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게임-103화 (103/257)

제103화

밀턴은 유하네스 후작과 만나고 한숨을 내쉬었다.

유감이지만 지휘권의 분열은 피할 수 없어 보였다.

어제 세비안 자작은 이렇게 말했었다.

아마 유하네스 후작은 연합군에 있어서 지휘권 분열에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직접 보지도 않았고 사람 됨됨이도 모르지만 세비안 자작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 이유는 작위와 병력 규모 때문이다.

이번에 전쟁에 참여한 원정군의 지휘관들은 대부분이 백작이었다.

하지만 딱 두 명만은 후작이 참전했는데 그게 바로 밀턴과 지금 눈앞에 있는 유하네스 후작이었다.

그것 말고도 플로렌스 공국에서는 무려 공주가 참전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큰 무게가 없었다.

플로렌스 공국 자체가 워낙 약소국이었기 때문이다.

밀턴이 연합군의 지휘권을 잡았을 때 다른 지휘관들과 달리 똑같은 후작위를 가지고 있는 유하네스 후작은 충분히 거부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병력에 관해서도 유하네스 후작이 이끌고 온 병력은 2만 5천으로 레스터 왕국 다음으로 많았다.

물론 밀턴이 데리고 온 병력의 반도 되지 않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온 병력에 대한 지분(?)을 주장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밀턴은 세비안 자작에게 어제 들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얼굴에는 미소를 지우지 않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뒤편에 계신 분들도 소개해 주시겠소? 아마 제 예상이 맞다면….”

“하하하. 맞소. 우리와 같이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찾아온 분들이지.”

그리고 유하네스 후작의 뒤편에 있던 자들 역시 자기소개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발랑스 왕국에서 온 게일 디오스라고 합니다.”

“글로스터 왕국의 조쉬 카본입니다.”

“스트라빈 왕국의 엘리엇 타우로스입니다.”

그들의 소개를 들으며 밀턴은 속으로 생각했다.

‘각각 2만, 2만, 1만 5천이네.’

“모두 만나서 반갑소.”

밀턴은 이들 세 명에게는 존댓말이 아니라 하오체를 사용했다.

유하네스 후작은 같은 후작위를 가지고 있고 자신보다 연배도 높으니 예의상 존대를 했다.

그러나 이들 세 명은 모두 작위가 백작이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논리적인 이유 따위와는 상관없이 밀턴이 하오체를 사용하자 이들 세 명은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나이도 어린놈이 건방지군.’

‘꼴에 후작이다 이건가?’

‘어디서 레스터 왕국 같은 소국의 후작 따위가….’

그렇게 노골적인 불만을 보이는 이들을 보며 밀턴은 속으로 생각했다.

‘확 까버릴까 보다.’

작위도 낮고 군사도 자신보다 적게 끌고 왔으면서 하대를 좀 들었다고 인상 구기는 꼴을 보아하니 세비안 자작의 예상이 맞아떨어진 모양이다.

세비안 자작이 예상하기를….

[우리들의 병력 규모가 크다 보니 가장 늦게 도착했습니다. 그 말은, 우리보다 먼저 온 놈들이 담합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죠.]

라고 말했다.

그 예상이 맞았다.

밀턴이 오기 전에 자기들끼리 뭉쳐 있던 모습을 봤을 때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을 봐서는 역시 이놈들은 이미 끼리끼리 뭉쳐 있는 듯했다.

아마, 레스터 왕국의 후속 병력으로 합류했을 때 자신들의 밑에 자연스럽게 집어넣을 생각이었겠지만, 밀턴이 자신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대군을 끌고 왔기 때문에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즉, 이들은 이들대로 대규모로 병력을 끌고 온 밀턴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노골적으로 표정 관리를 못 하던 세 명 중의 한 명이 밀턴에게 시비를 걸었다.

“듣자 하니 레스터 왕국에서는 무려 8만이나 되는 대병력을 파병했다고 하더군요. 사실입니까?”

밀턴에게 말을 건 사람은 발랑스 왕국의 게일 디오스 백작이었다.

“그렇소. 뭔가 문제라도 있소?”

밀턴의 반문에 디오스 백작은 무례하게도 팔짱을 끼고 미묘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고작 공화국 따위를 상대로 너무 과하게 반응하는 것 아닙니까?”

‘이 새끼 말하는 것 봐라….’

밀턴이 많은 병력을 동원한 것을 지적하면서 오히려 자신들이 적게 데리고 온 것은 당연하다는 투로 말했다.

밀턴은 생각 같아서는 바로 멱살을 잡아 올리고 바닥에 패대기쳐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주군, 아마 내일 있을 연회장에서는 외교적인 교섭과 견제가 난무할 것입니다. 그러니 딱 두 가지만 명심해 주십시오.]

세비안 자작은 밀턴에게 두 가지만은 반드시 지켜 달라고 당부했다.

[절대 화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계속 웃으십시오.]

화내지 말고 웃어라.

