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게임-31화 (31/257)

제31화

로스와이 자작령이 항복을 하자 제롬은 크게 감탄해서 밀턴에게 말했다.

“대단합니다. 주군. 정말로 화살 한 대 날리지 않고 로스와이 자작을 항복시키셨군요.”

제롬의 존경스런 시선에 밀턴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잘될지 안 될지는 반반이었지. 그래도 시도해 볼 가치는 있다고 판단했을 뿐이오.”

“그래도 대단합니다. 결국 통하지 않았습니까?”

“운이 좀 따른 거지.”

“만약 로스와이 자작이 항복을 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셨습니까?

“그때는 정당한 명분을 가지고 로스와이 자작령을 공격하면 될 일이지. 안 그렇소?”

“과연, 어차피 영지전을 염두에 두었던 일이니 우리는 손해 볼 것이 없었군요.”

제롬은 밀턴의 계략에 크게 감탄했다.

이건 전쟁의 전체적인 판도를 가르는 전략이나, 전쟁의 일선에서 적을 물리치는 책략과는 좀 다른 종류의 지혜였다.

상대의 심리를 파악하고 이쪽에서 이렇게 하면 저쪽은 그렇게 나올 것이다, 라는 예상을 하며 판을 짜서 상대방을 처음부터 끝까지 손바닥 안에서 가지고 놀았다.

밀턴의 지혜는 사실 모략(謀略)에 가까운 생각이었다.

지략가나 책략가에 비해서 모략가들은 역사의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적이 되었을 때 가장 피곤한 타입은 밀턴과 같은 모략가들이었다.

전쟁터에서 정면 승부를 하는 책사들과 다르게 모략가들은 은밀하게 보이지 않는 손을 움직여 후방에 있는 수뇌부의 심리를 흔들었다.

결국 밀턴의 모략에 하먼 자작은 도발에 낚여서 쓰러졌고, 로스와이 자작은 심리적인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항복해 버렸다.

모든 것이 밀턴이 유도한대로 흘러간 것이다.

‘상대가 그렇게 거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말 잘 풀렸어. 이렇게까지 잘 풀릴 거라고는 예상 못 했는데 말이야.’

밀턴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이번에 로스와이 자작령의 문제는 굉장히 잘 풀렸다.

두 명의 자작을 정리한 이상 이제 남은 과제는 하나뿐이었다.

‘올겨울에 힘을 비축한 다음 봄이 오면 로스케이즈 백작과 결판을 낸다.’

밀턴은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했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었다.

지난겨울 동안 밀턴은 최선을 다해서 영지를 다듬었다.

겨울은 원래 침묵의 계절이라고 할 정도로 쥐 죽은 듯이 조용하게 지내는 게 보통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도 없었다.

새롭게 병합된 영지 두 개를 보살피고, 영지의 고위 관료들을 다시 뽑는 등 여러 가지로 할 일이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신경 써야 했던 것은 역시 군사력 방면이었다.

봄이 되면 로스케이즈 백작과 일전을 치를 예정이었기 때문에 가장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제롬에게 기사들과 병사들의 조련을 맡기는 것은 물론이고 원래 하먼 자작과 로스와이 자작의 휘하에 있던 기사들 중에서 쓸 만한 자들을 받아 들였다.

그 결과 지금 포레스트 영지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전력이 강해졌다.

영지 - 포레스트 영지.

인구 - 21,510명.

자금 - 7,480골드.

주요 생산품 - 밀, 보리, 귀리, 목재, 모피, 양모.

개발 가능 - 구리 광산.

군사력 - 기사 10인, 수습 기사 40인, 기병 100인, 보병 700인. 궁병 300인.

‘인구 2만 이상에 총 병력이 1,000명 이상, 정식 기사도 열 명이나… 진짜 용케 여기까지 키웠군.’

밀턴은 자신의 영지 상태창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뿌듯해졌다.

밀턴이 막 포레스트 영지를 이어받았을 때는 인구가 7,000명이 약간 넘는 정도에 기사도 세 명밖에 없었고, 총 병력은 100명이 조금 넘는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인구만 해도 세 배 가까이 늘어났고 병력은 열 배가 넘게 늘어났다.

말만 자작령이지 이건 도저히 일개 자작이 보유할 힘이 아니었다.

어쩌면 가까운 시일 안에 밀턴의 작위는 자작에서 백작으로 승작될지도 모른다.

