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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76화 (76/257)

제76화

비앙카에게 투명화 마법을 받은 밀턴과 기사들은 적의 정찰병을 손쉽게 처리했다.

어두운 숲속에서 시야도 좁고 소음도 많은 상황이다 보니 적병은 일절 대응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무엇보다….

‘투명화 마법에 대한 대비가 전혀 안 되었으니. 놈들도 어쩔 수 없었겠지.’

마법사는 몹시 희귀한 존재다.

더구나 레스터 왕국에는 공식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마법사도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 적들은 이런 경우는 상상도 못한 것이다.

어쨌든 밀턴은 적의 경계망의 일각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제 할 일은 하나뿐이다.

“적습이다!”

적의 공격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잠들었던 알프레드는 보초의 목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냐!?”

“알프레드 대위님. 적들의 야습입니다.”

“뭐라고!?”

알프레드는 깜짝 놀랐다.

철저하게….

정말 철두철미하게 준비를 했다.

그런데도 적이 본대를 야습했다는 것이다.

‘있을 수 없어.’

어떻게 적은 아군이 숲속에 야영 중이라는 것을 안 것일까?

어떻게 적이 본대까지 공격해 오면서 꼼꼼한 정찰망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일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자 알프레드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알프레드 대위님. 지시를 내려 주십시오. 적의 공격에 대응해야 합니다.”

전령의 재촉에 알프레드는 정신을 차렸다.

“즉시 전군 항전하라. 호위대는 나를 따라라. 내가 현장에서 직접 지휘하겠다.”

알프레드는 검을 들고 밖으로 나가서 즉시 상황을 살폈다.

“크아악!!”

“싸워라! 당황하지 말고…. 커억!”

상황은 몹시 좋지 않았다.

야습이라고 해서 적의 규모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지금 규모를 봐서는 최소한 1,000 단위 이상의 적들이 들어와서 야습을 가한 듯했다.

“빌어먹을… 어떻게 이 정도 병력이 정찰을 피해서 본대까지 접근했단 말이냐?”

신중한 만큼 입도 무거운 알프레드였지만 지금은 욕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욕보다 더 급한 것은 상황을 진정시키는 것이다.

“병사들을 진정시켜라. 우리보다 적이 더 소수다!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대응하라!”

알프레드는 중간 지휘관들에게 병사들을 진정시키게 하며 자신이 직접 병력을 지휘했다.

“렌즈 소위는 병사 200과 함께 동쪽으로 이동하라. 블레이드 준위, 페트리 준위. 남쪽은 이미 늦었다. 대신 병사들을 이끌고 궁수를 지켜라. 침착하게 대응하면 적들은 금세 물리칠 수 있다!”

알프레드는 지금이 위급 상황이라고 보고 과감한 지시를 내렸다.

평소 병사들을 가장 많이 살려내는 지휘관으로 이름 높은 그였지만 지금은 긴급 상황이었다.

과감하게 틀렸다, 싶은 부분은 포기하고 멀쩡한 부분부터 챙기는 방식으로 지휘를 했다.

어차피 여기까지 왔다면 병력의 손실은 어쩔 수 없는 것.

역설하면 이 상황에서는 이것이 가장 많은 병사들을 살리는 길이었다.

그가 고군분투하며 지휘를 하자 적도 어려움을 느끼고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제 충분하다. 퇴각! 퇴각하라!”

적들은 한바탕 분탕질을 친 것으로 충분하다고 느꼈는지 이대로 물러났다.

“대위님. 적을 추격하겠습니다.”

공화국군에 장교 한 명이 분에 넘쳐서 추격하려고 했지만 알프레드는 즉시 말렸다.

“안 된다. 이 상황에서 추격을 해도 소득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지금은 피해 상황의 파악이 우선이다. 즉시 상황을 파악해서 보고하라.”

알프레드는 그렇게 지시를 내리면서 몹시 불안했다.

적의 지휘관은 이제 충분하다고 하면서 물러났다.

마치 이번 야습으로 거둘 수 있는 목적은 충분히 거뒀다는 듯이 말이다.

‘설마…. 제발….’

머릿속으로는 제발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상황이 계속 연상되었다.

잠시 후 전령이 급하게 다가와서 피해 상황을 보고했다.