외교의 장이라는 것은 포커의 테이블과 같아서 먼저 감정을 드러내면 크게 불리해진다.

그러니 냉철함으로 무장해서 화를 가라앉히고 웃음이라는 가면을 써서 감정을 숨겨야 했다.

밀턴은 그 말대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경험자 입장에서 봤을 때 전쟁이란 변수가 많아서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오.”

밀턴은 자신이 전쟁을 경험했다는 것을 슬쩍 어필하며 말했다.

그러자 상대편의 표정이 더 구겨졌다.

그리고 밀턴은 더욱더 진한 미소를 짓고 디오스 백작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부디 이번 전쟁에서 많은 것을 배워가기 바라오. 백작.”

자신의 아들뻘 되는 밀턴이 아랫사람 대하듯이 어깨를 툭툭 치면서 격려를 하는 모습에 디오스 백작은 얼굴이 새빨개졌다.

“이익….”

“응? 왜 그러시오? 얼굴이 붉은데 어딘가 불편하기라도 한 거요?”

밀턴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디오스 백작은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실제 그럴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말 자체는 공격적인 내용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전쟁의 경험이 없는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개는 몽둥이로 패고 인간은 팩트로 패는 법이지.’

밀턴은 웃으면서 다른 이들을 슬쩍 훑어봤다.

디오스 백작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모두 전쟁에 경험이 없었다.

그리고 전쟁을 경험이 없다면 개인의 능력이라도 유능해야 하는데….

‘별로 쓸 만한 놈들도 없군.’

밀턴은 세 명의 상태창을 슬쩍 보고 피식 웃었다.

유하네스 후작은 성향이 정치가로 분류되어 있었고, 다른 세 명은 일단 기사로 분류되어 있기는 했지만 능력치도 그저 그랬다.

무력이 70을 넘는 익스퍼트도 없었고, 지력이 가장 높은 것도 유하네스 후작의 80이 끝이었다.

이런 잔챙이들을 이끌고 전쟁을 해야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피곤한 일이다.

역시 세비안 자작의 계획대로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의아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한 명 부족하지 않나?’

이번 전쟁에 원군을 보내온 나라는 총 여섯 개 국가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밀턴 자신을 포함해도 다섯 명뿐.

한 명이 부족했다.

‘플로렌스 공국의 대표가 없군. 그러고 보니 거기는 공주가 참전했다고 하던가?’

이제까지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여기서도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궁금해졌다.

‘플로렌스 공국이라… 거기서 1만을 보냈다면 나름 선전한 건가?’

다른 나라에서 2만에서 2만 5천의 병력을 보냈다고 했을 때 밀턴은 터무니없이 적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플로렌스 공국에서 1만을 보냈을 때 밀턴은 그럭저럭 양심적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만큼 플로렌스 공국은 약소국이기 때문이다.

대륙의 지정된 국가 중에서 최약소국.

그게 플로렌스 공국이다.

위치는 레스터 왕국의 남쪽에 있는 작은 소국이다.

국토의 크기는 레스터 왕국의 절반 이하.

군사력도 최대치로 잡아도 3~4만 정도일 것이다.

그런 나라에서 1만이나 되는 군대를 보냈으면 나름 최선을 다한 것이다.

하지만 군의 책임자로 공주를 보냈다는 것은 또 의외였다.

그 못 하는 게 없는 레이라 공주 역시 전쟁터에서 자신이 사령관을 잡지는 않았다.

그런데 플로렌스 공국에서는 공주가 총사령관으로 왔다.

아마 가능성은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 공주가 실제 전쟁에 유능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거나? 혹은 그 공주님이 공국의 내에서 무척 어려운 처지에 있어서 강제로 나왔거나 말이다.

‘이유가 뭐든 간에 더 이상 이 전쟁에 장애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밀턴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스트라부스 왕국의 유일한 군주. 바우첸 프라이베르크 스트라부스 전하께서 들어오십니다.”

시종의 안내와 함께 바우첸 국왕이 자신의 식솔을 거느리고 연회장에 등장했다.

자연스럽게 연회장의 모든 귀족들은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갖췄다.

바우첸 국왕은 연회장의 중앙에 서서 모두를 향해서 말했다.

“모두 일어나시오.”

그 명령에 모두 일어나서 고개를 들었다.

바우첸 국왕은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말을 이어 갔다.

“이번 연회는 잔악한 공화국의 공격에서 대륙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멀리서 군사를 이끌고 참전해준 동맹국에 감사와 예를 표하기 위한 자리이오.”

그리고 바우첸 국왕은 밀턴이 있는 쪽을 정확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밀턴 포레스트 후작은 중앙으로 나오시오.”

밀턴이 중앙의 홀로 나오자 바우첸 국왕은 시종을 시켜서 한 자루의 검을 가지고 왔다.

화려한 장식이 가득 달려 있는 그 검은 실전용이라기보다는 예장용의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바우첸 국왕은 그 검을 밀턴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스트라부스 왕국의 군주로서 밀턴 포레스트 후작에게 연합군의 총사령관직을 위임하는 바이오.”