귀족의 작위가 올라가는 경우는 보통 전쟁터에서 공을 세우거나, 혹은 나라에 큰 공헌을 했을 때다.

하지만, 영지전에서 승리를 거듭해서 세력이 넓어지면 중앙에서 더 높은 작위를 부여하기도 한다.

작위가 올라가고 거기에 맞춰서 힘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힘이 강해진 귀족을 달래는 의미에서 작위를 승작시켜 주는 것이다.

레스터 왕국은 평화로운 편이라서 이런 경우가 많지 않았지만, 최근 포레스트 영지의 인근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밀턴 포레스트가 군사력 증강에 여념이 없다는 말은 이미 인근에 유명했고, 거기다 인접 영지인 로스케이즈 백작 역시 부랴부랴 사비를 털어서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있었다.

부근의 용병들의 몸값이 갑자기 오른 것만 봐도 둘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확연했다.

당연히 그 일대의 관심은 두 영지에 집중되었다.

지금은 한물은 넘어서 두 물 세 물은 갔지만 로스케이즈 백작가는 그래도 개국 공신의 가문이었다.

한때는 레스터 왕국의 중앙에서 권력을 휘두르던 시기도 있었다.

수 세대 전에 정쟁에서 패하고 외지로 밀려나기는 했지만 가문의 저력은 다른 지방 귀족들과 꽤 달랐다.

그리고 포레스트 자작가는 최근에 밀턴 포레스트가 작위를 이어받고 나서 급격하게 가문의 세를 불렸다.

전쟁터에 직접 참가할 정도로 호전적인 젊은 영주가 주변의 자작 영지 두 개를 집어삼킴으로 인해서 눈에 띄게 세력을 확대한 것이다.

새롭게 떠오르는 신흥 강자인 포레스트 자작가와 과거의 영광을 그리는 로스케이즈 백작가.

주변의 귀족들은 여기에 휘말리지 않게 몸을 사리면서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구경거리인 것처럼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두 세력이 부딪힘에 따라 레스터 왕국 남부 지방의 귀족들 전원의 이목이 모인 것이다.

그리고 그 주목 속에서 마침내 영지전이 발생했다.

뜻밖에도 영지전을 먼저 신청한 것은 로스케이즈 백작이었다.

명분은 포레스트 자작이 주변 영지를 도발하며 평화를 어지럽히고 있기 때문에 이를 징벌하겠다, 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밀턴으로서는 고맙기까지 했다.

어차피 전쟁을 벌여야 했는데 마땅한 명분을 어떻게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으니 말이다.

“기꺼이 받아주마.”

밀턴은 즉시 제롬을 불렀고 전군을 집결시켰다.

그리고 넓은 평야를 앞에 두고 양 군은 서로 대치했다.

“과연… 이래서 먼저 영지전을 신청한 건가?”

서로 대치한 상태에서 밀턴은 로스케이즈 백작가의 군세를 보며 중얼거렸다.

거기에는 3,000의 병력이 집결해 있었다.

“용병을 대거 고용했다는 정보는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로스케이즈 백작가의 군세는 밀턴이 예상하던 것보다 세 배는 더 많았다.

영지민들을 징집해서 병력을 늘린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병력은 돈으로 고용한 용병들이었다.

밀턴의 옆에 제롬이 말을 끌고 와서 말했다.

“정보에 의하면 고용된 용병의 숫자가 1,000명을 넘는다고 합니다.”

“본격적인 전쟁도 아닌데 용병을 1,000명 넘게 고용하다니. 내 예상보다 숨겨둔 재산이 많았나 보군.”

저만한 용병을 고용하려면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전쟁을 하지 않고 하루하루 그저 데리고 있는 것만 해도 말이다.

아마도 로스케이즈 백작이 영지전을 서두르는 이유는 자금의 소모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이다.

“우리로서도 이 전쟁을 오래 끌 생각은 없으니 다행이군.”

“그렇습니다. 주군.”

“좋아. 그럼 분위기 좀 띄워 볼까?”

밀턴은 그렇게 말하며 스스로 말을 몰아 전선의 앞으로 나아갔다.

진형을 벗어나서 양 진형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밀턴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내가 밀턴 포레스트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밀턴의 고함에 상대 진형은 술렁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밀턴은 자기 할 말을 계속했다.

“내 목을 취해서 이름을 날리고 싶은 자가 있거든 앞으로 나서라!”

밀턴은 시작부터 홀로 나서서 도발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 밀턴의 모습에 적 진형은 크게 술렁거렸다.