“알프레드 대위님. 야습으로 총 3,300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부상자를 포함하면 피해는 더 늘어날 듯합니다.”

전령의 보고를 받고 알프레드가 말했다.

“그게 다인가?”

“예?”

“물자는? 보급품은 괜찮은가?”

“옛? 예… 괜찮습니다. 두 곳으로 나눠서 보관했으나 양쪽 모두 적의 습격은 없었다고 합니다.”

“후우우우우….”

알프레드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이군.”

야습을 당했을 때 가장 피해야 하는 것은 두 가지다.

지휘관의 목이 날아가는 것과 보급품의 파괴나 약탈.

이것만큼은 절대 피해야 했다.

자신의 목은 아직 붙어 있으니 주의해야 할 것은 보급품뿐이었는데 다행이도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은 모양이다.

“놈들도 보급품을 파괴할 여유는 없었나 봅니다.”

“그래. 그렇군. 혹시 모르니 그래도 주변 경계를 강화하라. 그리고 날이 밝는 대로 후방으로 후퇴한다. 서전은….”

알프레드는 침통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들의 패배다. 하지만 반드시 갚아줄 것이다.”

“옛!”

“주군. 적이 물러나고 있습니다.”

“예정대로군.”

밀턴은 제롬의 보고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 병력의 피해가 생각보다 적은 것이 좀 마음에 걸렸지만 애당초 이번 공격으로 큰 피해를 주기에는 적의 진형이 너무 안전을 우선해서 지어져 있었다.

여기서 무리를 해서 추적을 하다가는 아군의 피해가 커질 것 같았다.

그런 밀턴의 옆에서 트라이크가 나서서 말했다.

“좋은 기회인데 추적도 없이 그냥 보낼 겁니까?”

“어쩔 수 없지. 상당히 꼼꼼한 적이더군. 이미 퇴각로도 확보해둔 상태로 전투에 나선 것이었어.”

“그래도 명령하신다면… 제가 가서 한 건 올리고 오겠습니다.”

트라이크가 말하는 한 건이라는 것은 적장을 저격하겠다는 말이었다.

이 야심한 밤에 혼전 상황이라고 해도 트라이크라면 해낼지도 모른다.

밀턴은 순간 그렇게 할까? 라는 욕심이 났지만 고개를 저었다.

‘상황은 이미 계획대로 가고 있다. 욕심을 부릴 만큼 적장의 목이 절실하지는 않아.’

결론을 내린 밀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은 그럴 필요 없다. 그냥 도망가게 내버려 두어라.”

“흐음… 뭔가 생각이 있으신 겁니까?”

트라이크의 말에 밀턴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켜보면 알 거야.”

알프레드는 군대를 추슬러서 후방으로 후퇴했다.

미리 퇴각로를 준비해 두었고 야습에서 적절한 대응을 했기 때문에 그래도 군의 피해는 최소화되었다.

보통의 지휘관이라면 이미 끝장이 났을 테지만 그는 전력의 70퍼센트를 지켜서 무사히 후방으로 후퇴했다.

다만 아직까지도 알 수 없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내 정찰망을 무력화시킨 거지.’

후방으로 후퇴한 후에 패배의 이유를 되짚어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정찰병들이 한 명도 생환하지 못한 것을 보고 정찰망이 무너졌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결코 자만하지 않는 성격의 알프레드였지만 자신의 정찰병의 질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원래 산악 지역에서 활동하는 산악병들 중에서도 억세고 날랜 병사들만 꾸려서 충분한 숫자와 질을 유지했다.

원래 힐데스 공화국의 산악병은 정예 중에 정예였다.

눈과 귀도 밝고 험악한 지형에서도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 정찰병들이 갑자기 다 죽어 버린 것이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주 능숙한 암살자라면 한둘 정도는 기습으로 해치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꼼꼼하게 유지하고 있는 정찰망 전체를 붕괴시키는 것은 역시 무리였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패배의 요인을 알아야 거기에 대응을 할 수 있을 터인데 그걸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전쟁을 꼼꼼하게 수행하는 알프레드에게 있어서 적이 어떤 작전을 썼는지 모르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알프레드 대위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부관이 앞으로 어찌 대응할지를 묻는 말에 알프레드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 중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을 선택했다.

