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화
밀턴과 알프레드의 결투가 치열해지면서 다른 이들은 감히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한명은 예외였다.
제롬 테이커.
이 남자는 난입하려면 난입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러려고도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대단해….’
그는 지금 밀턴이 또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올라서려고 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오러가 갑자기 증폭되었을 때는 난입하려고 했지만 밀턴이 뜻밖에 잘 버티는 것을 보고 망설였다.
그리고 어느새 지켜보다 보니 밀턴이 점점 지금의 상황에 적응을 해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힘겹게 막아내던 공격을 서서히 완숙하게 막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짧은 순간 적에게 적응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나도 천재 소리를 듣기는 들었지만 주군에 비하면 부끄러울 정도군.’
밀턴은 제롬이 진정한 천재이고 자신은 수재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제롬은 종종 생각했다.
정작 진짜 천재는 주군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말이다.
제롬이 처음 밀턴을 만났을 때.
밀턴은 익스퍼트도 아닌 평범한 기사였다.
그저 전쟁터로 향하기 위해서 병사의 숫자조차 모자라 용병을 고용하려는 가난한 영주였을 뿐이다.
그랬던 밀턴이 서부 전선에서 실제 전쟁을 겪으며 기량이 일취월장하더니 결국 익스퍼트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익스퍼트에 오르고 전쟁터에서 돌아온 후에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세상에 많은 기사들이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르면 달성감과 동시에 만족감을 느낀다.
이쯤하면 충분히 강해졌다.
이쯤이면 충분히 성공했다.
만족감이란 때때로 나태함을 불러오는 독이 되기도 한다.
어차피 마스터의 경지는 높은 하늘 위의 경지라는 생각으로 익스퍼트에 안주하며 포기하는 자들이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밀턴은 안주하지 않았고 노력을 게을리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 밀턴은 벌써 익스퍼트 중급의 경지까지 올라섰다.
밀턴의 훈련을 봐주고 있던 제롬은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놀라움이 더 컸다.
‘진짜 천재야.’
이때 제롬은 확신을 가졌다.
언젠가 자신의 주군인 밀턴 포레스트는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방해를 할 수는 없다.
지금의 시련 하나하나가 밀턴에게는 소중한 양식이 될 것이니 말이다.
‘가능한 끝까지 지켜보자.’
제롬은 검을 꽉 움켜쥐고 밀턴의 모습을 지켜봤다.
‘큭…. 어째서…. 어째서 쓰러지지 않는 거냐?’
알프레드의 초조함은 극에 달했다.
비약을 마시고 훨씬 더 강해진 힘으로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때만 해도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검을 교환하면 할수록 상대가 점점 자신을 따라오고 있었다.
초반에 밀리는 모습이 사라지고 이제는 안정적으로 자신을 상대해 가는 적을 보고 알프레드는 눈에 핏발이 섰다.
이게 뭔가?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이래서는 자신이 상대방의 잠재력을 끌어올려 주는 것밖에 되지 않지 않는가?
전쟁의 승리를 포기하고….
부하들의 목숨을 바치고….
자신의 목숨도 바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검은 적장에게 닿지 않는다.
이런 불합리함을 현실이라고 인정해야 한단 말인가?
정녕 그렇단 말인가?
‘X 같은 개소리!!’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알프레드는 폭발했다.
그의 검에 오러가 넘치듯이 흘렀고 그의 온몸에 혈관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혼신의 힘이 실려 있는 그의 공격이 밀턴의 정수리로 떨어지는 그 순간….
‘빈틈!’
상대방의 동작이 커진 것을 놓치지 않고 밀턴의 검이 최단거리로 예리하게 섬광을 그었다.
스팟!
날카로운 섬광이 지나가고 바닥에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크윽….”
바로 알프레드의 오른손이었다.
알프레드의 공격이 닿기 전에 밀턴의 검이 먼저 알프레드의 손목을 잘라 버린 것이다.
“이…. 이 노오오오옴!!”
알프레드가 분노의 고성을 질렀지만 밀턴의 그 전에 이어지는 밀턴의 공격이 알프레드의 목을 쳐 날려 버렸다.
촤아악!
화려한 피분수를 날리며 알프레드의 머리가 치솟았고, 밀턴은 그 머리를 창에 꽂아 들어 올리고 크게 외쳤다.
