’
‘이 남자 천재인 건가?’
‘어떻게 우리 왕국으로 끌어들일 수 없을까? 이런 인물이 고작 자작이라니?’
“크흠…. 세비안 자작.”
“예. 질문하실 부분이 있습니까?”
“아니, 그게 아니고….”
볼로나 후작은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세비안 자작의 뒤편에 있는 밀턴을 보고 말을 아꼈다.
“아니, 아닐세.”
이때 볼로나 후작은 결심했다.
이목이 적을 때 세비안 자작에게 접선을 해서 이적 제의를 해보기로 말이다.
동맹국을 상대로 이적 제의를 한다는 것은 무례를 넘어서 균열을 만들 수도 있는 행위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란돌 세비안이라는 천재가 너무나 탐이 났다.
‘보물도 주인이 따로 있는 법이지. 레스터 왕국 같은 소국의 자작보다는 우리 스트라부스 왕국의 백작이 훨씬 좋을 것이다.’
그런 볼로나 후작의 모습을 보고 밀턴은 피식 웃었다.
‘티 난다. 이 아저씨야.’
솔직히 밀턴이 보기에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이 무관도 아니고 전선 하나를 총괄하고 있는 볼로나 후작이다.
유능한 작전 참모라는 것이 얼마나 귀중하고 탐이 날지는 뻔했다.
하지만 밀턴은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란돌 세비안]
책사 LV.5
무력 - 11 통솔 - 82
지력 - 95 정치 - 85
충성 - 93
특성 - 전략, 전술, 육감, 냉철, 언변.
전략 LV.9(MAX) : 전쟁의 전체적인 판도를 읽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전술 LV.9(MAX) : 전투에서 발휘하는 모든 책략의 완성도가 높아지며 큰 효과를 발휘한다.
육감 LV.7 : 자신이 지휘하는 군에게 위급한 상황이 닥치는 것을 사전에 감지할 수 있다.
냉철 LV.8 : 유혹이나 매수 등에 저항력이 높으며 죽음의 위기를 눈앞에 두고도 초연할 수 있다.
언변 LV.7 : 대화를 통해서 다른 사람을 설득, 혹은 굴복시킬 수 있다. 자존심이 강한 상대에게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보다시피, 지금 세비안 자작의 능력치는 이 정도다.
전략 전술의 특성 레벨이 모두 끝까지 올랐고, 무력을 제외한 다른 능력치는 모두 80을 넘었다.
그리고, 충성 수치가 무려 93이다.
이제까지 밀턴의 경험을 보건대 충성 수치가 80을 넘으면 배신의 걱정은 없었다.
그리고 90을 넘으면 그야말로 자기 목숨보다 주군에 대한 의리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볼로나 후작이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고 해도 세비안 자작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니 밀턴도 안심하게 전쟁의 수행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이제 작전은 정해졌으니 실행만 하면 되겠군. 그럼, 부대부터 나누도록 하지.”
밀턴의 제의에 볼로나 후작이 말했다.
“좋소. 우리 군이 리엔츠 요새와 벨루노 요새를 맡겠소.”
“그럼 우리가 남은 세 개를 맡도록 하지요. 부디 시기를 맞추는 것에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알고 있소.”
그날, 루체른 성에서는 볼로나 후작과 밀턴이 이끄는 대군이 출진했다.
2국 연합군 5만과 스트라부스 왕국군 3만이 더해진 8만의 대군이 다섯 갈래로 나눠서 출진했다.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 봐라.”
코브르크 공화국의 사령부에 갑작스런 비보(飛報)가 날아왔다.
“스트라부스 왕국에서 갑자기 맹공을 퍼붓고 있습니다. 다섯 개의 소요새 전부에 공격이 퍼부어지고 있습니다.”
전령의 보고를 듣고 코브르크 공화국의 국경 책임자인 바이슨 중장은 이를 악물었다.
“다섯 개 요새를 동시에? 지금 스트라부스 왕국의 동부 전선에 그 정도의 여력이 있다는 말인가?”
“정보에 의하면 적진에 외국의 군대가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외국의 군대?”
“예. 레스터 왕국의 밀턴 포레스트라는 남자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밀턴 포레스트라고?”
바이슨 중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이름은 알고 있는 이름이다.
아니, 이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공화국의 전 국경의 책임자들에게는 한 가지 밀명이 내려왔다.
밀턴 포레스트가 전전에 등장하면 즉시 중앙 사령부에 보고할 것, 이라는 내용의 명령이었다.
‘지크프리트라는 애송이가 특별히 의식하는 적이다 이건가?’
바이슨 중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공화국 3국이 연합해서 스트라부스 왕국과 일전을 벌이고 있는 이 전쟁은 공화국 군인이라면 누구나 공을 세우고 싶어 하는 화려한 무대였다.
그러나, 그 부대에서 바이슨 중장은 배제당했다.
코브르크 공화국의 국경을 지킬 수 있는 책임자로 가장 적합하다는 이유를 들어서 말이다.
그리고 바이슨 중장은 그 이유를 납득하지 않았다.
화려하게 공방을 주고받고 있는 북부 전선과 달리 동부 전선에서 받은 명령은 전선을 안정화시키면서 은근히 압박을 가하라, 라는 수수한 명령뿐이었다.
전공에 목이 마른 군인으로서 바이슨 중장으로서는 절대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은근이 공격의 수위를 높여 스트라부스 왕국의 동부 전선을 압박하고 있었다.
북부 전선이라는 화려한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고 해도 동부 전선에서 그에 못지않게 큰 공을 세워 보겠다는 욕심이었다.
하지만 그건 과욕이었다.
지크프리트는 바이슨 중장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의 능력은 어디까지나 공격이 아니라 수비에 특화되어 있었다.
특히, 코브르크 공화국의 방어 라인에서 평생을 복무해온 덕분에 이 방어 라인을 유기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 능숙했다.
그의 군인 인생에서 세운 전공의 대부분은 이 동부 전선의 국경 방어 라인을 이용해서 적을 격퇴시킨 것이었다.
최적의 역할을 맡겨 주었음에도 바이슨 중장은 그것을 납득하지 못했다.
오히려 지크프리트라는 외국의 애송이가 자신의 재능을 질투해서 한직으로 내몰았다는 생각까지 했다.
당치 않은 착각이었지만, 시기심에 눈이 먼 본인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 동부 전선에 지크프리트에게 승전을 거둔 적이 있다는 밀턴 포레스트가 나타난 것이다.
순간 바이슨 중장은 생각했다.
‘내가 여기서 밀턴 포레스트를 잡아내면 그 힐데스 공화국의 애송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상상만 해도 통쾌함에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는 순간 밀턴의 등장을 중앙에 보고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호기롭게 외쳤다.
“사지로 들어온 건방진 놈들에게 심판의 철퇴를 떨어트리겠다. 지금 즉시 전황을 상세 보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