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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20화 (20/257)

제20화

‘생각보다 겁먹지 않는군. 익스퍼트도 아닌 주제에 말이야.’

밀턴이 전혀 위축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프레드릭은 못마땅했다.

겉으로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

왜? 어째서 상대는 익스퍼트와 대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침착한 것일까?

익스퍼트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자들은 익스퍼트를 상대하는 것에 강한 부담감을 가진다.

그런 부담감이 사실 실전에서는 큰 족쇄가 되기 때문에 원래 벌어져 있던 실력의 차이를 더 크게 만든다.

프레드릭도 그 점을 노리고 무리해서 오러를 과시하듯이 뽑아 올리고 있었다.

자신이 익스퍼트라는 것을 알리는 일종의 위협인 것이다.

사실은 익스퍼트라고 해도 최하급인 프레드릭은 이렇게 오러를 계속 뿜어내고 있는 게 꽤 부담되는 행위였다.

‘괜히 힘만 낭비하고 있는 건가?’

지금 이 자리에서 프레드릭의 속내를 알고 있는 것은 본인과 익스퍼트 최상급의 경지에 있는 제롬뿐이었다.

그리고 제롬은 그 광경을 보면서 속으로 확신했다.

‘주군이 이길 수 있다. 절대로 못 이길 상대가 아니야.’

제롬이 보기에 대치 상태에서 무의미하게 오러를 낭비하고 있는 프레드릭의 행동은 악수였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될수록 프레드릭의 승산은 적어진다.

‘저럴 때는 무조건 움직여서 압박을 가해야지.’

제롬이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흡!”

카앙!

더 이상의 대치를 참지 못한 프레드릭이 밀턴에게 먼저 달려들었다.

그는 검에 오러를 입힌 상태로 휘두르며 밀턴을 압박해 갔다.

카앙! 캉! 후우웅!

단기간에 승부를 내려는 듯 프레드릭의 검은 거칠게 밀턴을 압박했다.

‘진작 저랬어야지.’

그 광경을 보고 제롬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프레드릭의 결단이 늦기는 했지만 방법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옳은 방법이라고 해서 그게 반드시 승리로 연결된다는 얘기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카아앙!

“큭….”

거칠게 밀어붙이는 프레드릭의 얼굴에서 곤란함이 드러났다.

남들이 보기에는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검을 부딪치고 있는 프레드릭은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의 공격이 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음을 말이다.

‘집중하자. 집중. 실전이긴 해도 제롬의 검보다는 느려.’

밀턴은 공격을 절대 정면으로 받지 않고 뒤로 물러서면서 비스듬하게 흘려내고 있었다.

마치 물의 흐름에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듯이 상대방의 힘을 헛된 방향으로 흘려버렸다.

익스퍼트 최상급인 제롬과 질리도록 대련을 하면서 익힌 요령이었다.

같은 익스퍼트라도 최하급인 프레드릭의 공격은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

밀턴이 안정적으로 방어를 이어가자 조급해진 것은 오히려 프레드릭이었다.

이윽고는….

“비겁한 놈! 정면으로 당당하게 붙어라!”

격하게 소리치면서 밀턴을 도발했다.

하지만 밀턴이 이런 도발에 냉큼 낚일 인간인가?

“싫은데? 누구 좋으라고?”

“이노오옴!!”

밀턴의 깐죽거리는 대응에 프레드릭은 초조함이 더해졌다.

그 초조함은 검에 더 큰 힘을 실었고, 그만큼 위력은 강해졌지만 그만큼 난잡해지기도 했다.

익스퍼트라고 해도 최하급인 프레드릭은 장시간 오러를 사용할 수 없다.

그리고 오러를 다 소모하고 난 후에는 오히려 평소보다도 더 무력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

‘내 실수다. 차라리 오러를 아끼며 신중하게 싸웠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 프레드릭은 실수에 실수를 거듭한 것이다.

애당초 프레드릭은 밀턴을 너무 얕잡아 보고 있었다.

익스퍼트에 오르고 나서 익스퍼트에 오르지 못한 기사들은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이상한 자신감이 생긴 게 원인이었다.

방심은 절대 금물.

검을 잡은 사람이라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이지만 그럼에도 이런 일은 생기는 것이다.