“우리들의 승리다!”
“와아아아아!!”
승리의 함성을 들으며 밀턴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밀턴의 머릿속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자신보다 지략이 높은 지략형 무장을 전략 전술로 압도해서 이겼습니다.]
[실전에서 검술의 경지를 한 단계 진보시켰습니다.]
[새로운 특성이 전략이 생겼습니다.]
[교섭 특성이 사라졌습니다.]
[기존의 특성 카리스마와 각성이 합쳐져서 특성 군주의 위엄이 생겼습니다.]
‘뭐지? 이건….’
갑자기 여러 개의 메시지가 떠서 밀턴은 당황했다.
그리고 바로 자신의 스텟을 열어보니….
[밀턴 포레스트 백작]
군주 LV.3
무력 - 81 통솔 - 85
지력 - 80 정치 - 61
충성 - 100
특성 - 위엄, 인덕, 전략.
군주의 위엄 LV.1 :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군에게 강한 믿음을 주며 적에게는 두려움을 준다. 상벌을 내림에 따라 신하의 충성심을 크게 올릴 수 있다.
인덕 LV.4 : 대중들에게 포상을 내리거나 연설을 함으로써 민심을 끌어올릴 수 있다.
전략 LV.2 : 전쟁의 전체적인 판도를 읽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모든 특성을 확인한 밀턴은 크게 놀랐다.
‘언제 이만큼 올랐지? 이 정도면 거의 전쟁에 특화된 군주 같은 느낌인데?’
무력, 통솔, 지력.
이 세 가지 특성이 모두 다 80을 넘었다.
전쟁을 계속 수행하다 보니 거기에 필요한 부분이 크게 발달한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교섭 특성이 사라진 것도 이해가 갔다.
특성이라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그 능력은 한 번 습득하면 평생을 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쓰지 않으면 점점 무뎌지는 것이 인간의 능력인 것이다.
최근 밀턴은 누구를 상대로 교섭을 한다거나 할 일이 없었다.
복잡한 정치사는 레이라 공주가 알아서 했고 밀턴 본인은 전쟁의 수행에만 집중했으니 교섭을 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교섭 능력이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번에 놀라운 것은 두 가지 특성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새로운 특성 군주의 위엄이었다.
카리스마와 각성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이 능력은 설명만 봐도 굉장히 좋았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아군을 단합시키고 적에게는 두려움을 심어준다.
그리고 상벌에 따라서 충성심의 등락 수치도 훨씬 커진 것 같았다.
즉, 주변 사람들이 밀턴을 점점 거물로 여기게 된다는 말이었다.
점점 무력이 강해지고 전쟁에 능숙해지고 아군에게 위엄이 서는 인물.
‘꼭 초패왕 항우 같네.’
밀턴은 자신이 지구의 역사로 비교할 때 항우하고 비슷한 군주가 되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전쟁을 수단으로 삼아 적을 굴복시키고 아군에게 군림하는 패왕의 모습.
별로 그런 게 자신의 취향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시대에는 딱이군.’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밀턴이었다.
밀턴이 알프레도에게 거둔 압승은 그야말로 경이적인 전과였다.
적을 완전히 패퇴시켰고, 적 지휘관의 목도 취했다
무엇보다 아군의 피해가 경이적일 정도로 적었다.
밀턴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서 전쟁을 수행한 덕분에 남부군의 피해는 거의 전무하다고 봐도 좋았다.
다만, 이런 밀턴의 상황과 달리 동쪽의 대로로 진격한 스트라부스 왕국의 군대는 상황이 썩 좋지 않았다.
5만의 군대를 이끌고 진격한 데릭 브란스는 이번 원정의 목적 중에 하나인 지크프리트가 자신의 앞에 나타났다는 것에 고무되었다.
노리던 사냥감이 나타났으니 바라던 바였던 것이다.
다만,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상대는 훨씬 더 만만치 않았다.
브런스 공작이 이끄는 군세가 5만. 거기에 비해서 지크프리트가 이끄는 군세는 2만이었다.
병력 차이가 두 배인 것이다.
마스터인 브란스 공작까지 있는 상황이니 양군이 가지고 있는 힘의 차이는 사실상 세 배라고 봐도 좋았다.
