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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102화 (102/257)

제102화

이제 아군의 전력은 잘해봐야 적의 두 배가 조금 안 된다.

이 전력으로는 밀턴이 구상했던 계획을 성공시킬 수 없다.

여기다 바우첸 국왕 자체도 문제였다.

밀턴은 자신이 안내받은 방을 스윽 둘러봤다.

보석으로 장식된 예술품과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가구들.

이런 극진한 대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연합군 총사령관.

바우첸 국왕이 독대를 가진 자리에서 밀턴에게 제의한 자리였다.

아니, 사실 제의라고 할 것도 없고 그냥 확정이었다.

스트라부스 왕국의 군사 시스템은 철저하고 치밀하게 짜여 있어서 타국의 군대를 포함시켜 봤자 잘 녹아들 수 없다.

그러니 바우첸 국왕은 아예 원군끼리 연합군을 만들어서 독자적인 작전권을 주고 따로 운영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총사령관으로 밀턴이 취임하도록 결정을 내렸다.

사실 당연한 일이긴 하다.

레스터 왕국에서 가장 많은 원군을 가져왔고, 밀턴에게는 이전의 전쟁에서 대활약을 하며 명성도 붙어 있다.

밀턴이 지휘관을 맞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이 당연한 일의 이면에 숨어 있는 바우첸 국왕의 의도였다.

밀턴에게 연합군의 총사령관직을 제의하며 바우첸 국왕은 말했다.

[제국은 이미 우리를 잠재적인 적국으로 생각하고 있네.]

우리라고 했다.

스트라부스 왕국 하나가 아니라 은근히 레스터 왕국까지 ‘우리’라는 단어로 싸잡아 끼워 넣은 것이다.

거기다….

[제국의 폭거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도 하나로 힘을 뭉쳐야 할 테지. 스트라부스 왕국과 레스터 왕국이 손을 잡는다면 감히 무엇이 두렵겠는가?]

들으면서 밀턴은 미치고 환장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전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 것은 바우첸 국왕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비록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원군이 오기는 왔고 이로서 자국의 전력은 적을 넘어섰다.

이번 기회에 공화국의 총공격을 막아내고 역공을 가해서 말끔하게 정리를 하겠다.

그리고 공화국을 정리한 후에는 이제 제국과의 대립각을 세워야 하니 주변국이자 최근 기세를 올리고 있는 레스터 왕국을 은근슬쩍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밀턴이 보기에 바우첸 국왕은 전쟁 이후에 제국으로 거듭날 스트라부스를 꿈꾸고 있었다.

현재 북부 전선의 상황도 오히려 열세인 와중에 말이다.

“인생 참 쉽게 안 풀리네.”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게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의 공화국은 전력이 약간 우위에 있다고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그런 상대가 아니다.

그동안 지크프리트를 치밀하게 조사하고 실제 전쟁에서 맞서 싸운 경험까지 있는 밀턴이기에 알 수 있었다.

적은 진짜 전쟁의 천재다.

지구의 역사로 치면 한니발이나 나폴레옹에 비견될 정도의 천재 전략가일지도 모른다.

이런 괴물을 상대하면서 방심까지 한다?

“미친 XX 새끼들….”

욕을 안 하려고 해도 안 할 수가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그냥 밀턴도 다 포기해 버리고 싶었다.

지금 상황은 그야말로 한 걸음 걷기도 두려울 정도로 똥 밭이다.

하지만 이놈 저놈이 다 똥을 싸지른다고 밀턴이 그럼 어디 내 똥도 받아 봐라, 라면서 싸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침착하자. 침착….’

머리를 차갑게 식힌 밀턴은 우선 세비안 자작을 불러서 이 상황을 알렸다.

밀턴에게 상황을 전해 들은 세비안 자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전쟁 이후를 생각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이건 확실히 좀 지나치군요.”

“내 말이 그 말이야.”

밀턴은 차가운 냉수를 벌컥벌컥 마신 후에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이 전쟁을 방심만 하지 않으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왔어. 그런데 이제는….”

“어려운 전쟁이 되어 버렸다는 겁니까?”

“빌어먹게도 말이지.”

쓰게 웃으며 공감하는 밀턴을 보고 세비안 자작이 말했다.

“하지만 전쟁은 그런 법 아니겠습니까? 항상 변수가 발생하죠.”

“되게 긍정적이군.”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끝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주군도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저를 부르신 것 아닙니까?”

