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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22화 (22/257)

제22화

집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굳이 집돌이 집순이가 아니라고 해도 오랜 시간 동안 집을 떠났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다.

몸과 마음이 안심되고 치유되는 그 안온한 느낌을 말이다.

밀턴 역시 마찬가지였다.

“개선을 축하드립니다. 주군!”

“축하드립니다.”

포레스트 영지로 돌아온 밀턴은 자신이 없는 동안 영지를 보살펴온 행정관 토마스와 기사단장 샌슨의 인사를 받았다.

“음, 자세한 보고는 내일 받도록 하지. 지금은 좀 쉬고 싶어.”

“알겠습니다.”

밀턴은 둘의 인사만 받고 자세한 보고는 내일로 미뤘다.

그 전에 새롭게 합류한 인물들을 간단하게 소개했다.

“여기는 제롬 테이커, 내가 전쟁터에서 거둔 기사다.”

“제롬 테이커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포레스트 영지에 온 것을 환영하오. 테이커 경.”

샌슨은 제롬이 척 봐도 범상치 않은 기사라는 것을 알아봤는지 꽤 정중하게 대했다.

그리고 밀턴은 원정에 따라온 병사들을 무사히 해산시키고 모든 일을 내일로 미룬 다음 자기 방의 침대로 다이빙해 버렸다.

“하아아… 살겠다.”

침대에 온몸이 녹아드는 것 같은 노곤함을 느끼면서 밀턴은 스르륵 눈을 감았다.

‘역시 집이 최고지.’

할 일이 많기는 했지만 지금 당장은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었다.

하루를 푹 쉰 다음에 밀턴은 이제 본격적으로 밀린 일을 처리했다.

다음 날.

“아침인가?”

익숙한 자기 방에서 일어난 밀턴은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바로 가신들을 불렀다.

우선은 자신이 없는 동안 영지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지에 관해서 보고를 받아야 했다.

토마스는 미리 준비해둔 보고서를 제출했고 밀턴은 서재에서 차를 마시면서 보고서를 읽었다.

‘나쁘지 않군.’

영지의 상황은 밀턴이 떠나기 전보다 많이 나아졌다.

밀턴이 스트라부스 왕국의 전쟁에 참여한 덕분에 올해 세금이 면제된 덕도 있었지만, 그 외에도 영지의 소출이 꽤 늘어 있었다.

보고서를 다 읽은 밀턴은 옅은 미소를 띠고 토마스에게 말했다.

“토마스 행정관.”

“예. 영주님.”

바싹 긴장한 토마스에게 밀턴은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수고가 많았군.”

밀턴의 짧은 칭찬에 행정관인 토마스는 황송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현상 유지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소출이 작년보다 훨씬 늘었군. 무슨 비결이라도 있었나?”

밀턴의 말에 토마스는 기쁜 표정을 하고 말했다.

“사실 저보다는 제 아들 녀석의 힘이 컸습니다. 원래 농사를 짓던 녀석이라서 그런지 농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습니다.”

토마스는 그동안 영지를 잘 관리한 공을 자신의 아들인 맥스에게 돌렸다.

사실 밀턴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맥스는 농경에 특화된 레벨 6짜리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토마스의 보조로 붙일 때부터 이미 이런 결과를 유도한 것이었다.

그리고 밀턴이 맥스에게 바라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어디 보자. 역시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꽤 발전했어.’

밀턴은 맥스의 스텟을 슬쩍 확인해 봤다.

[맥스]

행정관 LV.3

무력 - 17 통솔 - 35

지력 - 72 정치 - 77

충성 - 65

특성 - 임기응변, 농경.

임기응변 LV.4 : 예정에 없던 상황이 닥쳐도 가능한 최선의 대처 능력을 보인다.

농경 LV.6 : 농사에 대한 이해도가 깊다. 농경지의 소출을 증대시킨다. 가뭄과 홍수의 피해를 최소화한다.

행정관으로서의 레벨이 한 단계 올랐고 전체적인 능력이 조금씩 늘어났다.

충성 수치가 좀 낮은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그 외의 것을 보면 꽤 탐나는 인재였다.

오면서 듣기로는 올해 다른 영지의 소출이 예전보다 떨어진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자신의 영지만 소출이 늘었다는 것만 봐도 농경 특성을 지니고 있는 맥스의 유용함을 알 수 있었다.

‘거기에 비해서….’

맥스는 슬쩍 토마스의 능력치를 확인해 봤다.

[토마스]

행정관 LV.6

무력 - 08 통솔 - 30

지력 - 45 정치 - 50

충성 - 89

특성 - 신중.