그러나 전투가 시작되고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브란스 공작 쪽이었다.
지크프리트는 우선 자신의 군을 여럿으로 분산시켜서 위치를 숨겼다.
힐데스 공화국의 특성을 살려 산이나 숲에 숨어서 절대 위치를 들키지 않고 철저한 게릴라전으로 적을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적의 습격에 무리한 추적을 하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역공을 받고 괴멸되었다.
그렇다고 적을 무시하고 군을 진군하려고 하니 등 뒤에 적을 두기에는 너무나 껄끄러웠다.
결국, 브란스 공작이 이끄는 스트라부스 왕국군 5만은 적과 정면으로 싸워보지도 못한 체 발이 묶여 버린 것이다.
그리고 발이 묶인 적을 상대로 지크프리트의 군대는 철저하게 치고 빠지는 방식으로 공격을 계속했다.
그 방식이 얼마나 절묘하고 신속한지 당하는 입장에서는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스트라부스 왕국의 군대가 5만 대군이라는 것도 한몫을 했다.
그만큼 커다란 대군이다 보니 진형도 거대했고, 힐데스 공화국의 입장에서 보면 덩치도 컸지만 때릴 곳도 많았던 것이다.
“어제도 피해가 발생했소. 적들이 후방을 급습해서 아군 병사 500여 명이 죽거나 부상당했소.”
“후방은 별것 아니오. 그 후방의 소란을 듣고 기사단이 지원을 나갔을 때 그 검은 해골 놈들이 나타나서 우리 허리를 끊어 먹었소.”
“그 빌어먹을 것들이?”
“피해가 정말 컸소. 병사들의 피해만 해도 1,000이 넘었지만 놈들이 군수 물자에 불을 놓아서 그걸 진압하느라고 변변한 추적도 하지 못했소.”
“그 망할 놈의 해골 새끼들….”
스트라부스 왕국군의 참모들은 이를 갈았다.
원래 힐데스 공화국의 산악병은 악명이 높았다.
하지만 이번 전투에서는 한층 더 어려운 상대들이 나타났다.
검은색 해골 모양의 투구를 쓰고 온몸에 검은색 가죽 갑옷을 입은 병사들.
정식 명칭은 모른다.
스트라부스 왕국의 참모부는 그들을 검은 해골이라고 불렀다.
그 검은 해골들은 힐데스 공화국의 산악병들 중에서도 특출 난 존재들인 것 같았다.
규모는 추정하건대 100에서 200 정도였지만 이 소수의 특수 부대에게 입은 피해가 너무나 컸다.
단 한 번 검은 해골을 포위할 기회가 왔었다.
그러나 놈들은 강행 돌파를 하고 포위망을 너무 쉽게 빠져나가 버렸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포위망을 구성했던 기사단은 박살이 나버렸다.
익스퍼트가 열 명이나 포함된 기사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로 인해 참모부에서는 검은 해골들 중에서도 최소한 익스퍼트가 30에서 50 정도는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숫자도 수준도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어서 추정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 검은 해골이라고 불리는 특수 부대가 엄청나게 골칫덩어리라는 것이다.
“어떻게든 해야 합니다. 놈들에게 입은 피해가 벌써 3,000에 도달하려고 합니다.”
“피해도 피해지만 병사들 사이에 공포심이 퍼지고 있습니다. 우리 군이 훨씬 더 많은데 말입니다.”
“숫자가 많다고 전쟁의 승패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실제로 반대편 전선에서는 포레스트 백작이 이끄는 남부군이 2만으로 3만의 적을 압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귀공은 도대체 누구 편이요?”
“편이라니? 현실을 평가하자는 말이오. 현실을!”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는지 참모들은 자신들끼리 논쟁을 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그런 참모들에게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진정들 하라.”
단 한마디로 흔들리는 참모들의 중심을 잡은 것은 브란스 공작이었다.
그는 참모들의 시선을 받으며 말을 이었다.
“적이 정면 승부를 피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힘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대로 힘 대 힘의 승부를 하면 되는 것이다.”
“어찌하시겠습니까? 공작님.”
“미끼를 던져야지. 놈들이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그런 미끼를 말이야.”
그리고 브란스 공작은 참모들에게 모종의 지시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