세비안 자작의 말에 밀턴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그렇지.”

그리고 조금 진정한 밀턴은 세비안 자작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을 이었다.

“이 전쟁은 어려워졌어. 하지만 질 수도 없는 노릇이지. 그러니 세비안 자작. 작전 참모로서 말해 주게. 뭔가 좋은 수가 없겠나?”

밀턴은 세비안 자작의 머릿속에서 제발 이 답답한 상황을 깰 수 있는 묘안이 나오기를 바랐다.

현재 세비안 자작의 지력은 무려 95다.

처음 밀턴이 발견했을 때만 해도 91이었는데 그사이에 더 발전한 것이다.

전략 특성도 LV.8에 도달해서 곧 상한 레벨에 도달할 것 같았다.

아직 그 이름을 떨치지는 않았지만 밀턴은 세비안 자작의 능력이라면 세상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밀턴은 제갈공명에게 지혜를 구하는 유비의 심정이 되어서 세비안 자작의 말을 기다렸다.

“우선 좋은 소식은 주군이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 추천되었다는 겁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우리 병력이 가장 많으니까.”

“예. 이게 정말 다행입니다. 주군이 지휘권을 쥐고 계신 이상 이 전쟁에서 휘둘리는 역할에서는 벗어날 수 있으실 테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니 다행이긴 하군.”

이 답답한 상황에서 남의 지휘까지 받아가며 움직일 거라면 진짜 전쟁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게 나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밀턴에게 세비안 자작이 말했다.

“아마 스트라부스 왕국에서 주군에게 거는 기대도 크다는 말이기도 하죠.”

“그건 내키지 않는군.”

“어쩔 수 없습니다. 지휘관에게 대군을 맡겼으니 혁혁한 전과를 세우기 바라는 거야 당연한 거죠.”

밀턴이 연합군을 이끌고 이 전쟁에 참여한다면 정말 큰 축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원군을 거의 안 보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17만이라는 군대는 전쟁의 승패를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큰 힘이었다.

“주군이 당초에 구상하셨던 작전은 좋았습니다. 물량의 우세를 살려서 전선을 최대한 확대하는 것. 실행할 수만 있다면 필승의 전략이죠.”

“그러면 뭐 하나? 이제 물 건너갔는데?”

“전선의 무한정 확대는 불가능해도 부분적인 확대는 가능합니다.”

“흐음…. 계속 말해봐.”

밀턴은 흥미가 생겼다.

이제부터가 본론일 듯했다.

“지금 스트라부스 왕국과 공화국의 전쟁은 북부 전선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그리고 전황이 썩 좋지 않다고 하더군.”

“그렇습니다. 우리가 거기에 가세해서 전황을 뒤집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쓰기에는 17만이라는 숫자는 너무 크다. 이건가?”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세비안 자작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주군께서 아무리 바우첸 국왕의 허가를 받았다고 해도 연합군의 지휘권이 순조롭게 작동할지도 의문이긴 합니다.”

“애써 생각하지 않고 있던 문제를 굳이 말하다니.”

밀턴은 한숨을 내쉬며 푸념했다.

안 그래도 그 점이 마음에 걸리던 참이다.

바우첸 국왕이 직접 밀턴에게 연합군의 지휘권을 맡겼다고 해도 그들이 과연 밀턴의 말을 들을까?

어차피 속한 나라가 다른 몸이다.

밀턴의 명령에 비협조적으로 나올 가능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아직 만나 보지도 않은 인물들을 상대로 막연한 불안감을 가져도 의미가 없으니 일단은 무시했을 뿐이다.

그러나 세비안 자작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지휘권을 쥐는 것에 반발하는 인간은 나올 것 같았다.

그럴 확률이 굉장히 컸다.

‘아…. 진짜 하기 싫은 전쟁이다. 그냥 돌아갈까?’

이쯤 되면 만사가 귀찮게 느껴질 정도다.

그런 밀턴의 심정이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나자 세비안 자작은 웃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그건 그것대로 활용 방법이 있으니까요.”

“응? 그게 무슨 말이지?”

“여기서부터가 진짜 본론입니다. 우선….”

세비안 자작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밀턴에게 계책을 풀어놓았다.

말에 망설임이 없고 밀턴이 하는 질문에도 척척 대답하는 세비안 자작의 모습에 밀턴은 감탄했다.

“이상입니다.”

그리고 모든 설명이 끝났을 때….

‘대단해.’

