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게임-97화 (97/257)

제97화

다행이도 지금 밀턴은 레스터 왕국의 중앙군 총사령관을 맡고 있다.

국가의 군사력을 합법적인 절차로 증강시킬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이 권리를 이용해서 밀턴은 즉시 대대적으로 정규병을 모집하고 훈련시켰다.

한 번 큰일을 치른 후라서 그런지 국방을 위해서 인력과 자금을 투자하는 것에 반대하는 귀족은 없었다.

군사를 확장시키려고 결정하자 진짜 밑 빠진 독에 황금을 들이붓는 기분이었다.

그저 그런 잡병을 만드는 게 아니라 정규병을 조련시키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병사들의 무장과 임금, 거기다 훈련 과정까지….

그 모든 것에 다 돈이 들었다.

밀턴이 항해 무역으로 대박을 치지 않았다면 절대 감당하지 못할 금액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 덕분에 지금 레스터 왕국의 군사력은 전쟁 이전보다 훨씬 더 발전했다.

밀턴의 명령에 따라는 중앙군이 거의 10만이었고, 북부의 페일런 공작 산하에 있는 북부 수비군의 규모도 5만이었다.

총 병력 15만.

레스터 왕국의 규모를 생각하면 이 이상은 만들고 싶어도 도저히 만들 수 없는 병력이었다.

당연히 이런 거대 병력은 유지하는 것만 해도 엄청난 자금이 들어갔지만….

이 시대의 흐름이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는 밀턴이었기에 군비의 축소 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오히려 대외적인 부분 이외의 군사력 증강에도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중에 몇 가지가 최근에 와서야 성과를 내고 있었다.

오늘은 마침 그 성과 중에 하나가 완성되는 날이었다.

“이 녀석들입니까?”

“그래 꽤 공들였데이.”

밀턴이 찾아간 곳은 말을 키우는 마장이었다.

거기에서 비앙카가 자랑스런 얼굴을 하고 자신의 성과를 자랑했다.

“대단하군요. 이건…. 확실히 겉으로 보기에도 달라 보입니다.”

밀턴이 감탄한 것은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말들 때문이었다.

보통의 말보다 확연하게 한 사이즈가 커다란 말들은 겉으로 보기만 해도 강인해 보였다.

보통 근육이 잘 발달한 인간에게 말 근육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건 말들 중에서도 특출 난 몸짱으로 분류해야 할 것 같았다.

두드러지는 근육이 꿈틀거리며 약동할 때마다 위압감을 발휘하는 것이 엄청나게 강해 보였다.

그리고 이놈들이 비앙카의 결과물이었다.

예전에 비앙카가 고스트가 쓰는 비약에 관해서 말해 줬을 때 밀턴이 물었다.

혹시 이것과 같은 것을 만들 수 있느냐고 말이다.

그러자 비앙카가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인간에게 생체 실험을 하는 것은 마법사들 사이에서 최악의 금기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지크프리트가 이번 전쟁에 투입한 그 검은 해골의 기사들은 뭘까?

거기에 관해서 물어보려고 했지만 비앙카는 그저 절대 안 된다고 말하면서 거절했다.

그래서 절충안으로 제의한 것이 인간이 아니라 말의 강화였다.

이 시대의 전쟁에서 말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컸다.

몇몇 나라에서는 혈통 좋은 군마를 따로 관리해서 외부로의 유출을 철저하게 자제할 정도다.

레스터 왕국에서도 옛날부터 꽤 좋은 준마의 혈통이 이어져 오고 있었다.

그 말들을 약물로 강화할 수는 없을지 시도해 본 것이다.

“호오…. 말을 강화한다고?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비앙카는 밀턴의 말에 흥미를 가졌다.

그리고 비앙카는 어린 망아지들을 맡아서 약물로 개량을 시작했다.

그 성과가 바로 지금 밀턴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체구만 커진 게 아니데이, 근력, 지구력, 그리고 근육과 뼈의 강도까지 꽤 높아졌데이. 아마 갑옷 없이도 비리비리한 화살 정도는 튕겨낼 기다.”

“대단하군요. 이 정도라면 어지간한 맹수도 한 방에 차 버리겠군요.”

밀턴이 솔직하게 감상을 말하자 비앙카가 웃으면서 말했다.

“실제로 야들 중에서 곰하고 싸워서 이긴 아도 있데이.”

“예? 곰하고? 말이 말입니까?”

밀턴은 깜짝 놀랐다.