“농성에 들어가서 버틴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알프레드가 지휘하는 공화국군은 인근에서 가장 튼튼한 성벽을 가지고 있는 랑켄 요새로 들어갔다.

거기서 최대한 버티면서 적의 공격을 막아볼 생각인 것이다.

‘지크프리트 비서관님이 내린 명령은 버티기만 해도 수행할 수 있다.’

큰 욕심은 없다.

하지만 주어진 임무만큼은 반드시 수행해 보이겠다.

알프레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적이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전령의 보고를 들은 밀턴은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게 나오는군.”

밀턴은 바로 대응하기 위해서 군사 회의를 열었다.

“농성에 들어갔다니 골치가 아프군요.”

“랑켄 요새라고 하면 북부의 군사 요새 중에서도 꽤 견고한 곳이 아닙니까?”

“정공법으로 공격을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군요.”

군사 회의에 참여한 남부 귀족들의 대화를 듣고 밀턴이 말했다.

“따로 공성전을 준비할 필요는 없소.”

“뭔가 묘안이 있으십니까?”

이제까지 전쟁에서 밀턴이 보여준 확고한 성과가 있었기에 귀족들의 눈빛은 기대감이 가득했다.

그리고 밀턴은 그 기대감에 배신하지 않고 대답했다.

“적은 알아서 성 밖으로 나오게 될 것이오. 우리는 그때 적을 섬멸할 것이오.”

밀턴이 이렇게 단언하자 남부의 귀족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기뻐했다.

“백작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무조건 믿고 따르겠습니다.”

지금 남부군에 참전한 귀족들은 대단한 인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가지 장점은 있었다.

현장 경험이 일천한 자신들이 뭐라고 말하며 주제넘게 나서지 않는다는 것.

그 덕분에 밀턴이 설명을 생략하고 독단을 결정한다고 해도 이들은 순순히 따랐다.

남부군은 밀턴의 명령대로 랑켄 요새를 전면에 두고 탄탄하게 진형을 만들었다.

다만, 공성전을 시도하지는 않고 그저 대치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밀턴은 비앙카를 불러서 말했다.

“대강 며칠 정도 걸릴까요?”

“길면 열흘. 짧으면 닷새 정도 되지 싶다.”

“그렇군요.”

비앙카의 말을 들은 밀턴은 그저 말없이 성벽만 바라볼 뿐이었다.

적은 상당히 신중하고 뛰어난 지휘관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쪽에 마법이라는 드문 수단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상, 아직도 적들은 밀턴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알프레드는 성벽 위에서 내려가지 않고 먹고 자면서 직접 상황을 살폈다.

잠시 쪽잠으로 눈을 붙였다가도 눈만 뜨면 바로 부관에게 상황을 물었다.

“적의 동태는?”

“여전합니다. 공격은 하지 않고 대치만 하고 있습니다.”

“다른 방면으로 우회해서 병력을 보내는 낌새는 없었나?”

“그것도 없습니다. 아무래도 적도 별로 뾰족한 수가 없으니 그저 지켜만 보는 게 아닌가 합니다.”

부관의 말에 알프레드는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적이 그렇게 무능하다고 생각하나?”

“아닙니다. 저는 상황이….”

“그렇게 무능한 적에게 패배하고 병력의 11퍼센트를 사상시킨 나는 훨씬 더 무능한 쓰레기군.”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결코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쩔쩔매는 부관을 보고 알프레드는 갑자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게 무슨 추태란 말인가?’

부관의 마음속에 방심이 싹트는 것을 막기 위해서 간단하게 주의만 주려고 했다.

하지만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화풀이에 가까운 추궁을 해 버린 것이다.

알프레드는 자신이 생각보다 더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했다.

“미안하군. 좀 지나쳤다.”

“아닙니다. 대위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으음… 매번 하는 소리지만 방심은 금물일세. 특히 이번 적은 강해. 결코 의미 없는 짓은 하지 않을 거야.”

“예. 명심하겠습니다.”

하지만 알프레드는 몰랐다.

무슨 일이 벌어지기를 막는 것은 의미가 없다.

왜냐면 지금 시점에서 이미 일은 벌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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