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게임-46화 (46/257)

제46화

할 거면 제대로 하자.

연회를 준비하면서 밀턴은 이렇게 마음을 먹었다.

생각해 보면 이번 연회는 밀턴이 포레스트 가문의 가주가 된 후에 처음으로 열리는 연회였다.

그리고, 최근에 포레스트 영지에 투입되는 투자자들의 자금을 생각하면 한 번은 이런 자리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기도 했다.

밀턴은 연회를 위해서 저택을 증축하고 연회장이 될 로비를 호화롭게 치장하게 했다.

그리고 수도에서 비싼 보수를 지불하며 유명한 음악가와 요리사를 초빙했다.

귀족 사회에서 사치는 때때로 필요한 정치적 지출이기도 하다.

밀턴은 이번 기회에 남부의 귀족들은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호화로운 연회를 열어서 주변에 다시 한번 확인을 해 주기로 했다.

지금 포레스트 가문이 얼마나 큰 전성기를 맞이했는지를 말이다.

연회의 날짜가 되자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포레스트 영지에 들어왔다.

연회의 명목은 포레스트 영지의 항구 개발에 자금을 투자한 투자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초청장 끄트머리에 작게 가족 단위의 참가를 환영한다고 적어 놨다.

즉, 딸 있는 사람은 데려오라는 말인 것이다.

어느 정도 눈치가 있는 귀족들이라면 이걸 모를 리가 없었다.

최근 밀턴 포레스트라고 하면 남부 지역의 귀족들 사이에서는 일등 신랑감이었으니 당연했다.

많은 귀족들이 자기 딸을 데리고 포레스트 영지로 향했다.

컬리버 자작 역시 그중에 하나였다.

그는 자신의 딸을 데리고 가능하면 밀턴과 혼담을 엮기 위해서 발걸음을 했다.

자신의 가문은 자작이지만 영지의 규모는 자작치고는 큰 편이었다.

그리고 딸인 플로라의 미모 역시 수도의 영애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만한 조건이면 혼담을 진행하기에 충분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포레스트 영지에 도착하고 그의 자신감이 조금씩 위축되었다.

“아버님, 정말로 여기가 포레스트 영지인가요?”

눈을 토끼처럼 동그랗게 뜨고 말하는 딸에게 컬리버 자작 역시 다소 멍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렇단다. 젊은 시절 지나간 적이 있었지. 그런데 그때와는 정말로 많이 달라졌군.”

포레스트 영지에 도착한 귀족들은 자신의 기억과 완전히 달라진 포레스트 영지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인구가 늘고 자금이 돌면서 자연스럽게 건물이 늘었고 이제 포레스트 영지의 규모는 어엿한 도시가 되었다.

중앙에 큰 길을 내서 마차가 좌우로 두 대씩 지나가도 괜찮을 정도로 넓은 대로를 내고 그 대로를 중심으로 길을 바둑판 형식으로 내면서 거주 지역과 상업 지구를 명백하게 구분했다.

복잡한 미로 같은 골목을 마구잡이로 내서는 치안의 사각 지대가 생길 뿐이니 밀턴이 꽤 신경 쓴 부분이었다.

“도로가 전부 말끔하게 포장되었군. 길도 깨끗하고 영지민들의 복장도 말끔해.”

“어머? 아버지. 악세사리를 전문 취급하는 숍이 있어요. 수도에서만 봤던 건데… 한 번만 들렀다 가도 될까요?”

딸은 제발 들어가고 싶다는 듯이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딸을 보고 컬리버 자작은 잠시 눈살을 찌푸렸지만 생각을 바꿨다.

“아직은 여유가 좀 있으니 괜찮겠지. 들어갔다 오거라.”

딸이 아름답게 치장을 하고 포레스트 백작을 보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말요?”

아버지의 허락이 벌어지자 컬리버 자작의 딸은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좋아했다.

“돈을 줄 테니 안에서 물건을 고르고 숙소에 들어가 있거라. 나는 잠시 어디를 갔다 오도록 하마.”

“예. 감사해요. 아버지.”

컬리버 자작은 딸을 숍에 내려주고 자신은 마부에게 지시해서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항구가 개발 중인 곳으로 가보자.”

“예. 자작님.”

그렇게 큰돈은 아니었지만 컬리버 자작 역시 포레스트 영지의 항구 개발에 돈을 지불했다.

영지가 이렇게 발전했다면 과연 항구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을지 궁금해진 그는 자신의 눈으로 항구로 향했다.

제법 시간이 걸려서 항구로 이동한 컬리버 자작은 크게 놀랐다.

