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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5화 (5/257)

제5화

다음 날.

밀턴이 용병 길드에 찾아가 보니 무려 150명이 넘는 용병들이 모여 있었다.

“B급에서 D급의 용병들로 모두 전쟁 참가에 동의했습니다.”

접수원은 눈 밑에 다크서클이 끼어 있었지만 의기양양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노오오오오력했구만.’

밀턴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고했군.”

그리고 밀턴은 별도의 수고비로 금화 하나를 접수원에게 던져 주었다.

일을 타이트하게 처리해 줬으면 소정의 추가 보상을 해주는 것이 밀턴이 생각하는 도리였다.

“감사합니다.”

금화를 하나 받자 접수원의 표정은 꽤 풀렸다.

“그럼 용병들을 한 명씩 부르겠습니다.”

본격적으로 면접이 시작되었다.

“고향은 어디지?”

“발랑스 왕국입니다.”

“원하는 보수는 어느 정도지?”

“기본급으로 5골드는 받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전쟁터에서 올리는 성과에 따라서 추가금을 지급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면접은 차분하게 진행되었다.

밀턴은 간단하게 상대의 출신과 원하는 보수를 물어보며 면접을 시작했다.

하지만 거기서 오가는 질문은 거의 의미가 없었다.

실제 밀턴의 눈은 용병들의 뒤편에 떠오르는 정보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감이군. 너는 돌아가라.”

“내 앞에서 봤던 C급은 고용하고 저는 돌아가라는 말입니까?”

“그래.”

“어째서입니까?”

“내 마음이다. 꺼져.”

밀턴은 자신의 합격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서 급수만 믿고 허세를 부리는 용병들을 가차 없이 잘랐다.

그런 용병들은 인상을 와락 구겼지만 그래도 귀족인 밀턴에게 대놓고 뭐라고 하지는 못했다.

‘무력 40 이하는 필요 없어.’

용병 길드에서 책정한 급수만 보고 용병의 능력을 다 신뢰할 수는 없다.

용병의 급수는 의뢰를 얼마나 잘 처리했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굳이 실력이 없어도 신중한 일 처리와 때때로 운이 작용해서 급수가 올라가는 용병들도 있다.

그래서 용병들 간의 실력 편차는 같은 급이라고 해도 무척 큰 편이다.

하지만, 밀턴의 경우는 얘기가 좀 다르다.

“얘기는 잘 들었다. 그 조건으로 고용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자작님.”

밀턴은 급수와 상관없이 실력이 있는 용병은 선선히 고용했다.

그리고 용병 길드의 직원은 그런 밀턴의 행동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지 이 인간? 혹시 우리 내부에서 정보라도 유출됐나?’

밀턴은 면접을 보면서 귀신같이 알짜배기들만 골라서 뽑았다.

B급이라도 실력이 다소 처지는 용병은 탈락했지만 C급 중에서도 준기사급이라고 평가받는 용병들은 전원 뽑아갔다.

용병 길드의 직원이 보기에는 마치 예술품을 감별하는 노련한 감정사 같았다.

자신이 알선한 용병들 중에서 알짜배기만 쏙쏙 빼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밑지고 장사한다는 느낌에 입안이 씁쓸했다.

“다음이 마지막 한 명입니다.”

“그런가?”

면접이 거의 다 끝나갈 무렵 밀턴은 조금 피곤해졌다.

‘면접을 받은 적은 있지만 보는 건 처음이네. 이것도 꽤 피곤하네.’

어쨌든 필요한 인원수는 이미 채웠다.

이제 마지막 한 명이라고 해도 그냥 적당히 보고 넘기면 될 것 같았다.

“제롬입니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남자는 키가 190정도는 될 것 같은 장신에 용병치고는 곱상한 외모의 남자였다.

“…….”

그리고 그 남자를 봤을 때 밀턴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뭐… 뭐야? 이 인간?’

밀턴이 경악한 것은 제롬의 정보창 때문이었다.

[제롬 테이커]

용병 LV.5

무력 - 85 통솔 - 75

지력 - 40 정치 - 19

충성 - 0

특성 - 용맹, 돌파, 냉철

용맹 LV.5 : 전투가 벌어지면 전투력이 올라가며 자기 지휘하에 있는 병력의 사기를 상승시킨다.

돌파 LV.7 : 기마대를 이끌고 적의 진형을 정면으로 관통한다. 레벨이 높을수록 더 강한 돌파력을 발휘한다.

