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게임-65화 (65/257)

제65화

“걸렸다!”

“전군 포위망을 형성하라!”

그리고 적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좌우에서도 매복해 있던 남부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방과 좌우, 그리고 후방까지 모든 방향이 포위된 것이다.

“이…. 이럴 수가?”

순간 2왕자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제 발로 함정에 들어왔다는 것을 말이다.

“공격하라!!”

“와아아아아아!!”

공화국군을 가장했던 남부군은 그대로 당황한 2왕자군을 공격했다.

“큭… 맞서 싸워라!”

여기까지 온 이상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2왕자는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사방에서 모여드는 적들을 상대로 2왕자군이 제대로 맞설 리가 없었다.

“아아악!!”

“커억….”

여기저기서 죽어 나가는 아군을 보며 2왕자 본인도 패닉에 빠졌다.

“어…. 어찌 이런 일이….”

“전하,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그런 2왕자를 피신시키기 위해서 기사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그들 역시 사방에서 몰아치는 적들의 공격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포위망 한쪽에서 한 무리의 기사단이 2왕자군을 향해서 달려왔다.

“국가의 반역자이자 패륜아인 바이런은 목을 내놔라!”

거칠게 소리치며 달려오는 것은 밀턴이 직접 이끄는 기사단이었다.

“큭…. 저놈이!”

2왕자는 이를 악물었지만 감히 맞설 생각을 못했다.

범상치 않은 파괴력을 보이며 돌파해오는 적을 보니 분노보다는 겁이 더 났던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적들은 이미 지척까지 도달했고 2왕자의 기사들은 최선을 다했다.

그중에서도 리온 발로드는 자신의 거검을 휘두르며 용맹을 발휘했다.

“이놈들! 전부 죽여주마!!”

미친 곰이 날뛰는 것 같은 그의 기세에 다른 기사들도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다.

그때….

“내가 상대해 주지.”

한 기의 기마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밀턴의 오른팔인 제롬이었다.

“너는?”

리온 발로드는 자신에게 달려오는 상대를 보며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주제 파악을 덜했구나?!”

이전의 일기토에서 꽁무니를 빼고 도망갔던 상대가 자신에게 오고 있는 것이다.

“얼마든지 와라!”

그는 호기롭게 외치며 제롬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후우우우우….”

적과의 거리가 가까워진 제롬은 호흡을 정돈했다.

그리고 둘이 격돌하는 그 순간.

“죽어라!”

리온 발로드가 먼저 거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격이 공기를 가르며 제롬의 목 언저리에 도달한 순간….

스팟!

제롬의 검이 한 줄기 빛살이 되었다.

“말…. 말도 안….”

둘이 스치고 지나간 후에 리온 발로드는 정수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검격.

베이고 나서야 자신이 베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오… 오른손?’

과거와 달리 제롬은 검을 오른손에 들고 있었다.

푸화아악!

그걸 깨달은 동시에 리온의 몸은 좌우로 갈라져 버렸다.

“말했지? 누가 지옥에 갈지는 두고 봐야 안다고?”

제롬이 그렇게 말한 순간 남부군의 병사들은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제롬 테이커 경 만세!!”

“크윽….”

믿었던 기사가 1합에 죽어버리자 2왕자는 절망에 빠졌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 마침내 밀턴이 등장했다.

“바이런 폰 레스터. 맞지?”

오만하게 말하는 밀턴을 보며 2왕자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감히!? 나는 레스터 왕국의 왕족이다. 전장이라고 하나 고작 백작 따위가 평대를 하는…. 커억!”

고함을 지르던 2왕자는 그대로 밀턴의 주먹을 맞고 말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밀턴은 자신도 말에서 내려서 바닥에 떨어진 2왕자에게 다가갔다.

“이 자식이 보자보자 하니까 사람이 보자기로 보이나?”

뚜둑. 뚜두둑.

주먹을 풀면서 다가오는 밀턴을 보고 바이런은 공포에 빠졌다.

이 상황도 무서웠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맞아본 경험도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런 2왕자에게 밀턴의 무자비한 폭력이 쏟아졌다.

퍽퍽! 퍼억! 콰직! 퍼억!

“커억! 크어억!”

밝고, 때리고, 패고, 다시 짓밟고….

살면서 왕족을 팰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잡은 밀턴은 2왕자를 무참하게 패면서 말했다.