신중 LV5 :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실수를 줄인다. 익숙한 일을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 새로운 일에 적응하는 속도가 느리다.

토마스의 능력치는 오히려 이전보다 떨어져 있었다.

밀턴으로서는 처음 보는 현상이었다.

‘능력치가 떨어지기도 하는군. 하긴,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몸도 정신도 노쇠하는 법이니까 당연한 일인가? 역시 세대교체는 필수군.’

밀턴이 맥스를 행정관 보조로 붙이면서 기대한 것.

그것은 토마스가 은퇴할 시기가 멀지 않았으니 공백기 없이 바로 행정관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인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자면 우선은 토마스를 납득 가는 형태로 은퇴시켜야 했다.

결심을 굳힌 밀턴이 말했다.

“토마스 행정관, 지금 나이가 몇이지?”

“예. 이제 62세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정년이 훌쩍 지났을 무렵이다.

밀턴은 결심을 굳히고 말했다.

“토마스, 자네를 이 순간 행정관직에서 파하겠네.”

“예?!”

밀턴의 해고 통지를 받고 토마스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옆에 얌전한 표정을 하고 있던 맥스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한평생 영지에 헌신한 자신의 아버지를 영주가 해고하는 것으로 보일 테니 당연한 일이다.

‘어쭈, 가뜩이나 낮던 충성 수치가 더 내려갔네.’

밀턴은 맥스의 충성 수치가 65에서 60으로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사람의 말이라는 것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이다.

밀턴은 손수 토마스의 어깨를 손으로 두들겨 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자네는 앞으로 행정관이 아니라 영지의 원로(元老)라는 자리를 주겠네.”

“원로…. 영주님, 그게 무슨 자리입니까?”

“자네처럼 영지에 한평생 공헌한 사람의 명예를 존중하기 위해서 내가 마련한 자리일세.”

그리고 밀턴은 어리둥절한 토마스에게 말을 이었다.

“우선 자네는 앞으로 일선에서 물러나게. 그리고 자네의 후임으로는 아들인 맥스가 뒤를 이어받을 걸세.”

여기까지는 평범한 은퇴였다.

하지만 밀턴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은퇴했다고 해도 연금으로 자네가 받던 봉록은 그대로 주어질 것일세. 대신 가끔 영지에 난제가 생겼을 때 지혜를 빌려주는 정도의 일만 해주면 충분하네. 그게 원로라는 직책일세.”

한마디로 일선에서 은퇴한 다음 봉록을 그대로 받게 해 주면서 일을 그만두고 쉬라는 말이었다.

“영주님….”

그런 밀턴의 말에 토마스는 퍽 감동받은 표정을 지었다.

이 세상에서 일이라는 것은 할 수 있을 때까지 평생 해야 할 일이다.

일을 그만두고 난 후에 퇴직자에 대한 배려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별로 유능하지도 않았던 자신을 이렇게 챙겨주다니….

토마스는 밀턴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이제 좀 이해가 가냐?’

영주가 토마스의 옆에 있는 맥스를 바라봤다.

맥스 역시 이 세계의 기준으로는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밀턴의 조치에 크게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밀턴은 맥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런 맥스에게 말했다.

“이 순간부터 맥스, 그대를 우리 영지의 정식 행정관으로 임명하겠다. 받아들이겠는가?”

“감사히 받들겠습니다.”

밀턴의 말에 맥스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그리고 밀턴이 다시 확인해 보니 60까지 떨어졌던 충성심은 72로 올라 있었다.

‘짜식, 진작 그럴 것이지.’

좀처럼 오르지 않던 맥스의 충성 수치가 처음으로 70을 넘겼다.

밀턴은 거기에 흡족해했다.

새로운 행정관을 정한 다음 밀턴은 샌슨을 바라봤다.

“샌슨, 방금 전에 들었겠지만 자네 역시 은퇴하고 원로의 한 명으로서 이 영지를 뒤에서 떠받쳐 주기 바라네.”

밀턴의 말에 노기사인 샌슨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주군, 차라리 기사단장의 직위를 내려놓으라면 내려놓겠습니다. 하지만 아직 은퇴하기에는 노신은 이릅니다.”

토마스와 달리 샌슨은 은퇴를 달갑지 않게 받아들였다.

돈이나 대우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평생을 받쳐온 이 영지를 위해서 죽을 때까지 헌신하고자 하는 충성심 때문이었다.

‘고집을 부리는군.’

밀턴은 그런 샌슨을 보고 있자 서부 전선의 넬슨이 생각났다.