냉철 LV.5 : 전투 중에 전황 전체를 보는 안목이 높아진다. 현장 지휘관으로서의 유연함을 발휘해서 아군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왜 이런 인간이 용병으로 있는 거야?’

정보창에 보이는 제롬이라는 인물의 능력치는 괴물이었다.

무력 85라는 것도 처음 봤다.

심지어 특성을 세 가지나 가지고 있었다.

‘돌파 LV.7이라니? 이게 어느 정도의 능력인 거지?’

이제까지 여러 사람의 특성을 봤지만 LV.7짜리 특성은 처음 봤다.

이런 인간이 왜 용병으로 있는 걸까?

‘제롬 테이커? 성이 있다는 말은 원래 신분은 용병이 아니라는 거군.’

밀턴은 직감적으로 두 가지를 깨달았다.

하나, 이놈은 과거에 사연이 있는 놈이다.

둘, 그 사연을 지금 건드려봤자 득 될 건 하나도 없다.

그러니 밀턴은 최대한 모르는 척하며 대화를 담담하게 대화를 시작했다.

“제롬이라, 출신은 어디인가?”

평범하게 면접을 진행하려고 한 밀턴이었지만 다른 용병들에게 하는 것에 비해서 말이 조금 정중해졌다.

“스트라부스 왕국입니다.”

“그렇군. 우리가 가는 전쟁터 역시 스트라부스 왕국이라는 것은 알고 있나?”

“예. 그렇습니다.”

“그렇군. 그쪽 사정에 익숙한 사람이 있다면 나야 좋지.”

밀턴은 그렇게 자신이 상대를 고용할 의도가 있음을 은연중에 어필했다.

‘이건 무조건 잡아야 한다.’

사실 밀턴의 속내는 안달이 나 있었다.

밀턴의 입장에서 제롬은 길에 버려져 있는 보석이었다.

어떤 사정으로 버려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먼저 줍는 게 임자로 보였다.

밀턴은 조금 고심하는 척하다가 결심을 굳힌 듯 말했다.

“좋아. 자네를 고용하지. 원하는 보수는 어느 정도인가?”

“그건 자작님이 알아서 해 주시면 됩니다. 다만 다른 부탁이 있습니다.”

‘역시, 이 인간 용병이 아니군.’

보수에 연연하지 않는 용병?

그런건 귀족 영애들이 읽는 로맨스 소설에나 나올 법한 낭만적인 애기다.

실제 용병들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돈을 버는 자들이다.

보수에 연연하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하지만 밀턴은 거기에 놀라지 않고 그냥 담담하게 말했다.

“부탁이 뭔가?”

“스트라부스 왕국의 전쟁에 참전하시면 저에게 최대한 많은 출전 기회를 주십시오.”

“그 이유는?”

“…….”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제롬을 보고 밀턴이 말했다

“이유도 모르면서 그런 부탁을 받을 수는 없네.”

밀턴의 말에 제롬은 작게 한숨을 쉬고 본심을 말했다.

“공화국의 개자식들을 한 놈이라도 더 죽이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제롬의 눈빛에는 불길이 이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공화주의자들에게 원한이라도 있나?”

“그건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용병이 귀족에게 하는 말치고는 많이 건방졌지만 밀턴은 개의치 않았다.

제롬 정도의 능력이라면 이 정도는 건방진 축에도 안 들었다.

“좋네. 그럼 자네를 고용하도록 하지. 보수는 월 10골드. 그리고 전공을 올리는 것에 따라서 별도의 상여금을 지급하도록 하지.”

밀턴은 이제까지의 용병들 중에서 가장 후한 조건으로 제롬을 고용했다.

“감사합니다. 자작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밀턴이 제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는 순간 제롬의 충성심이 0에서 60으로 오르며 상태창이 떴다.

[제롬의 충성심이 60 상승합니다.]

***

용병 도시 캐슬롯에서 밀턴은 백인장으로 지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원을 모두 채웠다.

뜻하지 않게 무려 무력 80짜리의 특급 대박 용병도 한 명 손에 넣고 망설일 것 없이 전쟁터로 향했다.

이동 중 밀턴이 가장 신경 쓴 것은 그동안 게을리 했던 수련이었다.

벼락치기로 수련을 해봐야 얼마나 늘지 알 수 없었지만 아카데미에서 재능이 있다고 평가받은 만큼 스스로 노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작님. 발놀림이 따로 놀고 있습니다.”

“웃!?”

절묘한 타이밍에 날아온 목검에 밀턴의 몸놀림이 어지러워졌다.

그리고 밀턴의 대련 상대인 제롬은 딱 아슬아슬할 정도로 검을 놀리며 밀턴을 지도했다.

