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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게임-4화 (4/257)

제4화

이제 여기서부터가 본론이다.

공화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대륙의 왕국들은 스트라부스 왕국을 군사적으로 지원한다.

하지만, 공화국과의 지루한 소모전을 계속하는 스트라부스 왕국에게 장기적인 지원을 한다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았다.

특히 국가의 재정을 직접 관리하는 왕실에서 그 부담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왕실은 귀족들에게서 자발적으로 군비를 얻어내기 위한 유도 정책을 몇 가지 만들었다.

군비를 지원하는 만큼 세금을 감면해 준다거나, 훈장을 준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중에서 가장 특혜를 많이 받는 것은 영지군을 이끌고 직접 군에 참가하는 귀족들이었다.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만큼 그 특혜도 상당히 후했다.

그 특혜 중에 밀턴이 노리는 것이 있었다.

‘공화국과의 전쟁에 지원한 귀족은 세금을 비롯해서 국내의 모든 경제적인 부채가 3년 동안 정지된다.’

즉, 전쟁에 병사를 이끌고 지원한 귀족은 3년 동안 세금을 내지 않고 경제적인 부채가 있다고 해도 3년 동안 동결된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빚을 해결할 수단이 없는 밀턴에게 있어서는 이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전생에 박문수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밀턴에게 있어서 군대에 두 번 가는 것은 엄청나게 싫은 일이었고, 실제 전쟁에 참가하는 것은 더 꺼려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 방법을 떠올리고 나서도 어디까지나 최후의 방법으로 남겨두었다.

그러나 역시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이상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밀턴은 가문의 기사단장인 샌슨을 불러서 전쟁에 참전할 것이니 병력을 꾸리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중년의 기사인 샌슨은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영주님. 이번 기회에 전쟁에 참가해서 간악한 공화주의자들을 몰아내고 영주님의 이름을 세상에 떨치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이 중년의 고지식한 기사는 젊은 영주가 전쟁에 참가하겠다는 결정을 나라를 위한 애국과 귀족의 명예를 살리기 위해서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 순간 샌슨의 충성심은 91에서 95로 올랐다.

이 정도면 배신의 염려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냥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는 건데 말이야.’

밀턴은 샌슨의 그런 착각을 굳이 수정해주지 않았다.

“전쟁에 지휘관으로 참전하기 위해서는 최소 병력이 100명은 되어야 하오. 당장 영지의 병력을 최대한 모집하시오.”

“알겠습니다. 영주님.”

샌슨은 의욕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런 샌슨이 밖으로 나가자 밀턴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결국 전쟁터에 가는군.”

***

샤를롯트 상단의 지부장 중에 하나인 브릭스는 여느 때와 같이 서류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때 부하 한 명이 들어와서 말했다.

“지부장님. 급하게 보고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냐?”

“포레스트 영지에서 추가 대출을 신청했습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추가로 2,000골드의 대출을 신청했습니다.”

부하의 보고를 받은 브릭스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상단을 호구로 보는 건가? 영지가 담보로 잡혔는데 무슨 수로 추가 대출을 하겠다는 거지?”

“그게, 담보로 작위를 걸었습니다.”

“작위를?”

브릭스는 정말로 깜짝 놀랐다.

작위가 돈으로 거래될 수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법의 맹점을 파고들어서 다소 복잡한 서류 작업을 거치면 작위도 팔 수 있다.

하지만, 이건 귀족들이 진짜 막장으로 떨어지기 전에는 쓰지 않는 방법이다.

작위라는 것은 귀족에게 있어서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재산을 잃고, 권력을 잃어도 작위가 있는 이상 그가 귀족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 작위를 함부로 건다는 것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쉽게 할 수 없는 선택이다.

특히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귀족들 사이에서는 작위를 담보로 걸었다는 말만 들어도 충분히 따돌림의 대상이 될 수 있을 정도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아마도, 새로운 사업을 위해서 종자돈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합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평범하게 생각하면 그게 정상이었다.

브릭스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봤다.

영지만 손에 넣는 게 아니라 작위까지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대단한 이득이다.

거기다 상대가 기적적으로 신규 사업을 성공시켜서 빚을 갚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지.’

적어도 자신들이 손해 볼 일은 절대 없어 보였다.

“좋아. 승인하도록 하지. 다만 서류 작업에는 만에 하나라도 빈틈이 없도록 철저하게 해.”

“알겠습니다.”

그렇게 브릭스는 밀턴에게 추가적으로 2,000골드의 자금을 대출했다.

그리고 한 달 후.

“뭐? 공화국과의 전쟁 지원? 그로 인해서 부채 동결?”

브릭스는 뒤통수가 한 대 맞은 것처럼 띵해졌다.

귀족들이 공화국과의 전쟁에 참가하면 사적으로 지고 있는 부채는 일시적으로 동결된다.

그건 브릭스도 알고 있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보통 귀족들은 돈 때문에 전쟁에 참석한다는 위험 부담을 무릅쓰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자국에서 벌어지는 전쟁도 아니고 전혀 다른 나라인 스트라부스 왕국으로 가서 싸워야 한다.

