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그 선두에는 밀턴과 제롬이 서 있었고 그를 따르는 병력이 적을 거칠게 몰아 붙였다
“제롬, 너무 멀리 가지 마라! 아군의 화살이 지원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싸워라.”
“옛. 자작님.”
밀턴은 선두에서 적과 싸우면서도 주변 상황을 정확하게 살피며 아군을 지휘하고 있었다.
“죽어라!”
“저놈이 지휘관이다!”
당연히 선두에서 싸우는 밀턴을 노리고 공화국의 산악병 몇 명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잔챙이들이 시끄럽다!”
밀턴은 호쾌하게 외치며 앞을 마주하고 검을 휘둘렀다.
가장 앞에 있는 놈의 도끼를 피하며 그대로 휘두른 검에 놈의 허리가 길게 갈라졌다.
“커억….”
거기에 그치지 않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밀턴은 적에게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밀턴의 몸놀림은 항상 적의 반격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그런 밀턴의 검이 휘둘러질 때는 반드시 한 명의 적이 바닥에 누웠다.
너무나 손쉽게 적들을 쓰러트리면서 밀턴은 속으로 생각했다.
‘나 진짜 재능 있었구나.’
예전에 아카데미의 교관들이 유독 자신에게 열심히 좀 해보라고 잔소리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전쟁에 참여하기 전에 밀턴의 무력은 45였다.
하지만 전쟁에 참여하며 제롬과 꾸준하게 단련에 단련을 거듭한 결과 무력이 70으로 올랐다.
이렇게 빠르게 무력이 오른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하고 있었다.
하나는 밀턴이 원래 검술에 상당한 재능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때까지 밀턴이 엄청나게 게으름을 피웠다는 것이다.
실제 재능만 놓고 보면 밀턴은 제롬의 아래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워낙 나태한 생활을 하다 보니 그 좋은 재능이 다 썩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쟁에 참여하며 오른 것은 무력뿐만이 아니었다.
통솔력과 지력도 꽤 올랐다.
지금 밀턴의 스텟은….
[밀턴 포레스트 자작.]
군주 LV.1
무력 - 70 통솔 - 79
지력 - 69 정치 - 50
충성 - 100
특성 - 카리스마.
카리스마 LV.2 :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해서 신하들의 충성심을 올릴 수 있다.
영지 - 포레스트 영지.
인구 - 7,350명.
자금 - 520골드.
주요 생산품 - 밀, 보리, 귀리.
군사력 - 기사 3인, 기병 5인, 보병 80인. 궁병 20인. 용병 20인.
이렇게 변해 있었다.
영지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밀턴 자신의 스텟이 크게 올랐다.
무력이 가장 크게 올랐지만 그 이외의 수치도 상당히 올랐다.
그리고 자신의 발전이 두 눈에 보이자 밀턴의 행동에도 자신감이 붙었다.
“내 목을 원하면 더 강한 놈이 나서라!”
“자작님. 함께하겠습니다.”
밀턴이 본격적으로 적진을 파고들며 부수기 시작하자 제롬이 그 옆에서 보조를 맞추며 밀턴의 사각을 메웠다.
“크아아악!”
“제길, 여기 좀 어떻게… 크억!”
밀턴과 제롬이 선두에서 날뛰자 적의 진형은 본격적으로 무너졌다.
“주군을 따르라!”
“우오오오오오!”
릭과 토미는 병력을 이끌고 그 둘을 든든하게 받쳤다.
“전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적이 정돈하지 못하게 좌익과 우익에 화살을 집중시켜라!”
그리고 요새의 위에서 넬슨의 지시를 받고 쏟아지는 화살까지 더해지자 결국 적들은 안 될 것 같다고 판단했다.
“후퇴! 모두 후퇴하라!”
적이 후퇴하기 시작하자 밀턴은 이때다 싶어서 아군의 기세를 올렸다.
“적들이 후퇴한다! 모두들 따라와라. 공화주의자들의 엉덩이를 걷어차 주자.”
“옛. 주군!”
“크하하하! 거기 서라 이 새끼들아!”
밀턴의 부대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까마귀 요새를 지켜냈다.
전투 후에 요새로 돌아온 밀턴을 캐르버가 반겨주었다.
“대단합니다. 이번에도 압승이군요.”
“별것 아닙니다. 적이 생각보다 약했을 뿐이죠.”
