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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87화 (87/257)

제87화

“주군, 우익에 전열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원인은?”

“익스퍼트가 다수 포함된 병력이 공격해 왔습니다.”

이 국면에 소수의 부대에 실력자를 배치시켜서 측면을 공격한다?

그렇다면 목적은….

“내 목을 노리는 거군.”

밀턴은 거친 소음과 비명이 들리는 오른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저기서 날뛰고 있는 병력이 적의 비장의 카드인 모양이다.

여기에 맞서서 제롬과 기사단을 보내고 싶었지만, 그들은 좌익의 기습에 대응하기 위해서 보냈다.

불러오려면 불러올 수는 있겠지만 그때는 좌익의 전열이 허무하게 밀릴 수 있다.

‘저놈들은 내가 직접 대응하는 수밖에 없군.’

마침 이럴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둔 작전도 있었다.

상황을 파악한 밀턴은 즉시 움직였다.

“릭, 토미.”

“예. 주군.”

“남은 기사단과 함께 우측으로 돌입한다.”

“주군, 우측의 적에는 익스퍼트가 다수 보입니다. 위험합니다.”

토미가 만류했지만 밀턴은 고개를 저었다.

“정면 승부를 하는 게 아니다. 교란 작전 003을 실시한다.”

“교란 작전 003? 아! 예. 알겠습니다.”

릭과 토미는 정신을 차렸다.

예전에 밀턴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만들어둔 작전이 떠오른 것이다.

“똑바로 따라오도록. 너희 둘의 역할이 중요하다.”

“옛!”

“옛!”

그리고 밀턴은 그 기사단을 직접 이끌고 우측의 적을 처리하기 위해서 돌입했다.

하지만 그것은 고스트로서는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그들의 목적은 남부군의 우익을 돌파해서 밀턴의 목을 취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아직 비약의 효과는 충분하다.’

고스트 소대를 이끄는 소대장은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하며 검을 굳게 쥐었다.

고스트가 복용하는 비약은 어디까지나 효과가 제한되어 있는 약이었다.

적응 훈련으로 부작용을 최대한 줄인다고 해도 제한 시간의 한계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 사냥감이 눈앞에 나타나 준다면 고마울 따름이었다.

“전원 준비해라. 먹잇감이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옛!”

소대장의 명령에 따라서 남은 고스트 대원들도 오러를 일으킬 준비를 했다.

이 돌입 작전에 투입된 고스트 인원은 서른 명.

그중에서 지금 실력을 드러낸 것은 열 명뿐이다.

아마 적은 그걸 모르기 때문에 용감하게 돌격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잡을 수 있다.’

고스트 소대를 지휘하는 소대장은 성공을 확신했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적의 대장이 바로 눈앞에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때….

“기사단 정지! 전원 하마하라!”

고스트 부대에 접근한 밀턴은 기사들에게 뜻밖의 명령을 내렸다.

모든 기사들을 하마시키고 자신도 말에서 내린 것이다.

거기다….

“전 기사단은 산개하라.”

기사단에게 흩어질 것을 명령했다.

한 덩어리로 뭉쳐서 돌격했을 때 파괴력이 배가되며 진가를 보이는 것이 기사단이다.

그런데 그 기사들이 갑자기 산개해 버리니 상대들은 뜻밖의 상황에 당황했다.

“당황하지 마라! 포레스트 백작의 위치만 알면 된다!”

고스트 부대의 소대장은 당황했지만 급하게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밀턴의 지시를 받은 릭과 토미가 움직였다.

“내가 밀턴 포레스트다!”

“여기 밀턴 포레스트가 있다! 죽고 싶은 놈들은 덤벼라!”

몇 곳에서 동시에 포레스트 백작가의 깃발이 휘날리면서 자신이 밀턴 포레스트 백작임을 알렸다.

“읏….”

이 뜻밖의 사태에 고스트의 소대장은 당황했다.

적이 갑자기 산개해서 보병들 사이에 몸을 숨겼다.

거기다 여기저기서 깃발이 일어서면서 포레스트 백작이 여기에 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이래서야 노리고 있는 밀턴 포레스트 백작의 위치를 알 수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교란 작전 003이다.

원래는 전투에서 밀렸을 때 안전하게 후퇴하기 위해서 준비해 두었던 작전이었다.

하지만 적이 자신을 노리고 돌입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밀턴은 생각했다.

이 시점에서도 교란 작전을 써먹을 수 있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밀턴의 예상대로 고스트 소대는 크게 당황했다.

