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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51화 (51/257)

제51화

수도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지만 밀턴은 여전히 영지의 발전에만 힘을 기울였다.

소피아라는 인재의 영입으로 영지의 발전은 한층 가속이 붙었고, 덕분에 포레스트 영지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바쁘지만 보람찬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밀턴에게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어디서 찾아왔다고?”

“플로렌스 공국의 리파엘 후작가의 영애라고 합니다. 여행 중에 우리 영지를 보고 발전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하겠다고 합니다.”

맥스의 보고를 받은 밀턴은 고개를 끄덕였다.

플로렌스 공국이라면 레스터 왕국의 남쪽에 있는 나라다.

포레스트 영지와 가깝기도 해서 그쪽에 좋은 연줄을 만들어 놓으면 좋을 것 같기도 했다.

‘여러모로 한번 만나볼 가치는 있겠군.’

“점심은 안 되겠고, 저녁 식사에는 시간이 나겠군. 정식으로 초대하도록 해.”

예전에는 몰랐지만 요즘 들어서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니 밀턴도 이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사람을 만날 때 시간이 안 되면 식사 시간이 가장 요긴하게 쓰인다는 것을 말이다.

어차피 식사할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바쁘니 차라리 식사와 미팅을 같이 해결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저녁이 되었고 밀턴의 초대를 받은 손님들이 찾아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리엘 리파엘이라고 합니다.”

손님으로 찾아온 여인은 우아한 느낌의 전형적인 귀족 영애였다.

그런데 밀턴은 그녀를 보고 뭔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뭐지? 이 묘한 기시감은?’

“밀턴 포레스트 백작이오. 만나서 반갑소 리파엘 영애.”

어쨌든 밀턴도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녀는 호위로 기사 두 명을 데리고 왔는데 그 둘을 본 순간 밀턴은 살짝 감탄했다.

‘둘 다 익스퍼트다. 그리고 나보다 강해 보여.’

타국의 귀족이다 보니 리파엘 후작이 어떤 가문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영애가 호위로 익스퍼트를 둘이나 데리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을 봐서는 상당한 권력가로 추정되었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식사 중에 밀턴은 상대방의 모습을 은근히 관찰했다.

식사 자리에서 보여주는 예법을 보면 상대방의 수준을 대강 가늠할 수 있었다.

딱히 지적한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남부의 봉토 귀족들 중에는 종종 식사 예절을 잘못 배운 자들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여성의 식사 예절은 완벽 그 자체였다.

식사 중에 접시에 나이프가 닿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 것이 무슨 달인의 경지 같았다.

‘어떤 사디스트 선생한테 예절 교육을 받으면 저렇게 되는 거야?’

밀턴도 어린 시절 예절 교육을 받으면서 고생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러니 그녀의 식사 예법은 그저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식사가 끝나고 소화를 위해서 가벼운 술이 나왔다.

그리고 밀턴이 먼저 대화를 걸었다.

“식사는 입에 맞으셨습니까?”

“예 훌륭했습니다.”

“다행이군요. 외국에서 오신 분이라서 입맛에 맞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훌륭한 맛이었고 즐겁게 즐겼습니다. 요리사에게 꼭 감사의 말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로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가는 와중에 밀턴이 먼저 본론을 꺼냈다.

“우리 영지의 모습을 보고 투자를 하신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디에 투자를 하고 싶으신 겁니까?”

사업 얘기를 꺼내며 기대감을 담은 밀턴에게 상대가 말했다.

“포레스트 백작님 본인에게 투자하고 싶다면 어떨까요?”

“예?”

살며시 미소 지으며 그녀가 꺼낸 말에 밀턴은 당황했다.

상대가 한 말의 의미를 머릿속으로 다시 되새긴 후에 밀턴은 말을 꺼냈다.

“저에게 투자를 하신다고요? 흠… 투자에 비해서 돌려드릴 게 없는데 어떻게 하죠?”

“걱정 마세요. 충분히 받아낼 테니까요. 투자금은… 이 정도면 어떨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미리 준비한 봉투를 밀턴에게 내밀었다.