밀턴은 국가의 소속이 다르기 때문에 임명이 아니라 위임이라는 말을 쓰는 바우첸 국왕이었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결국 이건 일방적인 결정이었다.

이 전쟁의 주도권이 스트라부스 왕국에 있는 이상 다른 국가에서 참전한 이들이 여기에 대놓고 뭐라고 하지는 못한다.

반항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해봐야 군을 철수하는 방법 정도인데….

그걸 독단으로 결정할 수 있을 정도의 깜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없어 보였다.

“최선을 다해서 군을 승리로 이끌겠습니다.”

밀턴은 바우첸 국왕의 검을 정중하게 받으며 말했다.

그리고 사방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고 바우첸 국왕은 흐뭇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그럼, 모두들 연회를 즐기시오. 공화주의자들의 몰락과 우리 왕국의 무궁한 번영을 위하여!”

그렇게 본격적인 연회가 시작되었다.

노련한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파벌끼리 뭉쳐서 이번 전쟁의 향방에 관해서 논의하고 있었고, 젊은 귀족들은 그 주변을 배회하면서 어디에 붙어야 자신의 출세에 도움이 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밀턴은….

“과연 대단하군요. 이 젊은 나이에 익스퍼트의 경지에 도달하시다니….”

“포레스트 후작님이라면 언젠가 마스터의 경지도 꿈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밀턴은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스트라부스 왕국의 귀족들을 상대 하는라 여념이 없었다.

원래 스트라부스 왕국에서 밀턴의 명성은 제법 퍼져 있었다.

자신들의 자랑인 데릭 브란스 공작을 죽인 지크프리트.

그 지크프리트를 물리친 밀턴 포레스트.

더구나 밀턴이 한때는 스트라부스 왕국의 서부 전선에서 하급 지휘관으로 복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무관들 사이에서는 급격하게 이미지가 좋아졌다.

젊은 나이에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를 정도로 검에 출중하고 전쟁의 작전 수행에도 능숙한 무관 귀족.

군사적인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트라부스 왕국에서 밀턴은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귀족 그 자체였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애송이일 뿐입니다. 좋게 봐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밀턴은 어디까지나 겸손하게 대응했다.

스트라부스 왕국의 귀족들과 사이가 좋아져서 나쁠 것은 없었다.

다만….

“후작님 제 여동생이 무척 아름답고 현숙한데 아직 미혼입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어허…. 어디서 선수를 치는 것이오. 후작님. 제 딸의 미모가 대단합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 같은 아이지요.”

“코스모스는 무슨, 강아지풀이겠지.”

“뭐가 어째?”

귀족들 사이에서 밀턴에게 여자를 들이대는 귀족들이 굉장히 많았다.

“모두 아름다운 여인들이지만, 저는 약혼을 한 몸이라서 사양해야겠습니다.”

“하하하…. 약혼 소식을 저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첩이라도 괜찮으니 한번 생각해 보시죠.”

“저…. 저는 약혼녀가 둘이나 됩니다만?”

“뭐 어떻습니까? 둘이면 셋으로 늘리면 되는 거죠. 여자란 자고로 많이 둬서 손해 볼 일은 없는 존재 아니겠습니까? 하하하하….”

호쾌하게 웃는 스트라부스 왕국의 귀족의 모습에 밀턴은 쓰게 웃었다.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였나?’

밀턴도 알고 있었다.

스트라부스 왕국은 여성의 인권이 낮기로 유명한 나라였다.

귀족뿐만 아니라 평민도 경제적 여유가 된다면 아내를 여럿 거느려도 괜찮고, 또한 여자의 혼사는 전적으로 가장의 의사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했다.

또, 여자를 데려가는 쪽에서도 중요한 것은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아니라 처가에 얼마나 많은 돈을 지불할 수 있느냐? 일 정도였다.

평민들이 이 정도이니 귀족들이라고 다를 바는 없었다.

귀족가에서 태어난 여자는 낳아주고 키워준 은혜를 갚기 위해서 가문에 최대한 도움이 되는 쪽으로 시집을 가는 것이 의무라고 교육받으며 자랄 정도였다.

그리고 스트라부스 왕국의 귀족들이 보기에 밀턴은 꽤 가치가 높은 인물이었다.

비록 외국의 인물이긴 했지만 전쟁에서 유능한 활약을 펼쳤고, 권력과 재력을 동시에 다 가지고 있는 젊은 귀족이기도 했다.

가문의 딸을 하나 보내서 연줄을 만든다면 절대 손해는 안 될 거라고 생각한 귀족들은 거의 어거지로 들이댔다.

“하하…. 죄송하지만 지금은 전쟁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밀턴은 그런 귀족들을 떼어내면서 악감정은 남기지 않도록 조심했다.

지금은 어디까지나 외교의 장.

성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방침을 철저하게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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