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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61화 (61/257)

제61화

마리우스 후작은 군의 진형이 파괴되는 것을 보며 즉시 2왕자에게 말했다.

“전하! 피하셔야 합니다.”

“큭…. 고작 남부의 촌놈들 따위에게 등을 보이란 말이오?”

자존심에 후퇴를 허락하지 않는 2왕자를 보며 마리우스 후작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전하, 1왕자와 같은 전철을 밟으실 생각입니까?”

“크으윽….”

2왕자는 입술에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하지만 확실히 1왕자를 예로 든 것은 제대로 먹혔다.

1왕자가 같잖은 자존심 때문에 후퇴를 하지 않고 버티다가 어떻게 자멸했는지는 2왕자가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빌어먹을, 전군을 뒤로 물려라! 일시 후퇴한다!”

결국 2왕자는 마리우스 후작의 말을 들어서 후퇴를 결정했다.

그리고 후퇴 명령이 떨어지자 반란군은 남은 군을 추슬러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물론 밀턴이 그걸 그냥 두고 볼 일은 없었다.

“전군 추격하라!”

상대방이 후퇴를 할 때야말로 전과를 가장 극대화시킬 수 있는 순간이다.

밀턴은 즉시 군을 진격시켜서 도망가는 반란군의 등 뒤를 공격했다.

“반란군을 곱게 보내지 마라!!”

“남부 기사의 용맹함을 보여라!”

“승리가 눈앞에 있다!”

사기가 하늘까지 오른 병력은 반란군을 끝까지 추적하며 최대한 갉아먹었다.

“주군, 대승입니다.”

반란군을 격퇴한 후에 제롬이 웃는 얼굴을 하고 와서 대답했다.

반란군을 거의 박살내다시피 격퇴했으며 아군의 피해는 극히 미미했다.

명백한 대승을 거둔 밀턴도 웃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

“모두 수고했지만 긴장을 풀지 말라고 전하도록.”

밀턴은 그렇게 말하면서 수도의 성벽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긴장을 풀기에는 이르니까 말이야.”

밀턴이 그렇게 말했을 무렵 수도의 성문이 열리고 한 기의 기마가 다가왔다.

그는 밀턴이 있는 방향으로 그대로 달려오더니 말했다.

“로열 기사단의 비안 브라이언이오. 그대의 소속과 직함을 밝혀 주시오.”

로열 기사단이라면 엘리트 중의 엘리트다.

하지만 밀턴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밀턴 포레스트 백작이다.”

“그대가 이 군의 총사령관이오?”

“그건 왜 묻지?”

밀턴의 딱딱한 말에 로열 기사단은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지금 반란군을 무찌르기 위해서 모든 군은 중앙의 통솔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오. 그러니 그대도….”

말을 하던 비안이라는 기사는 입을 다물었다.

주변에 있는 기사들이 자신을 향해서 노골적으로 살기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전투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기사들은 아직 무기도 집어넣지 않고 생생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는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한 위축감을 느꼈지만 이를 악물고 말했다.

“본인은 로열 기사단 소속이오. 내가 전하는 말은 왕실의 뜻이자 의지이오. 그대들은 국가에 반역할 생각인 것이오?”

로열 기사단의 권위를 앞세운 그의 말에도 기사들의 살기는 조금도 수그러지지 않았다.

그리고 밀턴이 비안을 향해서 말했다.

“브라이언 경이라고 했던가?”

“그…. 그렇소.”

“그렇군. 제롬.”

“옛. 주군.”

“꿇려라.”

“옛!”

밀턴의 말에 제롬은 두말할 것 없이 그대로 비안에게 검집을 휘둘렀다.

퍼억!

“크으윽….”

제롬의 검집에 무릎 뒤를 맞은 기사는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뭐라 반항하기도 전에 릭이 다가와서 두꺼운 팔로 그의 머리를 눌렀다.

“읏··. 이게 무슨 짓이오!?”

졸지에 무릎을 꿇게 된 비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밀턴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언제부터 기사가 왕국의 백작을 눈앞에 두고도 건방지게 하오체 따위로 지껄이게 되었지?”

