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2왕자군의 움직임이 변한 것은 페일런 공작의 진형에서도 눈치를 챘다.
“공작님. 급보입니다.”
“무슨 일이냐?”
급하게 들어온 전령은 심각한 표정으로 페일런 공작에게 보고했다.
“반란군이 군을 둘로 나눴다고 합니다.”
“둘로 나눴다고?”
“예. 그리고 좌우로 갈라져서 서로 다른 길로 수도를 향해 진군하고 있다고 합니다.”
“…….”
전령의 보고를 들은 페일런 공작은 굳은 얼굴을 하고 침묵했다.
그리고 옆에서 보고를 듣고 있던 참모진들은 서둘러 의논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교활하게 나오는군.”
“이렇게 된 이상 우리도 군을 두 개로 나눠서 대응해야 하지 않겠소?”
“농담할 때가 아니오. 5,000의 병력을 나눠서야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오? 거기다 공작님이 없는 곳은 그야말로 오합지졸일 텐데?”
“그렇지만 수도의 함락만큼은 막아야 합니다. 적은 둘 중에 하나만 진격해도 충분히 수도를 함락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작전을 나선 것이란 말입니다.”
페일런 공작의 진형에 있는 작전 참모들은 숨 가쁘게 논쟁을 벌였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이 상황에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양쪽으로 나눠서 들어오는 공격 중에 하나를 막는다고 해도 다른 한쪽을 막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이렇게 망설이는 순간에도 2왕자가 이끄는 반란군은 수도를 향해서 착실하게 진격하고 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뭔가 뾰족한 수가 있을 리가 없었다.
어찌어찌 나오는 절충안이라고 해 봐야….
“이렇게 된 이상 우리가 역으로 공격해 들어가서 적을 각개 격파를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눠진 병력을 최대한 빠르게 공격해서 각개 격파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다만, 이 방법이 통할지는 회의적이었다.
“가능하겠소? 적은 병력을 반으로 나눴다고 해도 우리보다 훨씬 더 다수요.”
그렇다.
아무리 병력을 나눈다고 해도 반란군은 페일런 공작이 이끄는 토벌군보다 훨씬 더 숫자가 많았다.
원래 각개 격파란 파괴력을 집중시킨 하나의 군으로 분산된 군을 단기간에 물리쳤을 때 그 효과를 보는 작전이다.
그런데 적의 전력은 분산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군보다 더 우위에 있을지 모른다.
설사 마스터인 페일런 공작이 활약해서 어찌어찌 이긴다고 해도 시간을 오래 잡아먹으면 그사이 수도가 함락 당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작전이었지만….
“망설일 시간이 없소. 때를 놓치면 이 작전은 시도조차 할 수 없을 것이란 말이오.”
각개 격파를 주장한 참모의 말대로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이런 무모한 작전조차 시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여기에 페일런 공작이 결정을 내렸다.
“즉시 군을 움직인다. 양쪽에서 수도에 더 가까운 루트로 움직이는 군을 먼저 공격한다.”
“옛!”
페일런 공작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의 병력은 서둘러서 동쪽의 대로를 타고 움직이는 적을 요격하기 위해서 출진했다.
2왕자군의 진형에 페일런 공작의 움직임은 바로 보고되었다.
“페일런 공작이 전군을 이끌고 움직였다고 합니다.”
“움직인 방향은? 동쪽이냐? 아니면 서쪽이냐?”
전령의 보고에 2왕자는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
군을 두 개로 나눈 후에 2왕자 자신은 서쪽으로 이동했다.
원래 동쪽의 대로를 타고 이동하려고 했지만 마리우스 후작이 말했다.
페일런 공작을 피해서 수도에 입성하려면 서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페일런 공작은 전군을 이끌고 동쪽의 대로를 타고 북상 중입니다.”
마리우스 후작의 예상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오오오오. 과연, 숙부의 말대로군요.”
2왕자가 옆에 있는 마리우스 후작에게 말하자 후작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예상이었습니다.”
“하하하하하… 마스터인 페일런 공작을 상대하면서 이렇게 우위를 점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오.”
2왕자의 칭찬은 페일런 후작에게 모종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마리우스 후작에게 은은한 미소를 짓게 했다.
그는 흥이 나서 2왕자에게 말했다.
“크흠… 사실 페일런 공작의 선택은 틀린 게 아닙니다. 그는 고심 끝에 올바른 선택을 한 것입니다.”
“올바른 선택? 그가 동쪽으로 향한 게 올바른 선택이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양 갈래로 나눠진 우리 군을 각개 격파하려고 한다면 무조건 빠르게 공격할 수 있는 진형을 먼저 공격해야 하지요. 동쪽의 대로는 군을 이동하기에 용이하고 거리도 더 가깝습니다. 그러니 그쪽을 먼저 공격하는 건 올바른 해답입니다. 다만….”
