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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107화 (107/257)

제107화

‘아! 그러고 보니 공을 세울 기회를 준다고 했지?’

익숙한 제롬에게 명령을 내렸지만 바이올렛 공주에게도 충분히 내릴 수 있는 명령이었다.

후퇴하는 적의 뒤를 쳐서 전과를 올리는 것은 기마병에게 있어서 가장 안전한 임무이기도 했다.

동맹국의 전력을 확인도 할 겸 나쁘지 않은 기회라 생각한 밀턴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제롬, 바이올렛 공주님과 그 휘하의 기사단도 함께 간다. 확실히 챙기도록 하라.”

“예. 알겠습니다.”

혹시 몰라 제롬에게 한마디 당부도 잊지 않은 밀턴이었다.

이때 밀턴은 미처 몰랐다.

바이올렛 공주에게 당부의 한마디 따위는 필요 없다는 것을 말이다.

“돌격! 돌격!! 돌격!!!”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전장에 울렸다.

그리고 바이올렛 공주는 단기로 기마 전열의 최선두를 치고 나왔다.

“바이올렛 공주님. 너무 앞으로 나갔습니다. 대열로 후퇴하십시오.”

제롬이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돌격! 전 기마대는 내 뒤를 따라라!!”

바이올렛 공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렸다.

그리고 그녀의 명령이 떨어지자 플로렌스 공국의 기사단이 마찬가지로 대열의 앞으로 치고 나와서 바로 그녀의 뒤에 따라 붙었다.

“뒤쳐지지 마라!”

“공주님에게 뒤처지면 안 된다!”

“이 악물고 달려라. 절대 뒤처지면 안 된다!”

그녀의 저돌적인 돌격에 플로렌스 공국의 기사들은 저마다 서로에게 말했다.

뒤처지지 말라고….

적에 대한 염려를 하는 게 아니라 이들은 공주의 돌격에 못 따라가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만약 자신들이 뒤따라가지 않으면 바이올렛 공주는 혼자서라도 적진에 뛰어든다는 것을 말이다.

‘고작 50기 정도의 기마로…. 위험하지 않을까?’

제롬은 순간 망설였다.

아무리 후퇴하는 적의 뒤를 치는 것뿐인 안전한 임무라고 해도 너무 소수의 병력이 앞으로 치고 나가고 있다.

물론 정예 기사단인 건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

돌격의 선두로 일국의 공주가 나선 이상 안전에는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는가?

‘주군이 한마디 하시기도 했고….’

마음먹은 제롬은 자신도 앞으로 튀어 나갔다.

“기사단 2분대와 3분대는 나를 따르라. 엄호에 들어간다.”

“옛!!”

“옛!!”

하지만 제롬의 배려가 닿기도 전에 바이올렛 공주가 이끄는 기사단은 그대로 적의 병력에 돌입했다.

“죽어라!”

“뒤져라. 공화국의 개들아!”

콰직! 우지직! 뻐어억!

뼈와 살이 갈라지는 살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의 들이박다시피 달려간 플로렌스 공국의 기사단은 일방적으로 적을 물리치고 있었다.

“크아아악!”

“도…. 도망…. 커억….”

공화국군은 그런 기사단의 공격에 변변한 대응도 하지 못하고 쓰러져 갔다.

마치 파도에 모래성이 쓰러지는 것처럼 적을 압도하는 플로렌스 공국의 기사단을 보며 제롬은 감탄했다.

‘진짜 정예군.’

“죽어라. 공화국 새끼들아!!”

이제 아군의 걱정은 필요 없어 보였다.

제롬도 한 박자 늦게 뛰어들어서 손을 거들었다.

“우리도 뒤처지지 마라!”

“우오오오오!!”

콰지직! 쾅! 뻐억!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공화국의 후열은 쑥대밭이 되어 갔다.

“아군의 피해가 너무 큽니다.”

“큭…. 2중대는 나를 따르라. 후열을 진정시킨다.”

“옛!”

아무리 후퇴 중이라고 해도 병사들의 피해가 너무 크자 공화국 측에서도 대응하는 자가 나왔다.

중위급 지휘관 한 명이 일개 중대를 거느리고 후방의 적에게 맞서려고 했다.

이건 무척 어려운 임무다.

후방으로 가서 적의 공격을 차단하고 기세를 멈춰야 한다.

성공한다면 살려낼 병사의 숫자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단, 본인과 본인이 지휘하는 병력의 생존율은 지극히 낮아지지만 말이다.