“그…. 그건 당신이….”

“내가 뭐?”

밀턴의 물음에 비안은 뭐 씹은 표정을 하고 말도 하지 못했다.

뒤에 하고자 하는 말은 ‘남부의 백작 따위니까 그렇지.’라고 말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 말을 하면 머리가 몸과 영원한 이별을 할 것만 같았다.

원래 로열 기사단의 일원이라면 평기사라고 해도 어지간한 귀족들보다 높은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권력이 가지는 무게에 따른 관례일 뿐이지 정식으로 로열 기사단의 기사가 왕국의 백작보다 직위가 높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밀턴의 말이 맞기는 맞았다.

“…….”

하지만 비안의 눈에는 분한 기색이 역력했고, 밀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죄를 인정할 생각이 없다 이건가? 그렇다면 내 나름대로 즉결하는 수밖에 없지.”

그렇게 말한 밀턴은 허리에서 검을 뽑으며 비안에게 다가갔다.

“뭐…. 뭐 하는 거요?”

“여기는 전장이고, 전시 하극상은 재판 없이 즉결 처분이지.”

그렇게 말하며 밀턴이 검을 높게 들어올렸다.

‘미…. 미친!?’

비안은 두 눈을 부릅떴다.

허세가 아니었다.

밀턴의 태도를 보아하니 진짜 저지를 듯했다.

생각해 보면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는 반란군을 일방적으로 물리친 군을 이끌고 있는 지휘관이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목 정도는 얼마든지 치고도 남을 것 같았다.

한발 늦게 그 점을 깨달은 비안은 급하게 외쳤다.

“죄…. 죄송합니다.”

그러자 당장 떨어질 것 같았던 밀턴의 검이 중간에 우뚝 멈췄다.

그리고 비안은 급하게 말을 이었다.

“제가 공무를 보는 과정에 실수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결국 비안은 철저하게 사과했다.

“흐음….”

밀턴이 그런 비안을 지그시 내려다보며 뜸을 들였다.

마치 죽일지 살릴지를 고민하는 듯한 그 모습에 비안은 온몸에 식은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뭐, 한 번은 봐주지.”

그리고 밀턴이 선선히 용서하는 듯하자 비안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죽다 살았다는 말이 이렇게 실감난 적이 없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

“하지만 계속 무릎은 꿇고 있게.”

“예? 그게 무슨….”

“그래야 할 거야.”

그리고 밀턴을 제외한 다른 남부의 귀족들도 갑자기 모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군의 뒤편에서 전쟁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마차가 등장했다.

그리고 밀턴은 직접 그 마차에 가서 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마차 안의 인물을 에스코트했다.

“내려오시지요.”

“감사하오. 포레스트 백작.”

그리고 마차 안에서는 여신이 내려왔다.

적어도 비안 브라이언이 보기에는 순간 진짜 그런 것처럼 느꼈다.

눈부신 금발에 완벽한 이목구비, 그리고 전쟁터와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드레스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여인이 그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남부의 모든 귀족들이 무릎을 꿇고 한 목소리로 쩌렁쩌렁하게 말했다.

“레이라 폰 레스터 공주 전하를 뵙습니다!”

레이라 공주가 자신의 진정한 신분을 가지고 귀환한 것이다.

“레… 레이라 공주?”

비안은 깜짝 놀라서 멍하니 눈앞에 있는 인물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크윽!”

다시 한번 위에서 릭이 억세게 그를 내리눌렀다.

“공주 ‘전하’라고 부르는 게 맞는 호칭이지. 안 그런가?”

밀턴이 주의를 주자 그는 급하게 정정했다.

“죄송합니다. 경황이 없어서…. 하지만 어째서…. 아니 정말로….”

비안은 어이가 없었다.

레이라 공주라고 하면 7년 전에 모친과 동복의 오라버니와 함께 죽었다고 알려진 비운의 공주였다.

그런 그녀가 어째서 여기에 등장한단 말인가?

하지만 고개를 들어 바라본 그녀의 얼굴은 틀림없이 모친인 아이린 왕비를 쏙 빼닮아 있었다.