마리우스 후작은 승리감이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리 올바른 선택이라고 해도 그 선택지가 미리 예상이 된다면 그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지요. 저는 이미 페일런 공작이 동쪽으로 향한다는 선택지를 할 것을 예상하고 거기에 따른 진형을 동쪽의 군을 지휘하는 가이브란 백작에게 내렸습니다.”
“오오오…. 그렇단 말이오?”
“예. 장담하건대 페일런 공작은 이 전쟁에서 그 어떤 승전도 거두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전쟁에서 지략은 무력을 능가한다는 상식을 말이죠.”
“하하하하하… 천하의 페일런 공작을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가지고 노는군. 과연 나의 외숙부요.”
2왕자와 마리우스 후작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마리우스 후작의 예언대로 페일런 공작은 동쪽의 대로에서 적을 마주했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고전이라고 해도 아군이 큰 피해를 입었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후퇴하라! 무리해서 상대할 필요는 없다.”
동쪽에서 반란군을 이끌고 있는 가이브란 백작이 싸움 자체를 받아주지 않고 있었다.
페일런 공작이 공격을 하면 그대로 물러났다가 다시 나타나서 별동대를 이끌고 멀리서 공격했다가 다시 물러나는 방식으로 전투를 질질 끌었다.
그가 마리우스 후작에게 받은 지령 자체가 원래 시간을 끌라는 것이었다.
여차하면 북부의 끝까지 후퇴해도 상관없다.
오히려 페일런 공작을 거기까지 끌어들인다면 더욱더 좋다.
그러니 후퇴하는 것에 망설이지 말고 전력을 온전하면서 페일런 공작을 최대한 길게 붙잡아 두는 것이다.
뒤로 빠지며 살살 약만 올리는 적의 대응에 참모진은 발발 동동 굴렀다.
“가이브란 이 약삭빠른 놈.”
“제길, 시간을 이렇게 끌어서는 안 되는데….”
울화통이 터질 것 같은 참모진을 보며 페일런 공작은 의외로 담담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 페일런 공작을 보며 참모진 중에 한 명이 참다못해 말했다.
“공작님. 어째서 그렇게 느긋하십니까?”
“뭐가 말인가?”
“이대로 여기에 발이 묶여 있으면 서쪽으로 우회한 반란군이 수도를 함락시킬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찌 그렇게 태평하시냔 말입니까?”
상황이 위급해서인지 참모진은 평소 눈도 못 마주치던 페일런 공작에게 막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페일런 공작은 피식 웃으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말게. 수도는 절대 함락당하지 않아.”
“예? 그게 무슨….”
“대단해. 정말 대단해.”
갑자기 뜻 모를 말을 하는 페일런 공작을 보며 참모진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페일런 공작은 지금 전쟁의 상황을 보며 중얼거렸다.
“모든 게 그분의 예상대로군.”
페일런 공작은 수도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화려한 귀환이 되겠군요. 주군.”
페일런 공작을 피해서 우회한 2왕자군은 드디어 수도의 바로 앞까지 도착했다.
“감개가 무량하군.”
한때 1왕자와의 세력 다툼에서 패하고 쫓겨났던 2왕자로서는 반년 만에 수도로 돌아온 것이다.
“전하, 항복 권고를 하시겠습니까?”
마리우스 후작의 말에 2왕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한다고 들을 리가 없지. 안 그렇소?”
“그건 그렇습니다.”
“그럼 시간 낭비를 하지는 맙시다.”
그리고 2왕자는 검을 뽑아서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전군, 진군하라!”
둥둥둥둥둥….
2왕자의 명령이 떨어지자 큰 북소리와 함께 반란군이 앞으로 진격했다.
“온…. 온다.”
“제길, 어떻게 하면 되지?”
“겁먹지 마! 이제는 할 수밖에 없다고.”
수도의 성벽은 꽤 높았지만 성벽 위를 지키고 있는 병사들은 대부분이 급하게 징집당한 일반인들이었다.
반 강제로 끌려온 상황이라 사기도 낮았고 전투 경험도 없었다.
겁을 잔뜩 먹은 병사들을 보며 성벽의 지휘를 맡은 카를 트라우스 후작은 눈을 질끈 감았다.
‘내 실수다. 내가 스카이트 전하를 잘 보필하지 못하여 일이 여기까지 온 것이구나.’
트라우스 후작은 1왕자의 토벌군이 대패한 후에 그 책임을 물어서 감옥에 구금되어 있었다.
그러다 불과 며칠 전에서야 풀려나서 갑자기 수도의 성벽을 방어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병사는 오합지졸이고, 수성을 위한 무기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서 반 이상은 폐기해야 할 상태.
거기다 지휘권을 받은 지도 며칠 되지 않은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그는 거부하지 않았다.
아니 거부하지 못했다.