“하하하… 포레스트 경이 너무 강한 것 아닙니까?”
캐르버의 감탄은 그냥 하는 아부가 아니었다.
적의 공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밀턴은 누구보다 열심히 전면에 나서서 싸웠다.
전공을 많이 세워야 포상금을 받을 수 있으니 밀턴으로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동기가 어찌 되었든 간에 아군이 보기에 밀턴은 든든한 전력이었다.
매번 전투의 선두에 서서 용감하게 싸우며 계속해서 승리하니 당연한 일이다.
특히, 넬슨은 밀턴의 활약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게 아쉽군.’
이건 넬슨이 타국의 기사에게 내릴 수 있는 평가로는 최상의 것이었다.
“천인장님. 다른 요새 쪽의 소식은 어떻습니까? 혹시 위태로운 곳은 있습니까?”
일단 예뻐 보이기 시작하면 사소한 행동 하나까지 모두 예뻐 보이는 법이다.
밀턴은 수시로 다른 요새의 상황을 물어보며 전체적인 전황을 파악하려고 했는데 넬슨에게는 이것도 기특하게 보였다.
“훗, 적의 공격을 사전에 알고 있었고 준비할 시간도 충분했지. 이런 상황에서 요새를 지키지 못할 정도의 얼간이는 우리 서부 전선에 없네.”
넬슨의 말에 밀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확실히, 오랫동안 이 전선을 지켜온 지휘관들이니 만큼 무능한 인간은 없겠지. 거기다 산악전은 공격보다 수성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기도 하고 말이야.’
산악 지역에 지어 놓은 요새들은 하나같이 지형을 최대한 활용해 놓은 천혜의 요새들이었다.
잘만 활용하면 열 배의 적이라고 해도 능히 막아낼 수 있는 그런 요새들 말이다.
서부 전선이 회색 산맥에서 정체되어 있는 것은 그런 특성의 탓이 강했다.
‘작정하고 수비에 치중을 하고 있는 한 큰 위기는 없을 거야.’
밀턴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으로 다른 불안감이 조금 생기기는 했다.
이대로 적의 공격을 막아낸 후에 겨울이 지나고 눈이 녹을 때를 노려서 춘계 공세를 시작하면 군량이 부족한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아군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 순조롭지 않나?’
그렇다.
일이 너무 잘 풀리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불안감이 들었다.
전쟁에서 방심은 항상 최악의 결과를 불러온다.
그러니 낙관적인 결과만 생각하는 호탕함보다는 겁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신중함이 지휘관에게는 더 필요하다.
‘라고 아카데미에서 배웠었지.’
밀턴은 자신의 숙소로 돌아간 후에도 자신이 놓친 게 있지는 않는지 생각했다.
“포레스트 자작님.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응? 제롬인가?”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밀턴의 숙소에는 제롬이 찾아왔다.
“예. 뭔가 골똘하게 생각하시는 듯해서 그냥 들어왔습니다.”
“아, 그냥 전황에 관해서 생각을 좀 하고 있었네.”
“뭔가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순조롭게 적을 격퇴하고 있잖습니까?”
“그렇지. 그렇긴 한데… 뭔가 찝찝하단 말이지.”
밀턴의 말에 제롬은 진지한 표정을 하고 밀턴의 앞에 마주 앉았다.
“뭔가 마음에 걸리십니까?”
“음, 전황이 너무….”
“너무 뭡니까?”
“너무 순조로워.”
밀턴이 어렵게 꺼낸 말을 들은 제롬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어째서…?”
문제라는 겁니까? 라는 뒤에 말은 애써 삼키는 제롬이었다.
그런 제롬에게 밀턴이 말했다.
“적들은 바보가 아니니까.”
“예?”
“적들은 바보가 아니야. 자신들도 나름 계산을 하고 승산이 있다고 작전을 수립했으니 공격을 했겠지.”
“그거야 그렇겠죠.”
“그래. 그런데 지금 전황은 아군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단 말이지.”
“…….”
“이게 과연 순조로운 걸까? 힐데스 공화국에는 전부 머저리만 살아서 우리한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게 정상적인 상황일까?”
제롬도 밀턴의 말을 듣고 보니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실제 이기고 있는 결과가 눈앞에 있는데 괜한 걱정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다소 지나친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지나친 게 모자란 것보다는 나아.”
“철저하시군요.”