즉, 이런 역할을 맞는 인물은 둘 중에 하나였다.

실력에 자신이 있는 인물이거나, 혹은 죽음을 각오한 인물이거나.

그리고 이 남자는 전자였다.

“토리온 중위님을 따라라!”

“아군을 구한다! 2중대와 중위님을 보조하라!”

토리온 중위는 뛰어난 현장 지휘관으로 병사들에게 신망이 높았고 개인의 실력도 익스퍼트 중급에 도달한 인재였다.

병사들은 그 이름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기에 직접 명령을 받은 2중대 말고도 상당수의 병사들이 그에게 동참했다.

‘할 만하다. 여기서 흐름을 바꾸자.’

아군의 적극적인 협조에 힘을 입어서 토리온 중위는 냉정한 시선으로 적을 살폈다.

여기서 적의 추적을 막으려면 역시….

‘저 여기사가 지휘관이구나.’

가장 선두에서 사납게 날뛰고 있는 바이올렛 공주를 목표로 삼은 토리온 중위였다.

그는 말을 몰아 달려가며 말했다.

“거기 여기사! 이름을 밝혀라!”

한창 적병을 무찌르던 바이올렛 공주는 토리온 중위의 돌격을 보고 매섭게 외쳤다.

“플로렌스 공국의 바이올렛 론 플로렌스 공주다.”

그녀의 말에 토리온 중위는 잠시 움찔했다.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더 거물이었던 것이다.

‘차라리 잘됐군.’

그는 일부러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바이올렛 공주에게 말했다.

“하하하…. 내가 살다 보니 왕국의 공주를 상대해 보는군. 특별히 사로잡아서 우리 공화국군의 병사들을 위문하는 데 네년의 몸뚱아리를 사용해야겠다.”

천박하고 야만적인 도발이었지만 토리온 중위로서는 나름 냉정하게 도발을 한 것이다.

상대의 신분은 공주.

보아하니 검을 제법 익힌 것 같지만 그래도 공주라면 왕성 안에서 곱게 자랐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천박하고 추잡한 도발을 했다.

저 공주가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을 것 같은 그런 도발 말이다.

이걸로 그녀가 여성으로서 수치심을 느끼면 냉정함을 흐트러트리고 일기토로 유인할 수 있다, 라는 계산하에 한 말들이었다.

그런데….

“뭐!? 이 X 같은 새끼가 아가리에 XXXX를 쳐 박았나? 뚫린 입이라고! 이 XX X XXX XX XXX XXXXXX….”

바이올렛 공주의 입에서는 어지간한 용병들도 잘 하지 않을 욕이 튀어나왔다.

‘뭐야? 공주라고 하지 않았나?’

‘뭐야? 공주라고 하지 않았나?’

이 순간 적과 아군을 통틀어서 대부분의 인간들이 같은 생각을 했다.

예외가 있다면 공주 기사단과 밀턴.

‘또 시작이네.’

‘젠장, 성질 터졌어.’

‘어떻게 진정시키지?’

바이올렛 공주를 잘 아는 플로렌스 공국의 기사들이 이런 생각을 했고, 또 한명의 예외는….

“라임 죽이네.”

좀 멀리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던 밀턴이었다.

“거기 딱 서라. X새끼야!”

바이올렛 공주는 즉시 말을 달려서 자신을 도발한 적에게 달려들었다.

예상치 못한 욕설 퍼레이드에 당황했던 토리온 중위도 즉시 응했다.

과정은 좀 틀리지만 적이 도발에 넘어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건 바라던 바였다.

“와라!”

두 기마가 서로를 향해서 달려갔고 서로의 검에 오러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으아아아아아앗!”

“뒤져라!!”

콰아앙!!

첫 합의 검격이 화려하게 터졌다.

“크으윽….”

“흡….”

그 강렬한 부딪힘에 둘이 타고 있는 말이 버티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아아아아아아!!”

초수의 교환 후에 먼저 중심을 잡고 달려든 것은 바이올렛 공주 쪽이었다.

기합과 함께 그녀의 검이 신들린 듯이 움직였다.

토리온 중위는 그런 바이올렛 공주의 공격을 막기에 급급했다.

‘큭…. 뭐냐? 이 미친년은?’

상대하는 토리온 중위는 미칠 것 같았다.

상대의 실력을 얕잡아본 것은 아니지만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무리 경지가 높아도 그게 반드시 실제 전쟁터에서 적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사 아카데미에서 착실하게 수련해서 경지에 오른 기사들이 전쟁터에서 어이없이 죽는 경우는 많았다.

