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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98화 (98/257)

제98화

처음에는 서서히 달리며 조금씩 속도를 높여 갔다.

그렇게 속도를 높이다 보니 어느새 보통 말이 전력 질주하는 것과 비슷한 속도가 되었다.

그러나 밀턴을 태운 흑마는 숨소리 하나 거칠어지지 않았다.

이 정도는 아무런 부담도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슬슬 본격적으로 달려볼까?’

밀턴은 고삐를 꽉 쥐고 하반신에 힘을 단단히 줬다.

“이럇!”

그리고 밀턴의 호령에 흑마는 보폭을 크게 벌리면서 전력 질주를 시작했다.

“오…. 오오오…. 우왓!”

순간 밀턴은 깜짝 놀랐다.

속도가 갑자기 두 배 이상 올랐다.

이건 마치 전생에서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것 같은 속도감이었다.

말이라는 동물의 최고 속도는 시속 40에서 50 정도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80은 넘었다.

아니 어쩌면 거의 100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놈이 지면을 박찰 때마다 지면에서 지뢰가 터지는 것처럼 흙이 튀어 오르는 것을 느끼며 밀턴은 환호했다.

“우…. 우하하하··. 죽인다. 계속 달려!”

밀턴의 명령에 흑마는 대지를 박차며 힘껏 달렸다.

“히히히힝!!”

한바탕 달리고 난 후에 만족한 밀턴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흑마에게 각설탕을 주며 갈기를 쓰다듬었다.

밀턴은 아끼는 보물을 대하는 것처럼 애정을 담아서 흑마를 쓰다듬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레너드.”

“이름을 레너드라고 짓나?”

“예. 설탕으로 길들였으니 레너드라고 지었죠.”

“설탕하고 그 이름이 상관있나?”

“예. 뭐….”

전생의 기억에서 자신이 좋아하던 전설의 복서 슈가레이 레너드의 슈가에서 따왔다는 것은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뭐, 나만 알면 되지.’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다.

실질적인 성과물이지.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전쟁터에서 이놈들이 활약할 걸 생각하면 벌써 기대가 되는군요. 이런 놈들이 얼마나 있다고 하셨죠?”

“지금 있는 건 300마리 정도데이.”

“적당하군요. 사실 숫자를 더 늘려도 기수가 없을까 봐 걱정이었습니다.”

밀턴이 보기에 이번에 개량한 말의 유일한 단점은 너무나 뛰어나다는 것이다.

너무 빠르고 너무 강하다.

이 녀석들의 위에서 멀쩡하게 타고 싸울 수 있는 기수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일반 기마병들에게는 줘도 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당분간은 기사단에 배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놈들의 힘이라면 꽤 무거운 마갑을 걸쳐도 거뜬하게 감당하겠죠.”

중장기병의 기마 차지는 익스퍼트라고 해도 위협이 될 정도로 큰 파괴력을 가지고 있지만 느리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놈들이라면 중장기병의 파괴력과 경기병의 속도를 겸비하고 있는 괴물 같은 기사단이 나올 수도 있었다.

밀턴은 비앙카가 개발한 새로운 말들을 신형 품종으로 분류해서 디스트로이종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었다.

힘이 넘쳐서 그런지 전력으로 달리면 지면을 박살내듯이 달리는 주법이 인상적이라서 그렇게 붙인 이름이었다.

그리고 기사들 중에 기마술이 뛰어난 기사들에게 배정해 주었는데 디스트로이종을 배정 받은 기사들은 기쁨을 넘어서 감격을 느꼈다.

한 번 타고 달려보니 기존의 말들과는 차원이 다른 성능에 전율한 것이다.

“이거 이거…. 앞으로 다른 말은 어떻게 타지?”

“이전에 타던 말도 꽤 괜찮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신종에 비하면 그냥 조랑말처럼 느껴지는군.”

기사들에게 있어서 말이라는 것은 검과 갑옷 다음으로 신경 써야 할 중요한 장비였다.

그런 기사들에게 디스트로이종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종의 교배를 위해서 빠진 100마리를 제외하고 200마리를 임시로 배정했는데 말이 너무 좋다 보니 미처 받지 못한 기사들은 부러워 미칠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이게 묘한 경쟁심을 부추기기도 했다.

디스트로이종의 배정은 철저한 실력 순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자신도 실력이 되면 언젠가 디스트로이종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기사들이 수련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이미 디스트로이종을 받은 기사들 역시 실력에서 밀리면 빼앗길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에 방심할 수 없었다.