시녀를 통해서 그 봉투를 전달 받은 밀턴은 안의 내용물을 보고 눈이 크게 떠졌다.

100,000골드.

거기에는 무려 10만 골드짜리 어음이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 포레스트 영지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의 두 배에 가까운 금액을 선 듯 내민 것이다.

‘이 여자 뭐지?’

밀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10만 골드라는 돈은 일개 귀족 영애가 턱 하니 내 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금액이 아니다.

밀턴은 눈앞에 있는 여성이 그냥 평범한 투자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질문 좀 하죠.”

“그러시죠.”

“당신 정체가 뭐지?”

싸늘해진 밀턴의 태도에 상대는 일말의 동요도 없이 말했다.

“플로렌스 공국의 리파엘 후작가에서 온 아리엘이라고 합니다.”

상대의 예의 바른 자기소개에 밀턴은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정직하게 알려줄 생각은 없다 이건가? 하긴 당연한 거지.’

목적은 고사하고 정체도 모르는 사람이 내미는 거금을 덥석 받을 정도로 밀턴은 멍청하지 않다.

‘하다못해 정체라도…. 아!’

밀턴은 잠깐 잊어버리고 있던 자신의 능력이 떠올랐다.

목적이 뭔지는 몰라도 상대방의 정체는 자신의 능력을 쓰면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디 볼까?’

밀턴은 자신의 능력으로 상대방의 스텟을 살폈다.

그 결과….

‘이럴 수가!?’

밀턴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

[레이라 폰 레스터]

왕족 LV.5

무력 - 20 통솔 - 90

지력 - 92 정치 - 91

충성 - 00

특성 - 카리스마, 상재, 생존, 모략, 유혹.

카리스마 LV.7 :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해서 신하들의 충성심을 올릴 수 있다.

상재 LV.5 : 상업에 관한 전반적인 능력을 올려주며 이익을 남기는 폭이 커진다.

생존 LV.8 :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위기를 돌파할 방법을 찾아낸다. 자살의 확률이 극단적으로 줄어든다.

모략 LV.7 : 적대하는 인간이나 세력을 위기에 빠트릴 수 있는 뒷공작에 능숙해진다.

유혹 LV.9(MAX) : 타고난 미모로 이성을 유혹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든다. 상대방의 판단을 흐트러트릴 수 있다.

전체적으로 높은 능력치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녀의 본명이었다.

‘레이라 폰 레스터? 설마 그 레이라 공주라고?’

밀턴도 잘 아는 이름이다.

아니 이 나라에서 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밀턴이 알기로 그녀는 7년 전에 죽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 자신의 눈앞에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이다.

‘생각…. 생각을 해보자.’

밀턴은 지금 가지고 있는 단서를 기반으로 머리를 굴려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죽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지금 멀쩡히 살아서 눈앞에 있는 레이라 공주.

그녀가 제시한 거액의 투자금.

그리고 최근 수도에서 벌어진 샤를롯트 상단의 사건.

마지막으로 이전에 승작을 위해서 수도에 갔을 때 페일런 공작과의 만남에서 알게 된 제3의 세력.

그 모든 것을 하나로 엮으니 커다란 그림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샤를롯트, 아리엘, 레이라 공주. 이 세 명이 모두 동일인이었구나. 그렇다면 얘기가 모두 이어져.’

머릿속이 환하게 밝아진 것 같았다.

이제야 정황이 모두 맞아떨어진다.

왜 샤를롯트 상단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을까?

중앙의 손길이 닿지 않는 지방의 봉토 귀족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왜 페일런 공작 같은 거물이 1왕자와 2왕자가 아닌 제3의 세력을 지지한 걸까?

레이라 공주 역시 정당한 왕족이며 심지어 핏줄로 따지면 현 1왕자나 2왕자보다 더 높은 서열의 왕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다.

페일런 공작이 그녀를 지지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왜 샤를롯트 상단이 갑자기 오만가지 죄를 다 뒤집어쓰고 망해 버린 걸까?

