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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35화 (35/257)

제35화

공성(攻城)의 전투에서 공격자가 취할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 성문을 파괴한다.

둘, 성벽을 파괴한다.

셋, 성벽을 넘는다.

세세하게 나누면 얼마든지 방법이 있겠지만 그래도 이 세 가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밀턴이 알기로 이 세계에서 대부분의 공성전은 앞의 두 가지에 집중되어 있다.

성벽을 파괴하거나 성문을 파괴하거나….

물론 성벽을 넘는 수단도 있기는 있다.

대표적으로 갈고리를 걸어서 줄을 타고 올라가는 방식과, 사다리를 걸어서 넘어가는 방식이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효용성이 많이 떨어졌다.

갈고리를 이용해서 성벽을 오르는 것은 힘들기도 힘들거니와 위에서 내려오는 공격에 너무 무방비했다.

사다리는 상황이 좀 낫기는 하지만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든든한 지지대가 없는 사다리는 위쪽에서 창을 장대처럼 이용해서 밀어내는 방식에 너무 약했다.

하지만, 이 세계와는 다른 지구.

고대 아시아에서는 성벽을 넘기 위해서 운제라는 공성 병기를 만들어 운영했다.

나라마다 크기와 형태가 미묘하게 다르기는 하지만 목표는 하나였다.

보다 효과적으로 성벽을 넘는 것.

수례에 사다리를 걸치고 성벽에 고정함으로 인해서 든든한 지지대를 만들 수 있었다.

그 효과가 얼마나 뛰어나냐 하면 중국에서는 공성전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할 필수품으로 취급될 정도였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운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위력은 성능이나 효용성이 아니다.

진짜 가장 큰 장점은 적이 운제라는 물건을 모른다는 것이다.

생소함.

전쟁터에서 새로운 무기가 가장 두려운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어떻게 대응해야 효과적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적은 크게 당황하고 덕분에 신무기의 효용성은 더욱더 커지는 법이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사다리를 밀어내라! 적들이 기어오기 전에 밀어내란 말이다.”

“그… 그게 안 됩니다. 너무 튼튼하게 걸쳐져 있습니다.”

“이런 멍청한, 밀어내지 못하면 부수기라도 하란 말이다!”

로스케이즈 백작이 미친 듯이 소리쳤지만 그의 지시는 이미 늦었다.

운제를 타고 이미 한 명의 기사가 성벽 위로 올라왔다.

더구나 그 기사는….

“목숨이 아까운 자는 무기를 버려라!”

이전의 전투에서 소수의 병력만으로 로스케이즈 백작의 우익을 박살냈던 제롬 테이커였다.

제롬은 운제를 타고 가장 먼저 성벽 위에 올라간 것이다.

제롬이 선명한 오러를 뿜어내자 적들은 포위만 하고 감히 덤벼들지를 못했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운제를 통해서 다른 기사들과 병력들이 속속들이 올라왔다.

‘주군의 발상은 대단하시군. 이런 무기가 있다면 기사들이 공성전에서 활약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

제롬은 뒤편에 부하들이 충분히 올라온 것을 확인하자 크게 외쳤다.

“아군이 올라올 거점을 넓힌다! 모두 따라와라!”

“옛!”

그리고 제롬과 기사들이 성벽 위에서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이런… 이런 일이….”

로스케이즈 백작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 성벽은 가문 대대로 지어지면서 몇 번의 영지전을 거쳤지만 단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었다.

가문의 자랑이었고, 그 자랑을 어린 시절부터 들으며 자라왔던 로스케이즈 백작이었다.

설령 위기에 처한다고 해도 성문을 굳건하게 닫고 버티면 결코 멸망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성벽이 고작 한 번의 전투에 무너지려고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공성 병기는 이미 두 대 모두 성벽에 걸쳐져 있었고, 그곳을 이용해 파고든 기사들은 양 떼 사이에 던져진 늑대들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전에도 느꼈지만 기사의 숫자는 자신이 많아도 기사의 수준은 포레스트 영지가 훨씬 높았다.