“소대장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부하의 물음에 소대장은 고민했다.

이런 사태는 미처 상정하지 못하고 돌입했다.

돌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현장 지휘관인 자신의 판단력.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최적의 지시를 내려야 했다.

‘후퇴? 아니 목적은 이뤄야 한다. 각개격파? 비약의 한계 시간이 가까워진다. 그렇다면….’

결국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고스트 소대장은 무리한 선택을 하고 만다.

“부대를 셋으로 나눈다. 포레스트 백작이라고 주장하는 놈들의 목은 전부 베어 버려라!”

“옛!”

소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부대가 순식간에 나눠졌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자신이 포레스트 백작이라고 우기는 자들을 향해서 돌입해 갔다.

전원 익스퍼트로 구성된 고스트 부대의 전력은 셋으로 나눠도 상당한 전력이었다.

“크아아악!”

“아악….”

“막아라. 이 검은 해골들을… 크악!”

고스트 소대는 농부가 잡초를 베어내듯이 병사들을 일방적으로 베어 넘기면서 적진 깊숙이 돌입했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전력이라고 해도 셋으로 나눠서 싸우니 역시 파괴력이 떨어졌다.

무엇보다, 그들은 너무 깊게 들어왔다.

“포위해라!”

“포위하고 창으로 견제하라!”

“겁먹지 마라! 익스퍼트라고 몸에 칼이 안 박히는 건 아니다!”

포위망이 점점 고스트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말대로 익스퍼트라고 칼이나 화살을 다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방금 같은 소규모로 조직된 특공대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전력을 ‘집중’시켜서 ‘신속’하게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밀턴은 스스로 몸을 숨기고 교란 작전을 펼쳤기 때문에 고스트는 전력을 분산시켰고, 어디에 있는지 모를 목표를 찾느라고 시간도 허비했다.

점점 포위망이 좁혀지고, 피해가 커지기 시작했다.

고스트 부대원을 따라서 돌입했던 일반 산악병들은 대다수가 죽어버렸다.

거기다 밀턴은 적이 힘이 빠졌을 때를 놓치지 않고 움직였다.

“내가 진짜 밀턴 포레스트다.”

포위된 고스트 부대의 앞에 밀턴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죽여라!”

“반드시 죽여라!”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살아서 돌아가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면 최초의 목적만큼은 반드시 이루겠다는 듯이 고스트들은 광분하며 달려들었다.

곧 있으면 비약의 효과가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초조함이 더해져서일까?

그들은 그야말로 앞뒤 가리지 않고 밀턴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밀턴의 함정이었다.

“쏴라!”

밀턴을 향해서 정신없이 달려드는 고스트의 측면에서 한 무리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퍼퍼퍽! 퍼퍽!

“크으윽….”

“크악….”

무수하게 화살을 날리는 궁병들을 지휘하는 것은 전방에서 활약하고 있던 트라이크였다.

애당초 밀턴은 주력이 빠진 2진의 기사단만을 데리고 적과 맞설 생각이 없었다.

처음부터 자신은 적을 분산시키고 유도시키기 위한 미끼일 뿐.

교란 작전을 시작하는 동시에 트라이크에게 지시를 내려서 자신의 원호를 하도록 명령해 두었다.

밀턴이 모습을 드러내서 미끼 역할을 하고 그 옆에서 트라이크가 이끄는 궁사들의 집중 공격으로 처리한다.

이 작전은 멋지게 맞아떨어졌다.

아무리 익스퍼트라고 해도 포위망 안에서 움직임이 제한된 이상 쏟아지는 화살 비를 피할 수는 없었다.

퍽! 퍼퍼퍽! 퍽퍽!

“크으…. 크아아악!”

“이 비겁한 놈들!”

고스트는 쏟아지는 화살에 고슴도치 같은 신세가 되었다.

특히 트라이크는 쉬지 않고 손을 놀리며 눈부신 전과를 날리고 있었다.

“오늘 날 한번 제대로 잡는구나.”

트라이크의 화살은 빠르고 정확했기에 익스퍼트라고 해도 위협적이다.

밀턴의 휘하에 있는 부하들 중 개인적인 무력을 따지면 단연코 제롬이 제일이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전과를 올리는 범위를 놓고 본다면 트라이크의 전공은 제롬 이상이다.

신기라고 불러도 아깝지 않은 그의 궁술은 전쟁터에서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번 전투에서만 해도 트라이크의 손에 죽은 지휘관들의 숫자가 두 자리가 넘는다.