아마 그녀의 정체가 발각된 것이리라.

그래서 1왕자나 2왕자가 손을 써서 그녀를 죽이려고 했고, 레이라 공주는 미리 준비해둔 새로운 신분으로 갈아탄 것이리라.

왜 레이라 공주는 자신에게 거금을 내밀며 투자 운운하며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일까?

레이라 공주가 원하는 것은 밀턴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로 뭉치고 있는 남부 귀족 전체를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밀턴에게 거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왜 그녀가 이 모든 행동을 하는 것일까?

답은 하나밖에 없다.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 위해서인 거야. 이 공주는 진심으로 왕위를 노리고 있다.’

정체를 밝혀냈을 뿐인데 밀턴은 상대방의 목적까지 모두 알아냈다.

그동안 밀턴이 알게 된 정보를 하나하나 이어 보니 이런 그림이 나온 것이다.

‘이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까?’

밀턴은 눈앞에 있는 레이라 공주를 지그시 바라보며 속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런 밀턴의 모습이 레이라 공주에게는 자신의 제의를 두고 고심하는 것으로 보였나 보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지 않나요? 그저 좋은 자금줄이 생겼다고 생각하면 되는 일이죠.”

“…….”

“백작?”

대답조차 안 하는 밀턴을 보고 그녀는 대답을 재촉하듯이 시선을 보냈다.

그런 그녀를 보고 밀턴은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안 되겠군. 아무리 생각해도 숨겨두고 어떻게 해볼 일이 아니야.”

“무슨 말이죠?”

“가면극은 끝났다는 말입니다.”

“…….”

“레이라 공주님.”

화아악!

밀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레이라 공주의 뒤편에 있던 두 명의 기사에게서 뚜렷한 살의가 뿜어져 나왔다.

‘웃!?’

순간 괜히 말했나 싶은 밀턴이었다.

하다못해 제롬이라도 옆에 데려다 놓고 말을 했어야 했나 싶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사실 상대의 정체를 숨기고 어떻게든 이 상황을 활용해 볼 수 없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단이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 지금 살짝 드러난 꼬리를 잡지 않으면 다음은 없다는 위기감이 더 강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대상단의 주인인 샤를롯트, 지금은 플로렌스 공국의 귀족 영애.

그녀가 다른 가면을 또 가지고 있지 않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니 차라리 이 자리에서 끝장을 보기로 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동요시키면 뭔가 유용한 정보가 더 나올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고 말이다.

톡톡톡톡톡….

레이라 공주는 가만히 테이블을 손가락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한참 후에 생각을 정리한 그녀가 가장 처음으로 꺼낸 말은….

“도저히 모르겠군.”

이 말이었다.

그녀는 밀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내 정체에 관해서는 어디서 들었지?”

“비밀입니다.”

“내가 꼭 알아야겠다면?”

레이라 공주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의 뒤편에 있던 기사 두 명이 앞으로 슬쩍 나왔다.

밀턴은 그 둘을 슬쩍 바라봤다.

그리고 눈살을 찌푸렸다.

‘젠장, 둘 다 나보다 확실히 강해.’

둘의 무력 수치는 각각 83, 85였다.

한 명만 해도 가망성이 희박한데 둘이나 있으면 가능성은 거의 절망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잠시 버티면서 외부에 원조를 청하는 것도 여의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밀턴은 마음을 강하게 먹었다.

‘죽이려고 했으면 진작 죽였겠지. 지금은 더 강하게 나가야 해.’

밀턴은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지금 여기서 저를 죽인다면 공주님에게 어떤 이득이 있을까요?”

“…….”

“제가 죽으면 제 기사들이 당장 범인을 찾겠다고 난리를 치겠죠.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 새롭게 마련한 신분도 금방 버려야 할 텐데 말이죠.”

“…….”

“어쩌시겠습니까? 그래도 해보시렵니까?”

“쯧.”

레이라 공주의 입에서 짧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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