“호오오… 이거 상당히 본격적인 항구로군.”

컬리버 자작이 눈으로 직접 확인한 항구 건설 예정지는 상당한 규모였다.

지도로 봤을 때 입지가 나쁘지 않아서 항구를 개발하면 상업의 중계지로 가능성이 충분하겠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항구의 터가 넓군. 꽤 많은 배가 오갈 수 있겠어. 그리고 뒤편에 건설 중인 도시가 상업 지구의 역할을 한다면….”

뭐든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던가?

직접 눈으로 포레스트 영지의 항구 건설 현장을 본 컬리버 자작은 크게 감탄했다.

‘이 항구가 완성되면 틀림없이 남부 지방에서 제일가는 물류의 중심지가 될 테지. 그렇다면 포레스트 백작이 얻는 이득은….’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도 아찔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컬리버 자작은 마침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자들을 볼 수 있었다.

“오, 컬리버 자작이 아니오?”

“아니, 카본 자작? 라미스 자작? 작센 남작까지? 여기는 어쩐 일이오?”

“허허허… 우리는 이 항구의 투자자가 아니오? 연회에 초대된 김에 건설 예정지를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왔소.”

“그렇군. 나 역시 마찬가지로 왔소. 항구의 입지가 썩 나쁘지는 않은 것 같소.”

이 자리에 모인 귀족들은 서로 점잖은 척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포레스트 영지의 발전된 모습에 놀랐고, 자신들이 투자한 항구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들의 머릿속에는 모두 비슷한 생각이 들어 있었다.

‘포레스트 영지가 남부의 핵심으로 떠오르는 건가?’

‘앞으로 남부가 변한다면 그 선두에는 포레스트 백작이 있을 것이야.’

그동안 알게 모르게 중앙에서부터 차별을 당해 왔던 남부의 귀족들이다.

하지만 그건 남부가 하나로 뭉칠 구심점이 없었기 때문이지 남부의 여건이 나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중앙 귀족들은 남부 출신이라고 하면 농사나 짓는 촌놈들이라고 취급한다.

하지만 레스터 왕국 내의 식량 생산량의 40퍼센트 가량은 남부에서 나온다.

워낙 자잘한 귀족들이 영토를 가르고 있어서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기 힘들었기에 중앙에서 시키는 대로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남부의 귀족들이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알면서도 어찌하지를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포레스트 가문이 힘을 끌어올리면서 남부 지역을 경제적으로 하나로 뭉치게 하고 있다.

남부 지방의 귀족들이 오랜 세월 동안 기다려온 구심점이 탄생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던 귀족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줄을 설 때는 빨리 서는 사람이 늦게 서는 사람보다 훨씬 더 유리한 법이지.’

‘이왕이면 혈연으로 맺어지면 더욱더 좋을 테고 말이야.’

‘내 딸 정도면 어디 가서 미모가 처지는 편은 아니지. 성격은… 뜯어고치면 되는 거고.’

이들은 포레스트 영지와 밀접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딸을 대동한 귀족들은 밀턴을 사윗감 후보 1순위에서 0순위로 올렸다.

연회 당일이 되었고 초대장을 받은 모든 귀족들이 연회장으로 모였다.

밀턴은 요리사에게 전생의 요리 지식을 몇 가지 알려주면서 새로운 요리를 요구했다.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마카롱이나 치즈케이크, 그리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던 치킨 레시피 등을 알려준 것이다.

밀턴이 전생에 전문 요리사도 아니었고 적당히 주워들은 지식 정도밖에 없었기에 요리사들도 모든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몇 가지는 꽤 높은 퀄리티로 재현하기도 했다.

“호오오… 이 닭을 튀긴 요리는 참 훌륭하군. 매콤한 소스가 어울리니 느끼함이 싹 가시는군.”

“그렇군요. 여기 말고기를 다진 요리도 훌륭합니다. 고기를 익히지 않고 생으로 먹을 수 있을 줄은 몰랐군요.”

“포레스트 백작님은 어디서 이런 요리를 배워 오신 걸까요?”

“글쎄요. 젊은 시절에는 수도에서 면학을 하기도 하셨고, 스트라부스 왕국의 전쟁에 참전하기도 하셨으니 역시 견문이 넓은 거겠죠.”

“호오… 백작님에 관해서 많은 조사를 하셨군요.”

“하하하… 조사라고 할 것까지 있습니까? 그저 당연히 귀에 들어온 정보일 뿐입니다.”

음식이라는 것은 문화의 지표를 몸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음식을 접했을 때 사람은 신기함과 감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저 음식일 뿐이었지만 신기함과 생소함, 거기다 최근 오르고 있는 밀턴의 명성이 더해지자 연회에 참석한 귀족들의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가 최고조에 도달했을 때 밀턴이 연회장에 나타났다.