그런 밀턴에게 비앙카가 말했다.

“저기 자 보이나? 그래 검은색 흑마에 눈 빨간 아.”

비앙카가 가리킨 곳에는 위암감이 엄청난 흑마가 있었다.

주변에 다른 말들도 똑같은 품종으로 개량을 했는데 같이 있으면 기가 죽는지 은연중에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점마 저거 걸작이라카이. 무리를 방목장에 풀어놨을 때 곰이 나타나니까 다른 아들은 쫄아서 도망가는데 점마가 달려들어서 푸닥거리를 시작하는데 안 밀리더라. 그러다가 결국은 한 방에 뻥 차버렸다 아이가. 보는데 기가 막히더라.”

“허어어….”

밀턴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마, 니 아니면 제롬 그 머스마가 타는 게 좋지 않겠나?”

“으음…. 그렇겠죠?”

밀턴이 보기에도 눈앞에 보이는 흑마는 대단했다.

그저 거대한 것을 넘어서 분위기가 있었다.

당당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강자의 분위기가 말이다.

밀턴은 순간적으로 소유욕이 왈칵 샘솟았다.

‘저거 탐나네.’

저놈을 타고 달리면 어떤 기분일까?

다이내믹한 주법으로 대지를 박차며 앞으로 질주하면 과연 어디까지 달릴 수 있을까?

이 세계에서 전설의 명마는 바람을 앞질렀다, 라는 말이 있다.

밀턴은 당연히 개 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놈이라면 실제로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놈은 제가 타도록 하죠.”

결국 밀턴은 저 흑마를 자신이 차지하려고 했다.

전쟁터에서 제롬이 보여주는 실력을 생각하면 제롬에게 수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하지만 밀턴은 정말 저놈이 탐이 났다.

‘적토마에 배신을 결심한 여포의 심정을 알겠군.’

“한번 타 봐도 됩니까?”

“탈 수 있으면 말이제.”

비앙카가 팔짱을 끼고 말하자 밀턴이 씨익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한 성질 하는가 보죠?”

“아니, 두 성질은 하제. 하하하하.”

“…….”

비앙카한테 아재 개그를 알려준 게 누군지 모르겠지만 꼭 알아내서 벌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밀턴의 명령에 흑마의 등에 안장이 얹어지고 고삐가 채워졌다.

그 과정에서 마장의 관리자들의 움직임은 몹시 조심스러웠다.

마치 폭탄을 건드리는 것처럼 조마조마하게 말이다.

이 마장의 관리자들이라면 말을 다루는 데 도가 텄다고 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었지만 저 흑마를 대하는 태도는 몹시 신중했다.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닌가?’

고삐를 채우고 안장을 얹을 때까지 순순히 따르는 것을 보면서 밀턴은 생각보다 성격이 난폭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오산인 것은 놈의 등에 올라타고 나서 깨달았다.

“우웃!!”

“히히히히히히힝!! 히이잉!”

“이 미친 망아지 새끼가!”

흑마는 밀턴이 등 뒤에 타자 처음에는 얌전하게 구는 듯했다.

천천히 걸었고 가볍게 달리기도 잘했다.

거기에 밀턴은 조금 안심하고 슬슬 본격적으로 달려볼까? 라고 생각하며 마음에 틈을 보였다.

그러자 이놈이 기다렸다는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앞뒤로 펄쩍펄쩍 뛰면서 날뛰는데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익스퍼트인 밀턴이 튕겨나갈 뻔했다.

“히히히힝!!”

밀턴이 튕겨나가지 않고 버티자 놈은 더욱더 미친 듯이 날뛰었다.

“이 새끼가…. 얌전한 건 연기였냐?”

밀턴은 이를 갈았다.

처음부터 난폭하게 굴었으면 충분히 대비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놈은 얌전하게 굴다가 밀턴이 안심한 그 순간을 노려서 갑자기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난폭하기만 한 게 아니라 머리가 좋은 것이다.

아니면 이런 짓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니거나 말이다.

‘어쩐지 마장의 관리인들이 거의 폭탄 건드리듯이 조심하더라니.’

밀턴은 이를 악물었다.

이제 결정했다.

이놈은 말을 길들인다는 물렁한 생각으로는 안 되는 놈이다.

맹수를 조련한다는 마음으로 밀턴은 채찍을 들었다.

“얌전히 있어!”

짜아아아악!!

“히이이이잉!!”