하지만 앞으로 기사단장에 제롬을 앉히려고 하면 솔직히 말해서 샌슨은 존재 자체가 방해였다.

제롬이 기사단장에 취임하고 샌슨이 평기사가 된다고 해도, 이 영지에서 오랜 시간 동안 자리를 지켜온 샌슨의 존재감은 무시할 수 없다.

제롬이 자기 권위를 위해서 모질어질 수 있는 성격도 아니고, 잘못하면 기사단이라는 배에 선장이 두 명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 밀턴은 샌슨을 반드시 일선에서 물려야 했다.

“같은 원로라고 해도 자네에게는 따로 맡길 일이 있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일선에서는 물러나 주기 바라네.”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이번에 나와 함께 전쟁에 참가한 용병들 중에 20여 명이 우리 영지에 합류하기를 바라고 있네.”

그렇다.

밀턴이 서부 전선에서 활동하며 뛰어난 리더십을 보이자 용병들 중에 일부가 밀턴의 밑에서 계속 생활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용병 생활이라는 것이 평생 계속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중간에 다른 영지의 병사로 취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밀턴은 이들에게 수습 기사로서 영입 제의를 했다.

용병들은 흔하지 않은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 기회에 줄을 잘 타고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밀턴의 밑으로 들어갔다.

“실력은 나무랄 곳이 없는데 용병으로 험하게 살다 보니 행동에 거친 구석이 있어. 그들을 전원 수습 기사로 받아들여서 품행을 교육시켜야 하는데….”

“그것을 저에게 맡기실 생각이십니까?”

“자네가 적임이야. 한평생 기사로 살아온 자네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나?”

밀턴은 마치 너밖에 못 하는 일이라는 식으로 샌슨을 설득했다.

그러자 샌슨도 거기에 넘어가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영주님이 맡겨주신 임무. 제 인생의 마지막 임무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렇게 샌슨과 토마스의 은퇴가 결정되었다.

가장 어려운 인사 문제 두 명을 처리했으니 남은 건 쉬웠다.

제롬을 기사단장에 임명하는 일은 수월했다.

릭과 토미는 물론이고 다른 수습 기사들도 당연하다는 듯이 인정했다.

그리고 이번 전쟁에 참가한 병사들에게는 두둑한 보상금과 함께 2년 동안의 세금 면제를 약속해 주었다.

전쟁 중에 사망한 병사의 가족들에게는 두 배에 달하는 금액을 위로금으로 남기고 10년 동안의 세금 면제를 약속했고 말이다.

너무 파격적인 보상을 주는 게 아닌가 해서 행정관인 맥스가 말렸지만 밀턴은 강행했다.

‘보상을 줄 때는 아낌없이 팍팍 줘야지. 안 그러면 안 하니만 못 해.’라는 것이 밀턴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 때문에 밀턴은 뜻하지 않은 이득을 얻게 되었다.

보통 영주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보상을 받은 포레스트 영지민들이 크게 감동한 것이다.

“젊은 영주님이 참 대단한 것 같지?”

“그러게 말이야. 보통 영지민이 사망했다고 보상금을 내려주는 영주가 어디 있어?”

“전대 영주님도 나쁜 분은 아니셨지만… 역시 젊은 사람이라서 그런지 더 대단한 것 같아.”

영지민들의 사이에서 밀턴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았다.

동시에 밀턴에게는….

[영지민들의 민심을 최대치로 끌어올렸습니다. 모든 특성의 레벨이 1만큼 오릅니다.]

[새로운 특성 ‘인덕’이 생성되었습니다.]

라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호오… 이건 예상하지 못한 떡인데?”

밀턴은 스텟창을 열어서 직접 확인을 해봤다.

카리스마 LV.3 :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해서 신하들의 충성심을 올릴 수 있다.

각성 LV.2 : 신하를 각성시켜서 정신적으로 능력을 끌어올리며, 충성심을 상승시킨다.

인덕 LV.1 : 대중들에게 포상을 내리거나 연설을 함으로써 민심을 끌어올릴 수 있다.

카리스마와 각성의 레벨이 오른 것도 반가운 일이었지만 인덕이라는 새롭게 생긴 특성도 꽤 괜찮았다.

가뜩이나 요즘 세상은 영지에 공화주의자들이 은근히 파고들어서 영지민들을 선동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러니 영지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민심을 다스릴 수 있는 인덕 스킬은 유용한 것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능력치도 오르고 새롭게 영입한 인재들도 순조롭게 자리를 잡아가는 밀턴이었지만 아직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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