그녀는 비안을 지그시 보며 말했다.

“그대는 기억이 있군. 어린 시절 왕궁에서 본 적이 있어.”

“예…. 백합궁의 경호를 맡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럼 진정….”

“내가 레이라 폰 레스터요.”

레이라 공주의 말에 비안은 침을 꿀꺽 삼켰다.

7년 전에 죽었다고 생각한 공주가 다시 살아서 눈앞에 아름답게 성장해 있다.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무슨 대응을 할지….

일개 기사 개인의 위치로는 도저히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런 비안에게 레이라 공주가 말했다.

“아마, 자네가 아버님에게 받아온 명령은 이 군의 통솔자를 왕궁 안으로 불러오라는 것이겠지?”

“예. 그… 그렇습니다. 국왕 전하께서 친히 치하를 하신다고….”

“그리고 군의 지휘권은 아버님이 가져가실 테고 말이야.”

“…….”

대답을 못 하는 것은 그 말이 맞기 때문이다.

레이라 공주는 아찔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쉽게도 지금은 아버님을 뵐 수 없겠군. 미안하지만 우리는 지금 서둘러서 반란군을 추적해야 하기 때문에 왕도에 입성해서 느긋하게 연회를 즐길 시간이 없어.”

“하…. 하지만 전하.”

비안이 곤란하다는 듯이 말해지만 레이라 공주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아버님에게는 이렇게 전해주게.”

“…….”

“불효녀가 곧 찾아가겠다고.”

“…….”

“반드시.”

짧게 한마디를 더한 후에 레이라 공주는 그대로 등을 돌려 마차로 돌아갔다.

“그럼 포레스트 백작. 군의 지휘를 부탁하오.”

“예. 알겠습니다.”

밀턴은 레이라 공주를 마차 안으로 정중하게 에스코트한 다음 크게 외쳤다.

“반란군을 추적해서 국가 반역자인 바이런 폰 레스터의 목을 친다! 망설일 것은 없다. 왕국의 적법한 왕족이신 레이라 공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와아아아아아아!!”

밀턴의 발언에 남부의 귀족들과 병사들은 떠나갈 듯한 환호성을 질렀다.

그 함성을 들으며 로열 기사단인 비안은 얼굴이 파래졌지만 말이다.

“뭐…. 뭐라고?”

상황을 보고 받은 오거스트 국왕은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레이라 그 아이가 살아 있었다 이 말인가?”

“예.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남부의 귀족들을 통솔해서 반란군을 물리쳤고?”

“예. 그렇습니다. 포레스트 백작을 중심으로 해서 남부의 귀족들은 이미 레이라 공주님을 중심으로 강하게 뭉친 듯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반란군을 추적하기 위해서 남부 귀족들을 거느리고 떠났다고?”

“예. 그렇….”

“그걸 그냥 놔뒀단 말이냐?!”

오거스트 국왕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다.

“송구합니다. 저의 불찰입니다.”

보고를 하던 비안은 넙죽 엎드렸다.

하지만 그에게 화풀이를 한다고 해서 뭔가 변하는 것은 없었다.

“빌어먹을….”

오거스트 국왕은 옥좌에 털썩 앉으면서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생각에 잠겼다.

‘그 아이가 살아 있다면 결코 나에게, 아니 왕실 전체에 호의적인 감정은 없을 것이야. 그런 아이가 강한 군사력을 동반하고 돌아왔다면….’

오거스트 국왕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2왕자가 반란군을 이끌고 수도까지 도달했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도 위기감은 들었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감정은 위기감 정도가 아니라 불안감….

아니 그냥 공포에 가까웠다.

‘7년 동안 자신을 숨기고 힘을 길러 왔다면…. 그리고 그 목적이 제 어미와 오라비의 원수를 갚는 것이라면….’

오거스트 국왕은 소름이 돋았다.

자신이라면 할 수 있을까?

7년 동안 정체를 숨기고 복수의 때를 기다리며 힘을 모으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게 어디 보통 정신으로 되는 일인가?

“독한 것.”

자기 딸이긴 하지만 어쩌면 감당하지 못할 괴물이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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