레스터 왕국의 기사들에게는 갑자기 수련 광풍이 불었다.

그리고 밀턴은 그런 기사들을 고양 시키며 조용하게 전력의 강화에 힘을 쏟았다.

2년의 정전 속에서 놀라울 정도로 부흥을 이뤄냈지만 마음을 놓은 적은 없었다.

밀턴은 전쟁이 멀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모두 전쟁은 싫다고 말하지만 결국 전쟁은 벌어진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공화국의 2차 연합군 결성.

힐데스 공화국, 하노버슈 공화국, 코프르크 공화국.

한때 스트라부스 왕국의 국토를 유린했던 공화국의 연합군이 다시 한번 결성되었다.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더 최악이었다.

예전에 결성했던 연합군은 그 역할이 나눠져 있었다.

힐데스 공화국이 자국의 영토로 스트라부스 왕국의 원정군을 최대한 끌어들여서 감당하는 수비 겸 미끼 역할이었고, 나머지 두 개의 공화국이 연합군을 결성해서 스트라부스 왕국의 북부 전선을 뚫고 들어갔던 것이다.

수비 1에 공격 2로 연합군의 힘을 나눠서 운용했었던 것이 1차 연합군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세 개의 공화국군이 모두 정예 병력을 투입해서 그 힘을 하나로 모았다.

이것만 해도 끔찍한데 더 끔찍한 정보가 있었다.

이 연합군에 총 사령관 자리에는 3개국의 총통이 모두 참여했다.

힐데스 공화국의 바하슈텐 총통.

하노버슈 공화국의 페인하임 총통.

코브르크 공화국의 슈하이머 총통.

이 세상에 위대한 공화주의를 펼치기 위해서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이들이 직접 친정을 나왔다.

그러나, 세간의 이목을 주목시킨 것은 총사령관이 아니라 작전 참모진이었다.

3개국의 인재를 다 모아놓은 참모진의 최상단에 지크프리트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던 것이다.

스트라부스 왕국은 경계심을 극도로 올렸다.

이미 지크프리트는 예전과 같은 무명의 전략가가 아니다.

전쟁에서 확고한 실적을 남긴 명장이었고, 그 실적 중에 가장 뼈아픈 것은 스트라부스 왕국이 자랑하는 세 명의 마스터 중에 한 명인 데릭 브란스 공작이 포함되어 있었다.

총사령관으로 세 명의 총통이 동시에 올라가 있다는 것은 사실상 이들이 상징적인 의미로 전쟁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이번 전쟁에 공화국의 전력을 기울인다는 어필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즉, 이 전쟁에서 연합군의 실질적인 전략을 구성하고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참모진.

그 참모진의 톱에 지크프리트가 있는 것이다.

스트라부스 왕국은 경각심을 가지고 대응했다.

즉시 서부, 북부, 동부 전선에 병력을 증원하고 마스터인 라이언 카텔 공작과 맥카시 오브라이언 공작에게 각각 5만의 병력을 맡겨서 전선의 후방에 대기하게 했다.

군사 강국이 스트라부스 왕국이 어디 올 테면 와 봐라, 라는 마음가짐으로 전쟁 준비를 한 것이다.

그런 스트라부스 왕국을 상대로 공화국의 연합군이 공격을 시작했다.

그 시발점은 전에도 한 번 돌파한 적이 있는 북부 전선이었다.

“막아라!”

“공화국의 개새끼들아!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쳐들어와!”

“다 죽여 버려라!”

지난 전쟁에서 스트라부스 왕국의 북부 전선은 한 번 뚫린 적이 있었다.

그 대가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었고, 북부 전선의 수비를 담당하던 지휘관들은 대부분이 중징계를 면치 못했다.

그때의 실패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듯이 북부 전선의 지휘관은 병사들을 독려하며 최선을 다해서 싸웠다.

북부 전선의 요새들은 온 힘을 다해서 저항했고, 공화국의 공격을 잘 막아내는 듯했다.

그러나….

“와아아아아!!”

“성문이 부서졌다!”

“전군. 돌격하라!”

딱 10일.

견고하던 북부 전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크프리트가 본격적으로 지휘봉을 잡고 용병술을 발휘하자 굳건한 북부 전선의 요새들이 하나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서둘러서 라이언 카텔 공작과 맥카시 오브라이언 공작이 군을 이끌고 가세했지만 전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크프리트는 군사를 이끌고 북부 요새를 하나하나 점령하면서 스트라부스 왕국의 정복을 위한 디딤돌을 놓고 있었다.