눈에 띄게 활약하는 제롬을 제외하고 다른 기사들만 놓고 봐도 마찬가지였다.

애당초 성벽 같은 좁은 공간에서는 양보다 질이 중요한 법이다.

기사들로도 막기 어려운 포레스트 영지의 기사들인데 병사들로 막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점점 성벽 위에는 아군보다 적군이 더 많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크아악!”

자신의 호위 기사를 베어 버리고 적의 기사가 지척까지 도달했다.

그는 숨도 차지 않은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판단컨대 로스케이즈 백작님이 맞으십니까?”

“…그렇네. 자네 이름은?”

“제롬 테이커입니다.”

“아아… 그렇군.”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제 평생 잊히지 않을 이름이 되었다.

비록 자신의 평생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항복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최후까지 싸우시겠습니까?”

제롬의 말에 로스케이즈 백작은 허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항복?

여기서 항복하면 어떻게 될까?

앞에 밀턴에게 패배한 하먼 자작과 로스와이 자작의 경우 영지가 몰수당하고 작위와 일정 재산만 챙겨서 외부로 추방당했다고 들었다.

아마 자신도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놈들하고 같은 수준으로 떨어질 수는 없지.’

로스케이브 백작은 정말 오랜만에 검을 뽑고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제롬을 향해서 눈을 빛내며 말했다.

“목숨보다 명예를 우선하지 못할 거라면 어찌 귀족이라고 할 수 있겠나?”

제롬은 그런 로스케이즈 백작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백작님의 의지를 존중합니다.”

그리고 제롬은 친히 검을 들어서 로스케이즈 백작의 마지막을 상대해 주기로 했다.

“고맙군. 인생에 마지막이 익스퍼트라니? 저승길에 자랑거리는 되겠어.”

“그럼 가겠습니다.”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하지.”

그리고 로스케이즈 백작은 용감하게 제롬에게 달려들었다.

대대로 유서 깊은 봉토 귀족의 자재로 태어나서 그렇게 자라온 로스케이즈 백작이었다.

50년에 가까운 자신의 삶을 바꾸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싫었던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차라리 마지막에 제롬의 검에 목숨을 잃으면서도 후회는 없어 보였다.

***

승자는 권리를 얻고 패자는 대가를 치른다.

귀족들의 영지전은 지독하리만치 선명하게 승패의 결과를 드러낸다.

“설마 스스로 죽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밀턴은 로스케이즈 백작이 마지막에 제롬과 검을 마주하고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밀턴에게 제롬이 정중하게 보고를 이었다.

“패자이긴 했지만 자신의 명예를 지켜낸 모습이었습니다.”

“으음….”

밀턴은 로스케이즈 백작을 그냥 답답한 꼰대에 남의 것을 탐욕스럽게 탐하는 속물로 평가했다.

하지만 제롬의 보고를 듣고 보니 조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사람은 죽음을 맞이했을 때 진짜 인간성이 나온다고 하던가?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 양반은 골수까지 귀족인 인간이었군.’

밀턴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로스케이즈 백작의 일가의 사유 재산을 그대로 인정해주고, 그들이 타지에 가서 무사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위로금을 더해준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갈 기사가 있다면 허락하겠다.”

“관대하고 현명한 처사이십니다.”

패자의 처우 역시 온전한 승자의 권리.

밀턴은 앞에 하먼 자작이나 로스와이 자작보다는 훨씬 더 후한 대우를 해주었다.

로스케이즈 백작의 가족에 대한 일을 처리한 다음 밀턴은 뜻밖의 보고를 들었다.

“어디서 발견했다고?”

“지하 감옥에서 발견했습니다.”

“…….”

어이가 없으면 할 말이 없어진다고 하는데, 지금 밀턴은 그 상황을 몸소 체험 중이었다.

‘진짜로 할 말이 없어지는구나.’

너무 어이없는 보고에 잠시 정신 줄을 놔 버린 밀턴은 다시 말했다.

“그 남자… 그러니까 트라이크라는 궁수가 지하 감옥에서 발견되었단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죄목은? 뭐 때문에 감옥에 들어갔다고 하던가?”