당연히 귀족으로서의 권위도 약해지고 군령에 의해서 그쪽의 명령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위험도 높다.

그렇다 보니 머리로 알고 있어도 전쟁에 지원을 하는 귀족은 거의 없었다.

“어… 어떻게 할까요? 지부장님.”

“어떻게는 뭘… 씨발 이제 어쩔 거야?!”

브릭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크게 소리쳤다.

이미 지원을 했으면 자신들로서는 손 놓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8,500골드에 더해서 추가로 2,000골드.

무려 10,000골드가 넘는 금액이 졸지에 동결된 것이다.

상단에 있어서 이자 한 푼 붙지 않는 자금 동결은 사실상 손해나 다름없었다.

“저기 지부장님….”

“또 왜?!”

“상단주님이 본부로 오라고 하십니다. 그… 최대한 빨리요.”

“밀턴 포레스트! 이 빌어 처먹을 새끼야!!”

혈압이 치솟은 브릭스는 밀턴을 저주했다.

‘응? 누가 내 욕하나?’

밀턴은 자기 귀가 조금 가렵다고 느꼈다.

그런 밀턴의 앞에서는 두 명의 가신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영주님. 영지의 일은 저희들 노신에게 맡기시고 안심하십시오.”

“영주님이 없는 동안 포레스트 영지는 이 샌슨 부르노가 목숨을 바쳐서 지키겠습니다.”

병력을 추슬러서 영지를 떠나는 날 샌슨과 토마스는 눈물로 밀턴을 배웅했다.

‘꼭 자식 군대 보내는 부모 같군. 쯧, 부담스럽게스리….’

밀턴은 두 사람의 눈물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원래는 샌슨도 데리고 가려고 했지만 밀턴은 곰곰이 생각한 끝에 그를 영지에 두고 가기로 했다.

영지의 병력을 90퍼센트 이상 빼가는 와중에 기사단장까지 빼면 영지의 군사력이 너무 빠져서 치안을 유지하는 것도 버거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샌슨을 내버려 두고 영지의 다른 두 기사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릭, 토미. 너희들은 목숨을 다해서 영주님을 보필해라. 알겠느냐?”

“예. 단장님.”

“걱정말로 맡겨만 주십시오.”

밀턴의 좌우에서 씩씩하게 대답하는 두 명의 기사가 바로 릭과 토미였다.

릭은 덩치가 밀턴보다 머리 한 개는 더 큰 몸집에 화통한 성격이었고, 토미는 그런 릭보다 몸은 가늘었지만 키가 크고 조용하고 침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밀턴이 사전에 능력치를 살펴보니 둘 다 샌슨보다 무력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릭 토리스]

기사 LV.6

무력 - 65 통솔 - 40

지력 - 32 정치 - 19

충성 - 81

특성 - 특공.

특공 LV.4 : 다수의 적을 상대로 단신으로 파고들어서 날뛴다. 잘만 하면 상대방의 전열을 무너트릴 수 있다.

[토미 크로이]

기사 LV.5

무력 - 55 통솔 - 68

지력 - 65 정치 - 42

충성 - 75

특성 - 단결.

단결 LV.4 : 위기 상황에도 부하들을 흐트러짐 없이 통솔할 수 있다. 매복이나 야습 같은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시골 기사치고는 딱 평균인가? 뭐 아직 젊으니까 성장 가능성은 있다는 거겠지.’

가장 중요한 무력 부분에서 이 둘은 샌슨보다 오히려 앞서고 있었다.

샌슨의 무력이 52인 것에 반해서 릭은 65, 토미도 55였으니 말이다.

샌슨은 강하고 용맹한 기사라기보다는 노련하고 충성심이 강한 기사였기에 크게 실망할 일은 아니었다.

토마스와 샌슨, 둘의 충성심은 모두 90이 넘었기 때문에 영지를 믿고 맡기기에는 딱 좋았다.

“그럼 출발한다.”

그리고 밀턴은 두 가신의 배웅을 받으면서 떠났다.

밀턴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캐슬롯이라는 도시였다.

목적지로 가는 길목에 있는 이 캐슬롯이라는 도시는 포레스트 영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한 도시였다.

그리고 이 도시에는 한 가지 별명이 있었다.

용병들의 도시, 라는 별명이다.

“영주님. 캐슬롯의 성벽이 보입니다.”

토미의 보고를 받은 밀턴이 말했다.

“그렇군. 도착하는 대로 병사들을 쉬게 하고 너희 둘은 나와 같이 용병 길드로 간다.”

“알겠습니다. 영주님.”

밀턴이 캐슬롯을 거쳐 가는 이유는 이 도시에서 용병을 구하기 위해서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왜냐하면 밀턴이 전쟁에 참가할 때 지휘관의 신분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한 100명 단위의 병력이 충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휘관의 최소 단위가 백인장이기 때문에 최소 그만큼의 병력을 데리고 가야 지휘관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 밀턴이 데리고 온 병력은 보병 60인에 궁병 20인.

거기에 기사 두 명을 더한다고 해도 82인이다.

100명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이대로는 전쟁터로 간다고 해도 지휘관으로서의 위치를 인정받을 수 없었다.