오러는 싣지 않았지만 밀턴이 작정하고 내려친 채찍에 놈의 움직임이 일순간 멎었다.

“푸르릉….”

그리고 놈은 뒤로 고개를 돌려서 밀턴을 바라보며 위협했다.

[너 지금 쳤냐?]

말이 통할 리는 없지만 어째 말의 눈빛에서 의사가 전해지는 듯했다.

반항기 가득한 놈의 눈빛을 보며 밀턴은 전쟁터에서 적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살기를 뿜어냈다.

[그래. 쳤다. 어쩔래?]

한 10초 정도 둘의 기세 싸움이 벌어졌다.

그리고….

“푸르르….”

결국 먼저 기세를 죽인 것은 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익스퍼트인 밀턴이 작정하고 뿜어내는 살기에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미물인 말이 거기에 지지 않고 기 싸움을 시도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보통의 말들이라면 밀턴의 기세에 눌려서 오줌을 싸며 실신했을 텐데 말이다.

“이제 좀 고분고분해지려나?”

밀턴은 서서히 살기를 거두고 놈의 갈기를 쓰다듬으려 했다.

채찍 다음엔 당근.

맹수 조련의 상식이다.

그런데….

“히히히히힝!!”

“이 미친 말 새끼야!!”

살기가 살짝 가라앉자 다시 기다렸다는 듯이 발광을 시작했다.

놈의 그 발광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열두 시간 후.

“이야…. 독한 놈이 독한 놈을 만나면 이래 되나? 처음 알았데이.”

중간에 배고파서 밥을 먹으로 갔던 비앙카는 마장에 돌아와서 감탄했다.

무려 열두 시간 동안 밀턴은 말과 기 싸움을 하고 있었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이쯤 되면 그냥 독한 놈들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후우…. 이 독한 새끼야. 이제 좀 인정하자. 너 나 못 이겨.”

“푸르르릉….”

밀턴은 검은색의 말 위에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온몸이 사우나라고 한 것처럼 땀에 흠뻑 젖었다.

비앙카에게 지구력도 상승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설마 열두 시간 동안 이 지랄을 해야 할 줄은 몰랐다.

생각 같아서는 이 세상에 말이 이놈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포기할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놈의 힘을 온몸으로 느낄 때마다 생각을 바꿨다.

이런 놈이 전쟁터에서 아군으로 있어 준다면 정말 든든할 것 같았다.

어지간한 보병 대열은 그냥 닥치고 돌격해서 다 허물어 버릴 것 같았다.

그걸 생각하면 역시 이놈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다가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제 좀 포기하자. 넌 배도 안 고프…. 응?”

말을 하다 보니 밀턴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봐. 여기에 각설탕 좀 가져와.”

“예. 각설탕을 말입니까?”

“그래. 어서.”

밀턴은 전생의 기억에서 떠올랐다.

말이 진정하라고 각설탕을 주는 경우가 있다고 말이다.

다만, 이 세계에서는 그런 경우가 없다.

기본적으로 설탕은 엄청난 사치품이었기 때문이다.

귀족들이나 먹지 평민들은 1년에 한 번 입에 대 보기도 힘들었다.

그런 설탕을 말에게 준다는 생각 따위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급하게 공수해온 각설탕을 받은 밀턴은 그것을 흑마의 입에 들이밀었다.

“먹어봐라.”

“푸르르릉.”

흑마는 잠시 동안 경계하는 듯했지만 달콤한 향기에 마음이 동하는 듯했다.

그리고 각설탕 한 조각을 낼름 삼켰다.

“푸르릉!”

밀턴은 전생에 어떤 수의사가 한 말이 기억났다.

개미부터 코끼리까지 이 세상 대부분의 생물은 단맛을 좋아한다고 말이다.

달콤한 맛에 매료된 놈은 게 눈 감추듯이 밀턴의 손바닥 위에 있는 각설탕을 먹어 치웠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더 없냐는 듯이 아쉬운 티를 냈다.

“이빨 썩는다. 이놈아.”

밀턴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한번 흑마의 등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갈기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 말을 잘 들으면 앞으로도 종종 주마.”

“푸르르릉….”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아니면 눈치로 알아챈 것일까?

확실히 밀턴의 손길을 받아들이는 흑마의 태도가 전보다 좀 고분고분해졌다.

놈이 고집을 꺾었다는 것을 안 밀턴은 고삐를 잡고 배를 찼다.

“가자!”

그리고 밀턴의 명령에 순순히 따르며 흑마가 달리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