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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60화 (60/257)

제60화

“누가…. 누가 저 기사단을 막아라!”

“기사단은 무엇을 하느냐? 선두의 저 기사를 죽이란 말이다!”

범상치 않은 파괴력을 보이는 제롬은 순식간에 북부군의 이목을 모았다.

그리고 북부군의 기사들은 서둘러서 제롬을 막기 위해 달려갔다.

“이름을 밝혀라!”

한 기사가 용맹하게 달려오며 제롬에게 말했다.

기사의 물음에 제롬은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말했다.

“포레스트 영지의 기사단장, 제롬 테이커다!”

“포레스트? 어디 듣도 보도 못한 촌놈을 모시는 기사치고는 제법이구나. 어디 내 검을….”

“감히 네놈 주제에 내 주군을 모독하느냐?!”

예의를 지켰던 제롬이지만 상대방이 주군인 밀턴을 모독하자 노호성을 터트리며 돌진했다.

“웃!?”

상대 기사는 제롬의 흉흉한 기세에 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이를 악물고 말을 마주 몰아갔다.

“어디 해보자!”

그 역시 나이는 30대였지만 익스퍼트 중급에 도달한 기사였다.

레스터 왕국에서 이 정도 수준이면 젊은 기사들 중에서는 거의 최고 중에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주제도 모르는 놈!”

상대가 나빠도 너무 나빴다.

콰아앙!

둘의 오러가 부딪힌 순간 엄청난 굉음이 울렸다.

그리고….

“커억··.”

제롬의 일격에 상대는 그대로 뒤로 튕겨져 나갔다.

“이…. 무슨 괴물이….”

상대방은 제롬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단 한 번 검을 교환했을 뿐인데 자신이 멀찍이 튕겨나갔다.

무지막지한 파괴력에 팔이 덜덜 떨리는 자신의 손은 당장이라도 검을 놓칠 것만 같았다.

그런 자신에게 상대는 다시 말을 몰아서 무지막지하게 달려들었다.

“잠…. 잠깐!”

당황해서 외치는 기사에게 제롬이 크게 소리쳤다.

“닥쳐라!”

그리고 용서 없이 휘둘러진 제롬의 두 번째 공격….

콰아앙!!

다시 한번 굉음이 울렸지만 이번에는 상대방의 고통의 신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상대가 이를 악물고 꽉 참아서?

그게 아니다.

“헉? 다리온 경!”

그저 죽은 사람은 말이 없을 뿐이다.

“다리온 경이 단 두 합에?”

“어디서 저런 괴물이….”

제롬에게 다리온이라는 기사가 일방적으로 패배하자 다른 북부의 기사들도 겁을 먹고 주춤거렸다.

다리온은 북부의 기사들 중에서는 최고의 실력자 중에 한 명이었다.

그런 남자가 변변한 반항도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찌그러지다시피 박살났다.

북부의 다른 기사들이 위축되는 것은 당연했다.

제롬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기사단을 이끌고 다시 돌격을 감행했다.

“내 뒤를 따라라! 목표는 반란군의 수뇌. 바이런 2왕자다!”

“오오오오오!!”

제롬을 중심으로 한 기사단은 거침없이 반란군의 진형을 돌파했다.

“전하, 정체불명의 군단은 남부의 포레스트 백작이 이끄는 군이라고 합니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전령이 가져온 소식을 듣고 2왕자는 이를 갈았다.

“남부의 포레스트 백작? 빌어먹을! 듣도 보도 못 한 놈인데 어디서 갑자기?”

남부가 이번 전쟁에 끼어들지 않았다는 말은 2왕자도 들었다.

하지만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 남부 자체가 워낙 낙후된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그런 놈들이 끼든 말든 별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남부의 전력이 이제 와서 갑자기 끼어들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더 뜻밖인 것은….

“제길, 도대체 뭐냐? 왜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느냔 말이다.”

남부의 전력이 2왕자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에 있었다.

원래 배후의 기습이라서 초반에 기세를 잡힌 것도 컸지만 그 후에 한 무리의 기사단이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보이면서 아군의 진형을 돌파한 것이 컸다.

아직도 아군의 정중앙을 파고들며 헤집고 있는 적의 공격에 2왕자군은 변변한 대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마리우스 후작이 말했다.

“전하, 적의 기사 전력이 생각보다 강해 보입니다. 전하의 친위대를 직접 파견해서 적을 상대해야 합니다.”