위기감을 느낀 스트라부스 왕국의 국왕은 서둘러서 국제 사회에 호소했다.

[간악한 공화국의 칼날이 대륙을 위협하고 있소.]

[이는 대륙의 위기를 헤치는 미증유의 재앙으로….]

이런 저런 미사여구가 많았지만 요약하면 간단한 말이었다.

공화국이 생각보다 강하다.

우리만으로 막기는 힘이 드니 국제 사회에 원군을 청한다.

만약 우리가 막아내지 못하면 그때는 전 대륙이 위험하다, 라는 식으로 원군을 요청한 것이다.

그리고 이 원군 요청은 대륙 대부분의 나라에게 보내졌고 상당수가 수긍을 했다.

어찌 되었던 공화국이 북부에서 남하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것이 스트라부스 왕국이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 시린 건 상식이었고 각국은 원군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건 밀턴이 있는 레스터 왕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군은 제가 직접 이끌고 가겠습니다.”

밀턴은 레이라 여왕과 독대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꼭 그렇게 해야 하나? 원군 자체를 파병하는 것은 나도 찬성이지만 주력을 보내는 것보다는 그냥 생색낼 정도로만 하는 게 좋을 듯한데?”

레이라 여왕의 말에 밀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스트라부스 왕국이 무너지면 우리도 많이 위험합니다.”

“후작은 스트라부스 왕국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레이라 여왕은 그대로 스트라부스 왕국이라는 군사 강국의 저력을 믿고 있는 듯했다.

물론 밀턴도 스트라부스 왕국의 군사적 저력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지크프리트는 위험한 인간입니다. 놈이 작정하고 일을 벌였다면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거겠죠.”

스트라부스 왕국의 저력보다는 지크프리트라는 남자의 위험도가 밀턴의 안에서는 더 위에 있었다.

원군을 보내려면 제대로 보내서 스트라부스 왕국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의견을 존중해야겠지.”

레이라 여왕은 밀턴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순순히 국외로 보내주기는 역시 망설여졌다.

“그러나 꼭 그대가 가야 하는가?”

“그래야 직성이 풀리겠습니다.”

밀턴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제가 안 가고 그저 대규모 병력만 파병했다가 병력이 상하면…. 그 피해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지금 밀턴이 만들어 놓은 중앙군 병력 10만은 하나부터 열까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것이다.

밀턴 개인적으로도 애착이 갔지만 그보다 심각한 것은 만에 하나 이 병력이 괴멸된다면 레스터 왕국이 입는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밀턴은 자신이 직접 가서 병력을 챙기기로 한 것이다.

‘전쟁의 3순위는 승리, 2순위는 지크프리트의 목, 하지만 1순위는 우리 애들이 최대한 안 상하게 하는 거지.’

밀턴은 자신이 직접 가는 수밖에 없다고 이미 결심을 굳혔다.

다만 레이라 여왕은 역시 밀턴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후작이 나라를 비운다면 백성들이 많이 불안해 할 텐데?”

“백성들이요?”

“모르는가? 이번 전쟁이 벌어지고 백성들 사이에서는 그대의 인기가 더 높아졌다네.”

“예?”

그건 밀턴도 몰랐던 일이다.

‘뭐지? 이 전쟁하고 내 인기가 무슨 상관이지?’

이해 못하는 밀턴에게 레이라 여왕이 웃으며 말했다.

“지크프리트가 우리나라가 아니라 스트라부스 왕국에 쳐들어간 것은 우리나라에 있는 밀턴 포레스트가 겁이 나서 피한 것이다, 라는 소문이 백성들 사이에 유행처럼 돌고 있더군.”

“하아….”

‘뭐야? 그 레벨 MAX의 국뽕은?’

밀턴은 그냥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거야 공식적으로 밀턴은 지크프리트에게 유일한 승전을 거둔 인물이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백성들에게는 소문에 살이 붙고 붙어서 밀턴이 압도적인 지략과 무력으로 공화국의 지크프리트를 일방적으로 물리쳤다, 라는 식으로 소문이 퍼져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설마 이런 소문이 돌 정도라니?

“기대감이 너무 무거워서 부담되는군요.”

“그만큼 후작이 백성들에게 신뢰 받고 있다는 거지. 재건이 한창인 수도의 중앙 대로 기억하나? 자네가 개선식을 했던?”

“예. 그 길이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백성들이 그 길을 포레스트 대로라고 부른다고 하더군. 길에 자네 이름을 붙였어.”

“그거 참….”

‘내가 X지성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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