“항상 다음 동작을 염두하고 움직이십시오. 안 그러면 점점 불리해질 뿐입니다.”

“알고는 있지만… 큭….”

결국 제롬의 목검이 밀턴의 명치 바로 앞에 멈췄다.

“수고하셨습니다.”

“정신없이 당하기만 했는데 수고라고 할 것이 있나?”

“그래도 처음보다 많이 나아지셨습니다. 검술에 대한 감이 좋으시군요.”

밀턴이 수련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었다.

수련을 빙자해서 밀턴은 제롬과 은연중에 친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릭과 토미가 엄마가 사탕을 꺼내주기를 기다리는 어린 소년 같은 심정으로 목검을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제롬 경. 다음은 저를 부탁드립니다.”

“아니, 오늘은 제가 먼저입니다.”

제롬은 두 기사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며 쓰게 웃으며 말했다.

“토리스 경, 크로이 경. 저는 기사가 아닙니다. 경이라는 말은 빼 주십시오.”

“아니… 그래도 어떻게….”

“맞습니다. 제가 보기에 제롬 경은 충분히 기사의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으십니다.”

빠돌이 같은 릭과 토미의 태도를 보며 밀턴은 쓰게 웃으며 생각했다.

‘짜식들. 저럴 거면서 처음엔 왜 그랬어?’

제롬을 향한 두 기사의 태도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 밀턴이 수련을 시작했을 때 릭과 토미는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연습 상대가 되어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밀턴은 제롬을 지명했고 릭과 토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기사인 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제치고 용병인 제롬이 주군의 검술을 지도한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특히 성격이 직설적인 릭은 밀턴에게 직접 이건 아니라고 말했고 제롬을 향해서 주제를 알라는 식의 모욕도 했다.

원래 같으면 여기서 밀턴이 자연스럽게 기사인 릭과 토미의 체면을 살려주면 사태는 끝나는 일이다.

하지만 제롬의 무력 수치가 둘을 압도하는 것을 알고 있는 밀턴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제롬의 실력은 그대들보다 더 뛰어나다. 그러니 가르침을 청하는 거다.”

“주군. 그게 무슨….”

“신분에 따른 자존심은 잠시 접어두지. 우리는 지금 더 강해지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이 용병이 저희보다 강하다뇨? 납득할 수 없습니다.”

릭이 강하게 반발했고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옆에 있는 토미 역시 동감이라는 표정을 하고 서 있었다.

이러다 보니 흐름은 자연스럽게 실력 검증으로 이어졌다.

“기사의 명예를 걸고 결투를 하겠다. 네가 진정 나보다 실력이 좋은지 확인해 보겠다.”

릭이 집어던진 장갑을 보고 제롬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밀턴에게 말려달라는 듯이 곤란한 시선을 보냈지만 밀턴은 이것을 오히려 기회라고 보고 말리지 않았다.

“한 수 가르쳐 주게.”

밀턴의 말에 제롬은 작게 한숨을 내쉬다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서 결투가 시작되었다.

주변에 구경꾼들이 모여들었고 용병들은 결과를 두고 내기 판까지 벌였다.

“릭 토리스다.”

“제롬입니다.”

서로 자기소개가 끝나고 릭은 자신의 커다란 바스타드 소드를 꺼내서 용맹하게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말하자면….

릭은 멘탈이 박살났다.

한 번 지고, 두 번 지고, 세 번, 네 번….

무려 일곱 번 도전했다가 전부 패배한 것이다.

상대가 워낙 조절을 잘해서 몸이 다친 곳은 없었지만 마음은 걸레 조각이 되었다.

‘네가 맹획이냐?’

일곱 번이나 깨지고 나서야 똥인지 된장인지 감이 온 릭을 보며 밀턴은 어이없어서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토미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사회의 진리를 실현했다.

검술만 놓고 보면 릭은 토미보다 더 강하다.

무력 수치만 놓고 봐도 릭이 65이고 토미가 55이다.

그런 릭이 어린애처럼 취급당하는 걸 봤는데 자신이 나서서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이 들 리가 없었다.

밀턴이 나서서 제롬에게 말했다.

“보통이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내 예상보다 훨씬 더 강하군.”

“과찬입니다.”

“자네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알려 주지 않겠나?”

밀턴의 말에 제롬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밀턴이 다시 한마디를 덧붙였다.

“전쟁터에서 함께 싸울 동료의 실력도 몰라서야 어떻게 함께 싸우겠나?”

그런 밀턴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제롬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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