“크윽…. 좋소. 친위대는 당장 후작의 지시에 따라라. 적 기사단을 막아라!”

“옛! 전하!”

2왕자는 평소 북부에서 가장 강한 기사들을 추려서 자신의 친위 기사로 쓰며 신변을 보호하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이들이 자신의 곁을 떠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마리우스 후작의 지시가 이어졌다.

“적 기사단을 포위하라! 보병은 창을 세우고 궁병은 화살을 퍼부어라! 놈들이 신나서 깊게 들어온 것을 후회하게 해 주어라!”

“옛!”

마리우스 후작의 지시에 따라서 즉시 2왕자군의 군대가 깊숙하게 들어온 제롬의 기사단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주군, 적이 테이커 경과 기사단을 포위하려고 합니다.”

전령의 보고를 들은 밀턴은 즉시 되물었다.

“상황은?”

“포위망이 거의 완성 중입니다. 너무 깊숙하게 들어가서 자력으로 탈출하는 것은 무리인 듯합니다.”

“명령에 우직하게도 따랐군.”

제롬에게 돌파 명령을 내리기는 했지만 저렇게까지 깊게 들어가라는 뜻은 아니었다.

밀턴이 보기에 제롬은 전형적인 용장이었다.

평소에는 부드럽고 자상한 이미지가 강한 제롬이지만 전쟁터에서는 밀턴의 명령에 따라 지옥으로 돌격하라고 해도 기꺼이 달려들 그런 용장 말이다.

저런 포위망에 갇힌다고 해도 제롬의 실력이라면 자력으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롬을 따라서 같이 행동하고 있는 기사 전력에는 피해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니….

“포위망 따위를 만들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트라이크!”

“옛. 주군.”

밀턴의 부름에 한쪽에 대기 중이던 트라이크가 즉시 응답했다.

“내가 돌입한다. 입구를 만들어라.”

“옛. 알겠습니다.”

밀턴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트라이크는 자신의 직속 병력에게 명령했다.

“가자! 애들아. 첫 출진이다!”

“와아아아아!!”

그리고 트라이크의 뒤편을 한 무리의 기마 부대가 따랐다.

그런데, 그 기마 부대는 평범한 기마 부대가 아니었다.

드드드드드드….

거칠게 돌아가는 바퀴 소리를 동반한 이 부대의 정체는 이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전차 부대였다.

원래 전차는 애매한 병과다.

보병보다 빠르지만 기병보다는 느리다.

돌진할 때의 파괴력이 강하긴 하지만 방향 전환이 불편해서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없다.

하지만 밀턴이 트라이크에게 전차대를 추천한 것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기사님. 외곽에 전차 부대가 나타났습니다.”

“뭐라고 전차?”

전쟁터에서 흔하게 보기 힘든 병과이다 보니 기사는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실제로 병사가 가리킨 곳을 보니 실제로 전차 부대가 보였다.

“전차라니? 남부의 촌놈들의 시대착오도 심각한 정도군.”

그는 그렇게 말한 후에 병사들에게 즉시 지시를 내렸다.

“전차의 돌입이 있을 것이다. 장창병은 창을 준비하라.”

기마 돌격을 막기 위해서 보병들이 쓰는 장창.

그것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병과가 바로 장창병이다.

돌진력이 강하기 때문에 적이 가까이 왔을 때 장창을 들어서 지면에 비스듬하게 세우기만 하면 그 돌진력이 그대로 자신에게 피해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준비!”

기사는 그대로 장창병을 대기시키고 창을 들어 올릴 타이밍을 쟀다.

그런데….

“뭐지? 왜 오지 않는 거지?”

적의 전차 부대는 자신을 향해서 오는 게 아니라 비스듬하게 비껴가며 달려가고 있었다.

적이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던 기사였지만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쏴라!!”

트라이크의 명령이 떨어지자 전차에 타고 있던 궁병들의 화살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퍼퍼퍼퍽! 퍼퍼퍽!

“아악!! 내 눈!!”

“크아아악!”

전차 부대는 돌격을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전차의 후방에 궁병과 화살을 잔뜩 태우고 있는 궁(弓) 전차 부대인 것이다.

돌입을 예상하고 장창병을 전면에 세우고 있던 보병들에게 있어서 갑자기 쏟아지는 화살 비는 재앙 그 자체였다.

“방패!! 방패를 들어라!”