쓰게 웃는 제롬을 뒤로하고 밀턴은 계속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으음… 좀 더 전체적인 상황을 알 수 있는 정보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적의 동태에 관해서 정찰 부대가 가져온 추가 정보는 없나?”
밀턴의 말에 제롬은 고개를 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 같은 시기에 정찰을 한다고 해도 요새 주변을 슬쩍 돌아보는 게 전부라… 적의 본진에 대한 정보를 얻기는 불가능합니다.”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음!?”
말을 하던 밀턴의 머릿속에 퍼뜩하며 뭔가 스치고 지나갔다.
‘잠깐 잠깐… 이거 설마? 아니 그렇다면….’
의심이 하나하나 조각이 되어서 퍼즐처럼 맞춰지며 하나의 형태를 이뤄 갔다.
생각이 다 정리되자 밀턴의 표정이 더 없이 심각해졌다.
“큰일이다!”
밀턴은 즉시 지도를 펼치고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회색 산맥의 전체 지형도와 요새의 배치가 기록된 지도를 지켜보던 밀턴은 한참 동안 뭔가를 생각했다.
그리고는….
“지금 당장 알려야 해.”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중에 설명해주지. 급한 일이라서 말이야.”
그리고 밀턴은 황급하게 막사 밖으로 달려갔다.
“천인장님. 급한 일입니다. 즉시 군사 회의를 열어 주십시오.”
밀턴은 천인장에게 만남을 청하고 중요한 얘기라며 긴급회의를 요청했다.
넬슨은 그런 밀턴의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허튼소리를 할 젊은이는 아니지.’
라고 생각하며 전령에게 백인장들을 집합하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까마귀 요새의 백인장들이 모두 모이자 밀턴은 직설적으로 본론부터 꺼냈다.
“지금 당장 정예군을 추슬러서 요새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 말이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밀턴에게 적대적인 감정이 많은 루이스가 들으란 듯이 중얼거렸다.
“미친놈이 헛소리하는군.”
당연히 그 말은 밀턴의 귀에도 들렸지만 밀턴은 어디 개가 짖는 것처럼 무시해 버렸다.
그리고 밀턴은 넬슨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적들의 목적은 양동입니다. 우리 요새를 향해서 하는 공격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발을 묶기 위한 속임수고 진짜 노림수는 따로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조용!”
루이스가 버럭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중간에 넬슨이 끼어들어서 막았다.
그리고 넬슨은 밀턴에게 계속 말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같은 백인장이라고 해도 넬슨에게 있어서 밀턴과 루이스의 비중은 절대 같은 것이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밀턴은 짧게 감사의 표시를 한 후에 자신의 의견을 이어 갔다.
“산악전에서 수성은 공성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지형의 이점을 살려서 만들어 놓은 요새에 험난한 지형으로 적은 소수의 병력밖에 운용하지 못하고 공성 병기도 동원할 수 없죠.”
“그건 그렇지. 덕분에 적들의 공격을 순조롭게 막아낼 수 있었어.”
“예. 하지만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말인가?”
“힐데스 공화국은 산악전의 귀재라고 불리는 놈들입니다.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밀턴의 말에 넬슨은 침묵했고 옆에 있던 루이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멍청한 공화국 놈들을 너무 높게 평가하는군.”
루이스의 말에 밀턴은 짜증난다는 듯이 말했다.
“적을 과소평가하는 것만큼 전쟁터에서 멍청한 짓은 없지.”
밀턴의 말은 바꿔 말하면 적을 얕잡아 보는 루이스가 멍청하다고 꼬아 말하는 것이었다.
“뭐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루이스였지만 그 전에 넬슨이 먼저였다.
“밀턴, 그렇다면 자네는 적이 여기까지 내다보고 그 후를 노리고 있다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여기를 보시죠.”
밀턴은 지도를 펼쳤다.
루이스 같은 건 신경 쓸 가치도 없다는 듯이 무시하고 지도를 펼친 다음 밀턴은 바로 말을 이어갔다.
“적이 대규모 공격을 해 오면, 우리가 선택할 최선의 선택지는 요새를 꽁꽁 틀어막고 버티는 것입니다. 실제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죠.”
“우리가 적의 예상 범위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건가?”
“예. 사실 우리는 상황에 맞춰서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적들이 예상할 수 있었다는 거겠죠.”
“흐음….”
넬슨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밀턴이 한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밀턴은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