밀턴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세비안 자작이 제시한 작전은 대단했다.

답답하게 꼬여서 풀 엄두도 나지 않는 실타래 같은 이 상황을 술술 풀어내더니 어느새 승산이 높은 전략을 만들어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걸까?

“자네 혹시 이 전쟁이 시작하기 전에 지금 같은 상황이 생길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나?”

밀턴의 질문에 세비안 자작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설마요. 제가 예언가도 아니고 무슨 수로 미래를 알겠습니까?”

그리고 세비안 자작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그저 모든 상황을 염두해 두고 거기에 맞는 다양한 전략을 준비해 두었을 뿐입니다.”

“…….”

‘그게 더 굉장한 것 아닌가?’

지력 95짜리 전략가가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이 가는 밀턴이었다.

어쨌든, 희망은 보였다.

‘해보자.’

밀턴은 전쟁에 임하는 각오를 다시 다졌다.

바우첸 국왕은 외국에서 참전한 원군을 환영하기 위해서 거창한 연회를 열었다.

전선에서 밀리고 있는 와중에 연회는 무슨 연회냐고 따지고 싶은 밀턴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사실 이런 국면에 연회는 여러 가지로 의미를 가진다.

우선은 연회에 참석한 귀족들에게 원조금을 뜯어낼 수 있는 구실이 되기도 하고, 외국에서 참전한 동맹국의 귀족들에게 자신들이 건재하다는 것을 어필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번 연회에서는 바우첸 국왕이 연합군의 존재를 정식으로 선포할 것이고 밀턴을 사령관으로 임명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인해서 밀턴이 지휘하는 연합군은 스트라부스 왕국의 국내에서 정당하게 활동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된다.

예전에 레스터 왕국에서 데릭 브란스 공작이 원정군을 독자적으로 운영하며 활동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공식적인 절차까지 겸비한 연회였기 때문에 빠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밀턴은 자신의 측근 부하들을 데리고 연회에 참석했다.

“저 남자가 밀턴 포레스트 후작인가요?”

“저렇게 젊은 나이에 후작이라니. 레스터 왕국은 어지간히 인재가 없는 모양이군요.”

“그래도 저번 전쟁에서는 이름을 꽤 날린 모양이던데요?”

“흥, 그것도 두고 봐야 알 일이죠. 그렇게 변방의 소국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조금 활약한 것 가지고….”

“좀 과대평가 받은 것 같기는 합니다.”

밀턴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견제와 품평 속에서 담담하게 걸었다.

저렇게 주변에서 지저귀는 참새들은 신경 쓸 필요 없다.

진짜 중요한 인물은….

“처음 뵙겠소. 포레스트 후작.”

이렇게 밀턴의 앞에 직접 다가와서 말을 건네는 자들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런데 누구신지…?”

대략 40대 중반 정도로 추정되는 남자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밀턴에게 말했다.

“이런, 자기소개가 늦었군. 본인은 시온 유하네스라고 하오. 헤리퍼드 왕국에서 원군을 이끌고 이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서 왔소.”

밀턴은 눈앞에 인물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밀턴 포레스트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유하네스 후작님.”

밀턴은 겉으로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미소 지었지만 속으로는 상대를 살폈다.

[시온 유하네스]

정치가 LV.7

무력 - 18 통솔 - 85

지력 - 80 정치 - 88

충성 - 00

특성 - 외교, 모략, 매수, 언변

외교 LV.6 : 타국과의 교섭에서 자국에 유리한 조건을 제시해서 협상한다.

모략 LV.5 : 적대하는 인간이나 세력을 위기에 빠트릴 수 있는 뒷공작에 능숙해진다.

매수 LV.7 :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며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도록 유도한다.

언변 LV.4 : 대화를 통해서 다른 사람을 설득, 혹은 굴복시킬 수 있다. 자존심이 강한 상대에게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정치가? 기사나 군인이 아니고 정치가라고?’

밀턴은 느낌이 싸해졌다.

상대방의 상태창을 보건대 이건 군인이 아니라 완벽한 정치가였다.

타국의 전쟁에 참전하는 원군을 이끌고 오는 인물이 유능한 무관이 아니고 문관이라니?

물론 유하네스 후작의 아래에는 전쟁에 대한 전문적인 참모와 지휘관들이 있겠지만 너무하지 않은가?

이건 처음부터 딴마음을 먹고 왔다는 반증이었다.

‘세비안 자작의 예상대로 흘러가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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