“왕족? 공화주의로 돌아선 놈이 저 불리하니까 왕족을 찾아?”

“크억…. 그…. 그만….”

“예법? 나라에 내란 일으킨 놈이 예법을 찾아? 죽을래?”

“제발 그… 어억! 크악!”

“네가 쓸데없이 내전 일으켜서 내가 팔자에도 없는 전쟁을 또 해야 했잖아? 앙!!”

“끄…. 끄르르르….”

결국 2왕자는 애원도 못할 정도로 곤죽이 되었다.

그렇게 한바탕 푸닥거리를 한 후에 밀턴이 2왕자를 병사들에게 맡기며 말했다.

“치료는 해주되 다른 예의는 필요 없다. 일반 병사들과 똑같이 포승줄에 묶어서 관리하도록.”

“옛. 알겠습니다.”

그렇게 밀턴은 반란군의 수뇌인 2왕자를 사로잡았다.

아직 북부에 공화국군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내전은 끝난 것이다.

“대단하군. 세비안 자작.”

2왕자를 사로잡은 후에 밀턴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이 전쟁의 주역을 칭찬하는 것이었다.

그 주역이 바로 세비안 자작이었다.

“아닙니다. 외부인인 저의 작전을 군말 없이 따라준 기사들의 공이 더 컸습니다.”

세비안 자작은 겸손하게 자신의 공적을 돌렸다.

그리고 그는 한쪽에 있는 제롬을 보며 말했다.

“특히 테이커 경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비록 작전이라 하나 기사의 명예를 생각하면 적에게 등을 보이는 것은 내키지 않았을 텐데도 기꺼이 따라주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세비안 자작의 정중한 사과에 제롬은 아무런 사심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주군의 명을 따랐을 뿐이오.”

그런 제롬의 태도를 보며 세비안 자작은 내심 감탄했다.

‘대단한 충성심이군. 저 정도의 기사가 충성을 바칠 정도로 포레스트 백작의 그릇이 크다는 말인가?’

세비안 자작은 남부군을 지휘하면서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정예 병력인 남부군을 보며 놀랐다.

특히 남부군 안에서도 포레스트 백작령의 기사와 병사들은 그 질과 수준이 몹시 높았다.

특히 제롬 테이커의 경우 아직 젊은 나이에 익스퍼트 최상급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저 나이에 익스퍼트 최상급이라는 말은 훗날에 마스터의 경지도 넘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인재를 품 안에 끌어안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포레스트 백작의 평가가 올라가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작전을 실행하면서 놀라움은 더욱더 커졌다.

세비안 자작의 작전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유인책이었다.

거북이마냥 잔득 웅크리고 있는 2왕자를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서 세비안 자작은 적의 방심을 끌어내는 방법을 모색했다.

이 전의 전투에서 크게 당한 2왕자가 방심을 하려면 꽤 임팩트가 큰 승리를 안겨 주어야 했다.

소극적인 전투로 적이 수월하게 수성을 성공하도록 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했다.

그래서 남부군에서 가장 무력이 강한 제롬에게 넌지시 제의했었다.

일기토에 나가서 일부러 지고 올 수는 없느냐고 말이다.

사실 들어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익스퍼트 최상급인 기사의 자존심과 남부군에 있어서 외부인인 자신의 입지를 생각하면 거절당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롬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 제안을 받아 들였다.

애당초 밀턴이 세비안 자작에게 작전권을 일임한 이상 제롬은 세비안 자작의 작전 명령을 주군의 명령으로 생각했다.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서 명령을 거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제롬은 일기토에서 일부러 패배한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마지막에는 비참하게 도주하는 굴욕까지 감수했다.

그 결과 2왕자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부터 2왕자의 안에서는 자신감이 자만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한 번 호되게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을 얕보고 싸우면 무조건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품게 된 것이다.

거기서 세비안 자작의 마지막 작전이 작렬했다.

자만심이 가득한 적이 성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공화국군의 깃발을 사용했다.

후방에 밀턴이 직접 이끄는 정예 병력으로 포위진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2왕자를 유인한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왕자는 사로잡혔고, 아군의 피해는 극히 미미했다.

원래 정공법으로 공성전을 펼쳤으면 3,000에서 최대 5,000까지 사상자가 생길 수 있는 전투였다.