거기다 이제는 지크프리트가 비밀리에 키워둔 비장의 무기인 고스트마저 일방적으로 사냥당하고 있었다.

“크으…. 죽…. 죽여라!”

“포레스트 백작을 죽여라!”

고스트 부대원들은 다 죽어 가면서도 집념을 보이고 있었지만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화살 비에는 집념도 소용이 없었다.

“크윽…. 지크프리트 님 만세!”

결국 마지막 한 명까지 밀턴에게 도달하지도 못했다.

화살에 고슴도치가 되어서 쓰러지는 마지막 한 명을 보며 밀턴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크프리트님 만세? 보통 이 치들이 죽을 때는 공화국 만세라고 하지 않나?’

밀턴은 이 검은 해골을 뒤집어쓴 부대가 공화국보다는 지크프리트 개인의 사병이 아닌가 싶었다.

그건 이상한 말이다.

사병은 보통 귀족들이 개인적으로 거느리는 군대를 말하는 건데 신분제를 인정하지 않는 공화국에서는 있을 수 없었다.

‘기억해 두자.’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머리 한구석에 이 사실을 집어넣어 둔 밀턴이었다.

그리고 다시 트라이크에게 신호를 보내고 움직였다.

아군의 피해를 줄이자면 나머지 잔당들도 서둘러 처리해야 했다.

“돌입한 특공대가 실패했다고 합니다.”

“실패했다고?”

“예. 살아 돌아온 자들은 없습니다.”

전령의 보고를 들은 지크프리트는 눈살을 찌푸렸다.

‘고스트를 1개 소대나 보냈는데 실패했단 말인가? 아무런 성과도 없이?’

고스트 1개 소대면 어지간한 기사단 하나둘 정도는 충분히 갈아 버릴 수 있는 전력이었다.

그런데 적은 그런 고스트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밀턴 포레스트라…. 내가 너무 얕봤군.”

지크프리트는 생각보다 밀턴이 강적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지크프리트가 생각하는 것만큼 밀턴도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백작님. 우측 전열의 피해가 생각보다 큽니다. 전군이 우측을 기점으로 해서 사선으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알아. 보고 있다. …빌어먹을. 그 괴물 같은 해골바가지 새끼들.”

밀턴은 이를 악물었다.

고스트 1개 소대를 격퇴한 밀턴이었지만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무려 익스퍼트 30인이 포함된 부대를 포위망에 가둬서 잡아먹었다.

덕분에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고 포위망을 구성하는 데 들어간 병사들의 피해가 너무나 컸던 것이다.

‘당초에 익스퍼트를 열 명이라고 계산하고 펼친 작전이었는데, 피해가 너무 크다.’

설마 자신의 목 하나 따자고 익스퍼트를 30인이나 돌입시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초반에 보병들의 전투에서 우위를 보인 덕분에 우측 전열이 무너져도 지금 당장 아군의 피해가 크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문제다.

어느 정도 싸워 보고 안 것인데 역시 병사 하나하나의 질은 적이 더 높았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초반의 우위는 사라질 것이다.

‘그 전에 적을 한 번 더 흔든다.’

결심을 굳힌 밀턴은 제롬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좌측은 안정화시켰나?”

“예. 그렇습니다.”

“좋다. 하지만 우측의 피해가 너무 커서 전열이 무너지려고 하고 있다.”

“즉시 기사단을 이끌고 우익을 보강하러 가겠습니다.”

밀턴은 그런 제롬을 말리며 말했다.

“우측의 열세는 릭과 토미가 2진의 기사단을 이끌고 메울 것이다. 그러니 너와 나는….”

밀턴은 적의 본진에 펄럭이는 깃발을 보며 강하게 말했다.

“적의 중앙을 친다.”

당한 대로 갚아줄 생각인 밀턴이었다.

남부 기사단을 이끌고 밀턴은 적진에 중앙 돌파를 시도했다.

정면의 보병들 간의 전투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로 대범한 한수였다.

하지만 밀턴은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우리 군의 우익에 밀어 넣은 익스퍼트가 무려 30이다. 그렇다면 지금 정면에서 나하고 제롬의 돌파를 받아낼 힘이 있을 리가 없어.’

그렇다면 제롬과 자신이 주력인 남부 기사단을 이끌고 정면을 돌파하면 충분히 적의 중추에 닿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제롬. 길을 열어라! 단숨에 돌파한다!”

“옛. 주군!”

제롬은 최선두에서 화려하게 오러를 뿌리며 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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