지금의 사태를 불러온 것이 자신의 실책이라는 책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자신이 지휘를 맡는다고 이 수도의 성벽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여기서 책임을 다하고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왔을 뿐이다.
‘하루나 버틸 수 있으면 다행이겠군.’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트라우스 후작이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려고 한 그 순간….
“응? 저건 뭐지?”
“뭐 말이야? 어…? 저기 무슨 먼지 구름이….”
“군… 군대다. 반란군의 후방에서 군대가 나타났어.”
성벽 위의 병사들은 큰 소리로 떠들었다.
그리고 트라우스 후작도 확인할 수 있었다.
2왕자군의 배후에서 갑자기 나타난 일군이 2왕자군을 공격하는 것을 말이다.
“뭐냐? 저 군대는? 소속은 어디인가?”
트라우스 후작은 알 수 없겠지만 배후에서 갑자기 뒤를 공격당한 2왕자군은 똑똑히 들었다.
“내가 밀턴 포레스트다. 반란군은 즉시 항복하라!”
밀턴 포레스트가 이 전쟁에 참전한 것이다.
타이밍.
남부의 귀족들을 설득해서 이 전쟁에서 한 발을 뺀 밀턴이었지만 애당초 끝까지 이 전쟁에서 발을 뺄 생각은 없었다.
다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력을 생각하면서 가장 중요한 타이밍을 계산하고 있었다.
포레스트 영지의 병력을 기사 전력까지 싹싹 긁어모으면 대략 6,000.
거기다 남부의 다른 귀족들까지 모두 힘을 합치면 그럭저럭 1만 5,000 정도의 군세를 만들 수 있었다.
적은 전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큰 전력도 아니다.
이 남부군이 전쟁에서 힘을 소모하지 않고 최대한의 성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개입할 타이밍이 정말 중요했다.
그런 밀턴에게 레이라 공주가 말했다.
구국의 영웅이란 어디까지나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제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전력을 보태죠. 그럼 그럭저럭 2만 정도의 군세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쓸 만한 병력입니까?”
“훗.”
밀턴의 말에 레이라 공주는 그저 짧게 웃으며 서류 봉투 한 개를 내밀었다.
밀턴이 그 내용을 살펴보자….
“이건?”
“어때요? ‘쓸’ 만한가요?”
“말 할 필요가 없군요.”
그 서류는 레이라 공주가 개인적인 자금으로 고용한 용병단의 명단이었다.
전부 이름만 들어도 알아주는 알짜배기 용병단으로 그 숫자만 해도 5,000이 넘었다.
‘이만한 전력이 더해진다면….’
쓸 만한 정도가 아니었다.
이건 포레스트 영지군 전체에 필적하는 강력한 전력이 더해지는 것이었다.
“남부의 귀족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도 시간을 너무 끌지 마요. 여차하면 제 이름을 써도 좋습니다.”
“괜찮겠습니까? 공주님의 신분은 아직 밝힐 때가 아닐 텐데요?”
“어차피 거병을 하면 제가 간판 역할을 해야 할 테죠.”
“하지만 그 전에는 비밀을 유지해야 하지 않습니까?”
“길어야 한두 달이죠. 그 정도는 백작의 영향력으로 남부 귀족들의 입단속을 할 수 있지 않나요?”
“음… 가능합니다.”
밀턴과 레이라 공주가 머리를 맞대자 무섭도록 일이 잘 풀렸다.
레이라 공주는 빙긋 웃으며 밀턴에게 말했다.
“좋아요. 그럼 느긋하게 기다리죠. 위기 속에 영웅이 등장할 타이밍을 말이죠.”
그리고 레이라 공주의 말대로 밀턴은 기다렸다.
1왕자가 대패하고 비참하게 퇴로를 겪는 것을 보면서 도울 수 있었지만 기다렸다.
레이라 공주가 아직 때가 아니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 후에 북부의 반란군이 진출하고 페일런 공작이 출정한 그 순간 레이라 공주가 말했다.
“때가 되었어요.”
그 한마디에 밀턴은 즉시 군을 움직였다.
목적지는 수도.
레이라 공주의 계획이 모두 맞아떨어진다면 지금 출발하는 것이 최적의 타이밍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최적의 타이밍에 2왕자군의 배후를 잡았다.
“제롬! 정면을 뚫는다. 네 실력을 보여줘라!”
“옛. 주군!”
밀턴의 명령을 받은 제롬은 기사단의 제일 선두에 서서 적의 진형을 정면으로 돌파하기 시작했다.
“죽기 싫으면 내 앞을 막지 마라!”
밀턴이 숨겨두고 있어서 세상에 이름을 알리지는 못했지만 제롬의 실력은 레스터 왕국에서는 페일런 공작을 제외하고는 감당할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런 제롬이 작정하고 기사단을 이끌고 돌격을 하자 무시무시한 돌파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