그리고 밀턴이 나타나자….

“호오오… 저분이 포레스트 백작님인가?”

“듣기로는 젊은 나이에 검의 달인이라고 하더군요.”

“대단한 사람이야. 가문을 이어받은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큰일을 연거푸 해내다니 말이야.”

나이가 지긋한 귀족들은 유망한 젊은이를 보듯이 대견한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젊은 영애들은 딱히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저마다 부채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밀턴을 빤히 보며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연회에 참석하기 전에 아버지에게 포레스트 백작과 좋은 연을 만들라는 명령을 들은 영애가 태반이었고, 그런 명령을 받지 않은 영애들도 발전한 영지의 모습과 화려한 연회장의 모습을 보고는 욕심이 났다.

‘이런 가문의 안주인이 되면 얼마나 황홀할까?’

‘수도의 높은 귀족의 첩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백배 나을 거야.’

‘젊은 나이에 얼굴도 괜찮고 검술이 그렇게 좋다면 밤에 체력도… 어머 어머….’

영애들은 얼굴을 붉히면서도 밀턴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렇게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연회장에 등장한 밀턴은 연회장의 한가운데에 서서 술잔을 받으며 말했다.

“오늘 제가 주최한 연회에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 주시는 내빈 여러분들에게 우선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밀턴은 정중한 인사말에 다른 귀족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거푸 영지전을 벌여서 주변 영지를 집어삼킨 밀턴의 행적 때문에 세간에 밀턴의 평가는 다소 호전적이고 오만할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래서 밀턴은 이번 기회에 그런 평판을 바꾸고자 최대한 정중하게 말을 이어 갔다.

“아직 젊은 나이에 가문을 이어받아서 제가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영지의 항구 개발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남부의 발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들의 힘을 빌려주시기 바랍니다.”

밀턴의 말에 다른 귀족들은 하나둘씩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짝….

이 순간 박수를 치는 귀족들의 눈빛은 두 가지로 나눴다.

하나는 젊고 유능하지만 예의까지 바른 젊은이를 바라보는 흐뭇한 눈빛.

그리고 두 번째는 밀턴의 말에 숨어 있는 가시를 정확하게 잡아내고 감탄한 자들의 눈빛이었다.

‘남부의 발전에 최선을 다하겠다. 그러니 힘을 빌려달라.’

‘이건, 스스로 남부의 패자로 올라서겠다는 선언인가?’

‘능력만 있는 게 아니다. 가슴속에 야심이 있는 거야.’

이들은 밀턴이 앞으로 남부의 중심이 되어서 이끌어 가겠다는 의도가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지금 포레스트 영지의 저력을 생각할 때 남부의 귀족들 중에는 맞설 적수가 없어 보였다.

귀족들은 하나둘씩 허허 웃으면서 밀턴에게 다가갔다.

“처음 뵙겠습니다. 마일론 자작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소. 마일론 자작.”

“정말 대단합니다. 이 젊은 나이에 가문의 영광을 이렇게까지 끌어올리다니.”

“과분한 칭찬이오.”

“과분하다니요. 아! 여기 이 아이는 내 딸인 올리비아라고 합니다. 올리비아, 이리 와서 백작님에게 인사를 하거라. 평소 네가 그렇게 뵙고 싶다고 말한 포레스트 백작님이 아니냐?”

마일론 자작은 은근히 밀턴에게 자신의 딸을 소개하면서 평소에 자신의 딸이 밀턴에게 마음이 있었다는 식으로 소개를 했다.

물론 속이 빤히 보이는 어시스트였지만 딸인 올리비아는 최대한 화사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올리비아 마일론이라고 합니다. 포레스트 백작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만나서 반갑소, 마일론 영애.”

밀턴이 그녀의 손등에 가볍게 키스를 하며 말하자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올리비아라고 불러 주세요.”

그리고 이 순간이 도화선이 되었다.

‘저 불여우가?’

‘어디서 감히 선수를?’

주변 영애들과 영애들의 아버지들의 눈에 불똥이 튀겼다.

그리고 그들은 앞을 다퉈서 밀턴에게 들이대기 시작했다.

“포레스트 백작님. 저는 베이컴 자작이라고 합니다. 평소 제 딸이 백작님에게….”

“여기는 제 딸인 르네라고 합니다. 이 아이가 백작님을 위해서 직접 자수를 한 손수건을….”

밀턴은 하나둘씩 그런 이들을 상대하며 연회의 주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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