긴장해서 자기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에 대한 적응을 못해서 눈먼 칼에 맞아 죽기도 한다.

그런 어이없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의 경험치가 필요했다.

그리고 토리온 중위는 바이올렛 공주에게 그런 경험치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해 봤다.

누가 생각했겠는가?

명색이 일국의 공주인데 실전 경험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바이올렛 공주의 전투는 지독하게 실전적이었다.

아니, 이건 실전적인 것을 넘어서 뭔가 광기가 보였다.

옆에서 적 기마병이 끼어들려고 하니 그쪽으로 방패를 집어 던져서 머리를 깨 버린다.

병사 한 명이 창을 찔러오자 그 창대를 잡고 병사를 발로 당기는 동시에 발로 얼굴을 걷어차 버렸다.

그리고 뺏은 창을 능숙하게 고쳐 잡더니 토리온 중위에게 집어 던지고 그 틈을 노려서 다시 호전적으로 달려든다.

그리고….

“뒤져 버려!”

일격 일격에 실려 있는 살기와 광기가 무시무시한 기세를 발휘했다.

“젠장, 이게 무슨 공주야!?”

토리온 중위는 자신이 속았다고 생각했다.

이게 공주면 자신은 황제다.

공격 하나하나에 필살의 의지가 실려 있어서 계속 밀리기만 할 뿐.

흐름을 뒤집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 문제는 이 공주를 따라온 기사들도 상당히 강한 정예들이었다.

“공주님의 좌우부터 처리해 가라!”

“저놈은 신경 쓰지 마라. 공주님이 잡는다!”

“거기 신입! 공주님 근처로 접근하지 마라! 휘말린다!”

뭐랄까?

되게 익숙한 인간들 같았다.

무늬만 공주인 그녀가 미쳐 날뛰는 상황을 어떻게 백업하면 되는지를 말이다.

놈들이 착실하게 주변을 정리해 갔고 부하들의 피해가 너무 컸다.

‘어쩔 수 없다. 이 이상은 한계야.’

아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후미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이제 한계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끌면 자신의 부하들을 비롯해서 정예병의 피해가 커질 것 같았다.

“우리도 후퇴한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튀어!”

그래도 잠깐 시간을 끌었으니 최소한의 목적은 달성했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최우선 목표는 이기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거지.’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 이길 수 있는 날이 온다.

후퇴를 수치로 여기는 기사들과 달리 공화국의 군인들은 후퇴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후퇴에 자신도 있었다.

이보다 더한 수라장도 몇 번이고 경험한 토리온 중위는 자신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딜 가!? 이 새끼야!”

바이올렛 공주는 말을 달려서 자신의 뒤를 무모하게 쫓아왔다.

다른 기사들이 전투에 휘말려서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않고 추격에 나섰다.

“바이올렛 공주님! 그 이상 추격하는 건 무리입니다.”

뒤편에서 제롬이 바이올렛 공주의 추적을 말렸다.

실력에 자신이 있다고 해도 너무 적진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 서! 이 새끼야! 서! 서라고! 서어어어어!!!”

지금 바이올렛 공주는 다른 사람의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런 바이올렛 공주의 무모한 행동은 결국 위험한 상황을 초래했다.

“지금이다!”

“포위해! 둘러싸 버려!”

너무 깊숙하게 들어간 그녀에게 공화국의 보병들이 달려든 것이다.

빽빽한 포위망에 순간 말의 발이 멈추었고 그 틈을 노려서 한 놈이 바이올렛 공주의 말의 옆구리를 찔렀다.

푸우욱!

“히히히히힝!!”

말은 크게 소리 지르며 쓰러졌다.

그리고 말이 쓰러지기 무섭게 병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죽여! 아니 잡아!”

“이년을 잡으면 큰 포상…. 커억!”

말에 쓰러진 기사는 보병들의 집중된 표적이다.

운 좋게 쓰러지는 와중에 말에 깔리기라도 하면 거저먹기다.

하지만 바이올렛 공주는 마치 익숙하다는 듯이 말이 쓰러지는 타이밍에 뛰어내려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보병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비켜! 이 새끼들아!!”

그녀의 검이 어지럽게 허공을 갈랐고 그때마다 피 보라가 일어났다.

“크아악!”

“커어억….”

기세 좋게 달려들던 공화국 병사들이 순식간에 무더기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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