“포레스트 자작 본인이 스스로 나오다니?”

“호전적인 성격이라고는 들었지만 소문 이상이잖아?”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걸까?”

본격적인 전쟁에 앞서서 일기토를 진행하는 것은 드물지 않다.

승리 시에는 아군의 사기를 올리는 동시에 적의 사기를 떨어트릴 수 있다.

다만, 그건 이겼을 때의 일이고 졌을 때는 그 효과가 정반대로 일어난다.

그러니 일기토는 일종의 도박이다.

적들 쪽에서도 어지간한 자신감이 없으면 나서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일기토로 나선 게 밀턴 본인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누가 나가든 밀턴의 목을 친다면 그 순간 전쟁의 결정타가 될 수도 있었다.

무시하기에는 이겼을 때의 보상이 너무 큰 것이었다.

“누가 나가서 저 애송이의 목을 칠 수 있는 자가 없는가?”

로스케이즈 백작이 주변을 돌아보며 외쳤다.

그러자 그의 기사들 중에 한 명이 나서서 말했다.

“제가 가 보겠습니다.”

“올리버 경. 그대가 해 보겠는가?”

“예. 맡겨 주십시오.”

지원한 기사는 로스케이즈 백작가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기사였다.

190이 넘는 장신에 완력이 대단해서 거대한 투핸드 소드를 한 손으로 휘두를 수 있는 남자였다.

“좋다. 나가서 저 애송이의 목을 가져오게.”

“예. 주군!”

그렇게 명령을 받은 기사는 말을 몰아서 앞으로 나아갔다.

“밀턴 포레스트 자작! 내가 상대해 주겠소!”

우렁차게 소리치며 나서는 올리버를 보며 로스케이즈 백작령의 군세에서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한 덩치 하는걸?’

저 덩치를 태우고 있는 말이 불쌍할 정도로 기골이 장대한 올리버였다.

하지만….

‘익스퍼트에 이르지 못했군. 유저 상급 정도야.’

밀턴은 상대가 자신보다 하수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밀턴 포레스트다.”

“션 올리버입니다.”

두 사람은 말 위에서 검을 들어 올리며 예를 갖췄다.

그리고….

“하아앗!”

올리버가 먼저 무거운 투핸디 소드를 휘두르며 밀턴을 공격했다.

후우우웅!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올리버의 공격을 밀턴은 살짝 피하면서 마주 공격했다.

카아앙!

“와아아아아!”

“우오오오오!”

양자의 충돌이 시작되자 양쪽에서는 응원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아아아!”

후우우웅!

무거운 투핸디 소드가 바람을 가르면서 밀턴을 공격해 왔다.

그 공격은 벤다기보다는 뭉개 버리겠다, 라는 의도가 더 강하게 실려 있었다.

밀턴은 그 공격을 피하고 흘리면서 말했다.

“힘은 대단하군.”

“말이 많다!”

올리버는 크게 소리치며 더 강력하게 검을 휘둘렀다.

올리버는 밀턴이 자신의 공격을 받아내지 못해서 계속 뒤로 물러나기만 한다고 생각했다.

한 번만 걸리면 끝장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검을 휘두르는 근육에는 더욱더 힘이 들어갔다.

밀턴은 그런 올리버를 보며 생각했다.

‘거참… 한 300년 전의 기사들이 이랬을까?’

체격의 우위와 무거운 중량을 휘두르는 파워는 대단했다.

하지만 오러의 연공 자체를 게을리했기 때문에 밀턴에게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여유 있게 피하는 밀턴에게 올리버가 외쳤다.

“비겁하게 피하지만 말고 덤비시오!”

올리버의 도발에 밀턴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럴까?”

그리고 동시에 밀턴의 롱소드가 빠르게 휘둘러졌다.

올리버는 그런 밀턴에게 검을 마주 휘두르며 외쳤다.

“끝이다!”

‘네가 말이지?’

밀턴은 속으로 조소했고 둘의 검이 부딪혔다.

콰아앙!

“크으윽!”

충돌 후에 올리버는 휘청거리면서 말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

‘말… 말도 안 돼.’

올리버는 검을 들고 있는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느꼈다.

마치 워해머로 두꺼운 바위를 내리친 것 같은 감촉이었다.

덩치로 보나 무기의 중량으로 보나 자신이 힘으로 밀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유일한 가능성이 있다면….

“설… 설마 당신?”

“이제 알았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