“우리와의 전투 후에 명령 위반과 탈영 미수로 잡혀서 감옥에 있었다고 합니다.”

“어처구니가 없군.”

밀턴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밀턴과 로스케이즈 백작의 평야에서의 전투가 끝나고 트라이크는 이 전쟁의 승패가 거의 결정되었다고 판단했다.

적에는 두 명의 익스퍼트가 있었고 기사단의 전력은 저쪽이 훨씬 더 강했다.

거기다 유일하게 이쪽이 유리했던 머릿수도 이제는 많이 줄었다.

첫 번째 전투에서 포위망을 형성하려다 실패하면서 너무 큰 피해를 입었다.

승산이 없는 전쟁에 끝가지 참가하는 용병은 없다.

다행히 트라이크가 이끄는 롱보우 용병단은 단기 계약이었다.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고용하는 게 아니라 단 한 번의 전투만 참가하는 조건으로 고용된 것이다.

사실, 용병을 고용하는 데 돈을 너무 많이 쓴 로스케이즈 백작이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기 위해서 용병들과 이런 조건으로 계약을 한 것이다.

그래서 트라이크는 이제 계약이 만료되었음을 알리고 보수를 받은 다음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로스케이즈 백작은 이걸 허락하지 않았다.

한 번의 전투만으로 계약을 했던 것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패배하고 상황이 나빠진 지금 병력의 이탈은 용인할 수 없었다.

그는 트라이크에게 다음 전투에도 참여하라고 강압적으로 말하자 트라이크는 거부했다.

거기에 화가 난 로스케이즈 백작은 오히려 트라이크를 지하 감옥에 가뒀다.

죄목은 명령 위반과 탈영이었다.

트라이크가 잡히자 그를 따르는 롱보우 용병단도 떠나지 못했다.

아직 보수를 받지도 못했고 단장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용병단이었기 때문에 그들도 발이 묶인 것이다.

“어이가 없군. 아무리 그래도 자기 목숨을 구해준 인재를 그렇게 대하다니….”

밀턴은 로스케이즈 백작의 최후를 듣고 생겼던 인정과 동정심이 다시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만약 그 트라이크라는 사내가 없었다면 공성전까지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최초의 전투에서 밀턴이 로스케이즈 백작을 잡아서 전쟁을 끝냈을 테니 말이다.

결과가 다 정해진 판을 뒤집은 것은 트라이크의 귀신같은 궁술이었다.

그 덕분에 밀턴은 부상을 입었고 마지막 공성전에는 직접 참여하지 못한 채 지휘만 해야 했을 정도였다.

그런 인재를 이렇게 홀대하다니….

‘아니, 오히려 나로서는 이게 기회인가?’

밀턴은 잠시 생각하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하 감옥은 어디지?”

“예? 주군, 뭘 하시려는 겁니까?”

“내가 직접 찾아가 보려는 걸세.”

“주군, 그건 너무 지나친 예우가 아닐까 합니다.”

제롬의 말에 밀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삼고초려 같은 스토킹까지 할 생각은 없어.”

“…·예?”

“그래도 할 만큼은 해야지.”

“……?”

제롬은 가끔 자신의 주군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럴 때는 그냥….

“예. 알겠습니다.”

충직한 기사답게 따를 뿐이었다.

지하 감옥에 들어가서 트라이크를 직접 본 밀턴은 탄성을 내질렀다.

“호오….”

[트라이크]

용병 LV.4

무력 - 79 통솔 - 81

지력 - 45 정치 - 11

충성 - 0

특성 - 원시, 저격, 속사

원시 LV.9(MAX) : 시력이 좋아진다. 인간의 수준을 넘어서 매에 버금하는 시력을 갖추고 있다.

속사 LV.8 : 활을 연달아서 쏠 수 있는 속도가 늘어난다. 연속으로 화살을 발사하면서도 정확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저격 LV.7 : 거리가 멀어도 활의 위력과 정확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대단해. 특성 레벨이 MAX인 인간은 처음 봤어.’

상대의 스텟을 확인하고 나니 더욱더 영입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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