‘군대에 다시 가는 것도 서러운데 지휘권까지 없는 상황에서 구를 수는 없지.’

그래서 밀턴은 용병을 고용해서 100명의 인원을 채우려고 하는 것이다.

이왕 용병을 고용하려면 최대한 좋은 가격에 유능한 용병과 거래를 하고 싶었다.

물론 그런 용병은 몸값도 꽤 비싸다.

하지만 다행이도 밀턴에게는 샤를롯트 상단을 등쳐서(?) 얻어낸 2,000골드가 있었다.

‘돈 없이 전쟁을 하는 건 불가능하지.’

용병들의 고용뿐만 아니라 병사들의 무장과 기타 비용 등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한 번 더 샤를롯트 상단의 뒤통수를 때려서 자금을 얻어낸 것이다.

물론 괘씸한 것도 조금은 있었다.

밀턴은 캐슬롯 용병 길드로 직접 가서 자신의 눈으로 보고 용병을 고용하기로 했다.

‘내가 직접 본다는 것 자체에 강한 의미가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밀턴은 릭과 토미를 데리고 용병 길드에 찾아갔다.

“어서 오십시오. 무슨 용무로 찾아오셨습니까?”

테이블의 접수원에게 밀턴은 얕잡아 보이지 않게 최대한 거만하게 말했다.

“용병을 고용하고 싶다.”

“그렇군요. 의뢰인의 성함은….”

“밀턴 포레스트 자작이다.”

“아, 귀족이시군요. 여기 의뢰서가 있습니다. 양식에 맞춰서 작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테이블의 접수원이 내민 종이를 받은 밀턴은 양식을 살펴봤다.

거기에는 고용주의 이름과 신분, 그리고 고용 목적과 고용하려는 용병의 수준과 숫자까지 모두 기입하게 되어 있었다.

밀턴은 그 양식을 모두 작성해서 접수원에게 내밀었다.

“고용 목적은 전쟁 참가, 고용 수준은 D~C급, 원하는 숫자는 20~30인. 맞습니까?”

“그렇다. 그리고 내가 고용하는 용병은 내가 직접 면접을 보고 싶군.”

“면접? 혹시 실력 테스트를 원하시는 거라면 허락할 수 없습니다. 용병들은 이미 우리 길드의 엄격한 심사 규정에 따라서 등급이 책정되었기 때문에 추가적인 실력 테스트는 공식적으로 허용하지 않습니다.”

접수원의 딱딱한 말에 밀턴은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 밀턴의 신분이 조금 높았다면 일개 접수원이 이렇게 딱딱한 목소리로 쪼아대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개 자작가 정도라면 용병 길드에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신분이었다.

용병 길드는 방대할 정도로 컸고, 자신들의 뒷배에 고위 귀족들도 상당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밀턴은 화가 나더라도 참으며 근엄하게 말했다.

“날 뭐로 보는 거냐? 실력 테스트가 아니라 그저 면접을 보겠다는 거다. 그것도 허가 못 한다는 말이냐?”

귀족의 권위를 내세워서 말하자 접수원은 잠깐 당황하다가 말했다.

“그 정도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럼 바로 준비해라.”

“아니요. 아무래도 바로는 무리입니다. 용병들에게 고지를 하고 사람을 모으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엉망이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지?”

“그… 그게….”

밀턴이 추궁에 접수원은 당황했다.

정해진 업무와는 별개의 특이 사항이다 보니 어찌 대응해야 할지 혼란이 온 것이다.

밀턴은 그런 접수원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다. 캐슬롯의 용병 길드는 수준이 높다고 들었는데 이제 보니 헛소문이군. 차라리 다른 곳에 가는 게 낫겠어.”

그렇게 말하며 밀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하… 하루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희 용병 길드의 이름을 걸고 최고의 용병들을 모아 놓겠습니다.”

접수원이 급하게 밀턴을 붙잡았다.

“그 말 믿어도 되나?”

“예. 물론입니다.”

“좋아. 그럼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찾아오지.”

“알겠습니다. 포레스트 자작님.”

그렇게 밀턴은 용병 길드를 나섰다.

나가는 길에 밀턴의 뒤편에 있던 릭이 말했다.

“영주님. 용병 길드에서는 어째서 그렇게 고압적으로 나가신 겁니까?”

“왜냐하면 거래에서 만만하게 보였다가 호갱으로 찍히기 때문이지.”

“호갱?”

“그런 게 있다.”

밀턴에게 있어서 이번에 용병을 고용하는 일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저자세로 나가서 호갱으로 찍혀 버리면 용병 길드에서 주선 자체를 엉망으로 할지도 몰랐다.

그러니 처음부터 까탈스런 귀족 티를 팍팍 내고 그 후에는 상대방의 자존심을 자극한 것이다.

‘전생에서도 하청 업체에 외주를 발주할 때는 만만하게 보여서는 안 됐지.’

하청의 마음은 하청이 잘 아는 법.

전생에 설계 회사에 있으면서 하청을 줘 보기도 하고 받아 보기도 했던 밀턴이었다.

그러니 용병 길드를 최대한 쪼아대며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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