전쟁터에서는 익스퍼트 하급이나 심지어 중급의 경지에 오른 기사들이 병사의 창에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일대일로 그런 상황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이라는 상황은 여러 가지 변수가 많다.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경험이 적은 프레드릭은 그 점을 몰랐다.

이미 흐름은 완전히 밀턴에게 기울고 있었다.

카앙! 카카카카….

공격을 거듭하면 할수록 프레드릭의 오러는 점점 미약해졌다.

“흡!”

투우웅!

밀턴은 이제 공격을 비스듬하게 받아내는 것을 넘어서 교착 상태에서의 상대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부딪히기 전에 검을 마주하며 상대가 힘이 얼마나 빠졌는지를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차지에 버티지 못하고 물러나는 프레드릭의 모습을 보며 확신했다.

‘힘이 많이 빠졌군. 슬슬 승부를 걸어볼까?’

이제 자신이 반격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상대의 검에 일렁이는 오러는 확실하게 옅어졌고, 거칠어진 호흡은 체력도 많이 떨어졌다는 것을 알게 했다.

‘좋아. 간다!’

결심을 굳힌 밀턴이 막 앞으로 치고 나가려는 그 순간….

“위험!!”

멀리 떨어져 있던 제롬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 순간 밀턴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생각보다는 몸이 먼저 반응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후우웅!

“크윽!”

그 움직임이 밀턴을 살렸다.

그야말로 회심의 일격.

밀턴의 품 아래쪽에서 올라온 날카로운 찌르기가 밀턴의 코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이걸 피하다니?’

프레드릭은 안타까웠다.

밀턴이 공격에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그 타이밍에 자신의 등 뒤에 있는 짧은 단검을 반대 손으로 쥐고 사각에서 찌르기를 노렸다.

사실상 자신의 마지막 승부수라고 할 수 있는 한 수였다.

원래 이건 기사의 검술이 아니라 용병의 변칙기다.

기사들의 정규 교육에는 절대 가르치지 않는 기술이었지만 실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화국의 군인들에게는 유용한 수단으로 가르치는 기술인 것이다.

이런 기술의 좋은 점은 의외성에 있었다.

검술의 빈틈을 노리는 게 아니라 사고의 빈틈을 노리는 기술인 것이다.

기사들은 결투 중에 다른 한 손에 단검을 들고 사각을 찌르는 일 같은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다.

때문에 실전이 부족한 기사들이 전쟁에 참가하면 이런 변칙기에 명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밀턴도 그런 많은 경우 중에 하나가 될 뻔했다.

하지만 제롬의 적절한 충고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위험했… 크윽….’

“죽어라!”

가까스로 몸을 뺀 밀턴이었지만 아직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급하게 적의 공격을 피하느라 밸런스가 무너진 밀턴을 노리고 프레드릭이 결정타를 날린 것이었다.

그 검에는 선명한 오러가 서려 있었다.

‘이걸로 끝낸다.’

이게 진짜 마지막 찬스라는 것을 알고 있는 프레드릭은 혼신의 힘을 쥐어짰다.

‘회피? 아니, 받아야 한다.’

밀턴의 지금 자세로는 적의 공격을 피하거나 비껴 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정면으로 검을 휘둘러서 받아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상대방의 검력이 너무나 강했다.

‘위험하다!’

절체절명의 순간.

제롬은 튀어나갈 준비를 했다.

일대일 결투에서 끼어드는 것은 주군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짓이었다.

하지만 주군의 명예보다는 목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롬은 튀어나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으아아앗!”

제롬이 뛰어들기 직전 밀턴이 거친 기합과 함께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그런 밀턴의 검에는 선명한 오러가 서려 있었다.

콰아앙!!

“크으윽!”

“우웃….”

오러의 충돌이 일어나고 밀턴과 프레드릭은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하지만 비교적 멀쩡한 밀턴과 달리 프레드릭은….

“커억….”

입에서 울컥하며 피를 쏟아냈다.

혼신의 힘을 다 쏟아부은 일격이 충돌하면서 내상을 입은 것이다.

그는 입에서 피를 흘리며 밀턴의 검을 바라봤다.

“재수… 더럽게 없군.”

상대의 검에 맺혀 있는 오러를 보며 프레드릭은 허탈함이 들었다.

분명 자신과 대결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상대는 익스퍼트가 아니었다.