하지만 세비안 자작의 작전으로 인해서 500명 이하의 사상자밖에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말을 지킨 세비안 자작에게 밀턴이 말했다.

“자네 덕분에 병력을 크게 아낄 수 있었네. 뭔가 원하는 상이 있거든 말해 보게.”

밀턴의 말에 세비안 자작은 순간 입을 달싹이며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아직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부디 은상은 나중으로 미뤄 주실 수 있겠습니까?”

바로 말하기를 망설이는 세비안 자작을 보며 밀턴은 은은하게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그렇군. 그렇다면 자네 말대로 하지.”

밀턴은 전혀 아쉽지 않다는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세비안 자작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대강 짐작이 가고 있었다.

‘충성 수치가 이제 65까지 올랐군. 내 쪽으로 마음이 많이 기울었다고 봐도 되겠지?’

밀턴은 흐뭇한 기분으로 세비안 자작을 바라봤다.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세비안 자작의 말과 달리 실질적인 전투는 2왕자를 사로잡은 시점에서 끝이 났다.

우선 2왕자가 사로잡히자 레이라 공주는 남은 반란군에게 적극적으로 투항을 권했다.

‘2왕자의 협박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반란에 강제 동원된 자들에게는 정상 참작의 여지를 두겠다.’라는 말로 꿰어내자 남은 반란군은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항복해 버렸다.

레이라 공주는 그들의 신병을 구속하고 향후 그들의 처우를 논하기로 했다.

비록 2왕자가 사라졌다고 해도 남은 반란군이 이판사판으로 달려들면 정리하는 데 시간이 꽤 들어갈 뻔했지만 레이라 공주의 적절한 대응으로 남은 반란군은 자연스럽게 소멸되었다.

그리고 이 상황이 내키지 않는 인물이 있었으니….

“이거 곤란하군.”

그게 바로 힐데스 공화국의 지크프리트였다.

“세상만사 쉽게는 안 되는군.”

지크프리트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군대를 보고 입맛을 다셨다.

지금 그의 앞에는 군기가 칼같이 서 있는 정예 병력이 가로막고 있었다.

2왕자가 농성에 들어갔을 때 그에는 마리우스 후작이 원군을 청하기 위해서 찾아왔다.

지크프리트는 그 요청을 듣고 기꺼이 군을 움직였다.

다만, 그 목표는 이미 기울다 못해 침몰하기 직전의 2왕자군이 아니었다.

그는 군을 움직여서 레스터 왕국의 수도 로렌시아를 공격할 생각이었다.

애당초, 2왕자는 그에게 있어서 쓸 만한 소모품이었을 뿐이다.

레스터 왕국의 내부에 발을 들일 명분과 기회를 제공하는 소모품.

동맹으로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몇 번 도움을 주고 자신들의 강함을 보인 후에 의존도를 높이고, 거기서 국혼을 제시해서 신뢰를 완전히 얻었다.

물론 국혼 얘기는 완벽한 거짓말이다.

왕국과 공화국 사이에는 공식적인 교류가 없어서 모르겠지만 힐데스 공화국의 총통 바하슈텐은 독신이다.

당연히 록산느라는 인물은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공식 서면으로 남겨봐야 실재하지도 않는 여성과 무슨 수로 국혼을 추진하겠는가?

모든 게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힐데스 공화국은 그저 이번 기회에 레스터 왕국을 집어삼켜서 남부로 내려가는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북부를 확보한 시점에서 지크프리트가 총통에게 받은 명령은 모두 완수된 것이었다.

다만, 그는 거기서 더 욕심을 냈다.

북부를 온전히 공화국의 세력으로 만들기 위해서 2왕자와 그를 따르는 귀족들을 원정이라는 이름으로 싹 치워 버렸다.

그들의 수도 공략이 성공하면 성공하는 대로,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다음 계획은 있었다.

그리고 마리우스 후작이 찾아왔을 때 지크프리트는 지체 없이 군을 일으켜서 수도를 직접 노렸다.

페일런 공작에 남부의 세력까지….

모든 전력이 2왕자군에 집중된 지금이야말로 텅 빈 수도를 털기에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까지 성공했다면 그가 공화국에서 받은 명령은 150퍼센트, 아니 200퍼센트의 달성을 한 것이라고 봐야 했다.

하지만….

남하하던 그의 군세를 맞이한 것은 페일런 공작이 이끄는 정예 군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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