화살에 엄청난 피해를 입자 기사는 부랴부랴 방패를 들라고 지시했지만 이미 병사들은 지휘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패닉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이 머저리들아. 방패를 들어서 머리를…. 커억!”

한창 지휘를 하던 기사 역시 정확하게 날아온 화살에 목이 꿰뚫리고 말았다.

그리고 쓰러지는 기사는 그만이 아니었다.

“크르르르….”

“크아악!”

쏟아지는 화살 비 속에서 병사들을 독려하던 기사들이 픽픽 쓰러졌다.

원래 기사란 화살비가 쏟아지는 적진으로 주저 없이 돌격을 하는 병과다.

그들이 입고 있는 플레이트 메일은 원래 화살로부터 몸을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쓰러진 기사들은 사정이 달랐다.

날아온 화살이 플레이트 메일의 틈새를 파고들어서 목이나 얼굴 같은 급소에 정확하게 맞은 것이다.

당연하지만 이 기사들 전원이 트라이크의 작품이다.

트라이크는 여섯 명의 기사를 모두 잡아내고 활을 다시 매기며 말했다.

“확실히 편하군. 이게 주군이 말한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는 말인가?”

원래 트라이크는 전쟁터에서 자신의 역할을 저격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격이라는 개념이 없는 이 시대에서 조차 그는 자신의 역할이 한 발의 화살로 적의 중추를 쏘아 떨어트리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화살 한 발로도 전황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밀턴이 그 역할에 도움이 되는 병과를 마련해 주었다.

궁전차대를 이끌면서 궁수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고 자신은 그 사이에 섞여서 적 지휘관을 정확하게 요격한다.

처음에 밀턴에게 이 개념을 들었을 때 ‘과연 그게 잘될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까 신기할 정도로 쉬웠다.

다른 궁병들의 화살 사이에 섞여 있으니까 기사들이 자신의 화살에 전혀 대응을 하지 못했다.

원래는 세 발을 쏘면 가끔 감이 좋은 놈들은 한 발 정도는 피하고는 했는데….

지금은 화살 여섯 발로 정확하게 기사 여섯을 잡았다.

“그야말로 원샷 원킬이군.”

트라이크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눈앞에 적 진형을 살폈다.

그의 시야에 더 이상 병사를 지휘하는 기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즉,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지휘관이 없어지고, 화살 공격에 잔뜩 겁을 먹고 패닉에 빠진 병력뿐이라는 것이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인가? 신호를 보내라.”

“옛!”

그리고 트라이크의 옆에 있던 병사가 품안에서 호루라기를 길게 세 번 불었다.

삐이이익! 삐이이익! 삐이이익!

그 신호가 떨어지자….

“릭, 토미, 뒤처지지 마라.”

“옛! 주군!”

“옛! 주군!”

밀턴이 남은 기사 전력과 병사들을 이끌고 적진에 돌입했다.

트라이크가 이끄는 궁전차 부대의 공격으로 엉망이 된 진형에 밀턴이 직접 부대를 이끌고 돌입했다.

“크아악!”

“막…. 누가 막…. 아악!”

트라이크가 현장 지휘관들을 모두 저격해둔 상태라서 병사들은 적절한 대응을 하지도 못했다.

결국 병사들은 맞서기보다는 피하기 급급했고 밀턴은 선두에서 적진을 반으로 가르며 거침없이 진격했다.

“포레스트 백작님을 따라라!”

“반란군을 몰아내자!”

“우오오오오오!”

지휘관인 밀턴이 최전선에서 용맹하게 활약하자 병사들의 사기가 크게 고조되었다.

전쟁터에서 병사들의 사기는 곧 적극적인 용맹함으로 바뀐다.

병사들은 실력 이상의 힘을 발휘하면서 용감하게 싸웠고 그런 병사들의 기세에 반란군들은 압도되었다.

거기에 포위망 안쪽에서 종횡무진 누비고 있던 제롬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전 기사단은 오른쪽으로 반전한다.”

제롬은 즉시 기사단을 이끌고 밀턴이 있는 쪽으로 호응하듯이 공격했다.

포위망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던 부대는 지휘관도 궤멸당한 상태로 앞뒤로 공격당하면서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으아아아악!!”

“지휘관! 제발 뭐라고 좀…. 커억!”

결국 2왕자가 이끄는 반란군의 포진 중에 오른쪽이 무너져 버렸다.

그건 실질적으로 반란군의 전력이 반 토막 났다는 말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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