그런데 중요한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익스퍼트로 각성해 버린 것이다.

마치 운명의 신이 저쪽의 편을 들어주는 것처럼 말이다.

‘불공평하군. 억울할 정도로 불공평해.’

프레드릭은 가능하다면 신이라는 존재의 멱살이라도 잡고 따지고 싶었다.

‘내가 익스퍼트에?’

얼떨떨한 것은 밀턴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능력이 익스퍼트의 직전에 도달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좀처럼 마지막 한 단계의 벽을 넘지 못해서 애를 먹고 있었다.

훈련 중에 제롬이 한계 직전까지 수련을 시켜도 넘을 기미가 보이지 않던 벽이었는데….

‘설마 실전에서 넘게 될 줄이야.’

밀턴이 한쪽에 있는 제롬을 바라보자 제롬은 예상했다는 듯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과연, 이래서 제롬이 나를 이 결투장에 밀어 넣은 거군.’

밀턴은 이제야 제롬의 뜻을 알 것 같았다.

사실 밀턴의 실력은 이미 익스퍼트에 도달해 있어야 했다.

다만, 날개가 다 자란 새가 둥지를 떠나길 망설이듯이 밀턴의 무의식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딛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전 상황에서 위급한 상황이 닥치자 밀턴의 잠재력이 익스퍼트의 벽을 넘어선 것이다.

밀턴이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해 보자 무력 수치가 70에서 72로 늘어나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가려고 했지만 지금은 결투가 우선이었다.

“계속할 텐가?”

밀턴이 검을 겨누며 말하자 프레드릭은 이를 악물고 억지로 검을 들었다.

“고결한 공화국의 사전에 포기란 없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밀턴은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프레드릭을 공격했다.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밀턴은 주저 없이 자신의 검에 오러를 담아서 휘둘렀다.

카앙!

“크으윽….”

힘을 다 소진하고 내상까지 입은 프레드릭은 그 공격을 버틸 재간이 없었다.

밀턴의 한 수에 프레드릭은 검을 놓치고 말았다.

“끝이다.”

그리고 밀턴의 이어지는 공격은 무정할 정도로 말끔한 궤적을 그리며 프레드릭의 가슴을 갈랐다.

촤아악!

“크으…윽….”

그 일격에 프레드릭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장래가 유망한 공화국의 인재였지만 그 재능은 미처 꽃을 다 피워 보지도 못하고 차가운 회색 산맥에 묻혀 버렸다.

안타깝지만 동시대에 더 나은 인재에게 부딪혀서 완성을 보지 못한 인재는 어디에나 있는 법이었다.

승자는 살아남고, 패자는 죽어서 역사의 한쪽에 이름을 남긴다.

그게 전쟁이라는 것이었다.

프레드릭을 죽이고 살아남은 밀턴은 큰 소리로 외쳤다.

“서부 전선의 밀턴 포레스트가 공화국의 프레드릭을 쓰러트렸다!”

전장의 구석까지 모두 들리도록 큰 소리로 외치는 이 외침이야말로 사실상 이 전투의 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우오오오오오오!”

“포레스트 자작님이 이겼다!”

일기토의 승리를 확신한 순간 아군의 사기는 하늘에 닿을 듯이 올라갔다.

반대로 지휘관을 잃은 공화국군은 사기가 떨어졌고, 지휘 체계도 완전히 무너졌다.

까마귀 요새의 병력은 이제까지 당한 것을 갚기라고 하겠다는 듯이 용맹하게 싸우며 그들을 몰아붙였다.

결국 공화국군은 뿔뿔이 흩어져서 사방으로 도망갔다.

“와아아아!”

“이겼다!”

무사히 요새를 지킨 서부 전선의 병사들은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이들은 이 승리가 누구 덕분인지 잘 알고 있었다.

“밀턴 포레스트 자작님 만세!”

“위대한 서부의 영웅 만세!”

“밀턴! 밀턴! 밀턴!”

그들은 밀턴의 이름을 연호했다.

총 규모가 다 합쳐서 1,000명이 조금 넘는 작은 전투였지만 전선에 끼치는 영향을 결코 적지 않았다.

아마 서부 전선의 참모부에서는 다시 밀턴의 공적을 축소시킬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요새의 생존자들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밀턴 포레스트라는 영웅이 있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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